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교육배움/지혜는

영화 사바하

천사요정 2020. 6. 5. 18:18

불교 교리에 대해 검색해서 짜깁기 한 거예요.
12연기는 몇 번을 읽어봤어요ㅋ 
불제가 아니라 혹 잘못된 점 있으면 양해 부탁드려요. 


자타불이:  나(중생)과 남(부처)는 다르지않다.

불교에선 누구나 깨달음을 얻으면 부처가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깨달아야할까?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시고,  녹야원에서 처음으로 가르침을 주셨는데. 

이게 불교의 기본교리인
사성제와 연기.

사성제는 고, 집, 멸, 도.

1. 고성제 (苦聖諦)
생즉고,  생은 곧 고통.  존재한다는 것은 괴로움.
기쁨의 것들도 당시에는 기쁨이지만 불변하지 않고 언젠가 끝나고 괴로움이 찾아옴.

2. 집성제 (集聖諦)
괴로움이 어디에서 오는지 알지못하는 어리석음(무명). 
괴로움은 욕망과 집착에 기인함. 

3. 멸성제 (滅聖諦)
괴로움의 원인을 알지 못해 고통이니, 
알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음. 이 경지가 열반. 

4. 도성제 (道聖諦)
괴로움을 없애기 위해 8가지의 수행방법이 있음.

그리고 
연기설 (緣起)
인연 + 일어나다

"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하면 저것이 생한다.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하므로 
저것이 멸한다 " 


생즉고, 인생은 고통.
우리의 인생은 왜 늙고 병들며 죽고 괴롭고 근심하며 분노하는가?

우선 있는 그대로 바라봐야하며 받아들일 수 있어야한다.
이것부터 시작이다. 

번뇌는 존재로 부터 기인한다. 
존재는 얽매임.

존재로 부터 자유로워져야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으며, 
있는 그대로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럼 우리는 왜 태어났는가?


연기에는 12지가 있는데, 
12연기는 욕망과 존재에 대해 설명한다. 

무명 ->  행 -> 식 -> 명색 -> 육입 ->  촉 -> 수 -> 애 -> 취 ->  유 -> 생 -> 노사 

12연기는 서로 연기관계.  
즉 중생들은 12연기의 
인과관계에 의해 윤회하게 된다.
윤회하며 업보를 씻어나가야 한다. 


1. 무명(無明)
사성제, 연기법에 대한 인식이 없는 어리석음.

2. 행(行)
고로 어리석은 행동으로  나타난다. 모든 행동은 업을 쌓는다.

3. 식(識)
의식, 과거의 행동이 의식에 영향을 준다.

4.  명색(名色)
이름 명, 이름은 있지만
형상이 없는 마음이나 정신 같은 것. 
색은 형체가 있는 것 또는 신체. 

5. 육입(六入)
 6개의 감각(6근)
눈, 귀, 코, 혀, 몸(피부) 
 + 의식(촉) 
신체가 있어야 6입도 있다. 

6.  촉(觸)
접촉, 
감각 기관(6근)과 
감각 대상(6경)의 통합.

6경:  물질, 소리, 냄새,
맛, 감촉,  의식(법)


7.  수(受)
느낌,  
6근 × 6경 등이 만나 촉을 이루고 그 후 생기는 고통,쾌락 등의 느낌.

8. 애(愛)
욕망

9.  취(取)
집착, 집념 

10.  유(有)
태어나기 전의 과정
(업보의 축적) 

11.   생(生)
유가 있음으로 태어남 

12.  노사(老死)
생의 고통 

이해하기 편하게 설명드린다고 한 건데, 
뭔가 아리송하실 거예요.

 

연기와 사성제를 몰라 어리석고 (무명),
어리석은 행동이 업을 만들고 (행),

업으로 인해  앎이 생기고 (식),
앎으로 인해 몸과 마음의 
현상이 생기고 (명색),

현상으로 인해 여섯 감각이 생기고 (육입),
여섯 감각에 의해 대상과 접촉하고 (촉),
감각이 대상과 접촉하여 느낌이 생기고 (수),

느낌으로 인해 욕망이 생기고 (애),
욕망으로 인해 집착이 생기고 (취),
집착함으로써 이 세상의 존재가 생겨나며 (유),

존재로 인해 생명이 있게 되며 (생),
살아있기 때문에 생의 고통이 나타난다 (노사)


12연기는 상호의존적.
인연이 되지 않으면 홀로 존재할 수 없으며,
인연이 다하면 소멸한다.

연기의 형태가 아닌
실상을 파악하면

선과 악, 높고낮음, 옳고그름의 허구도 알게 된다.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체계에 갖힌 중생들에게 부처님은 말씀하신다.

번뇌 즉 보리,
둘로 나뉘어보이는 모든 것은 사실 하나라고.


(보리 = 깨달음, 있는 그대로를 아는 것,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행과정)

위에는
 " 불교철학에서 본 욕망" 의 글 중 발췌했어요.

다들 12연기를 추상적으로 설명하는데,
이 글은 심플하게 설명하더라고요.

밑에는 지식인에 어떤 분이 남긴 댓글인데요,
이거 보고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띵~ 

인연이 다하면 소멸한다는 건, 다른 글에서 본 걸 붙인 거예요.
그래서 그것이 소멸하나 싶어요.

 

뱀에 대해서도 찾아봤어요.
다들 아시듯 이중적인 의미인데요.
불교 내에서도 상반되더라고요.

"  뱀은 악업이 깊은 동물이라 그의 일생은 대단히 괴롭다 " 
여기선 유혹과 애욕을 뜻해요.

반대로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에서 수행하실 때,
비를 막아주기도 했고.

" 안으로는 상념이 없고,
밖으로는 세상의 부귀영화 를 초월하는 수행자는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린다.
뱀이 허물을 벗어버리듯 "

뱀이 허물을 벗 듯,
번뇌와 유혹을 끊임없이 벗어버리는 동물로 생각하고 수행자의 바른 모습이라고도 생각했다고 해요.

감독님이 상반되는  크리스트교의 뱀과 불교의 뱀을 의도하신 건 지.
아니면 불교내의 의미로 뱀을 이용하신 건지 궁금하기도 해요.

후자를 보면
김제석과 그것이 오버랩되긴 해요.


부처님이 수행하실 때,
마라(마왕)이 엄청나게 방해했는데 다 물리치고 
깨달음을 얻으셨는데요.
그때의 수인이 항마촉지인.

제석천도 꽤 높은 위치의 신인데,
마라가 더 높대요. 

제석천, 범천, 아수라 등 천인이라도 욕망은 해탈하지못한 존재들이라
마라를 어찌할 수 없기도 하대요.
인간을 뛰어넘긴 했지만,
애초에 김제석은 부처가 된 적이 없던 것. 


그것이 처음에 악인지 선인진 모르겠어요.

외부와 단절된 독방에서 16년이나 갖혀 짐승같이 살며 울고. 
생이 곧 고통이었을 거예요.
사는 것 자체가 수행이었을 거예요.

개인적으로 
그것의 생은 고, 집, 멸.

그것이 태어났을 때
곧 죽는다고 했잖아요?
그렇지만
그것은 가혹한 환경에서도 16년을 살았어요.

생에 대한 집착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로인해 번뇌에 젖어살았던 거고 울었다고 생각해요. 

농약사건과
스웨터로 인해,
그것은 생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해탈하게 되고.

반대로 김제석은 생에 대해 더 집착을 하게돼요.

김제석은 자신의 인생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고.
유혹의 뱀이 된거고. 

김제석을 제거하기 위해 가혹한 삶을 살게 됐다는 걸,  그것은 그대로  받아들인 거죠.  
그 후의 죽음도. 

김제석과 그것은 연기의 인연으로 연결되어 있었으니,
김제석이 죽으면 본인도 죽는다는 걸 알면서도.

그것이 자기의 생을 벗어나려 처음엔 부정한게  아닐까 싶어요. 

뱃 속에서도 생에 대한 집착으로 동생의 몸일부를 먹고 살아남았고.
부모님이 출생신고 못하게   죽거나, 
소를 죽이거나해서 김제석  눈에 안띄게 은폐하거나 이사를 다닌거죠.  

결국 죽음을 받아들여야
이 연기도 번뇌도 끝난다는 걸 깨달은 거예요. 

그것은 뱀이 허물을 벗듯, 번뇌와 유혹을 버렀고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리게 된 거죠.

감독님이 너무 지엽적인 해설은 지양한다고 했는데,
이런 해석도 가능하지 않을까 해요ㅎㅎ

- 디테일한 설정들에 대한 추가 코멘트

1. 지국의 죽음 이후 광목이 처음 녹야원을 찾았을 때, 병상에 누운 가짜 김제석이 작은 소리로 뭐라고 말하자 광목이 뭐라 말씀하신 거냐고 묻습니다.
그때 진짜 김제석은 "사랑하신다네요" 라고 말하며 슬픈 듯 연기를 하지만, 사실 가짜 김제석은 마지막에도 그러했듯 그 첫 장면에서도.
"스승님... 죽여주세요" 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가짜 김제석은 계속해서 죽음을 염원하며, 자신만의 사바하를 외우고 있었던 것이죠.

자세히 들어보면 진짜 김제석이 '사랑하신다네요'라고 전달했던 그 때에도 가짜 김제석은 '스승님...' 이라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습니다.

2. 또한 가짜 김제석이 누워있는 병상 뒤에는 벽화가 그려져있는데,
거기에는 부처를 둘러싼 두 명의 제자와 네 명의 악신들이 등장합니다.
즉 김제석을 직접 볼 수 있었다는 제자는 단 두 명이며, 그 중 하나는 병상에 누워있는 가짜 김제석.
그리고 또 하나는 진짜 김제석이 녹야원을 떠나며 "마이 컸네" 라는 말을 포옹과 함께 건냈던 '명희'라는 여제자였던 것입니다.

김제석이 불사의 몸을 가진 것이 1940년대 전후일 것이니, 그들이 김제석의 제자가 된 나이도 대강 짐작이 되실 겁니다.

3. 김제석은 자신에게 내려온 예언을 막기 위한 계획을 꾸미는데, 그 역시도 한 때는 미륵이었기에 과연 이 계획이 올바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지금 악으로 변해가고 있는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 코끼리를 데려온 것인데, 영화의 후반부에서 박웅재 목사와 광목이 동시에 녹야원에 들이닥쳤을 때에도 김제석이 코끼리의 눈을 들여다보는 장면이 잠깐 나옵니다.

그 때 카메라는 김제석이 네충텐파의 예언을 들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김제석의 눈을 클로즈업 하는데, 코끼리의 눈을 들여다보던 김제석의 눈빛이 돌연 흔들립니다. 즉, 코끼리의 눈에서 두려움을 느낀 것이고 자기 자신이 악해졌음을 깨달은 것이죠. 그래서 그는 "배송비만 9천만원 들었는데..."라고 말하며 코끼리를 쏴버립니다.

4. 박 목사의 조수 고요셉이 숨어들었던 지국천왕의 사슴동산에서 법회가 열리는 장면이 여러번 나옵니다. 그 때 카메라는 법당의 전경을 이리저리 훑으며 꽤나 자세히 보여주는데, 법당의 곳곳에는 사슴 여러 마리가 들판에서 뛰어노는 벽화가 그려져있습니다. 이는 김제석이 "영생"과 "성불"을 상징하는 사슴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심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5. 성불을 한 "그것"이 광목과 김제석의 대결을 그리며 예언을 읊조릴 때,
"그것"은 광목에게 '지혜자'라는 호칭을 사용합니다.

"지혜자여, 뱀의 발목을 잡아라" 라는 대목에서 등장하죠.
즉 "그것"은 김제석과 달리 광목을 악귀 잡는 악신 혹은 짐승으로 대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자신의 뜻을 대신할 자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6. 영화의 배경이 강원도인만큼 군인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군인이 영화 안에 자주 등장하는 이런 장면들은 이후 김제석의 대사로 환원됩니다.
"군인에게 살생은 애국이다." 라는 대사로 말이죠.

이것은 행위 그 자체로는 악행이 맞더라도, 그 의도만 좋다면 더 이상 악행이 아니게 된다는 김제석 본인의 신념을 나타냅니다.
즉 자신의 군인(사천지왕)들에게 살생을 저지르도록 시키더라도, 그것은 하늘을 대신하는 나를 위한 것이니 당연히 올바른(애국적) 행동이라는 것이죠.

물론 군대의 등장은 이 영화의 공간적 배경을 설명하는 장치로서 작용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강원도가 상대적으로 산세가 깊은 곳이니, 사슴동산 같은 비밀 신흥 종교가 들어서기에도 적합하다 라는 개연성을 부여하게 되니까요.

7. 그리고 금화의 쌍둥이 언니에게 ‘그것’이란 호칭이 붙은 이유는 짐작하시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바로 절대자, 즉 신을 가리키는 ‘The one’을 한국어로 그대로 번역해서 붙인 것이 아닐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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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

쌍둥이라는 설정부터 살펴보고 싶은데요. 그것은 예언대로 이미 태어날 운명이었고 그것 또한 자신의 숙명을 알고 있었을 것 입니다. (영화에서는 그것이 생기면 저것이 생기고 지렁이가 생기면 새가 생기고와 같은.. 좀더 자세하게는 4번째 - 광목과 그것에 관하여에서 다루겠습니다.)

 

이를 알고 있는 김제석은 그것을 죽이려고 계획을 세우죠. 여기서 포인트는 그것은 태어나기 전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 쌍둥이 ' 로 태어나기로 합니다. 더나아가 다리를 물어버려 쌍둥이가 사회에 노출 되는 것을 최소화합니다. 그래서 영화에서 보면 낯선이와 문자를 치는 내용에서 본인이 병신임을 언급하거나 터미널에서 어딘가로 이동하려고 해도 절뚝거리는 다리를 보여준다거나 하는 등 친구는 사귀었냐는 할아버지의 말에서 알 수 있듯 활발한 사회 활동이 어려운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게 왜 자신을 보호하려 하는 것이냐 하면 자신의 미끼와 같은 동생을 쉽사리 들어나게 하지 않게 하기 위한 연막작전 같은 거죠.

 

이는 나중에 경찰서 게시판에 있는 99년생의 여아들의 실종신고서 보며 넋이 나간 반장의 모습에서 알 수 있습니다. 아마 동생이 다리가 멀쩡했더라면 쉽게 지국과 같은 제석을 모시는 제자들에게 타겟으로 잡혀 그 게시판에 올라가 있을 지도 모르죠. 또 영화에서처럼 동생을 찾으러와 그것을 발견하는 광목.. 혹은 동생을 매장하려는 중 언니도 죽여달라고하는 동생..과 같은 이유로 그것이 신의 반열에 오르기 전에 위기를 겪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동생을 광목으로부터 새를 이용해 지켜내주거나 하는 것들 또한 본인을 위한 행동들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다음은 무당에 관한 내용입니다.

 

- 무당이 뱀에 물리는 장면에 대해서 영화 초기에 마을에서 소가 모두 죽어나가는 일이 발생하고 이에 무당이 마을에 찾아와 굿을 하는데 결국 마지막 소까지 죽어버립니다. 이 때까지 그것은 기독교적인 면에서 봤을 때에는 악에 더 가까운 상태인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제가 앞서 그것은 그것으로 태어날 운명이라고 말했지만, 태어나자마자 그것(신)이 되지는 않을테니 최초의 부처가 그러하였던 것처럼 그것도 ' 고 '를 통해 부처가 되기 수행을 하는 중 정도라고 생각됩니다.

 

불교적인 면에서 봤을 때, 집착과 고뇌와 같은 것들로 인해 영화에서도 계속 말하는 짐승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악신이 부처를 만나 불법에 귀의하는 것 처럼, 불교에서 악이라는 것은 없다고 하지만 제 편의상 그냥 그것은 본래 짐승과도 같은 악한 것 이라고 표하겠습니다) 무튼 이러한 그것을 수상하고 궁금하게 여긴 무당은 한 남성과 함께 그것에 다가서는데 이때 무당의 발을 물어 더이상의 접근을 저지하는 것은 다름아닌 뱀입니다.

 

흔히 뱀은 교활,유혹과 같은 나쁜 의미로 많이 알려져있지만, 부처의 일화 중 부처가 수행중에 나쁜 것으로부터 12개의 머리를 가진 뱀에게 보호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 일화와 비교하여 보면, 무당은 나쁜 혹은 더러운 속세와 같은 것일겁니다. 그 증거로 무당이 굿을 하는 장소에서 잠깐 나왔던 차2대를 기억하시나요? 시골마을 사람들이 그런 차를 타고 다닐리 없고.. 벤틀리와 벤츠... 즉 돈과 같은 탐욕에 찌든 무당의 것일 겁니다. 이러한 더럽고 불순한 것이 수행하는 그것에게 다가오는 것을 뱀이 저지했다고 생각이 드네요

다음은 코끼리에 대한 내용입니다.

 

- 코끼리를 보는 제석과 광목 코끼리를 왕에게 선물하였다. 라는 제석의 말에 포인트가 있습니다. 코끼리는 부처의 태몽이기도 하고 이 때문에 코끼리를 부처의 혼?과 같은 게 있다고 여겼답니다.

이에 코끼리 = 부처 로 가정해본다면 코끼리를 대하는 제석과 광목의 태도나 심정이 상반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본인도 본인이 탐욕에 사로잡혔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이에 코끼리 사육장에 총과같은 것을 두고 있는 것을 보면 이미 제석이 코끼리(부처)의 눈을 보며 느끼는 감정이 두려움이라는 것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석과는 달리 광목은, 코끼리의 눈이 어딘가 추워보인다고 말하죠.

추워보인다는 이 말은 이미 진짜인 그것을 만나고 온 광목은 진짜 부처 그러니까 그것이 어두운 창고와 같은 곳에 오로지 동생이 가져다준 코트만을 덮고 있던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코끼리(진짜부처 그것)가 추워보인다고 말을 한 것입니다. (배경이 크리스마스를 목전에 두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한겨울에 그런 창고에서 헌옷만으로 버텨온 그것) 결국 부처를 무서워하지 않는 광목을 제석은 총으로 쏴버리죠.

이는 어찌보면 자신이 부처가 아님을 인정하는 것일 수도 있고 제석입장에서는 부처인 자신(코끼리)을 무서워하지 않는 광목이 더이상 제자로서 필요없다고 생각해서 일지도 모르겠지만 코끼리(부처)도 쏴버린 것으로 봐서는 둘을 쏴버린 후 제석은 더이상 숨지 않고 본인이 진짜 부처와 결판을 내러 총을 들고 나선 거라고 생각이드네요.

 

- 광목과 그것에 관하여 제가 앞서 그것은 자신의 운명,숙명을 알고 있는 채로 태어났다고 말씀드렸죠. 이를 유추할 수 있는 대사가 광목과 그것의 첫만남에서의 대화입니다. " 너가 올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너와 함께 울어주는 자다 " 와 같은 실제로 한번도 만나본 적도 없는 둘이지만 그것은 광목을 오랫동안 곁에 둔 사람처럼 혹은 계속해서 기다렸던 것처럼 말합니다.

또한 더럽고 불순한 것이었던 무당이 다가올 때에는 뱀들이 제지하였지만 광목이 그것을 향해 처음 다가섰을 때에 뱀은 광목을 제지하지 않습니다. 즉 광목은 불법에 귀의하여 부처가된 악신의 이야기 처럼 그걸 이룰 사천왕이었던 거죠.

물론 처음 동생을 죽이러 문앞에서 잠깐 마주할 때 서로가 준비가 안되었던 터라 ( 아직 깨닫지 못한 그것과 진실(진짜부처)을 마주하지 않은 악신=광목) 화들짝 놀라며 도망치지만, 동생이 초경을 하며 피를 흘리죠? 흔히 여성이 성인이 되는 척도를 초경으로 보는데 초경을 해서 부처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저 그것이 성인이 될 때가 된 것을 보여주는 정도 같네요. 그것이 진짜가 되고 광목 또한 진짜 부처를 마주할.. 말은 진짜 부처이지만 이건 광목에게 해당하는 쓰러져 있는 가짜 김제석을 진짜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것을 죽여서 진짜부처를 마주하겠다는... 하지만 이유야 어찌 되었든 이를 통해 광목은 진짜 부처를 만날 용기를 얻습니다.

 

- 할머니 할아버지는 어디로 갔나요? 뭐 사실 저도 확실한 답변은 못드리겠는데 영화에서 이 사건의 시간의 흐름은 그다지 길지 않습니다. 해가지는 오후쯤에서 크리스마스의 폭죽이 터지는 밤까지의 시간입니다. 그러니까 이걸 숫자로 표시해본다면 12월에 해가지는 시간은 넉넉 잡아도 5시고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면서 터트리는 폭죽일테니 12시가 적당하겠네요. 대략 7시간 동안 진행되네요. 더 적을 수도 있구요. 심지어 동생은 가출을 결심하고 터미널로 향하는 와중에 광목에게 납치가 되고 광목이 향한 그것이 있는 창고는 무당이 그랬듯 그저 철조망같은 것을 넘으면 굳이 집을 통해서가 아니더라고 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집에는 있었을 수도 없었을 수도 있겟네요. 집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만 이야기가 진행되기에..

 

- 그것은 진짜 부처였을까? 광목과 직접적으로 만났을 때에 만큼은 진짜 부처라고 생각합니다. 손가락이 모두 12개인 것도 그러하지만, 짐승의 탈을 벗어내며 오롯이 앉아있는 그 자세와 행동은 분명 그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김제석처럼 왜 불사의 몸이 아니고 김제석이 죽음과 동시에 같이 소멸하였을까? 이는 처음에 말씀드렸다시피...

그것이 생기면 저것이 생기고 그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어진다라는 티벳승려의 논리와 같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김제석이 집착과 탐욕에 물들어 그것이 태어났고 김제석이 죽었으니 그것 또한 여기에 남을 이유가 없는 것이죠.

하지만 여기서 그것이 김제석과 마찬가지로 삶에 집착을 가지고 영생을 누리기위해 시간을 이겨냈다면 제2의 김제석이 되는 것이고 이는 자신과같은 일을 되풀이 하는 것이기에 김제석이 죽음과 동시에 곧장 열반에 든 것이라고 생각드네요.

 

음 제 해석이 정답은 아니니 그냥 하나의 견해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신의 운명을 알고 태어났다고 말씀드렸지만 동시에 태어나자마자 신이 되지는 않을테니 특히 불교에서는 부처가 되기 위해서는 고를 통하여 깨달은 자만이 윤회에서 벗어난다고 말하지요. 16년의 기간을 저는 고행을 통한 수련의 기간이라고 생각했고 예를 들어 헌 옷을 입고 창고안에서만 생활하며 밥 또한 짐승이 먹는 듯한 음식물 쓰레기를 먹고 추하고 무서운 외모로 인해 가족들에게조차 미움을 받습니다. 이런 고통 속에서 16년을 지내며 그것은 고뇌하였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악과 선을 구분 짓자면 저는 광목을 마주하는 시점부터는 절대선으로서 부처 즉 신의 반열에 올랐고 그 전 16년의 기간동안은 짐승으로서 혹은 악으로서 살아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악이 아닐지라도 선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가 죽는 것을 그냥 구제역과같은 병이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그것을 데리고 가족들이 이사를 다니고 동생에게 할아버지가 이번에는 최대한 버텨본다고 말씀하신거 보면 소가 죽거나 하는 불행한 일이 한 두번임이 아님을 알수 있습니다.

즉 그것의 영향으로 안좋은 일이 생겼던 것인데 이는 확실히 그것이 신과 같은 선은 아니라는 것을 반증해주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

 

그것은 악이었던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수련을 한적도 없습니다. 주위사람들이 불행해지고 자살하는 것은 그들의 카르마이자 운명인겁니다. 소가 죽거나 불행한 일이 생기거나, 무당의 발을 무는 뱀 등의 모든 행위는 바로 "첫번째 피"를 흘리기전까지 자신을 철저히 감추기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이게 다른사람들 눈에는 악행이라고 보일지 모르겠지만, 어차피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그것" 자신이 '원인'이 되어서 다른 99년생 여자아이들이 '김제석'에의해 살해당할 것이기때문에 이미 그것의 존재 자체의 선,악을 따지는게 무의미 해집니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그 99년생여자애들도 죽지 않았을 것이니까요!

 

(박목사의 헤롯왕 이야기 참고) 선도, 악도 아닌 오로지 "김제석"을 잡기위해 몸을 숨겨야했던 커다란 설계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악이 아닙니다. 다만 자신때문에 죽은 99년생 여자아이들과 자신때문에 입은 피해로 인한 ""업"" 이 있을 미래가 '태어나기전부터' 이미 예언으로 정해져있었기 때문에 태어날때부터 '업'에 대한 댓가로 짐승의 탈을 쓰고 고통 받은 것 뿐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태어날때부터 무엇을 해야할지 알고 있는 존재이지요.

 

괴성은 나는 우는자이다. 라고 말한것과 일맥상통합니다 쌍둥이언니가 악을 이긴다고 말하는건 이상해요 둘이 아니고 하나이니까요 그 광목이 목조를때 나오는 구술장면은 김제석이 쓴 예언서입니다. 그예언은 사실인겁니다. 그리고 이미 '그것'은 '변모'하기전에도 광목을 악몽에서 구해주면서 예언성취를 준비하고있었습니다.

결론은 '그것'은 '악'이었던적 없다. 그것이 악이라고 한다면 예수도 악이어야 하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 살짝 기독교적으로 보자면...창세기에 에서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온몸에 털이 뒤덮혔다고 나오고, 동생의 무릎을 잡고 태어났습니다.

쌍둥이 자매의 모티브는 성경의 야곱과 에서 형제로 보인다. 야곱이 태어날 때 형 에서의 뒷꿈치(발목)을 잡고 나왔고, 동생 이금화는 태중에 다리를 먹혔다고 나온다. '그것'은 몸에 염소같이 털이 많은데, 에서 역시 몸에 털이 많고 염소와 비슷해 야곱이 염소의 털가죽으로 에서로 변장한다 어떤분 해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