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4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이 사건은 현재진행형입니다.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부분이 많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때 여기 전남도청에서 마지막까지 신군부에 맞섰던 사람들은 잊히지 않는 고통, 또 기억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시민군의 상황실장으로 신군부한테 모진 고문에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박남선 씨가 그 고문받았던 장소를 용기를 내서 40년 만에 처음으로 저희 취재진과 찾았습니다.
정반석 기자가 함께했습니다.
<기자>
전남도청 정문 앞을 걸어가는 시민군 모습입니다.
유탄발사기를 든 남성, 당시 50대였던 황장엽 씨라는 가짜뉴스가 퍼지기도 했는데 실제로는 당시 스물여섯, 시민군 상황실장이던 박남선 씨입니다.
박 씨는 도청이 함락되면서 계엄군에 붙잡혔습니다.
이곳은 계엄군 진압 작전의 실질적인 지휘본부였던 505보안부대입니다.
붙잡힌 박 씨는 지하 취조실로 끌려 와 온갖 고문을 당했습니다.
박 씨가 40년 만에 아픈 기억의 현장을 찾았습니다.
[박남선/5·18 시민군 상황실장 : 여기서 즉결처형을 한다. 눈을 가리고 전부 일렬로 서 있었죠. 언제 죽나 하고 있었을 뿐 아니었겠어요? 그 시간이 엄청 길었습니다.]
고문의 고통은 40년이 지났지만 어제 일처럼 떠오릅니다.
[박남선/5·18 시민군 상황실장 : 송곳으로 열 손가락 밑을 전부 찌릅니다. 전기고문을 하고… 엄청난 비명소리가 들려옵니다. 문을 열어놓고 그 비명소리를 듣게 해요.]
사형을 선고받고 수감됐던 옛 광주교도소 고통스러운 기억에 연신 깊은 숨을 내쉽니다.
[박남선/5·18 시민군 상황실장 : 밥을 주면 비둘기하고 쥐가 먹으러 오죠. 살아 숨 쉬면서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쥐와 비둘기가 굉장히 부러웠죠.]
애국가를 불렀다는 이유로 구타당하고 징벌동에 갇혔습니다.
[박남선/5·18 시민군 상황실장 : 저희가 항의를 하고 하니까 네 사람을 여기 넣어놔요. 사람이 앉아 있기도 좁겠죠. 무릎을 구부리고 앉아 있는 거예요.]
5·18 40주년을 맞아 옛 광주교도소와 505보안부대 내부가 공개됐는데, 일부 공간은 원형대로 보존하기로 했습니다.
[황건하/서울 서대문구 : 광주의 아픈 역사를 이 교도소를 통해 잘 남기고 후대에 기억될 수 있도록 (합시다.)]
광주의 슬픔이 서린 공간 이제는 40년 전 그날을 기억하는 생생한 역사 교육의 현장이 됐습니다.
(영상취재 : 최대웅, 영상편집 : 유미라, CG : 박상현, 화면제공 : 박남선 5·18기념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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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반석 기자jbs@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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