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는 스펙을 보지 않는다고 했다. 능력만 있으면 누구나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금융 애널리스트가 꿈이었던 최두성씨(가명·28)는 그 말을 믿고 ‘애니스탁’에 입사했다. 애니스탁은 유사투자자문업체 중 하나로,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주식 방송을 하는 회사다. 유사투자자문업체는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투자 상품에 관련된 정보를 제공한다. 일대일 상담이 가능한 투자자문회사와 달리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만 조언할 수 있다. 대신 금융위원회에 단순 신고만 해도 영업을 할 수 있다.
2017년 7월부터 2018년 3월까지 약 9개월 동안 최씨는 애니스탁에서 ‘운영자’로 일했다. 입사 전에 들었던 말과는 달리, 그가 경험한 운영자는 ‘댓글 조작 부대원’에 가까웠다. 먼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한 자칭 주식 전문가를 통해 사이트 홍보가 이루어졌다. 텔레비전을 보고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온 사람들이 무료 방송을 볼 때, 최씨와 같은 운영자들은 화면 옆에 딸린 채팅창에서 ‘서포터(가짜 회원)’ 노릇을 했다. 전문가의 실적을 칭찬하는 채팅과 조작된 ‘감사 후기’를 올렸다. 여기에 넘어간 사람들은 고액의 가입비를 내고 유료 방송을 들었다. 유료 방송에 딸린 채팅창에서도 가짜 회원임을 숨기며 방의 분위기를 관리했다. 실적이 좋은 운영자가 ‘전 A투자자문사 교육실장’과 같은 경력을 달고 전문가로 데뷔해 마이크를 잡기도 했다.
<시사IN>은 최씨와 다섯 차례 인터뷰를 하며 여전히 온라인에서 활발히 이루어지는 증권방송 댓글 조작 사건을 재구성했다. 그의 이야기는 내부고발자로서 증언한 것이기에 검증한 끝에 최대한 업계 용어인 은어 등을 살려 싣는다. 최씨는 자신의 말을 뒷받침하는 자료도 함께 내놓았다. 유사투자자문업체로부터 피해를 당한 사례가 몇 차례 보도된 적은 있지만, 업체 내부에서 근무했던 직원이 직접 입을 연 것은 처음이다.
이에 대해 회사 쪽 법률 대리를 맡은 변호인은 <시사IN>과 전화 통화에서 “경력에 A회사, P회사 등으로 적혀 있는 것은 구체성이 없기에 사람을 속였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라며 조작이 아니라고 말했다. 최근 회사는 최씨에게 영업비밀·정보유출 등으로 3억원 손해배상 소송을 걸었다. 최씨는 이미 회사 쪽 인사에게 모욕 등 혐의로 형사 고소당한 적도 있지만, 지난해 12월 검찰은 그를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했다.
운영자의 일과는 어땠나?
아침 8시까지 사무실로 출근한다. 먼저 모든 전문가들의 인터넷 방송에 들어가 채팅창마다 가상 회원 30명 정도를 심어놓는다. 그때 회사에서 만든 프로그램을 사용했다. 그런 다음 사내 메신저 ‘미쓰리’로 전문가와 작전을 짠다.
작전을 짠다는 게 무슨 뜻인가?
어떤 식으로 ‘서포트(회원인 척 채팅하는 것)’할 건지 입을 맞춘다. 예를 들어 ‘오늘은 회원 싸게 안 받아주는 척할 건데 너네(회원인 척하는 운영자)가 자꾸 받아달라고 조르면 마지못해 받아주는 식으로 방송 진행하자’고 제안하거나, ‘요즘 종목 뭐 뭐가 물려 있어서(손해를 보고 있어서) 분위기가 안 좋으니 이 종목 언급하는 사람들은 바로 강퇴시켜라’고 당부한다.
온라인 방송이 시작되면?
운영자마다 자기가 담당하는 전문가의 방송 스케줄에 따라 움직인다. 보통 운영자가 전문가 3~5명을 맡기에, 모니터 3~4개 앞에 앉아 채팅창 여러 개를 띄워놓고 동시에 관리한다. 그 와중에 상담 문의 전화도 받고, 내가 가입 권유 전화도 돌려야 한다. 점심도 30분 안에 먹고 와서 교대해야 한다. 마지막 방송은 새벽 1시가 넘어서 끝나는데, 방송이 끝나고 다음 날 밀어줘야 하는 전문가에게 감사 후기까지 써야 퇴근할 수 있었다. 주말에도 하루는 출근했다.
언제부터 채팅을 조작했나?
입사 3일차부터 나더러 직접 채팅에 들어가라고 했다. 엑셀 파일을 하나 주면서 ‘이름 ○○○, 나이 30대 초반, 직업 사회 초년생 회사원, 자본금 5천, 투자 성향 단타’ 이런 식으로 여러 아이디의 인적사항을 지어내 적게 했다. 채팅을 할 때 내가 지금 어떤 아이디로 채팅을 하는지 헷갈리면 안 되니까.
주로 어떤 콘셉트로 채팅했나?
‘나이 60 먹는 동안 모아놓은 돈 없이 사기당하고 힘들게 살고 있다. 주식만이 답인 것 같다. 누구누구 선생님 믿고 하고 싶은데 돈이 없으니 가입비 내면 투자금도 없어질 상황이다. 꼭 함께 하고 싶다. 가입비 쫌 깎아달라’ 이런 식으로 내가 올린다. 연기 학원이나 마찬가지였다. 구석에서 비밀스럽게 하는 일이 아니라 사무실에서 일상적으로 모두가 하는 일이었다.
진짜 회원의 채팅 글과 가짜 회원의 글을 구별할 수 있나?
운영자가 보는 채팅창에서는 구별된다. 진짜 회원과 가짜 회원의 채팅 아이콘 색깔이 각각 다르게 표시된다(20쪽 <사진 1> 참조). 나중에 회사 선배가 내가 쓴 글만 모두 뽑아오라고 했다. 그걸 보고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어가며 첨삭해주었다. ‘나이가 50대라고 했는데 아이디가 너무 젊지 않냐’ ‘이런 말은 누가 봐도 알바 같다’ ‘2분에 한 마디는 해야지’ 등등. 정말 자괴감이 들었다.
적응이 되던가?
처음에는 감사 후기 지어내는 것도 너무 어려웠는데, 나중에는 ‘애니스탁 인터넷 방송을 보고 얻은 주식 수익금으로 뽑았다’라고 쓰면서 냉장고 사진도 올린 적 있다(20쪽 <사진 2> 참조). 한번은 내가 할아버지 설정의 아이디로 쓴 감사 후기에 어미를 ‘~읍니다’고 쓰니까 (감쪽같다고) 좋아했다.
감사 후기도 많이 올렸나?
매일 올려야 한다. 계좌나 수익률 인증 사진은 그림판으로 조작했다. 이미지 조작하는 방법도 회사 선배가 알려주었다. 그림판에 숫자 사진을 붙여 넣고, 숫자를 한 개씩 잘라내 배열만 바꾸면 된다. 내 아이디 설정이 돈 많은 50대라면 큰 숫자를 앞으로 옮기고, 사회 초년생 직장인이라면 작은 숫자를 앞으로 옮기면 된다. 전문가들이 방송 중에 가짜 후기를 읽어주기도 했다.
가짜 채팅과 감사 후기를 잘 쓰면 좋은 점이 뭔가?
채팅방을 담당하는 운영자였다가 주식 방송을 진행하는 전문가로 빨리 승진할 수 있다.
전문가가 진짜 전문가가 아니라는 말인가?
텔레마케터에 불과한 운영자가 주식을 잘 아는 전문가로 둔갑한다. 입담만 좋으면 된다. 나한테도 경력은 얼마든지 만들어줄 테니까 빨리 전문가로 데뷔하라고 했다.
경력을 어떻게 만들어준다는 건가?
내가 문제 제기하면서 논란이 되니까 지금은 홈페이지에서 다 삭제했지만, 캡처해두었다(20쪽 <사진 3> 참조). 전문가 소개에 쟁쟁한 경력이 쓰여 있다. 전문가 ‘ㅅ’은 원래 체육관에서 킥복싱을 가르치다 회사에 들어와서 운영자를 했는데, 전문가로 데뷔할 때는 ‘전 H투자자문 주식운용 매니저, 전 S투자자문 투자분석 매니저, 전 B증권 분석가 활동’이라는 경력을 달았다. 내가 고정으로 담당했던 전문가 ‘ㅁ’ ‘ㄹ’ ‘ㄷ’도 모두 사이트 운영자 출신이다.
텔레비전에도 출연하는 전문가인데?
텔레비전 방송에서 미끼를 던져 인터넷 방송으로 끌어들인다. 머니투데이방송, 이데일리TV 등 경제방송사 프로그램에 전문가가 출연하는데, <수익만세>(머니투데이방송), <대박투나잇>(이데일리TV) 등 특정 프로그램에는 아예 애니스탁을 비롯한 유사투자자문업체를 10개 넘게 가진 여해그룹 소속 전문가만 나온다. 시청자 눈에는 방송사에서 ‘힘들게 모셔온 검증된 전문가’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렇게 유료 방송 가입을 유도해서 돈을 버나?
맞다. 보통 석 달 가입에 100만원, 1년 가입에 250만원인데, 딱히 정가랄 게 없다. 전문가가 무료 인터넷 방송을 하다가 ‘오늘만 특별히 선착순 3명에게 유료 방송 가입비를 석 달 90만원에 해주겠다’고 말한다. 원하는 사람은 채팅창에 숫자 1을 치라고 하면, 운영자들이 가짜 회원 아이디 여러 개로 1을 누른다. 분위기를 조성하면 진짜 회원들도 경쟁적으로 1을 누른다. 우리는 색깔을 보면 누가 진짜 회원인지 아니까, 그들에게 전화해서 가입을 받았다. 세 명이든 네 명이든.
유료 방송은 전문성이 있나?
주식 장이 열리는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30분까지 유료 방송에서 전문가의 리딩(주식 종목을 추천하는 행위)을 받을 수 있다. 그래봤자 ‘5일평균선 터치했으니 이제 상한가 갈 거다’ 이런 초보적 수준이다. 포털사이트에서 ‘삼성전자’ 검색해서 진짜 애널리스트가 분석해놓은 글을 보고 자기가 분석한 것처럼 말하기도 한다.
전문가가 따로 주식 투자를 연구하지 않나?
전문가도 방송을 하면서 일정이 비는 시간에 운영자 역할을 하거나, 환불팀 직원이라고 전화를 돌리는 등 TM(텔레마케팅)을 해야 한다. 전문가 중에는 리딩 종목이 계속 하한가를 기록해 회원들이 다 떠나버린 사람도 있다. 그래서 다시 운영자로 되돌아와서 같이 일한 적도 있다. 그러다가 또다시 지금은 전문가를 한다. 내부에서도 공부 안 한다고 질타하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전문가가 추천해준 종목으로 손해를 보면 사람들이 가만히 있나?
전화로 환불을 요청하면 업무가 밀려 있으니 기다리라고 한다. 손실을 본 사람은 환불을 기다리면서도 주식은 계속하니까 그동안 다른 전문가의 방송을 본다. 운영자는 느긋하게 3주 후쯤에 전화를 건다. 터무니없이 적은 환불금을 제시하면서 ‘이 돈을 받느니 차라리 가입비를 조금 추가해서 다른 전문가의 유료 방송을 듣고 원금을 회복하시라’고 구슬린다. 대부분 운영자의 말을 따른다.
채팅창에서 전문가에게 공개적으로 항의할 수도 있지 않나?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있다. 그러면 운영자가 바로 가짜 회원 아이디들을 동원한다. ‘이번에 운이 안 좋았다’ ‘전문가님이 잘돼야 우리가 잘되는 건데 분위기 흐리지 마라’ 하고 집중포화를 퍼붓는다. 그래도 계속해서 항의하면 강퇴(강제 퇴장)시킨다. 그런 다음 따로 전화해서 ‘약관에 따라 환불금 없이 강제 탈퇴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백이면 백 잘못했다고 오히려 사과한다. 가입비를 내고 나면 갑을이 바뀐다.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입사했나?
조작은 상상도 못 했다. 나는 원래 금융권으로 가고 싶었다. 필수 자격증인 파생상품투자 상담사, 증권투자 상담사, 펀드투자 상담사도 땄다. 여기서 열심히 하면 애널리스트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정말 힘들었다. 항의 전화를 받다 보면, 회원들의 가입비가 어떻게 번 돈인지 알게 된다. 돈 있는 사람들은 유사투자자문업체를 이용하지 않는다. 이런 방송을 듣는 분들은 보통 서민, 개미 투자자다. 환경미화원분이 1000만원을 모아서 가입비 몇백만원을 내고 들어온 적도 있다. 손실이 너무 커서 자살하겠다고 울며 전화하는 사람도 있고.
그런데 왜 바로 그만두지 않았나?
취업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리니 힘들어도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기를 치면서도 계속 찜찜했다. 그게 괴로웠다. 직원이 힘들어하면 회사에서 술을 사주면서 달랜다. ‘다 겪었던 일이다, 너도 해온 일이지 않느냐’고. 너도 공범이니 할 말 없다는 거다. ‘전문가 돼서 성과급 몇천 받아야지’ 하고 꾀기도 한다. 힘들어도 버티면 전문가가 돼서 외제차를 타고 다닐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거다. ‘나는 다른 전문가가 되어야지’ 생각하면서 버티다가 양심의 가책 때문에 더는 못 견디겠다 싶어 퇴사했다.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4130
“나는 주식방송 댓글부대원이었다”
‘단기 목표+30%, 암학회 최대 수혜주 공개! 방송 종료 이후 21~22시, ※검색창에 히든스탁을 입력하세요!’ 3월6일 저녁 8시에 시작한 머니투데이방송 프로그램 <히든스탁> 말미에 나온 자막이다. 자칭 ‘업계 최고 증권 전문가’가 나와 추천하는 종목을 맞히는 식으로 평일 저녁 매일 진행된다. 힌트를 준 다음, 정답을 알고 싶으면 방송 직후 시작되는 온라인 무료방송에 접속하라고 여러 차례 홍보했다.
텔레비전 방송을 하면서 굳이 온라인 방송으로까지 사람을 따로 불러 모으는 이유는 뭘까. 방송에서 알려주는 대로 인터넷에서 ‘히든스탁’을 검색해 무료방송 아이콘을 눌렀다. 회원가입 안내가 떴다. 전화번호 등을 입력하고 아이디를 만든 다음에야 무료방송 방에 들어갈 수 있었다.
다수 아이디로 ‘전문가’ 칭송, 후기 조작
닉네임을 쓰는 ‘전문가’가 텔레비전 방송 중 추천해준 종목을 말한 다음부터 본격 ‘리딩(주식 종목을 추천하는 행위)’이 시작됐다. 화면 오른쪽의 채팅창에는 전문가 덕분에 수익을 얻었다는 글이 실시간으로 올라왔다. “오늘 수익 하츠 감사합니다. 375만원” 전문가 또한 자신의 유료방송을 듣고 수익이 났다는 ‘감사 후기’ 따위를 보여줬다. “최근 직장인이 된 저는 오늘 하츠 28% 넘게 389만9천원 수익 나왔어요.”
방송이 끝날 무렵인 밤 10시43분, ‘전문가’는 본격 유료방송 프로모션을 했다. ‘1개월 65만원, 2개월 130만원→100만원, 3개월 195만원→130만원.’ 밤 11시까지만 할인가를 제공한다며 원하는 사람은 채팅창에 숫자 3을 남기라고 했다. 이 멘트가 끝나자마자 채팅창은 3으로 덮였다. 기자도 따라 3을 누르자, 몇 분 후 회원가입 당시 입력했던 번호로 전화가 왔다.
처음 텔레비전을 볼 땐 전혀 언급되지 않던 유료방송 결제 이야기가 시작됐다. 유사투자자문업체의 영업 방식이었다. 유사투자자문업체는 돈을 받고 투자 상품에 관련된 정보를 제공한다. 현행 자본시장법상 금융위원회 신고만으로 영업을 할 수 있다. 따로 자격 조건을 제한하지 않기 때문에 전문성이 없더라도 영업이 가능하다.
이 점을 이용해 채팅부터 감사 후기까지 조작하는 데다가 이름만 ‘전문가’인 이들이 주식 정보를 제공한다는 내부고발이 나왔다( 나는 이렇게 ‘주식 댓글 조작 부대원’으로 일했다
인터뷰 기사 참조). 온라인 여론을 조작해 하루에도 몇천만원씩 수익을 올린다는 폭로였다. 유사투자자문업체가 ‘텔레비전 방송→인터넷 무료방송→인터넷 유료방송’으로 호객을 하는 과정에서, 허위·조작 정보를 조직적으로 내세운다는 주장이다.
내부고발자 최두성씨(가명·28)는 닉네임 ㄷ으로 불린 전문가 등의 인터넷 무료·유료 방송을 담당하는 ‘운영자’였다. 애니스탁은 운영자에게 인터넷 방송 시 채팅방에다 한 사람이 다수의 아이디로 제각각 전문가를 칭송하고 감사 후기를 조작하는 일을 시켰다. 처음 무료방송을 보러 온 이들이 유료방송을 결제할 수 있게 최대한 분위기를 조성하게 했다.
이를테면 ‘30대 초반 사회초년생/ 단기 매매 좋아함/ 투자금 3000만원’이라는 식으로 몇 가지 콘셉트를 정해서 채팅방에 각기 다른 아이디로 글을 쓰고 감사 후기를 올렸다. “(회사) 부장님께 (유료) 방송보다 걸려서 엄청 혼난 뒤로 장중 방송 참여 거의 못 했는데 문자 리딩으로만 이렇게 편하게 매매하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중략) 평가 손익+1,326,356.” 최두성씨는 전문가를 믿고 얻은 수익을 써놓은 숫자가 그림판에서 조작한 것이었다며 이를 캡처한 화면을 취재진에게 보여주었다.
운영자는 무료방송이 끝난 후에 유료방송 가입을 권하는 TM(텔레마케팅) 등도 맡았다. 한 피해자는 자신이 당한 경험을 이렇게 설명했다. “텔레비전에 나오니깐 믿을 만하다 생각했다. 그러다 무료방송을 접속했고 유료방송을 500만원 결제했다. 그런데 두 달도 안 되어 리딩해준 종목이 박살났다. 참다못해 채팅방에서 항의했다가 강퇴당했다. 전화하니 200만원만 환불해준다고 하던데, 그건 안 된다고 하니깐 다른 전문가 방에 넣어줬다.” 부실한 리딩으로 피해를 본 회원들의 채팅방 항의, 환불 요청 처리도 운영자 몫이었다.
최씨가 근무했던 사무실에는 자신을 포함한 운영자가 6명이었다. 아르바이트생 4명을 더 고용해 온라인 여론 조작을 돕게 했다. 전북 전주시에 있는 사무실로 출퇴근했지만, 서울, 대전, 경기 김포 등에도 사무실이 있었다. 최씨는 서울 사무실에는 가본 적이 있다. 그는 “전주 사무실이 제일 수익이 안 나는 곳이라고 들었는데도 하루에 최소 1000만~1500만원 수익이 났다”라고 말했다.
최씨는 바둑 교사, 킥복싱 선수 출신 등 대부분 금융과는 거리가 먼 이들이 TM을 하다 ‘말발’을 인정받고 전문가로 등극하는 것을 지켜봤다고 밝혔다. 그는 ㅅ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전문가 또한 자기와 같은 운영자였다가 일종의 ‘승진’을 한 경우라고 밝혔다. 하지만 온라인에서 해당 전문가들을 소개하는 프로필에는 ‘전(前) H투자자문 주식운용매니저’라고 쓰여 있다.
최씨의 주장을 확인하기 위해 텔레비전 생방송을 마치고 돌아가는 ㄷ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전문가를 직접 만났다. <시사IN> 취재진이 그에게 프로필이 허위냐고 묻자, “회사 측과 이야기하고 있다”라고만 답하고 더 이상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그와 함께 방송국에 있던 또 다른 전문가인 닉네임 ㄱ, ㅁ도 프로필 허위 의혹에 대해 “잘 모르겠다” “드릴 말씀이 없다”라고 말하며 사라졌다.
대신 여해그룹을 대리한 변호인 쪽에서 이메일이 왔다. “최근 (애니스탁을 포함한 유사투자자문업체 10곳 이상을 산하에 두었다고 지목받는) 여해그룹에서 제공하는 증권방송 서비스에 관하여 근거 없는 비방 및 음해와 함께 수억원의 금품을 요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여해그룹은 수사기관에 공갈미수, 모욕 등으로 고소를 진행해 수사가 진행 중이다.” 유사투자자문업체는 결과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말도 강조했다. 또한 자신들이 제공하는 각종 방송에 “투자 판단을 위한 조언일 뿐 투자의 판단과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이 진다”라고 써놓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애니스탁 등을 포함한 여해그룹 산하 유사투자자문업체에 사기를 당했다고 주장하며 고소를 진행한 회원들 생각은 다르다. “아무리 유사투자자문업체가 신고로만 운영된다고 하지만, 애초에 정보를 조작하고 거짓 광고를 한 것은 형법상 사기다. 투자자가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있게 올바른 정보를 제공한다는 전제하에, 투자자 선택의 영역이라고 해야 한다. 그런데 유료방송을 결제하는 데까지 제공된 정보 자체가 가짜였다”라고 맞서고 있다. 지난해 12월 말 전북지방경찰청은 사기 혐의 수사에 착수해 최씨가 근무한 전주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한 바 있다.
더불어 피해를 주장하는 쪽이 주목하는 것은 2015년 대법원 판례(2013다13849판결 주심 박보영)다. “유사투자자문업자가 고객의 투자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사항에 관해, 허위 정보를 제공하거나 아무런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근거가 없는 정보를 마치 객관적 근거가 있는 확실한 정보인 것처럼 제공하고, 고객이 정보를 진실한 것으로 믿고 금융투자 상품에 관해 거래를 하여 손해를 입었다면 고객은 유사투자자문업자에 대해 민법상 불법행위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기존 판례에 비해 유사투자자문업체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 유죄 취지의 판단을 했다.
하나같이 서민 상대로 한 금융 범죄
이러한 유사투자자문업체 문제는 최두성씨의 사례만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지난해 8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27세 청년의 사연도 업체만 다를 뿐 행태는 똑같다. 2017년 10월부터 한 달 동안 삼성스탁에서 근무한 바가 있다는 그는 유사투자자문업체 고객 유치과정에서 정보를 조작했다고 고백했다. 고객이 작성한 것처럼 보이게 수익률을 올리고, 이것을 그림판이나 포토샵으로 조작한 다음, 고객인 것처럼 홍보했다고 글을 썼다. 죄책감을 크게 느껴 그만뒀다며 이들을 수사해달라고 청원했다.
유사투자자문업체는 1997년 자본시장법이 도입된 이래 54곳에서 2019년 현재 2088곳으로 38배 이상 많아졌다(아래 표 참조). 유사투자자문업체의 성장세와 더불어 피해 신고와 불공정거래 적발 사례도 계속해서 늘고 있다. 하지만 방송을 통한 유사투자자문업체 홍보 및 댓글 조작 등의 문제는 여전히 당국의 사각지대에 있다. 직접 규제를 할 방법이 현행법으로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금융 당국이 문제점을 인식 못한 것은 아니다. 2016년 ‘청담동 주식 부자 이희진’ 주식 사기 사건으로 유사투자자문업체에 대한 경계심이 커졌다. 이희진씨 또한 유사투자자문업자였다. 피해자가 생긴 다음에야 검찰 고소가 이뤄졌고 이씨는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2017년 2월 금융위원회는 ‘유사투자자문업 제도개선 및 감독방안’을 발표했다. “검증되지 않은 유사투자자문업자의 무분별한 방송 출연이 제한되도록 방통위, 증권TV 방송사 등과 협력체계를 구축하겠다.”
진단은 맞았지만 한계는 명확했다. 강제성이 없다 보니 실효성도 없었다. 3월6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18년 유사투자자문업자 불법·불건전 영업행위 점검결과’ 보도자료를 보면 지난 문제점과 진단을 그대로 반복한다. “불법 혐의에 대한 효과적인 사후처리를 위해 관계기관(방송통신심의위원회·공정거래위원회·수사기관 등)과의 업무 공조체계 강화를 위한 노력도 지속할 예정”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결국 금융 당국이 반복하는 말은 ‘개별 투자자가 알아서 조심해야 한다’이다. “유사투자자문업체는 전문성이 없다는 사실도 알아야 함, 유사투자자문업자 홈페이지 등에 게시된 광고내용을 보면 객관 근거 없이 허위 과장된 수익률을 제시하거나 자신의 경력을 과대 포장하는 사례가 많으므로 유의해야 함(3월6일 금감원 보도자료)” 등이다.
유사투자자문업체의 피해 사건은 주로 서민형 금융 범죄로 꼽힌다. 투자금이 많지 않은 이들이 쉽게 들어온다. 유사투자자문업체 취직을 고민했던 이의 말은 누가 이곳에 발을 담그는지 알려준다. “‘주식 TM’은 벌이가 괜찮다고 소문났다. 그래서 직원 교육을 받으러 갔는데 도저히 못하겠더라. 일을 익히기 위해서 실제 TM 사례를 들려줬다. 하나같이 어렵게 사는 어르신이었다. 그런 이들에게 진짜 전문가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사람을 믿으라며 고액의 가입비를 받아내야 하는 상황에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유사투자자문업체 피해 사건을 여럿 상담한 이상현 변호사(법무법인 태율)는 “사이비 유사투자자문업체의 사기는 대표적 서민 대상 범죄다. 부자들은 투자자문업체를 이용하지 굳이 유사투자자문업체를 이용하지 않는다. 반면 서민들은 이런 피해를 입고 삶 전체가 무너진다. 수사기관이 빠르게 움직여야 그만큼 피해자들이 구제받을 확률이 높아진다”라고 말했다.
3월6일 저녁 텔레비전 방송 후 가입 상담 전화에서 망설이자 다음 날 기자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고액이라 부담스럽다는 말에 방송사 쪽이라고 밝힌 전화 상담원은 “가장 중요한 건 전문가님 믿고 잘 따라주면 수익을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날도 댓글 조작 의혹을 받는 무료·유료 주식방송이 계속 진행됐다.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 채팅방을 들어갈 수 없게 되자 네이버 국내증시 게시판에다 해당 전문가 이름을 거론하면서 항의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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