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밝혀진다/이명박근혜황교안

태극기 단톡방 '선거제 개편' 가짜뉴스 유통, 어떻게 '국민저항권' 둔갑했나

천사요정 2019. 12. 25. 21:18

'국회 본청 난입사건' 모의된 태극기 단톡방 살펴보니

16일 오전 국회 본청 계단 앞에서 열린 자유한국당의 ‘공수처법 선거법 날치기 저지 규탄대회’ 참석자들이 국회 안으로 들어서려 하자 경찰들이 막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여러분 화급합니다. 큰일 났습니다. 널리 펌(갈무리나 다운로드) 해주시고 들고 일어나십시오. 더불어 미○당은 한-미동맹을 깨뜨려 자유대한민국을 코리아연방으로 만들려고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과 선거법을 밀어붙인다고 선포했습니다!”


지난 16일 초유의 ‘국회 본청 난입 사건’을 사전에 모의했던 보수성향 시민들의 ‘태극기 단톡방’에 지난 14일 올라온 글이다. 명백한 가짜뉴스다. 하지만 태극기 단톡방에선 최근까지 이런 정도의 주장이 흔하게 유통됐다.


19일 <한겨레>가 올 초부터 여러 개의 태극기 단톡방을 살펴본 결과, 이 방들에서 선거제 개편을 둘러싼 논의가 처음부터 가짜뉴스 일색인 건 아니었다. 지난 2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취임하기 전까지만 해도, 태극기 단톡방 이용자들은 선거제 개편에 비판적인 보수 언론발 기사를 공유하며 정치적 견해를 밝히는 토론을 했다.


하지만 황 대표가 취임하고, 지난 4월30일 선거제 개편안이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태극기 카톡방은 이때부터 선거제 개편을 ‘좌파 만년 독재’, ‘공산화 연방제 통일’ 등과 동의어로 취급하는 가짜뉴스를 유통하기 시작했다. 이 가짜뉴스는 심지어 ‘문재인 정부를 타도’하고 ‘하야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공유하는 정도로까지 나아갔다.


태극기 단톡방에서는 선거제 개편과 공수처 도입을 ‘더불어민주당의 영구 집권을 위한 한 쌍의 전략’이라고 본다. 선거제 개편으로 장기 집권의 토대를 만들고, 공수처 신설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등에 대한 수사를 피해 가려 한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선거제 개편을 통해 ‘국내적으로 낮은 단계에서 좌파, 민주노총, 참여연대 등과 연합해 일당 체제를 이룰 것’이고, 이후에는 ‘북한과 높은 단계의 연방제 연합을 하려고 한다’는 상식 밖의 주장도 유통됐다.


‘문재인 정권이 헌법을 위반해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 제도를 파괴하고, 군소정당 빨갱이들과 야합해 비례대표 30석을 뚝 떼어서 빨갱이 공산당에 배분하는 기상천외한 선거법을 만들려고 최후 발악을 하고 있다’ 등과 같은 얘기다.


이런 가짜뉴스는 지난해 9월17일 민주당 창당 63주년 기념식에서 나온 이해찬 대표의 “앞으로 민주당이 대통령 열 분은 더 당선시켜야 한다” 발언 등과 묶이며 마치 사실처럼 유포됐다.


태극기 단톡방에서 가짜뉴스를 유통하는 이런 일련의 행위를 ‘국민저항권’이라고 부른다.

‘국회 본청 난입 사건’도 이런 맥락에서 벌어진 일이다. 사건이 일어난 지난 16일 오전 조원진 우리공화당 대표는 “많은 애국 국민들께서 헌법에 보장된 국민저항권을 발동해주시기 바란다”며 “문재인 좌파 연정의 중심은 광주다.

호남 중심 좌파 연정 체제에 대구경북 영남권이 일어나서 대항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짜뉴스를 연구한 홍성일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는 “보수 정당이 혐오표현이나 가짜뉴스에 의존하는 극우의 길을 걸으면서 표현의 품격이나 행동의 진중함을 중시하던 보수 세력 전체가 아스팔트 극우가 되어가는 퇴행의 과정을 밟고 있다”며 “가짜뉴스가 보수 담론의 중심이 될수록 과격한 행동이 보수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심각한 상황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