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조금 조금씩, 돈이 있을 때마다 조금씩 넣고 뭐."
B "그런데 15년 동안 400만 원밖에 안 넣으셨단 말이에요?"
A "돈이 없으니까, 조금씩 넣었으니까 400밖에 못 넣었지요."
B "그러셨구나."
A "얼마 정도 받아요, 이거요?"
B "그런 건 2,000만 원 드려요."
A "2,000만 원이요?"
B "예."
A "와 많이 주네."
잔액 400만 원인 통장을 2,000만 원에 사겠답니다. 왜 그럴까요. 그냥 통장이 아닙니다. 아파트 분양을 받을 수 있는 청약통장이기 때문입니다. 이 대화는 서울시 민생사법경찰단이 오늘(20일) 공개한 청약통장 거래 상담 녹취록입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A씨는 청약통장을 팔려는 사람이고, B씨는 청약통장 거래 브로커입니다. "15년간 겨우 400만 원이냐?"는 말에 "돈이 없어 그랬다."고 쭈뼛거리던 A씨는 이 통장 값이 2,000만 원이나 된다며 놀랍니다. 금액보다는 청약통장 납부 기간이 길수록 청약점수에 가중치가 붙기 때문에 브로커는 2,000만 원을 주고서라도 사려는 겁니다. 하지만 불법입니다.
청약통장 거래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
청약통장 거래는 파는 사람, 사는 사람, 중간 브로커 모두 처벌 대상입니다. 거래를 알선하기 위해 광고만 해도 처벌받습니다. 주택법에 따라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입니다. 불법 거래된 청약통장으로 당첨되더라도 발각되면 주택공급 계약이 취소되고, 최장 10년까지 청약자격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법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다른 거래 장면입니다. 거래하기로는 합의된 상황입니다.
판매자 "그러면 제가 준비할 서류는 뭐 가져가면 됩니까?"
브로커 "인감 3통하고 등본 1통, 초본 1통, 가족관계증명서 1통"
판매자 "아, 가족관계증명서. 그리고 나중에 저는 뭐, 뭐, 문제없는 거지요?"
브로커 "예. 이건 아시다시피 그 무주택, 주택을 살 수 있는 무주택 자격을 사는 거예요."
판매자 "아, 자격을 사시는 거라고요?"
브로커 "예."
판매자 "그러면 저는 그거(통장) 드리면 저한테는 피해 없지요. 선생님?"
브로커 "피해는 갈 일이 없는데 본인이 집을 사신다거나 그걸 이제 뭐, 3년 안에는 집을 사실 수 없지, 명의변경 할 때까지."
판매자 "아. 명의변경 할 때까지는 제가 집 사면 안 된다고요?"
브로커 "예. 본인이나 배우자 명의로 집을 사시면 안 돼요."
이처럼 적발되면 처벌은 물론, 당분간 청약자격까지 박탈되는데도 청약통장이 거래되는 이유는 뭘까요. 상담 과정에서 브로커의 입으로 들어보시죠.
상담자 "요즈음에 이런 것(청약통장 거래) 하는 사람 있던가요? 혹시나 또."
브로커 "어휴, 많이 있지요. 왜냐하면, 본인들은 보통 지금 아파트를 분양받으면 보통 분양가가 7억에서 8억이에요."
상담자 "예."
브로커 "비싼 데는 20억 가잖아요."
상담자 "예."
브로커 "그런데 보통 요즘에 계약금이 20%가 있어야 해요. 현금으로."
상담자 "예."
브로커 "그런데 지금 통장은 갖고 있고 자격은 있지만, 돈이 없으신 분들이 더 많거든요. 분양가가 너무 비싸서. 그런데 또 (은행) 가서 해약하자니 너무 시간이 아깝잖아요. 오래 두신 거잖아요. 그럼 원금, 이자밖에 더 찾으세요?"
상담자 "그렇지요. 아깝기는 아깝지요. 저도 모르고 해약할 뻔했지요."
브로커 "그래서 그러신 분들이 저희에게 이렇게 전화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으시지요. 그러면 그 사람들도 좋고, 저희도 좋고."
상담자 "저는 또 저만 할까 봐. 혹시 몰라서..."
브로커 "어휴, 사모님만 하면 우리가 그런 거(통장 거래)를 뭐 하러 하겠어요. 저희는 한두 개 가지고는 안 남아요. 요즘에는 세금도 다 내드려야 하고 모든 걸 다 내야 하기 때문에 지금 하시는 분들은, 투자자분들은 보통 (청약통장) 두세 개 기본적으로 갖고 가시는 거에요.
브로커들이 선호하는 건 무주택 기간이나 납부 기간이 오래된, 가점이 높은 통장입니다. 이건 기본이고 여기에 더 '작업'이 들어갑니다. 이를테면 서울에서 모든 면적에 청약하기 위해서는 예치금이 1,500만 원이 넘어야 합니다.
그런데 팔려는 청약통장의 잔액이 500만 원이면 아예 브로커가 1,000만 원을 입금해 조건을 맞추는 겁니다. 세대주만 청약신청을 할 수 있는데 혹시 통장 명의자가 세대주가 아니면 단독세대주로 만들기 위해 위장전입까지 시키는 일도 있습니다. 청약가점을 높이는 데 중요한 요소인 부양가족 수를 늘리기 위해 같이 거주하지 않는 자녀를 세대원으로 전입시키라고 권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여러 작업을 가미해 청약통장을 사들인 브로커는 실제 분양을 받으려는 사람들에게 웃돈을 받고 넘깁니다. 브로커로부터 청약통장을 받은 양수자는 아파트에 당첨되면 분양권에 다시 웃돈을 얹어 되팔아 전매 차익을 챙겼습니다. 서울시 민생사법경찰은 청약통장을 판매한 양도자 13명과 브로커 3명, 그리고 청약통장을 산 양수자 6명을 기소의견으로 송치했습니다. 도망간 브로커 2명은 추적 중입니다.
이철호 기자 (manjeok@kbs.co.kr)
https://news.v.daum.net/v/20190620115138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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