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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오락가락 도시재생? 잘못된 점 인지하면 멈추고 돌아봐야"

천사요정 2019. 1. 25. 02:30
박원순 시장이 24일 서울시청 집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박 시장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협치와 혁신, 두 가지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대형 사업들 잇단 반대 부닥쳤지만 서울의 미래 위한 논쟁은 받아들일 것 도시의 유기체적인 생태계 속에서 무엇을 보존할지 사회적 합의 이뤄야 한국 사회 갈등 해결하고 변화시키려면 협치와 혁신이라는 두 날개 필요


박원순 서울시장(63)은 24일 “사업 추진 과정에서 잘못된 점을 인지하면 일단 멈추고 돌아보는 게 옳다”고 말했다. “미래를 위한 논쟁이 사업을 잘되게 만드는 하나의 과정”이라고도 했다. 행정안전부가 광화문광장 재편안 수용 불가 입장을 낸 것에 대해서는 “실무자들 간에 실수가 있었던 것 같다”며 “오늘 관계자 회의를 열고 잘 협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박 시장은 이날 서울시청 집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며 “서울시장이 된 후 논쟁이나 반대, 저항이 없었던 게 아니지만 오히려 그런 것들이 그 사업을 잘되게 만드는 하나의 과정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한번 허물어버리면 다시 되돌리지 못하는 것이 도시의 골격이고, 시민들의 생활유산 아니냐. 그래서 (을지로 재개발) 재검토를 결정했다”며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들은 다양한 논쟁과 토론을 거쳐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부동산 급등으로 곤욕을 치렀던 박 시장은 최근엔 광화문광장 확장부터 을지로 일대 재개발까지 서울시가 추진 중인 대형사업이 잇따라 반대 여론에 부닥쳤다. 새 광화문광장을 추진하면서는 행안부와 제대로 협의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을지로 일대 재개발 재검토는 ‘박원순식 도시재생’ 정책이 너무 ‘오락가락한다’는 비판도 받는다.


박 시장은 이날 논란을 겪고 있는 사안들에 대해 충분한 공론화와 갈등 조정 과정을 강조하며 “서울의 미래를 위해 오히려 논쟁은 필요하다” “논쟁과 반대가 사업을 잘되게 만든다”는 자신감을 나타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을지로·청계천 일대 철거가 본격화되기 전에 도심산업 문제를 검토 안 했나.

“충분히 살피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이 지역은 너무나 노후화돼 도시재생이 정말 필요한 지역이었다. 도시재생은 살릴 것은 살리고 지킬 것은 지키면서 철거할 것은 철거하는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늘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 부분을 충분히 챙기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추진 과정에서 잘못된 점을 인지하면 일단 멈추고 돌아보는 게 옳다. 한번 허물어버리면 다시 되돌리지 못하는 것이 도시의 골격이고 시민들의 생활유산 아닌가.”


- 2015년 역사도심기본계획을 세웠는데 왜 이 부분을 놓쳤나.

“세운상가는 제가 시장이 되기 전에 전면 철거될 예정이었다. 서울시가 세운상가를 보존하기로 하면서 8개였던 개발 블록이 171개로 쪼개졌다. 소규모 재생을 유도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그 안에 있는 많은 귀한 것들이 사라질 수가 있다. 해장국집이 새로 지은 고층빌딩 안으로 들어가버리면 맛은 유지하더라도 이전의 장소가 주던 흥취는 없어진다. 가능한 한 장소 자체를 살리는 게 맞다는 게 제 철학이다. 그래서 재검토를 결정했다. 이런 일은 서울뿐만 아니라 어느 도시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 세운상가 일대 도심산업이 어떤 면에서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는지.

“현재 상태론 노후화돼 있다. 하지만 그 정도 도시산업 생태계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이곳에 모인 장인들은 실력이 있지만 새로운 시대 흐름에는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반면 청년들은 시대에 맞는 감각과 감수성이 있지만 기반이 전혀 없는 곳에서 사업을 하면 한계가 있다. 둘이 조화롭게 가는 게 성공하는 길이다.”


- 결국 무엇을 ‘보존’해야 하느냐는 질문이 남는다.

“도시란 유기체, 즉 살아 있는 것이다. 유기체적인 생태계는 가능하면 남겨야 한다는 게 원칙이다. 이 원칙 위에서 다양한 논쟁과 토론,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무엇을 보존할지에 대해서는 시민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다 다르잖나. 다양한 의견을 듣다 보면 합의를 이룰 수 있다.”


- 철거가 진행 중인 세운3구역에 독립운동가 집 자리가 있다. 오래된 공구상 간판을 역사박물관에 보존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충분히 고려할 만하다. 이처럼 좋은 의견을 얼마든지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 이견이나 논쟁은 언제나 좋은 길로 가는 데 큰 장점이 된다. 제가 서울시를 맡고 난 이후 논쟁이나 반대, 저항이 없었던 게 아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것들이 어떤 사업을 잘되게 만드는 하나의 과정이다.”


- 서울시가 지방분권을 강조하는데 자치구에도 권한을 내려주고 있나. 소통이 안된다는 지적도 나오는데.

“구청장 입장에선 그런 점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2014년에 모든 구를 1박2일씩 다니면서 현장을 돌았다. 그 후 자치구 의견을 먼저 듣고 조정하는 ‘자치영향평가’를 도입(2016년)했다. 기본적으로 작동은 되고 있는데 구청장들 입장에선 늘 아쉬울 것이다. 우리 업무 가운데 내려보낼 수 있는 것은 정리해 다 자치구로 이전하라고 4~5개월 전에 이미 얘기했다. 검토 단계에 있는 것으로 안다.”


- 올해 시정계획에서 경제·민생살리기를 최우선에 둔다고 했다. 지방정부로서 한계가 있지 않나.

“그래서 지방분권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이다. 시민 삶의 질뿐 아니라 대한민국 국가경쟁력까지 높아진다. OECD 국가 중 우리만큼 중앙집권적인 나라가 없다. 문재인 대통령께서 혜안을 가지고 ‘연방제에 준하는 지방분권을 하겠다’고 하셨는데 지금 부처들은 대통령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는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제로페이를 보자. 정착되면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저는 늘 ‘지도자에겐 미래를 볼 수 있는 눈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4대강 사업을 통해 21조원을 낭비하고 대한민국을 생태 구렁텅이로 몰아넣지 않았나. 미래를 보는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다.”


- 올해 복지예산을 대폭 늘렸다. 오세훈 전 시장이 자유한국당 입당 기자회견에서 ‘무상급식’ 투표에 대해 사죄했다.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아직도 복지가 거의 꼴찌 수준이다. 서울시는 6조원 정도 되던 복지예산을 제가 들어오고 11조원으로 늘렸잖나. 그러고도 지금 부족하다. 이런 마당에 아이들 먹을 것을 가지고 반대했다는 건 시대를 너무 못 읽는다는 얘기다.”


- 최근 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있나.

“ ‘홍길동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양재동에 카이스트가 운영하는 인공지능(AI) 허브가 있다. AI가 내 목소리를 똑같이 흉내낸다. 그동안 제가 했던 연설과 쓴 글, 시의 정책을 입력하고 ‘5분 인사말을 해라’ 지시하면 저보다 훨씬 잘할 것이다. 앞으로 인터뷰·강연 전용 AI 박원순이 나오면 저는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할 수 있다. 올해 안에 민원처리·상담 업무는 다 AI가 할 수 있도록 지시했다. 일자리가 줄어든다든지 여러 사회적 문제가 생기겠지만 기술의 변화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다음에 인터뷰를 한다면 자세히 보시라. 혹시 AI가 아닌지(웃음).”


- 문재인 정부 잘하고 있나.

“대통령 임기가 절반도 안 지났는데 정부의 정책을 논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지금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폭적인 힘을 실어줘야 할 때다.”

- 대한민국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보나.

“늘 서울시정을 새의 날개에 비유해왔다. 혁신이라는 날개와 협치라는 날개. 서울시만 해도 얼마나 큰 갈등이 많았나. 하지만 동네마다 골목마다 찾아가서 시민들과 얘기하면 다 풀리더라. 여야갈등, 빈부갈등, 세대갈등, 심지어는 남녀갈등, 이념갈등까지, 협치를 통해 수평적, 수직적, 전방위적으로 이 갈등을 해결해야 한다. 평화통일로 가는 길을 위해서도 남남갈등은 해결해야 하지 않겠나. 둘째는 혁신. 서울시의 디테일한 변화는 결국 혁신이 있어 가능했던 것. 이 두 가지가 대한민국에 필요하다.”


이명희·최미랑 기자 minsu@kyunghyang.com

https://news.v.daum.net/v/201901242149237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