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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의견] 경찰조차 주저했던 그 날..'강제진압' 명령한 그는?

천사요정 2019. 1. 20. 06:11

[뉴스데스크] ◀ 앵커 ▶

철거민 다섯 명과 경찰 한 명이 목숨을 잃었던 용산 참사가 발생한지 어느덧 10년이 됐습니다.

경찰의 무리한 강제진압이 있었고, 여섯 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습니다.

검찰 과거사위원회 진상조사도 사실상 중단된 상탭니다.

먼저 곽승규 기자가 보도입니다.


◀ 리포트 ▶

용산참사 유가족들이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자유한국당 김석기 의원을 처벌하고 국회의원직을 박탈하라는 요구입니다.

[유영숙/故 윤용헌 씨 부인] "저희 유가족들이 김석기를 만나러 갈 것입니다. 그러니 막지 말아주세요."

자유한국당 김석기 의원.

당시 그는 차기 경찰청장으로 내정되자마자 바로 다음날 강제진압을 승인했습니다.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며 잠깐 물러났지만 이후 오사카 총영사, 한국공항공사 사장까지 역임했습니다.

참사 뒤에도 승승장구하고 있는 김석기 의원, 그에겐 아무런 책임이 없는 걸까요?


2009년 1월19일 새벽.

철거민들이 망루를 짓기 시작합니다.

강제철거에 따른 세입자 평균 보상금 2천 5백만 원.

3개월치 휴업보상금에 불과한 이 돈으로는 다시 가게를 차릴 수 없었습니다.


[김영덕/故 양회성 씨 부인] "2억 원을 넘게 투자를 해서 수리하고, 또 권리금 주고 또 집기 들이고… (그런데 보상금이) 6,100만 원이 나오니까 저희는 기가 막힌 거죠."


하지만 경찰은 곧바로 강제진압에 나섰습니다.


불이 날 경우 진화에 필요한 화학소방차나 에어매트 같은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준비돼 있지 않았습니다


경찰특공대 제대장조차 "작전을 연기하자"고 건의했지만 "겁 먹었냐"는 지휘부의 핀잔이 돌아왔습니다.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갑작스레 발생한 불로 철거민 5명이 숨졌고 위험한 작전에 내몰린 특공대원 한 명 또한 안타까운 목숨을 잃었습니다.


[김권찬/故 김남훈 특공대원 아버지] "나이 32살의 다 키운 자식을 부모보다 먼저 보냈다는 게 너무 가슴이 아프죠. 눈물을 안 흘릴래야 안 흘릴 수가 없어요."


당시 현장 경찰관조차 이후 법정에서 "한번쯤 모든 사람이 만나 대화해봐야 한다"고 토로할 정도로 어이 없는 작전이었습니다.


하지만 김석기 의원은 당당합니다.


[김석기/의원] ((과잉진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인정하십니까?) "그게 대법원 판결이 다 난 사안 아닙니까?"


김 의원이 얘기하는 법원의 판결, 그 판결의 토대가 된 수사는 공정했을까.


검찰은 지휘책임자인 김석기 의원에게 "당시 무전기를 꺼놔 상황을 몰랐다"는 서면 답변만 받고 한 번도 부르지 않았습니다.


법원 역시 철거민에게만 죄를 물었습니다.


당시 대법원의 주심은 양승태 대법관이었고, 이 판결 이후 대법원장에 취임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조차 철거민들을 외면했습니다.


관련 회의를 방해하며 "독재했다고 해도 좋다"는 발언을 남겼던 현병철 전 위원장은 연임 청문회 직전에야 용산 참사를 다룬 영화를 몰래 보려다 쫓겨났습니다.


어느덧 10년,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진상 조사에 나섰지만 사실상 활동이 중단됐습니다.

과거 수사 담당자들의 거센 반발 속에 진상조사단원들이 잇따라 사퇴했기 때문입니다.


[김영덕/故 양회성 씨 부인] "무엇이 두려워서 (과거사위에) 외압을 행사하고 수사조차 못하게 하는지, 떳떳하다고 한다면 하루빨리 진상규명을 해주길 바랍니다."


MBC뉴스 곽승규입니다.

곽승규 기자 (heartist@mbc.co.kr)

https://news.v.daum.net/v/201901192025109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