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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통방통] 위안부 기록물 세계기록유산 등재, 누가 왜 막나?

천사요정 2019. 10. 14. 04:12



위안부 기록물 갑자기 등재 보류




3년 전인 2016년 5월, 8개국 14개 단체와 영국왕립전쟁박물관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증언과 이후 활동들을 담은 각종 기록물 2천 7백여건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 신청합니다. 전쟁시기 여성에게 자행된 인권 유린과 이를 치유하기 위한 노력을 인류가 기억해야 한다는 취지였습니다. 1년 간의 사전 심사 끝에 유네스코 등재 소위원회는 "유일하고 대체 불가능한 자료"라고 높은 평가를 내렸습니다.


하지만, 2017년 10월 전문가 자문위원회의 최종 심사에서 갑자기 등재 보류가 결정됐습니다. 일본의 시민단체가 '위안부' 기록을 별도로 등재 신청하면서, 양측 간에 대화를 하라며 유네스코가 등재를 최대 4년간 연기한 것입니다.


일본의 궤변 "위안부 제도가 강간 예방했다"


일본의 시민단체라는 사람들은 왜 별도로 등재를 신청한 것일까? MBC가 일본 측 신청서류를 확인해보니, '위안부' 제도에 대해 사실과 다른 주장을 잔뜩 담고 있었습니다.


- 위안부 피해자들은 민간 대행업자에 의해 모집돼 근무지에서 좋은 보수를 받았다. - 일본군 위안부가 민간 여성들에 대한 강간을 예방하고 성병의 전파를 막는 독특한 제도이므로, 세계기록유산에 남겨야 한다. - 위안부는 매춘부에 대한 완곡한 표현이다.


더 황당한 것은 '대화를 조건으로 한 등재 보류'라는 유네스코의 애매한 결정 뒤, 지난 2년 동안 8개국 국제연대위원회와 일본 측 신청 단체간 대화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일본 측 시민단체가 응하지 않고 있어서 대화 성립이 안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런 황당한 등재 신청을 해놓고 대화도 피하고 있는 이들은 도대체 누구일까요?



"한국은 귀여운 나라" 일본회의 간부가 주도

일본 측 신청 단체는 네 곳입니다.


[위안부의 진실 국민운동]

[일본재생을위한 연구모임]

[나데시코 액션]

[언론과방송정책연구회]


이 가운데 첫번째 이름을 올린 [위안부의 진실 국민운동]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 단체의 대표는 카세 히데아키. 일본의 80대 극우 논객으로 아베 내각과 매우 밀접한 것으로 알려진 핵심 극우 단체 '일본회의'의 대표 위원이기도 합니다. 도쿄도 본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위안부' 문제를 일본 극우들이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파고든 영화 '주전장'에서 혐한 발언을 쏟아놓던 그 인물입니다. 영화에선 "한국은 귀여운 나라, 중국 붕괴 후에는 가장 친일적인 나라가 될 것"이라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습니다. '위안부'의 존재 사실을 부인하는 일본 극우들과 정치 세력화한 '일본회의'를 이어주는 역할로 지목되기도 했습니다.



다른 단체들의 대표들도 '위안부'를 부정하는 활동으로 서로 연결돼 있었습니다. 이들 사이의 고리는 '역사의 진실을 찾는 세계연합', GAHT라는 단체입니다. 카세 히데아키는 이 단체의 일본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함께 등재 신청한 [일본재생을위한 연구모임]의 메라 고이치. GAHT의 공동대표입니다. [나데시코 액션]의 야마모토 유미코 대표는 GAHT의 일본 부대표입니다. 이들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위안부 기림비가 세워지려고 하자 소송으로 훼방을 놓는 등 위안부 피해를 부정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피해 증언에 나선 할머니들 앞에서 강제 연행은 없었다는 주장을 늘어 놓기도 했습니다.


이들의 활동으로 볼 때, 일본 측 신청 단체가 대화에 응하지 않고 있는 이유는 분명해보입니다. 일본의 친정부 극우 인사들이 중심이 돼 일종의 '물타기' 신청으로 위안부 기록물 등재를 늦추고, 시간만 흘려보내려는 의도인 것입니다. 인류사적으로 중요한 기록이라며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을 해놓고 정작 유네스코가 등재를 보류하자, 환영 성명을 내기도 했습니다. 신청의 목적이 등재가 아니라 등재 방해였다는 것을 실토한 셈입니다.



돈줄 일본의 압력에 주춤하는 유네스코


유네스코가 애초 '등재 보류'라는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은 일본 정부의 압력 때문입니다. 심사가 있던 2017년 미국이 유네스코를 탈퇴했습니다. 최대 돈줄이 탈퇴한 뒤, 일본은 390억 원의 분담금을 내는 최다 기여국이 됩니다. 직원을 감축하던 유네스코 입장에선 일본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한국을 비롯한 국제연대위원회는 일본이 피해 할머니들이 하나 둘 돌아가시길 기다리는 것처럼, 기록물 등재 운동이 지쳐서 잦아들길 원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합니다.


"위안부 제도에 대한 해석은 일본 측 신청 단체와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인류가 기억하고 남겨야할 기록이란 점에서는 같습니다. 우리는 양쪽이 신청한 기록을 모두 등재하자는 입장입니다. 실제 일부 기록은 서로 겹치기도 합니다."- 국제연대위원회 한혜인 팀장



소극적인 유네스코 사무국을 움직이는 것은 국제 사회의 여론 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연대위원회는 한국과 미국에서 온오프라인 서명운동도 벌이고 있습니다. 유네스코 사무국이 양 신청 단체간 대화를 촉진하겠다고 선임한 첫번째 중재자는 아무 진척없이 1년만에 사임했습니다. 올해 새로 선임된 두번째 중재자는 지난 8일 국제연대위 측에 "대화 '진행'을 준비하고 있다"고 알려왔습니다.


나세웅 기자 (salto@mbc.co.kr)

https://news.v.daum.net/v/201910111037103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