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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로머에게 소득주도성장을 묻다 / 이강국

천사요정 2018. 10. 17. 00:03

이강국
리쓰메이칸대 경제학부 교수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로머 뉴욕대 교수에게 한국 기자가 소득주도성장에 관해 물어보았다고 한다. 소득주도성장의 아이디어를 그에게 제대로 설명했을지 의문스럽지만, 로머는 소득 증가가 새로운 기술의 습득으로 이어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우문현답을 했다.

로머의 내생적 성장론은 과거에는 블랙박스와도 같았던 기술변화를 경제성장론에 통합하는 뛰어난 통찰을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지식을 고려하면 생산함수는 수익체증의 성격을 지니며, 따라서 지속적 경제성장의 핵심은 연구개발 등을 통한 새로운 지식의 창출과 기술혁신이다.

소위 혁신성장의 원조라 할 만한 이론이다. 그는 특히 외부효과가 큰 지식의 생산은 시장에만 맡겨놓으면 안 되고 연구개발 지원 등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가 환경문제를 연구한 윌리엄 노드하우스 예일대 교수와 함께 노벨상을 수상한 이유도 둘 모두 경제성장에서 시장의 실패를 극복해야 한다는 이론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내생적 성장론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은 매우 훌륭한 나라다. 국내총생산 대비 연구개발 지출은 계속 증가하여 2016년 4.2%로서 이스라엘 다음으로 세계 2위이고 인구 대비 연구자 비중도 마찬가지다. 그래서인지 인구 대비 특허도 세계 최고 수준이고 여러 기관이 발표하는 혁신랭킹에서도 상위권이며 장기적으로 생산성 상승률도 매우 높다.

그럼에도 혁신이 부족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은 것은 왜일까.
아마도 연구개발 등 혁신의 노력과 성과 모두가 소수의 대기업에만 집중되어 있고, 여러 영역에서 기득권과 지대가 강고한 현실과 관련이 클 것이다. 또한 정부의 연구개발 지원이 모험적이지 못하고 장기적이지도 못하다는 것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실제로 한국에서 혁신의 효과를 보여주는 총요소생산성 상승률도 2010년 이후 크게 하락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연구개발의 효율성을 높이고 성과를 모두가 공유하기 위해 제도와 사회를 어떻게 공정하고 혁신적으로 만들 것인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다.

이제 로머 교수에게 던진 질문을 다시 생각해보자. 과연 소득주도성장은 혁신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흥미롭게도 각국의 데이터를 비교해보면 보다 평등한 국가가 인구당 특허와 장기적인 총요소생산성 상승률이 더 높다. 불평등이 심각하면 혁신과 생산성 상승이 저해될 수 있는 여러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라지 체티 하버드대 교수 등의 최근 연구는 미국에서 3학년 때의 수학 성적이 높은 학생이 나중에 특허를 받는 발명가가 될 확률이 높지만, 저소득층 아동의 경우 고소득층에 비해 훨씬 낮다고 보고한다. 재능 있는 아이들이 집이 가난해서 발명가로 성공하지 못하고 ‘잃어버린 아인슈타인’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한국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또한 최근의 거시경제학 연구는 세계 금융위기 이후의 총수요 둔화가 기업들의 신기술 도입과 연구개발 투자의 정체로 이어져 미국의 총요소생산성 상승 둔화에 영향을 끼쳤음을 보인다. 불황은 혁신과 장기적 성장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혁신을 위해서도 불평등을 개선하고 총수요를 확대하는 노력이 중요함을 의미한다. 즉 소득주도성장의 방향이 혁신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최근 국제기구들이 포용과 혁신이 함께 가야 하고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그러나 새 정부 들어 불평등은 커졌고 사실상의 긴축으로 내수는 정체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그러한 노력을 충분히 기울이고 있는지도 자문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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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65907.html?_fr=sr1#csidx5258580ea524b9197f4367a173e44f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