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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방사성폐기물 실종사건, 내부자들 ‘검은 커넥션’ 정황

천사요정 2018. 9. 30. 11:04
원안위, 원자력연구원 조사 결과
관리자급 직원들 개입·방조 정황
“용역업체가 빼돌려” 주장해놓고
매각대금 환수도, 상부보고도 안해
반출 진술·기록·증언 엇갈리기도
방사성 폐기물 무더기 반출(그래픽_장은영)
방사성 폐기물 무더기 반출(그래픽_장은영)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방사성 폐기물인 납·구리·금 등이 10~15년 전 무더기로 반출돼 ‘행방불명’된 사실이 올해 초 뒤늦게 확인돼 논란이 이는 가운데, 폐기물 반출 및 매각 등 불법 행위에 원자력연구원 관리자급 직원들이 직간접으로 개입했거나 방조한 정황이 원자력안전위원회 조사 결과 드러났다.

폐기물에 접근할 수 있는 용역업체의 절도나 말단 연구원들의 일탈 수준을 넘어서는 ‘조직적 범죄행위’가 이뤄져, 엄격해야 할 방사성 폐기물 관리체계에 구멍이 뚫린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이철희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원자력안전위원회를 통해 받은 ‘원자력연구원 방사성폐기물 무단 처분 등에 관한 조사결과’를 보면, 현재까지 확인된 2003~2009년 원자력연구원 방사성 폐기물 무단 유출 및 매각 사건들에 대해 연구원의 부서장급 직원들이 반출 때부터 알고 있었거나 직접 연루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원자력연구원의 규제기관인 원자력안전위는 올해 초 연구원에서 폐기물이 무단 유출됐다는 제보를 받고, 2월19일부터 6월27일까지 연구원의 폐기물 관리기록을 재검토하고 사건 관계자들을 불러 조사를 벌였다.

서류상의 보관기록과는 달리 사라진 것으로 현재까지 확인된 폐기물은 납 44t,
철제·알루미늄·스테인리스 30t, 구리 6t, 금 0.26㎏ 등 총 80여t에 이른다.

이 폐기물들은 원자력 기초·응용연구를 했던 서울 노원구 ‘서울연구로’(연구용 원자로 시설)를 해체하거나 대전 원자력연구원 우라늄변환시설을 각각 2000년과 2004년부터 해체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들이다.(<한겨레> 6월29일치 10면)

이 가운데 10.6t의 납 벽돌이 2003년 5월 서울연구로에서 사라진 사례를 보면, 해당 폐기물을 반출한 연구원 직원의 진술과 관련 기록, 그리고 제3자의 진술이 모두 엇갈린다.

해당 직원 ㄱ씨는 ‘서울연구로 방사성동위원소 생산시설에 설치돼 있던 납 벽돌을 대전 연구원으로 옮겨 사용했다’고 원안위 조사 때 주장했다. 그러나 ㄱ씨가 2003년 반출 당시 작성한 ‘운반·반출 통보계’에는 반출 목적이 ‘용기 제작’이라고 적혀 있어 진술과 엇갈린다.


더욱이 원안위 조사 결과 2003년 당시 대전 연구원으로 서울연구로 폐기물이 반입된 사실 자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나 ㄱ씨의 주장은 더욱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에 원안위는 조사 결과에서 “납 벽돌이 대전 연구원으로 이송되지 않고 관계자의 부당 이익을 위해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폐기물을 무단 매각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 것이다.

대전 우라늄변환시설에서 2009년 사라진 구리 5t 역시 수상한 대목이 적지 않다.

연구원 방사선안전관리자 ㄷ씨는 원안위 조사 때 ‘용역업체 직원들의 구리 절취, 매각을 알게 돼 상급자에게 보고한 뒤 구리전선을 회수하고자 고물상을 찾아갔지만 이미 재활용업체로 물건이 처분돼 회수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ㄷ씨는 해당 고물상의 위치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데다, 용역업체의 매각대금을 환수하지도 않았다고 원안위 조사에서 진술했다.

원안위는 ㄷ씨가 사건 인지 직후 구리 폐기물을 얼마에 매각했는지 알아봐야 하는데도 대금 환수조차 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해 ㄷ씨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하고 있다.

당시 ㄷ씨 등은 해당 구리 절취 및 매각 사건을 연구원장과 원안위에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

원안위는 자체 조사 결과를 담은 문서에 “(폐기물 절취·매각은) 개인이 할 수 없는 일”이라는 판단을 덧붙이기도 했다.
원안위는 “당시 해체 책임자와 관련자들이 자신들은 폐기물 절취·소실에 기여한 바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납이나 철제 폐기물은 지게차나 트럭과 같은 중장비가 투입돼야 운송할 수 있다”며 “납 폐기물 절취·소실에 연구원 소속 해체 책임자 및 관련자가 직간접으로 관련돼 있거나 묵인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연구소 안으로 중장비가 들어가고, 부피가 큰 폐기물이 수송 장비에 실려 옮겨지는 과정을 소수의 일부 개인이나 외부 용역업체가 몰래 결정하고 실행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원안위는 폐기물 무단 반출 및 매각 과정과 이를 통해 부당 이득을 챙긴 관련자들을 더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이 사건을 지난 6월 말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대전지방검찰청에 통보했고, 현재 경찰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원안위는 애초 해당 폐기물은 외부로 내뿜는 방사선량이 적은 것들이라서 연구원이 연간 방사선량률이 충분히 낮다는 사실을 규정대로 원안위에 입증·보고했다면 정상적인 매각 또는 처분 절차를 밟을 수도 있었다는 입장이다. 반출된 폐기물이 환경과 인체에 위해한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같은 허술한 방사성 폐기물 관리체계가 제보를 통해 드러나지 않았다면, 위험한 폐기물의 반출 시도 또한 막을 도리가 없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무엇보다 정부 출연 연구기관에서 드러난 관리 부실이라는 점에서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 의원은 “원자력연구원의 조직적 방조가 불러온 범죄 사건인 만큼 검찰의 엄정한 수사와 함께 원자력연구원의 고강도 개혁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최하얀 기자 chy@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863727.html?_fr=sr1#csidxc4523211310e8ec8d9a49d42cec3af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