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 대 동맹’ 아닌 ‘강대국 대 약소국’ 관계로 전락하고 있는 한미 관계
·미, 지소미아 놓고 한국과 일본에 동등한 설득 없이 ‘퍼펙트 스톰’ 협박성 발언
■아테네 제국의 몰락
펠로폰네소스 전쟁(BC 431~404)은 그리스 몰락을 가져온 대사건이었다. 페르시아에 맞서 함께 싸웠던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벌인 27년 내전으로 그리스는 쇠락했다.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힘의 역학관계 때문에 이 전쟁이 일어났다고 진단했다. 기존 패권국가와 빠르게 부상하는 신흥 강대국이 결국 부딪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말하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란 말이 나온 배경이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발생한 원인을 찾으러 더 거슬러 올라가면 델로스 동맹이 보인다. 당초 그리스 도시국가인 아테네는 페르시아에 맞선다는 명분으로 BC 478∼BC 477년 델로스 동맹을 결성했다. 동맹은 아테네를 중심으로 주로 소아시아 연안의 그리스 도시와 에게해 섬들로 구성됐다. 아테네는 델로스 동맹국들과 함께 당시 초강대국 페르시아의 침공을 물리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초기 델로스 동맹은 정책 결정에 가맹도시들이 각기 평등한 투표권을 가지고 있었으나 BC 448년 아테네가 페르시아와 평화조약(칼리아스 화약)을 체결하면서 동맹에 대한 아테네의 제국주의적 지배력이 확대됐다. 아테네는 동맹이자 전략적 거점인 섬들에 식민지 네트워크를 건설했다. 델로스 동맹의 세력권은 곧 아테네의 판도였다. 아테네 해군은 동맹국들의 세비로 상당 부분 운영됐다. 페르시아 재침에 대비하자는 것이 명분이었다.
기원전 5세기, 페리클레스가 정권을 장악한 뒤에는 동맹이 아테네 무력 외교의 도구가 되었다. 동맹국들은 분담금을 내도록 강요당했다. 마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하고 있는 동맹에 대한 일방적인 압박과 비슷한 행태다. 아테네에 대한 불만이 동맹 도시들 사이에 높아졌고, 스파르타는 이를 이용해 펠로폰네스 전쟁을 일으켰다. 결국 아테네가 스파르타에 항복함으로써 델로스 동맹은 힘을 잃었고, 승자나 패자나 상처만 남았다.
동맹국들에 방위비분담금을 대폭 올려 내놓으라고 하고 있는 미국의 모습을 보면 델로스 동맹의 맹주였던 아테네 제국이 떠오른다. 미국 주장을 보면 말이 분담금이지 부담금이나 마찬가지로 보인다. 미국이 해외미군 기지를 운용하면서 들어가는 비용 대부분을 주둔국 정부에 내라고 하는 것은 ‘손 안대고 코풀겠다’는 심보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순환배치 비용 요구
미국은 한미가 협상중인 내년부터 적용될 제 11차 한·미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에 ‘주한미군 철수 카드’까지 내놓을 수 있음을 시사하면서 윽박지르는 모양새다. 정치인도 아니고 동맹을 중시한다는 미군의 최고위 장교인 마크 밀리 미국 합참의장까지 나섰다. 그는 “보통의 미국인들은 한국과 일본에 전방 배치된 미군들을 보면서 근본적인 질문을 한다”고 말했다. 주한미군 필요성을 거론한 것은 방위비분담금 인상을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겠다는 태도다. 이는 주한미군 규모를 2만8500명 이하로 감축하는 예산 편성을 제한하는 2020회계연도 미 국방수권법(NDAA) 법안과도 맞지 않는다.
미국은 자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한국이 적극 동참하고, 그 비용까지 내놓으라는 것 같다. 한국과의 방위비분담금 협상을 일본, 독일과의 협상을 앞두고 시범 케이스로 삼고 있다. 최근 분위기를 보면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아니라 방위비 ‘부담금’ 협상으로 가고 있다. 그러나 방위비분담금은 주한미군 주둔을 도와주는 비용 개념이지, 주한미군 주둔비용 자체를 부담해 주는 돈이 아니다. 이제는 방위비분담금을 안보보험금으로 간주해 미국 손에 넘어가는 순간 미국 돈이라는 논리로 집행의 투명성에도 관심을 갖지 않는 태도는 곤란하다. 미국이 요구하는 항목과 총액의 적절성을 꼼꼼히 따져보고 대응해야 함은 물론이다.
미국은 작전지원 항목 신설도 요구하고 있다. 이 가운데 핵심은 주한미군 순환배치 비용이나 주한미군 작전준비태세 비용이다. 주한 미 2사단은 9개월 주기로 기동 여단을 순환 배치하고 있다. 포병과 육군항공, 방공부대 등도 마찬가지다. 당초 미군이 주한미군을 순환배치군으로 운용한 배경은 ‘붙박이’군으로 할 경우 가족동반까지 해야 하기 때문에 가족동반 비용을 줄이겠다는 차원이었다. 미군은 전차나 장갑차 등 전투장비는 주한미군 기지에 두고 병력만 순환시키겠다고 했다.
그러나 당초 얘기와 달리 주한미군 기동부대는 2015년부터 전차와 장갑차는 물론 수직이착륙 항공기까지 가져왔다가 다시 반출하고 있다. 일종의 유사시증원훈련(RSOI)을 9개월마다 반복하는 거나 마찬가지로 볼 수 있다. 미군은 순환배치 여단이 전쟁지역에 배치되는 것처럼 훈련과 지형 숙지, 유사시 임무수행에 집중하기 때문에 전투준비 효율성이 더 높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신 이같은 순환배치를 할 경우에는 붙박이군보다 훨씬 많은 운용 비용이 들어간다. 방위비분담금 협상에서 이 추가비용을 내놓으라는 게 미국의 요구다. 순환배치 비용 요구는 미 해·공군 전력에도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이같은 미군의 순환배치가 순수한 한반도 방위만을 위한거냐는 데 있다. 미 육군은 한반도 뿐만 아니라 주일 미 육군을 제외한 전 세계 주둔 미군에 순환배치 개념을 적용했다. 사단본부는 각 주둔 지역에 두고 예하의 주요부대를 약 9개월 단위로 돌아가며 배치하는 식이다. 미 육군 기동여단 31개 부대가 대상으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유럽(NATO), 한국이 순환배치 대상이다. 순환 배치 자체가 미국의 필요에 의해서 이뤄지는 것이지 한국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반증이다. 게다가 붙박이군이었던 주한미군을 순환배치군으로 변환한데는 평택기지를 베이스캠프로 하면서 중국을 겨냥한 ‘동북아 기동군’으로 활용하겠다는 목적이 있다.
비용을 강요한 델로스 동맹의 아테네 제국을 닮아가는 미국의 태도를 보면 한미는 ‘동맹 대 동맹’이 아니라 ‘강대국 대 약소국’ 관계로 전락했다. 한국과 일본의 외교조약인 지소미아에 대한 미국의 행동도 또 하나 사례다. 지소미아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미국은 한국과 일본 정부에 동등한 태도로 설득하는 게 아니라 “한국이 지소미아를 연장하지 않으면 퍼펙트 스톰을 맞게 될 것”이라는 협박성 발언까지 서슴치 않았다. 한미동맹은 사실상 그리스 몰락을 재촉한 델로스 동맹의 재판이 돼가고 있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https://news.v.daum.net/v/2019111414502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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