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제법률/정치는

해제된 1988 외교문서..특명 "대선 前 김현희 압송"

천사요정 2019. 3. 31. 22:28

[뉴스데스크] ◀ 앵커 ▶

지난 1987년 발생한 대한항공 858기 폭파 사건, 당시 문서를 외교부가 30년 만에 공개하면서 전두환 정권이 이를 어떻게 정치적으로 이용하려했는지가 다시 한번 확인됐습니다.

이호찬 기자가 보도합니다.


◀ 리포트 ▶

지난 1987년 12월 10일 작성된 3급 기밀, 외교 전문입니다.

칼기 폭파사건을 조사하고 있던 바레인에 특사로 파견된 박수길 당시 외무부 차관보가 보내온 겁니다.


"칼기 잔해도 발견하지 못한 상황에서 용의자 인도가 성급하다는 이야기도 없지 않다"고 인정하면서도 "마유미가 늦더라도 15일까지 도착하기 위해선"이란 단서를 답니다.

하루 뒤인 87년 대통령 선거일 이전에 유력 용의자 마유미, 즉 김현희를 한국으로 송환해야 한다는 목표가 읽히는 대목입니다.


당일 또다른 보고에는 최대 우방국인 미국과도 선을 긋습니다.


"미국이 김현희 인도를 대선 이후로 미루도록 힘을 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미국 측에 송환 정보를 소상하게 주지 않는 게 좋을 것"이란 분석도 공개됐습니다.


특히 대선 3일 전, 예정됐던 김현희 인계가 하루 연기되자, '커다란 충격', '우리 측에 너무나 많은 문제를 제기'한다 말하며, 바레인 측을 강하게 압박한 사실도 확인됐습니다.


[박수길/전 유엔대사(당시 외무부 차관보)] "김현희를 빨리 데려와야 진실을 밝힐 것 아닙니까. 그래서 그런 것이지, 무슨 대선과 연관해서… (그런 건 아닙니다.)"

김현희는 결국 대선 전날인 15일 오후, 김포공항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뉴스데스크(1987년 12월 15일] "바레인 당국의 조사를 받아오던 마유미(김현희)가 대한항공 DC10 특별기편으로 오늘 오후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외교 문서 25만여 쪽엔 88서울올림픽과 관련된 비화도 담겨 있습니다.


당시 국제올림픽위원회, IOC와 우리 정부는 남북공동 개최를 논의하다 북측의 반대로 무산됐는데, 실은, 사마란치 IOC 위원장이 소련 등 사회주의 국가들의 대대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기 위해, 북한의 반대를 미리 예상하고도 이를 추진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앞서 LA올림픽이 동구권의 불참으로 반쪽짜리 대회란 오명이 남았기 때문입니다.

88년 서울올림픽은 소련과 중국 등 160개 국이 참석하면서 사상 최대 규모로 열렸습니다.


MBC뉴스 이호찬입니다.

이호찬 기자 (dangdang@imbc.com)

https://news.v.daum.net/v/20190331203111721



‘88서울올림픽.KAL858기사건’ 등 외교문서 25만쪽 공개




31일 외교부가 생산된 지 30년이 경과한 1988년도 문서를 중심으로 총 1,602권(약 25만여쪽)의 외교문서를 공개했다. 주요내용을 문서철별로 해설.요약한 원문해제도 함께 제공된다.

이번에 공개되는 문서에는 △88서울올림픽대회 개최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 사건 △노태우 제13대 대통령 취임식 △남극기지 설치 △1978 한·일 대륙붕 협정 등이 포함되어 있다. 
  
공개된 원문은 외교사료관 내 『외교문서열람실』에서 누구나 열람이 가능하다. 외교문서공개목록 및 외교사료해제집 책자는 주요 연구기관·도서관 등에 배포되고, 외교사료관 홈페이지와 모바일을 통해서도 이용할 수 있다. 

외교사료관의 위치는 서울 서초구 남부순환로 2572(서초동)이다.

홈페이지는 http://diplomaticarchives.mofa.go.kr.
  
외교부는 1994년부터 이번까지 26차에 걸쳐 총 26,600여권(약 370만쪽)의 외교문서를 공개했다.


<『제26차 외교문서공개』 주요 문서>

(한반도·국내정세)
 o 노태우 제13대 대통령 취임식
 o 대한항공 858기 폭파사건
 o 서울 올림픽대회: 남북한 단일팀 구성 및 공동개최 문제, 주요인사 초청, 문화행사, 홍보 등

(한·미 관계)
 o 미국의 소리(VOA) 방송중계소 설치문제
 o 미국 대통령 선거
 o 노태우 대통령 미국 및 UN 방문
 o 한·미국 제7차 경제협의회
 o 한·미국간 미국 통상법 301조 후속조치 협의

(한·아시아 관계) 
 o 최광수 외무장관 동남아 순방
 o 재일본 한국인 후손의 법적지위에 관한 고위실무자회의
 o 한·일 대륙붕 협정(1978년도, 재심의 문서)

(한·유럽 관계)
 o 대몰타 관계개선

(다자 및 통상관계)
 o 제43차 유엔총회 및 비동맹회의 대비 특사 파견
 o 남극기지 설치
 o UR(우루과이라운드) 각료회의, 그룹별 회의
 o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관련회의


(자료제공-외교부0


'대선 전 김현희 압송하라' 전두환 정권 노림수





앵커


전두환 정권이 지난 1987년 대한항공기 폭파사건을 정략적으로 활용하려 한 정황이 드러났습니다.

폭파범 김현희를 어떻게든 대선 전에 국내로 데려오려 했다는 게 새롭게 공개된 외교문서로 확인됐습니다.


권준기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대한항공기 폭파 사건이 일어난 건, 13대 대통령 선거일이 3주도 채 남지 않은 1987년 11월 29일.

당시 정부는 폭파범 김현희를 대통령 선거일이던 12월 16일 전까지 국내로 데려오기 위해 백방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이런 사실과 정황은 30년이 지나 공개된 외교문서에 자세히 담겼습니다.

당시 김 씨의 신병을 확보한 바레인 측은 "인도가 성급하다"고 난색을 표했지만, 특사로 파견된 박수길 차관보는 '늦어도 15일'까지 데려가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어떻게든 대선 하루 전까지 신병을 인도 받으려는 계획에서 정치적 활용 의도가 엿보입니다.

약속된 이송 일정을 5시간 앞두고 바레인 측이 일정 연기 통보를 하자, 외교력을 총동원하는 모습도 확인됩니다.

지나치게 많은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며 바레인을 압박하는 동시에, 사우디 정부에 바레인에 영향력을 행사해달라고 요청하고, 바레인 고위직들과 친분이 있는 국내 인사에게도 접촉 지시를 내린 겁니다.

결국, 바레인은 하루 뒤 김 씨의 이송을 승인했고 김 씨는 대선 하루 전인 12월 15일, 극적으로 입국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박 차관보가 미국을 의심하는 내용도 담겼는데, 미국이 대선 이후 김현희를 이송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며 미국 측에 너무 소상한 정보를 주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보고한 겁니다.

이와 더불어 일본 위조여권을 갖고 있던 김 씨 신병 확보를 놓고 일본과 신경전을 벌인 대목도 외교문서를 통해 확인됐습니다.

YTN 권준기입니다.


https://www.ytn.co.kr/_ln/0101_2019033122052156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