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재판부, 퇴직 때 재판연구관 보고서 갖고 나온 것 ‘관행’ 판단
ㆍ박근혜 측근 소송 관련 정보 문건 유출 혐의에는 ‘증거 부족’
ㆍ유 전 연구관 측의 ‘검찰 총체적 위법수사’ 주장은 인정 안 해
사법농단 사건으로 기소된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53)에게 법원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사법농단 피고인 14명 중 첫 판결이다.
1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8부(재판장 박남천)는 전체적으로 유죄를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고 법리적으로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유 전 연구관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유죄 가능성이 높았던 부분은 판사를 그만두면서 대법원 재판연구관 검토보고서를 갖고 나온 혐의(절도·개인정보보호법 및 공공기록물관리법 위반)다. 재판부는 검토보고서가 대법원 재판연구관실이 아니라, 이후 서울고등법원 재판부에 근무할 때 확보한 것이라서 문제가 안된다는 유 전 연구관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1·2심 판사들은 사건 처리에 참고하려고 대법원으로부터 검토보고서를 받아볼 수 있고, 퇴직하면서 다른 개인소지품과 함께 갖고 나온 것으로 법을 어길 의도가 없었다는 취지의 판단이다.
재판부는 ‘관리 실태’ ‘관행’을 무죄 근거로 들었다. 대법원이 검토보고서에 생산·접수 번호를 부여하는 등 공공기록물처럼 관리하지 않고, 보관 방법이나 반출됐을 때의 회수 절차도 마련되지 않은 관행을 보면 유 전 연구관이 검토보고서를 갖고 나왔더라도 범죄라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재판부는 “(검토보고서를) 변호사 영업에 활용하려고 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증거도 없다”고 했다.
1·2심 판사가 대법원 검토보고서를 받아보는 것은 정식 시스템에 따른 게 아니다. 재판부가 검토보고서의 무단 유출을 정당화한다는 점에서 비판이 나온다. 재판부 판단대로면 대법원에서 바로 반출하면 위법이고, 일선 재판부에서 반출하면 위법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재판 정보를 유출했다가 공무상 비밀누설로 유죄 판결을 받은 법원 직원 사례와도 대비된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이번 판결에 따르면 검토보고서를 앞으로 마음대로 갖고 나와도 된다는 뜻이냐”고 했다.
재판부는 유 전 연구관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공모해 대법원 재판연구관에게 박근혜 전 대통령 측근 박채윤씨 소송 관련 정보를 정리해 문건으로 만들게 하고, 이 문건을 청와대로 유출한 혐의(직권남용·공무상 비밀누설)도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유 전 연구관이 재판연구관에게 문건 작성을 지시했는지, 임 전 차장과 공모해 청와대로 유출했는지가 명확히 증명되지 않았다고 했다.
유 전 연구관이 대법원에 근무할 때 취급했던 숙명학원 사건을 퇴직 후 변호사로서 수임한 혐의(변호사법 위반)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재판부는 “직무상 취득한 사건이라는 것은 직접적·실질적으로 처리한 사건을 말한다”며 “유 전 연구관의 이력과 숙명학원 사건의 상고심 처리 경과를 고려할 때 (숙명학원 사건은) 유 전 연구관이 직무상 취득한 사건이 아니다”라고 했다.
다만 재판부는 검찰이 언론을 활용한 피의사실 공표, 포토라인 설치를 통한 인격권 침해, 과잉수사, 별건 압수수색 등 ‘총체적 위법수사’를 했다는 유 전 연구관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 전 연구관은 선고 직후 “공정하고 정의롭게 판결해주신 재판부에 깊이 감사드린다”며 “앞으로 더 겸손하고 정직하게 살겠다”고 말했다. 검찰은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진실은밝혀진다 > 양승태사건기사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재판개입' 임성근 1심 무죄.."위헌적이지만 직권남용은 아냐"(종합3보) (0) | 2020.02.14 |
---|---|
'사법농단' 연루 판사들 잇단 퇴직..피해 판사들은 전보 (0) | 2020.02.07 |
판사 앞길 좌우한 대법원장의 시그널 ' V ' (0) | 2020.01.04 |
양승태 수술에 임종헌 기피신청..사법농단 공범들 첫 선고에 영향 미칠까 (0) | 2020.01.02 |
與, 총선 영입 '양승태 사법농단 폭로' 이수진 판사 검토(종합) (0) | 2019.12.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