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우의 독서 노트
사치가 없었다면 문화도 없었다
| | 사치와 문명┃장 카스타레드 지음┃이소영 옮김┃352쪽┃뜨인돌┃ 2만200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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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을 다루는 기술에 ‘선조 세공’과 ‘입자 세공’이라는 것이 있다. 금에 선을 새기는 기법과 금의 입자를 다듬는 기법을 말하는데, 지금도 보석 세공의 기본 기술로 자리 잡고 있다.
이 두 기법이 역사에 처음 등장한 때는 5000년 전인 수메르 시대다. 지금으로 따지면 이라크가 있는, 변변한 금광조차 없는 지역에서 세공 기술이 시작된 것은 인간의 사치심 때문이었다.
수메르와 그 뒤를 이은 바빌론 사람들은 보석을 구하기 위해 먼 곳까지 가서라도 무엇이든 사오려고 했다. 없으면 사람이 죽고 못 사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파스칼은 ‘팡세’에서 인간이 세 가지 욕망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하나는 권력과 지배에 대한 욕망인 ‘도미난디(dominandi), 또 하나는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위해 물건을 얻으려는 욕망인 ‘카피엔디(capiendi), 마지막은 감각과 관능성에 대한 욕망인 ‘체티엔디(centiendi)다. 사치는 이 세 가지가 모여 만들어진다.
그래서 종교적인 욕망, 혹은 예술적인 욕망만큼 고상하지도 열정적이지도 않지만 문명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역할을 하고 있다. 사치는 지역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리스인들이 인본주의적 사치를 누렸다면 아프리카는 마술적인 사치를 누렸고 히브리인들은 절제된 형태인 종교적 사치를, 중국인은 철학적인 사치를 누렸다. 이렇게 다른 모습이 나타난 것은 그들의 삶의 방식이 달랐기 때문이다. 중국인은 유불선 사상에 경도돼 천체의 집약된 기운이 자연과 심리 세계에 속하는 모든 것을 관장한다고 생각했다.
어떤 시대 어떤 나라이건 사치의 주동자는 왕실이다.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장신구, 가장 웅장하고 섬세한 건축물 모두가 주동했건, 후원했건 관계없이 왕실의 의지에서 시작됐다.
사치는 강한 전파력을 지녔다. 풍부한 노동력과 농산물로 나라 전체가 먹고 남을 정도가 되면 수출이 시작됐고 이 과정을 통해 사치품이 다른 나라로 퍼져 나갔다. 사치는 긍정적인 역할도 했다.
중국은 황실과 지배 계층의 사치 수요를 채우기 위해 베이징에서부터 대규모 상업 도시인 광저우까지 사치품 제조업이 번성했다. 그러나 사치는 종국에 타락과 낭비를 가져와 왕조와 함께 스스로를 퇴조하게 만든다. 이 부분이 도덕주의자들이 사치를 격렬히 비난하고 위정자들이 사치 단속령이라는 법률로 제한하는 이유였다.
‘사치와 문명’은 문명사에 관한 책이다. 현존하는 많은 문화재 중 당시 기준으로 볼 때 사치품이 아닌 것이 없다. 인간의 통제되지 않는 욕망이 만들어낸 사치, 지금도 그 사치는 계속되고 있다. 아니 인류의 문명이 사라질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솔로몬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jwlee@solomon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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