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윤리환경/사람은

이휘소의 진실

천사요정 2019. 3. 25. 19:19

출판저작물내의 저작권,초상권 침해



/사인-사생활부분 다르게 묘사
/일기-편지-가족사진 무단게재"
/법원 "중대성 감안 신중히 판단"

재미 소립자물리학자 고 이휘소박사의 인생을 소재로 발간된 베스트셀러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등 3종의
저작물이 이박사의 유족들에 의해 명예훼손과 저작권 인격권 침해 등의 혐 의로 법원에 제소됐다.
현재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이박사의 중국계 부인 심만청씨와 아들 천, 딸 안씨 등 3명은 2일 김정균변호사를
통 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의 저자 김진명씨와 도서출판 해냄 대표 송 영석씨, 소설 이휘소 - 핵물리학자
이휘소 의 저자 공석하씨와 도서 출판 뿌리의 당시 대표 황명혜씨를 상대로 서울민사지법에 이들 저작물의
출판 및 판매 금지가처분 신청을 냈다.
이들 책중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는 3백만부 이상이 팔린 베스트셀러로 영화화 계획까지 세 워져 있다.
유족들은 신청서를 통해 이들 저작물이 "이박사의 일기, 편지등을 무단게재하거나 인용함으로써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고 이 박사의 삶을 실제와 다르게 묘사함으로써 이박사의 삶과 죽음, 유족들의 생활을
왜곡되게 표현했다"며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38개항, 소설 이휘소 9개항, 핵물리학자 이휘소 19개항씩을
지적했다.
유족들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는 이박사가 미국 고속도로에서 우연 한 교통사고로 사망했음에도,
한국의 북악스카이웨이에서 미 CIA와 한 국 중앙정보부의 사주를 받은 폭력집단 두목에게 자동차사고를
가장한 테 러를 당해 사망한 것으로 묘사했다고 말했다.
또 박정희대통령의 명령 으로 요정 접대부가 1년동안 이박사를 모신 것으로 묘사하고, 이박사의 살해장면을
비어를 사용해 잔인하게 묘사함으로써 명예를 크게 훼손했다 고 주장했다.
특히 이박사의 성명을 임의로 이용후 로 바꾸어 성명 권을 침해했고, 생존해 있는 부인 심씨를 사망한 것으로
묘사했다고 지적했다. 유족들은 작가 김진명씨가 이휘소의 명성과 경력 업적 등을 상업적으로 이용했다고
주장했다. 유족들은 핵물리학자 이휘소 의 편 저자 공씨는 심씨의 자택을 방문한 사실이 없는데도 방문한
것으로 묘사 하고, 이박사가 쓰던 방모습과 심씨와의 대화내용을 무단으로 마음대로 묘사했다고 주장했다.
또 이책에 가족사진을 무단게재, 초상권을 침해 했고, 이박사를 미국 남북한 소련이 죽였을 것이라고 함으로써
명예를 훼손했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또 소설 이휘소 가 55~72년 사이 에 쓰여진 이박사의 편지 44장을 무단게재했고, 74년 9월26일
박 대통령을 면담한 사실이 없는데도 마치 면담한 것처럼 묘사했다고 말했다 . 또 77년 3월20일자 일기를
자의적으로 조작하고 77년 3월1 8일과 4월8일자 박대통령의 편지를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의 심리를 맡은 서울민사지법 합의50부(재판장 권광중부장판사)는 "사안 의 중대성을 감안, 신청인과
피신청인 양측의 변론을 거쳐 신중히 판단 을 내리겠다"며 "심리에는 최소한 한달 이상이 소요될 것"이라고
밝혔 다. 한편 82년 7월 서울민사지법은 율산그룹 회장 신선호씨를 모델 로 한 서울은 지금 몇시인가 라는
소설에 대해 신씨가 낸 서적인쇄 및 발매금지 가처분신청에 대해 "소설에 게재된 신씨의 사진을 빼기만
하면 발간할 수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용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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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석하님의 " 핵물리학자 이휘소" , 진명님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등에 나온

핵무기 개발에 전혀 연관되거나 전혀 관계가없데요

 

이휘소박사께서 연구하신 소립자 물리학은 핵물리학하고는 분야가 완전히 다르데요. 연구분야가 전혀 일맥상통하지 않기에 핵무기를 개발한다는 연구는 전문가들의 증언에 의하면 거의 날조에 가깝다고 한답니다.



 

 

 

"핵물리학자 이휘소" 의 저자 공석하님 께서 직접 다큐에서 순수한 과학자로서만 그사람을 작품화 시켰을땐 대중화가 힘들고 소설로 성공 할수없어서 자신의 소설에 20%의 픽션을 삽입하셨다고 밝히셨어요.

 

 

 

공석하님 께서 인정한 20%의 허구 이휘소박사의 핵무기 개발 가담 의혹 관련된 거의 모든 부분입니다. 

공석하님 께서는 더 많은 한국인들이 이휘소라는 인간이 얼마나 뛰어난 인물이었는지 알기를 원하셨데요. 소설에 긴박감불어넣고 애국주의 코드 주입하기 위해 '핵무기 개발 이야기' 과감히 삽하셨다네요.

 

 

그런데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이 소설들의 내용이 사실인줄알고있습니다!

 

 

               

  "그의 이름이 같은 국민인 사람한테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모욕당하고 있어요. 제 생각에 한국인들은 이보다 더 똑똑해서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믿을 리가 없어요. 이런 그에 대한 말도 안 되는 쓰레기같은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정당하지 않아요"

-심만청(故 이휘소 박사의 부인)

 

  "왜곡된 사실을 바탕으로 명예가 고양됐다면 이는 잘못"

 

-이철웅 (이휘소박사의 친동생)

 




이러한 소설들이 출간된 뒤 이휘소 박사가족들은 그 소설에 내용들이 이휘소박사의 명예를

순수과학자가 아닌 정략적 과학자로 변질시켯고 이휘소박사의 명성과 경력을 업적등 상업적으로 이용,

책에 가족사진을 무단게재로 초상권 침해등을 했다며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걸었지만, 국가에서는 오히려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진것이이므로 명예훼손이 아니라고 하며 패소시켰데요.

 

이에 가족들은 분개하였고 부인은 아예 한국과 등을지고 살고있다 하더라구요

 

 



그리고 그분의 공적과 업적에 비해서 목숨이 짧게 끝난 것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그분의 죽음을 의문사, 타살로 의혹을 가졋지만, 그간 수사결과나 증거, 증언등을 종합해 볼때에는 그분의 죽음은 정말로 안탑깝지만 단순한 교통사고래요.

 

 더자세한걸 알고싶으신분들은 이휘소의 진실을 꼭보시길바래요! ㅋㅋ 1부, 2부 있습니다!



[자체 핵무장론의 진실]②이휘소 박사가 핵무기 개발에 참여했다고?


NYT가 보도한 1970년대 비밀 핵무기 개발의 진실은


이휘소 박사

이휘소 박사


NYT는 28일(현지시간) 우리나라가 1970년대와 1980년대 두 차례 비밀리에 핵무기를 개발하려 했으나 미국의 압력 때문에 좌절됐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해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천재물리학자 이휘소 박사의 핵무기 개발 참여설이다. 소설 등으로 확산된 이 얘기는 사실일까. 


1935년 서울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유학을 간 이휘소 박사는 25살의 나이에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1년부터는 세계 최고의 물리학연구기관인 페르미 국립가속기 연구소에서 입자물리학 연구팀을 이끌었다. 신의 입자라고 불리는 '힉스' 입자와도 인연이 깊다. 그는 1972년 '힉스 입자에 미치는 강력(강한 핵력)의 영향'이라는 논문을 국제학회에서 발표하면서 피터 힉스 박사의 이름을 따 처음으로 가상의 이 입자를 '힉스'라고 불렀다. 그는 노벨 물리학상에 가장 근접한 한국인이었다.

하지만 핵무기 개발과 관련해 그의 이름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수차례 유가족과 지인들의 반박에도 불구하고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핵무기 개발을 돕다 미국에 의해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는 음모론이 퍼지기도 했다. 그는 1977년 6월16일 미국 일리노이주의 80번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숨졌다. 

사실을 들여다보면 이 박사는 개발도상국, 특히 군사독재 체제의 국가가 핵무기 개발을 하는데 매우 비판적이었다고 한다. 오히려 한국에 와서 학술대회에 참석해 달라는 요청도 박정희 정권의 군사독채를 이유로 거절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공개된 이 박사의 편지에는 "위수령 발동, 학생운동 탄압, 등 최근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태로 우리가 추진해온 하계 대학원 행사를 재고한다. 하계 대학원의 책임을 맡는다면 내가 한국의 현 정권과 그 억압 정책을 지지하는 것으로 비쳐질까 걱정된다. 한국의 과학 발전을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주의의 원칙을 무시하는 이러한 처사들에 실망해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히고 싶다"고 썼다.  

또 이 박사는 소립자 물리학자로 핵무기 개발과는 거리가 있었다는 게 물리학계의 정설이다. 이 박사의 죽음도 당시 사고 경위를 따졌을 때 의문사 가능성은 없었다고 하며 유가족들도 단순한 사고라고 밝힌 바 있다. 이 때문에 이 박사의 유족들이 관련 소설 내용에 강하게 반발해 출판금지와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박정희의 '자주국방'을 미화하기 위해 꾸며낸 얘기로 고인의 명예가 훼손됐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명예훼손은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소설이 허위임은 인정했다.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71030103156261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