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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수일가 높은 보수, 일한 대가 아닌 ‘승계자금’ 종잣돈

천사요정 2020. 4. 8. 22:08
대기업 70여곳 3년치 보수액 분석

직원-최고 보수자 격차 큰 곳
경영권 승계·지분 확대 위한
현금 필요한 기업 다수 포진
최고 보수자, 총수나 총수일가

대한항공 보수액 배율 247배
제일제당·대한통운 100배 넘어
삼성전자·현대차도 상위권
영업이익 줄어도 보수 늘기도

그래픽_김승미
그래픽_김승미


한진그룹은 코로나19로 궁지에 몰린 듯하지만 이미 그 이전부터 경영난을 겪고 있었다. 지난 1년여간 사모펀드 케이씨지아이(KCGI)가 경영권을 쥔 총수 일가에 맞서 지분 경쟁을 벌인 명분도 총수 일가의 ‘경영 실패’였다. 경영진 분쟁 와중에 총수 일가 내 분열이 발생하기도 했다. 한진가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케이씨지아이 쪽에 가담한 것이다.


가장 유력한 배경 설명은 뜻밖의 인물에게서 나왔다. 바로 ‘경쟁자’ 조원태 회장이다. 조 회장은 지난해 11월 뉴욕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나는 월급을 받고 있어서 그나마 낫지만 조 전 부사장은 상속세 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부친(고 조양호 전 회장) 재산 상속에 붙는 세금을 부담할 여력이 실직 상태인 조 전 부사장에겐 없고, 그런 이유로 경영 복귀를 요구한다는 뜻이었다. 재벌 일가에게 ‘보수’는 노동의 대가가 아니라 재산 상속이나 경영권 승계의 종잣돈에 가깝다는 걸 보여주는 상징적 예다.

왼쪽부터 한진그룹 고 조양호 회장과 조원태 회장, 씨제이(CJ)그룹의 이재현 회장, 현대자동차의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수석부회장.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승계 자금’ 용도의 두둑한 보수

실제 <한겨레>가 14개 대기업 집단의 주요 상장 계열사 70여곳을 중심으로 최근 3년간 해당 기업 내 최고 보수를 받은 임원과 직원들의 평균 보수를 분석한 결과, 직원 보수 대비 최고 보수자 보수액의 배율이 큰 상위 20위권 기업에는 유독 경영권 승계나 총수 일가의 지분 확대를 위한 현금이 필요한 곳이 많이 포진했다. 분석은 퇴직금 등 일회적 효과를 줄이기 위해 최고 보수자의 보수액과 직원 평균 보수의 3년간 산술평균을 비교하는 방식을 따랐다.

분석 결과 한진그룹에선 대한항공(1위·247배)과 ㈜한진(7위·78.6배), ㈜한진칼(17위·48.4배) 세 곳이 배율 상위 20위 안에 포함됐다. 1위에 오른 대한항공의 경우, 3년간 직원 1인당 평균 보수는 7700만원이었지만 최고 보수자였던 고 조양호 회장의 3년 평균 보수액은 190억원이나 됐다. 씨제이(CJ)그룹도 3개 계열사가 포함돼, 한진과 더불어 직원과 최고보수자 간 보수 배율이 높은 그룹에 속했다. 제일제당은 102.8배로 2위, 대한통운과 이엔엠은 각각 101배, 49.8배로 5위, 13위였다. 삼성전자(3위·101.4배)와 현대자동차(12위·50.8배)도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직원 보수 대비 최고 보수자 보수액 배율이 높은 20곳 중 삼성전자·에스케이이노베이션·㈜이마트 등 소수만 빼면 최고 보수자가 모두 총수이거나 총수 일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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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 보수 내역을 보면 총수 중심의 기업 질서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총수 일가라고 하더라도 1위 보수자와 2위 보수자의 보수액 격차는 컸다. 조양호 전 회장은 지난해 3월 퇴임 전까지 월 보수(상여금 제외) 명목으로 1억7천만원을 받았지만 그의 아들 조원태 회장의 월 보수는 3200만원에 그쳤다. 회사 내 1, 2위 고액 보수자간 월 보수 차이가 5배 남짓 나는 셈이다. 현대차의 최고 보수자인 정몽구 회장(3억4800만원)도 2위 정의선 수석부회장(2억8천만원)에 견줘 1.3배 가까이 더 받았다. 범삼성가 일원인 손경식 씨제이(CJ)제일제당 회장은 월 보수로 2억7300만원을 받아, 2위 신현재 대표이사(8500만원)에 견줘 3.2배 더 많았다. 상여금은 통상 월 보수를 기준 삼아 책정되는 터라, 총보수를 잣대로 따지면 1·2위 보수자간 보수 차이는 더 벌어지게 된다.

회사 이익 줄어도 총수 몫은 늘어

경영 상황이 계속 나빠지는데도 최고 보수자의 보수는 그대로 유지되거나 외려 오르는 기업도 많았다. 최고 보수자의 보수액 3년간 연평균 증가율이 영업이익 3년간 연평균 증가율보다 큰 상위 5개사는 ㈜한진칼과 대한항공, ㈜이마트, 에스케이이노베이션, 엘지화학이었다. 한진칼의 경우, 분석 대상 기간(2017~2019년) 동안 내리 영업이익이 줄었고 지난해엔 적자로 전환했지만, 해당 기간 최고 보수자의 보수액 연평균 증가율은 47.4%나 됐다. 이는 2019년 발생한 고 조양호 회장의 퇴직금 효과가 크게 작용한 결과이지만, 월 보수 기준으로 보더라도 조 전 회장은 같은 기간 2억2천만원에서 4억2천만원으로 보수가 늘었다. 연평균 38.2% 늘어난 수치다.

기업 임원 보수 연구를 수년 간 해온 이창민 한양대 교수(경영학)는 “지배주주(총수)와 직원 간, 지배주주와 전문 경영인 간 보수 격차는 추세적으로 확대해왔으나 그 타당한 이유를 찾기 어려웠다”며 “지분 확대 등을 위한 현금 확보 수단으로 급여를 활용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사익 추구 행위에 가깝다”고 말했다.

김경락 기자 산업부 종합 sp96@hani.co.kr

http://www.hani.co.kr/arti/economy/marketing/93621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