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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도 더 지난 ‘아웅산 테러’ 다시 파헤치는 이유는…”

천사요정 2020. 5. 12. 08:32

강진욱 연합뉴스 기자는 자신의 저서 '1983 버마'에서 북한 소행으로 결론이 난 '아웅 산 묘소 테러 사건'에 의문을 제기한다.


강산이 세 번 넘게 바뀌고, 나라 이름도 미얀마로 바뀐 버마에서 일어난 ‘그 사건’을 새삼 파헤치는 이유가 있을까.

“‘아웅산 묘소 테러 사건’이 일어난 그해, 대학에 입학했고, 대학을 졸업한 1987년 KAL 858편 실종 사건(일명 김현희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학창시절 내내 대학 분위기는 광주 학살을 저지른 전두환과 그 정권에 대한 반감이 극심했죠. 그 시대에 대한 고민은 어쩌면 지금도 유전자처럼 육신을 지배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강진욱 연합뉴스 기자는 자신이 펴낸 ‘1983 버마’에서 북한의 소행으로 공식 결론이 난 아웅산 묘소 테러 사건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 사건을 직간접적으로 다룬 책들을 보면 볼수록 의혹이 커졌다고 한다. 하나같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지만 저마다 뭔가를 숨기거나 감추고 있었다.

그는 “워싱턴포스트 기자였던 돈 오버도퍼의 ‘두 개의 코리아’, 사건 당시 안기부장 노신영씨가 쓴 ‘노신영 회고록’ 등을 통해 당시 미국이 버마행 비행기 항로를 변경한 사실을 알게 됐고, 지난 2013년 전후로 쏟아져 나온 ‘역사의 빛과 그림자’(장세동), ‘아웅산 다시보기’(박창석), ‘아웅산 테러리스트 강민철’(라종일), ‘나의 이야기’(송영식) 등을 보면서 사건의 내막에 접근하게 됐다”고 했다.

각각의 책 속에 들어 있는 사실들을 종합하고 이를 사건의 시말에 얽힌 갖가지 의문점이나 의혹과 대조해 나갔다. 버마의 역사와 버마 군부에 관한 영문 책자들, 1980년대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관한 책들, 사건 당시 전두환 정권의 비동맹외교, 한반도 주변 정세와 남북 관계 및 북미관계 관련 자료 등을 꼼꼼히 살피며 사건의 진상에 다가갔다.

그는 그간의 공식 결론을 근본적으로 뒤흔들었다. 아웅산 묘소 테러를 미국과 전두환 정권이 벌인 자작극, 즉 북한의 소행을 가장해 치밀하게 기획된 ‘대북 공작’이었다고 주장한다.

“미국 레이건 정권이 들어선 뒤 미·일·한 3국 동맹체가 구축돼 소련과 북한을 벼랑 끝으로 모는 전략의 일환이었습니다. 사건을 벌인 목적은 한때 비동맹운동의 일원이던 버마가 ‘형제국’처럼 여기던 북한을 내치고, 결과적으로 비동맹회의나 유엔무대에서 북한을 고립시키는 것이었죠. 이 목적은 상당 부분 달성됐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소행이 아니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팩트와 정황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음모론이 아니냐’는 지적에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해 지금까지 확인된 팩트와 정황, 당시의 정세 및 여러 당사자의 이해관계를 통시적이고 공시적으로 교차 검증했다”고 반박했다.

그는 4년 전, 갑작스레 충남 홍성 주재 기자로 발령이 났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편집국에서 떨려났는데, 다시 무연고지로 쫓겨나니 더 이상 회사를 다닐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떠나기 전에 기자 이름으로 책 한 권 남겨야겠다 싶었고, 그렇게 ‘1983 버마’를 썼다. 지금은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마이더스’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

36년이나 지난 사건을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일본에 강제징용과 위안부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와 동일합니다. 북한이 하지 않은 것을 북한이 했다고 우기는 것은 일본이 징용과 위안부 강제 동원을 부인하는 것과 같죠. 이런 끔찍한 사건을 북한이 저질렀다고 여기면서 남북 화해가 가능할까요. 극우 또는 보수 진영에서 극도의 반북 적대감을 발산하며 정부의 대북화해정책에 사사건건 딴죽을 거는 이유는 바로 ‘나쁜 북한’이 ‘착한 남한’을 해치려 했다는 잘못된 세뇌 때문입니다.”

김성후 기자 kshoo@journalist.or.kr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2&oid=127&aid=0000028677




1983 버마

1983 버마

저자 강진욱 출판 박종철출판사  |  2017.6.10.

페이지수 368 | 사이즈    154*225mm

판매가  서적 18,000원   

책소개


『1983 버마』는 ‘버마 아웅 산 묘소 테러 사건’을 다루고 있다. 1983년 10월 9일, 버마(현 미얀마) 수도 랭군(현 양곤)에 있는 ‘아웅 산 묘소’에서 폭탄이 터져 전두환 대통령을 수행하던 외교사절을 포함한 한국인 17명과 버마인 4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부상을 당했다. 6개국 순방길에 나섰다가 첫 방문지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전두환 대통령과 장세동 경호실장 등은 숙소에서 늦게 출발해 사건 당시 현장에 없어 화를 면했다. 전두환 대통령은 사건 직후 이 사건이 “북괴의 소행”임을 주장했고, 남은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귀국한 뒤 비상경계태세를 발동했다.

전국적으로 ‘북괴 만행 규탄대회’가 열렸고 보복과 응징 분위기가 고조됐다. 버마 정부는 사건 발생 후 3주가 지나도록 ‘북한’을 특정하지 않은 채 ‘코리언’이 범인이라는 입장이었다. 범인으로 지목되어 체포된 ‘강민철’은 처음에는 자신이 서울에서 자라고 서울에서 왔다고 했으나, 남한 정부 관계자들과 만난 뒤인 11월 3일 자신이 북한에서 왔다고 진술을 번복했고, 버마 정부는 그 다음 날 바로 북한 외교관에게 출국을 명령했고 북한과의 외교 관계 단절을 선언했다. ‘강민철’에게는 사형이 선고되었지만 수사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무기로 감형됐다. ‘강민철’은 2008년 옥중에서 사망한 것으로 돼 있으나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 책은 버마 사건과 관련하여 이제까지 한국 정부가 발표하고 여러 언론이 보도한 내용에 의문을 제기하는데서 비롯되었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저자

강진욱

저자 : 강진욱
저자 강진욱은『연합뉴스』에 민족뉴스취재본부가 있던 호시절에 북한부와 남북관계부에서 7년 정도 근무했고, 그 전후 몇 년 외신부에서 근무하면서 분단 체제의 모순을 제대로 깨달았다. 대학에 입학하던 1983년 버마 아웅 산 묘소 테러 사건이 일어나고 대학을 졸업한 1987년 김현희 사건이 일어난 것 역시 이 땅의 모순에 눈뜨는 계기가 됐을 것이다. 어쩌면 이들 사건을 통해 깨달은 이 땅과 세계의 모순에 대한 고민은 유전자처럼 육신을 지배했는지도 모른다. 아웅 산 묘소 사건 현장에서 카메라를 들었던 언론계 대선배를 북한부 기자 시절 찾아간 것이나, 30여 년이 지나 이 사건에 대해 책을 내게 된 것도 바로 그 때문이 아닐까? 2015년 5월 충남 홍성 주재 기자로 발령을 받았고 6개월 뒤인 그해 11월부터 안양 주재 기자로 있다가 2017년 6월 1일 월간부로 발령을 받았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목차

● 추천사 (김종철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 책 머리에
● 제1부 1981∼1982년 전두환 대통령 시해 모의 사건들
● 제2부 아웅 산 묘소 폭파 사건의 전조
● 제3부 전두환 정권의 자작극 의혹
● 제4부 강민철의 말 한마디로 북한 소행임이 밝혀졌다?
● 제5부 버마 사건의 마무리를 위한 ‘다대포 공작’, 이어지는 ‘늑대 사냥’
● 제6부 전두환 정권의 남북회담 속셈과 ‘간첩선 공작’
● 제7부 버마 감옥에 갇힌 강민철, 한국이 관리했다
● 제8부 강민철은 북파공작원이란 말인가?
● 제9부 네 윈의 버마와 미국, 북한
● 제10부 여록
● 버마 아웅 산 묘소 테러 사건 일지
● 후기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책 속으로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출판사서평

1983년 10월 9일, 버마(현 미얀마) 수도 랭군(현 양곤)에 있는 ‘아웅 산 묘소’에서 폭탄이 터져 전두환 대통령을 수행하던 외교사절을 포함한 한국인 17명과 버마인 4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부상을 당했다. 6개국 순방길에 나섰다가 첫 방문지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전두환 대통령과 장세동 경호실장 등은 숙소에서 늦게 출발해 사건 당시 현장에 없어 화를 면했다. 전두환 대통령은 사건 직후 이 사건이 “북괴의 소행”임을 주장했고, 남은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귀국한 뒤 비상경계태세를 발동했다. 전국적으로 ‘북괴 만행 규탄대회’가 열렸고 보복과 응징 분위기가 고조됐다.
버마 정부는 사건 발생 후 3주가 지나도록 ‘북한’을 특정하지 않은 채 ‘코리언’이 범인이라는 입장이었다. 범인으로 지목되어 체포된 ‘강민철’은 처음에는 자신이 서울에서 자라고 서울에서 왔다고 했으나, 남한 정부 관계자들과 만난 뒤인 11월 3일 자신이 북한에서 왔다고 진술을 번복했고, 버마 정부는 그 다음 날 바로 북한 외교관에게 출국을 명령했고 북한과의 외교 관계 단절을 선언했다.
‘강민철’에게는 사형이 선고되었지만 수사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무기로 감형됐다. ‘강민철’은 2008년 옥중에서 사망한 것으로 돼 있으나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버마 아웅 산 묘소 테러 사건’과 관련된 개략적인 내용은 위와 같다. (흔히 ‘아웅 산 테러 사건’이라고 하지만, ‘아웅 산’은 버마의 영웅적인 독립운동가이며 사건이 벌어진 곳은 그를 기리는 ‘아웅 산 묘소’였다.)
이 책은 위의 사건과 관련하여 이제까지 한국 정부가 발표하고 여러 언론이 보도한 내용에 의문을 제기한다.
필자는 사건이 벌어지고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출판된 책자들, 특히 당시 대통령 경호실장이었으며 대통령과 함께 폭파 당시 현장에 도착하지 않아 목숨을 건진 장세동, 현장에 있었던 외신 기자, 순방 일정을 기획하던 외무부장관이었다가 사건 당시 고사에도 불구하고 뜻밖으로 안기부장 자리에 있었던 노신영, 그리고 김대중 정부 시절 국가안전기획부와 그 후신인 국가정보원에서 1차장을 지낸 라종일 등의 책을 꼼꼼하게 읽으며, ‘합리적 의심’을 굳혀 갔다.
필자는 당시 한국 언론의 보도 내용을 세심하게 검토했고, 미국-남한, 미국-북한, 남한-북한, 미국-버마, 남한-버마, 북한-버마 등의 외교와 관련된 정부 문서들과 연구서들을 추적했다. 한국과 미국의 정부 문서 가운데는 얼마 전에야 일반인에게 공개된 문서도 포함되어 있다. 그리하여 1980년대 초반, 미국과 한국의 정권이 북한을 국제적으로 고립시키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작전을 추진하고 있었음을 밝혔다.
아울러 테러범으로 지목된 ‘강민철’이라는 인물에 대해 남한 정부 관계자들이 보인 의외의 연민과 애정에 주목했다. 그리고 북한의 공작원이라는 ‘강민철’에 대한 여러 묘사가 남한의 북파공작원이 회고한 것과 너무도 일치함을 밝혀냈다. 현직 기자인 필자는 ‘강민철’이 수감되어 있었...다는 미얀마의 교도소에서 근무했다 퇴직한 교도관과 통화하여 증언을 듣는 노력도 기울였다.
그리하여 필자는 1983년 버마 아웅 산 묘소에서의 폭발이 전두환 정권 초기 3년 내내 일어났다는 ‘북한에 의한 남한 대통령 시해 기도’ 사건 가운데 하나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아웅 산 묘소에서의 폭발은 북한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키기 위한 ‘공작’이었다는 것이다.
북한과 버마는 미국에 반기를 들고 있던 비동맹운동을 주도하던 두 축이었다. 버마에서 북한이 남한 국가원수를 살해할 의도로 테러를 벌인 듯 사건을 일으켜 북한을 비동맹운동에서 고립시키고 나아가 국제사회에서 고립시키려는 것이 당시 정권의 의도였다는 것이다. 물론 전두환 정권만의 계획이 아닌 미국과의 협조 속에서 이루어진 작전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제1부에서는 전두환 정권이 1983년 이전부터 북한이 남한의 대통령을 시해하려 ‘대통령 시해 모의 사건’을 꾸며 왔음을 밝힌다. 그리고 시해 기도 이유는 번번이 ‘광주에서의 학살을 응징한다’라는 것으로 발표되어 왔는데, 전두환 정부는 버마에서의 테러도 같은 이유로 설명했다.
제2부에서는 1983년 사건이 벌어지기 직전에 한국과 버마에서 벌어진 일들을 소상히 소개하면서 ‘아웅 산 묘소 사건’이 기획되고 준비되어 왔음을 밝힌다. 사건 당일을 전후하여 벌어진 일들, 우연으로 돌리기에는 너무도 기괴한 여러 정황들(제3부)도 필자의 ‘합리적 의심’을 뒷받침한다. 아울러 처음에는 서울에서 왔다던 ‘강민철’이 북한 공작원임을 시인하는 과정에 안기부 직원이 간여한 정황도 밝힌다(제4부).
필자는 버마에서의 폭발 사건 이후 다대포에서 ‘간첩’을 생포한 일이나 여러 국가를 북한과의 관계 정도에 따라 분류하여 외교 관계를 다시 정립한 일(“늑대 사냥”)이 모두 버마에서의 사건을 마무리하는 작업으로 본다(제5부).
아울러 필자는 전두환 시절에 추진했던 남북회담이 북한으로 하여금 아웅 산 묘소 테러 사건을 저질렀다고 인정케 하기 위한 속셈에서 시작되었기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힌다(제6부).
‘강민철’이 북한의 공작원이 아닌 북파공작원이라는 의심은 버마에 수감되어 있던 강민철을 한국 정부에서 관리한 사실(제7부)로 인해 더욱 깊어진다. 제8부는 강민철에 대한 정부 관계자의 묘사와 설명이 북파공작원 스스로 증언하는 훈련 과정과 일치함을 보여 준다.
제9부는 당시 버마와 미국의 관계, 버마와 북한의 관계를 개괄하고, 버마와 한국이 CIA의 동시작전구역이었음도 설명한다.
제10부는 1983년 버마에서 일어난 사건에 견줄 수 있는 여러 사건을 소개하고 그에 대한 의혹도 제기한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https://search.daum.net/search?DA=LB0&bookId=1204004&https_on=on&q=1983+%EB%B2%84%EB%A7%88&tab=introduction&w=bookpage&ie_redirec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