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가 시간의 바람을 맞는다. 이제 회사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조차 드물다. 그 옛날, 수많은 '순이'들만 이따금 폐허의 공장을 찾아 추억을 만진다. 공장의 주인을 자처했던 재벌은 도망한 지 오래다. 한 시절 영광은 이제 675장짜리 두툼한 양장본 책 한 권에 남았다.
대한방직사사(社史)의 깨알 같은 글씨들이 향하는 곳은 오로지 한 곳이다. 재벌 3대의 치적이다. 책 안에 1000여 명 노동자의 자리는 매우 비좁다. 그들이 선 곳은 언제나 재벌의 가장자리, 재벌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사진 한 장의 소품 정도다.
후대의 연구자들은 이 책을 뒤지며 역사가 될 한 줄을 옮긴다. 그렇게 불법과 편법, 배신과 책임 회피로 점철된 하나의 역사가 영광의 역사로 덮어진다. 뉴스타파가 이미 20년이 지난 이야기를 꺼내는 한 재벌 재산관리인의 고백에 귀를 기울인 이유다.
회사는 내리막 길, 재벌 일가는?
3대 설범 회장 승계 이후 대한방직은 줄곧 내리막길을 걸었다. 계열사의 부도, 설 씨 일가에 대한 검찰과 세무당국 조사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90년대 말 5000억 원 수준이었던 회사 자산은 2019년 기준 2000억 원 정도로 줄었다. 매출과 직원의 수도 전성기의 40% 수준이다.
대한방직의 최대 자산이었던 부동산은 모두 처분됐다. 수원, 대구 공장 부지와 여의도 본사 건물을 처분한데 이어 2017년에는 남은 전주공장 부지까지 매각했다. 부지를 사들인 회사들은 개발사업으로 모두 큰 돈을 벌었다. 선대 설원식 회장은 생전에 부동산을 재기의 발판으로 여기며 끝까지 처분에 반대했다고 전해진다.
△ 구 대한방직 전주공장 부지. 2017년 대한방직은 남은 부동산 자산인 전주공장 부지를 2000억 원에 매각했다.
다른 재벌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설 씨 집안의 위세도 꺾였다. 설원식은 2015년 사망 때까지 170억 원 세금을 납부하지 못한 고액 상습체납자 신세였다. 유가족은 상속 포기로 이 세금을 털어버렸다. 설범 회장은 아세아종금 부도 직전 아내와 이혼했다. 설원식 회장이 공들여 지은 장충동 자택은 고 이건희 삼성 회장에게 넘어갔고 설범 회장 명의의 성북동 자택은 재산분할로 전 배우자의 명의가 됐다. 설범 회장, 모친 임 모 씨의 등기상 주소는 주거지로 보기 힘든 상가 건물이다.
그러나 표면상만 그렇다. SNS에 올라온 설 씨 일가의 가족사진은 몰락과 거리가 멀다. 호텔에서 가족 모임을 하며 친분을 과시한다. 이혼한 것으로 알려진 설범 부부의 모습은 여느 부부처럼 밝다. 자녀는 해외로 갔다. 딸은 홍콩에 회사를 차리고 사업가로 살아간다. 딸은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아버지 설범 회장을 언급했다. 그가 대단한 커피 애호가이며, 매일 아침 가족들을 위해 커피를 내린다는 내용이다. 20년 전 이혼한 이후, 가족과 떨어져 창고 같은 집에 살고 있다는 서류상 내용과 딴판이다. 재산 압류를 피하기 위해 위장 이혼을 했을 뿐이다.
△ 2018년 SNS에 올라온 설 씨 일가의 가족 사진.
회사는 몰락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잘 산다. 취재진은 설원식 회장의 최측근 비서이자 재산관리인이었던 안형열 씨의 증언과 자료를 단서로 설 씨 집안의 은닉 자산을 추적했다. 차명 관리해온 부동산의 흔적과 고가 미술품의 행방, 그리고 재산관리인 안 씨의 손을 떠난 설 씨 일가의 차명 주식과 현금 흐름을 쫓았다.
정치와 재벌의 잘못된 만남, 세 친구는 왜 땅을 샀나?
설원식은 매년 집안의 재산세 납부를 비서 안형열 씨에게 맡겼다. A4 용지 한 장 분량의 토지 목록을 주며 처리를 지시했다. 토지 목록 일부는 설 씨 일가 명의였지만 일부는 그렇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명의를 빌려 소유하고 있는 차명 부동산이었다.
안 씨는 당시 토지 목록 가운데 경기도 여주시 강천면에 차명 부동산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굉장히 넓은 땅이었으며, 당시 개발 호재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취재진은 이 차명부동산의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대한방직 내부 관계자과 접촉했다. 설 씨 일가의 은닉 자산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핵심 관계자다.
그는 뜻밖의 인물을 언급했다. 9선 국회의원이자 3차례 국회의장을 지낸 거물 정치인 고 박준규 국회의장이다. 핵심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여주 땅은 설원식과 박준규 두 사람이 함께 사들인 땅이다. 두 사람은 미국 콜롬비아 대학 유학 시절 만나 평생 친분을 유지했다. 땅값은 설원식이 대고 명의는 여럿으로 나눴다.
△ 재벌 설원식은 정치인 박준규, 백남억과 친분을 가지고 있었다.
재벌 설원식과 정치인 박준규의 특별한 인연은 비서 안 씨의 증언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두 사람은 여의도 모처에서 자주 만났다. 재벌과 정치인의 인연은 청탁으로 이어졌다. 안 씨에 따르면, 박준규 의장의 아들은 대한방직 종합조정실 직원이었다. 방직과 관련된 이력이나 전문성이 없어서 입사 때부터 구설을 샀다. 오래되지 않아 그는 미국 지사에 발령 났다. 처음부터 미국에 보낼 생각으로 대한방직에 입사시킨 것이라는 풍문이 돌았다.
박준규 의장은 국회의장 시절 일가가 소유한 여주 땅으로 인해 홍역을 겪었다. 1993년 공직자 재산 공개 제도가 도입되면서 땅 투기 의혹이 제기됐다. 박준규 의장은 이 일로 국회의장직을 사퇴했다. 대구 출신 정치인이 연고 없는 경기도 여주에 땅 투기를 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의문이 나왔다. 하지만 마땅한 해명 없이 의혹은 잊혔다.
취재진은 1996년 박준규 의장의 공직자 재산 신고 내역을 토대로 일대의 토지 등기부등본을 확인했다. 취재 결과, 박준규 본인과 배우자, 아들, 딸 명의로 된 토지 22필지, 총 60만 제곱미터 규모의 토지가 드러났다. 공직자 재산 신고에는 고지 거부로 누락되어 있던 아들 명의의 토지도 이번 취재로 확인됐다. 이 토지 일부에는 공동 명의자가 있었다. 백 모 씨, 5번의 국회의원을 지낸 중진 정치인 고 백남억의 아들이다. 백남억 역시 설원식 회장과 왕래가 잦은 정치인이었다.
△ 설원식이 차명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던 경기도 여주시 강천면 일대.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이 땅들은 1970년대부터 순차적으로 매입되기 시작한다. 그러다 1998년 3월 일제히 한 종교법인 및 관계자에 매각된다. IMF 사태 직후, 계열사가 부도 위기에 놓이자 설 씨 일가가 강제집행 면탈을 위한 여러 가지 준비 작업을 하고 있던 시기다.
현지 취재 결과, 90년대 후반까지 여주시 강천면 일대에는 골프장 개발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고 한다. 재벌 설원식이 돈을 대고 정치인 박준규, 백남억이 명의를 빌려 주는 방식으로 세 친구가 골프장 개발 사업을 추진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계획은 IMF 사태와 설 씨 일가의 몰락으로 좌초했다.
가평 일대 차명 부동산도 확인
안형열 씨는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일대의 차명 부동산에 대해서도 증언했다. 안 씨는 청평호 한복판, 배를 타야 닿을 수 있는 어떤 섬에 아름다운 설 씨 일가의 별장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의 기억과 달리 청평호 일대에는 섬이 없다.
취재진은 현지 주민들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청평호 인근에 '된섬'으로 불리는 땅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땅은 섬이 아니지만 호수와 잣나무 숲에 둘러싸여 있어 섬으로 불리고 있었다. 외지인이 쉽게 진입할 수 없는 곳에 있으면서도 청평호의 아름다운 풍광을 즐길 수 있어 재벌가의 별장터로 제격이었다. 된섬 가장자리에는 현대가(家)와 이명박 전 대통령 친인척 명의로 된 별장이 있다.
△ 설 씨 일가가 땅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일대.
취재진은 된섬 일대의 등기부등본을 분석해 설원식 회장 배우자 명의의 18개 필지, 2만 평 규모의 땅을 확인했다.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이 땅은 2006년 60억 원에 한 개발 회사에 매각됐다. 2006년은 아세아종금 부도 및 설 씨 일가에 대한 검찰, 세무당국의 조사가 일단락된 시점이다. 현재 이 땅에는 고급 타운하우스가 들어섰다. 안 씨는 취재를 통해 확인된 땅 이외에도 차명으로 된 부동산이 더 있었다고 주장했다. 증언은 구체적이다. 설원식 친인척 명의로 관리되다 설범 회장 아들 명의로 변경됐고, 이후 또 다른 누군가의 명의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취재진이 확인한 차명 부동산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안 씨는 이 밖에도 경남 통영시 일대, 그리고 해외 모처에도 설원식의 차명 부동산이 있다고 증언했다. 1995년 부동산실명제 시행 이후, 명의자로부터 땅이 설 씨 일가의 소유라는 확약서를 받기 위해 금전 보상을 해줘야 했던 해프닝도 있었다.
취재진이 만난 대한방직 핵심 관계자는 설원식의 배우자 임씨 수중에 차명 부동산 등을 처분해 마련한 목돈이 200억 원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른바 '아들의 난' 이후에도 설범 회장은 부모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애썼던 것은 이 돈 때문이었다고 이 관계자는 말했다.
우리가 이인성의 작품을 볼 수 없는 이유
유명 미술품 콜렉터의 죽음은 화랑업계의 큰 뉴스다. 그가 소장하던 고가 미술품의 행방 때문이다. 일부 재벌은 미술품을 부의 승계 수단 가운데 하나로 여기지만 상속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값어치를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보니 천문학적 액수의 상속세가 매겨진다. 최근 추정가 3조 원에 이르는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의 수집 미술품 1만 여 점, 이른바 '이건희 컬렉션'의 행방을 놓고 설왕설래가 나오는 이유다.
생전 설원식이 수집한 미술품은 삼성가에 비견됐다. 안 씨는 설원식의 컬렉션 가운데 화가 이인성의 작품이 많았다고 증언했다. 2015년 설원식 사후, 이른바 '설원식 컬렉션'의 행방이 10년째 묘연하다. 설원식 컬렉션이 마지막으로 세상의 빛을 본 것은 2012년 이인성 100주년 기념 전시회다.
취재진은 미술품의 행방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이인성 화가의 아들 이채원 씨를 만났다. 이 씨는 20여 년 째 삼성, 대한방직으로 흩어진 아버지의 작품들을 환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씨는 2012년 이인성 전시회 당시 설원식 소유의 이인성 작품이 성북동 설범 회장의 집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장충동 설원식의 집, 서울 모처의 아파트에 보관되어 있던 작품들이 어느새 아들 설범의 손으로 넘어가 있었던 것이다.
△ 화가 이인성의 아들 이채원 씨는 2012년 이인성 작품 전시회에 나온 작품 일부가 훼손되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
당시 이채원 씨는 설범 회장 자택에 보관돼 있던 미술품 이송에 입회하겠다고 요청했지만 설범 측은 허락하지 않았다. 나중에 전시회에 나온 작품을 살피다 보니 일부 작품이 훼손되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 작품이 제대로 된 관리를 받고 있지 못하다는 얘기였다. 이채원 씨는 설범을 상대로 미술품 환수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더 이상 작품이 방치되지 않고, 세상에 나와 체계적인 관리를 받기 바라는 취지였다.
설범 회장이 소송까지 당하면서도 작품을 내놓지 못하는 데는 속 사정이 있다. 애당초 회사 비자금으로 사들인 작품이다 보니 소유관계가 명확하지 않다. 안 씨의 증언에 따르면, 작품의 구입 자금은 회사 자금부나 차명주식 계좌 잔고에서 나왔다. 별도의 영수증 처리는 없었다. 설원식 개인의 소유도, 대한방직 회사의 소유도 아니라는 얘기다.
작품이 세상에 나오는 순간, 설명해야 할 것이 많아진다. 해당 작품의 소유자는 누구인지, 왜 이 작품이 설범 회장 개인 창고에서 보관돼 있는지, 사실상 상속을 받았으면서 왜 적정한 상속세는 납부하지 않았는지 답해야 한다. 설범 회장 측은 이 씨의 소송과 취재진의 질문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안형열의 손을 떠난 차명주식은 어디로?
3대 세습 이후에도 불법은 계속됐다. 2007년 설범 회장은 대구 월배 공장 부지를 애경그룹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15억 원의 리베이트를 받은 사실이 드러나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선고를 받았다. 2000년 아세아종금 매각 과정에서 진승현으로부터 수백억 원의 뒷돈을 받은 것과 똑같은 형태의 범죄를 저지른 셈이다.
기업 가치를 해치고 사익만 취하려는 대주주의 행태에 맞서 소액주주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2017년 소액주주들은 설범 회장의 대표이사 해임안을 주주총회 안건으로 내걸었다. 소액주주 측이 확보한 대한방직 지분은 40% 이상, 외견상 특수 관계인 지분을 합쳐도 25% 수준인 설범 측에 한참 우세였다. 하지만 개표 결과는 설범 측의 승리였다. 대주주가 범죄를 저질러도, 경영 실적이 악화돼도 변함없이 의결권을 대주주에 위임하는 의문의 주주들 때문이다.
△ 지난 3월 26일 대한방직 주주총회. 설범 대표 해임안이 상정됐지만 부결됐다.
소액주주들은 주주명부를 토대로 이 의문의 주주들이 누군지 수소문했다. 사실상 소액주주를 가장한 설범 회장의 측근으로 드러났다. 친인척, 대학 선후배, 지인, 회사의 임직원, 그리고 그 임직원의 가족이었다. 명의자의 이름만 바뀌었을 뿐 20여 년 전 안형열 씨가 차명계좌를 관리하던 시절과 판박이다.
2017년 소액주주들은 이 주주들이 대주주의 차명으로 의심된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2019년 전현직 임직원 6명, 약 4.88%에 이르는 주식이 설범의 차명 주식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소액주주 측은 소송을 통해 확인된 차명 주식이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전히 전체주식 25%가 기계적으로 대주주에 의결권을 위임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들에게, 손녀에게...은닉자금을 찾아라
계열사 부도의 위기 상황에서 부동산과 차명 주식을 현금화했던 설 씨 일가, 천문학적 액수의 은닉 자금이 수중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행방은 묘연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소액 주주와의 표 대결에서 수세에 몰린 설범 회장에게 의문의 뭉칫돈이 지원된 사실이 포착됐다.
2017년 주주총회를 앞두고 설범을 돕는 우호지분, 이른바 백기사가 나타난다. 20여 년 전 계열분리된 아세아세라텍, 대한산업 두 회사다. 이 회사들은 표면상 계열분리돼 있지만 여전히 차명계좌를 통해 설 씨 일가의 지배를 받는 이른바 위장 계열사다.
금감원 공시자료에 따르면, 두 회사는 대한방직 지분을 4.99%까지 사들여 설범 회장의 경영권 방어를 돕는다. 5% 이상 지분을 보유할 경우 대량 보유 보고 의무를 가지기 때문에 노출을 피하기 위해 4.99%에 맞춘 것으로 보인다. 위장계열사 운영 의혹, 특수 관계인 지분 공시 누락 등의 시비를 피해 가려 한 정황이다.
△ 설 씨 일가를 지원하기 위해 투입된 뭉칫돈 90억 원의 출처는 설원식의 배우자 임 모 씨였다.
사실상 영업 활동이 없는 두 회사가 어떻게 대한방직 주식을 사들일 자금을 마련했을까. 이 자금의 출처는 설범의 모친 임 씨다. 아세아세라텍의 금감원 공시자료에 따르면, 임 씨는 2017년 90억 원의 뭉칫돈을 아세아세라텍에 무이자 대여했다. 그리고 아세아세라텍은 다시 25억 원을 대한산업에 대여했다. 사실상 임 씨가 직접 아들 설범의 경영권 방어를 지원하면서 자신이 노출되지 않도록 두 위장계열사를 가림막으로 사용한 셈이다.
90억 원 뭉칫돈 중 15억 원은 또 다른 설 씨 일가를 지원하기 위해 흘러갔다. 공시자료에 따르면, 이 돈은 홍콩의 한 법인에 투자금 명목으로 넘어갔다. 홍콩 등기 자료에 따르면, 이 회사의 대표는 설범의 딸 설 모 씨였다. 이 홍콩 회사는 투자금의 95%를 불과 1년 만에 날린 것으로 나타난다. 해외 법인에 돈을 빌려준 다음 손실 처리를 하는 것은 재벌들이나 주가조작세력이 회삿돈을 빼돌리는 전형적인 수법 가운데 하나다. 결국 할머니 임씨의 뭉칫돈 일부가 한국 수사기관의 감시망이 닿지 않는 홍콩에 넘어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셈이다.
고통은 계속된다
안형열의 이야기 속 진짜 주인공은 설 씨 일가가 아니다. 한 재벌 일가의 탐욕으로 인해 버림받고 망가지고 고통받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의 고백은 노동자들의 젊음과 열정을 도구 삼아 자신의 배불리기에만 혈안이었던 우리 사회 재벌체제에 대한 고발이다.
1952년 대한방직에 입사한 권오봉 씨. 100세를 바라보는 권 씨는 대한방직 창업자 설경동의 이름을 듣자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젊은 시절, 대한방직 노동조합의 조직부장으로 활동을 하며 설경동과 많이 싸웠다.
△ 1952년 대한방직에 입사한 권오봉 씨.
권오봉이 입사했을 때, 대한방직은 노동자들의 공장이었다. 일본인이 물러나며 불태운 공장을 노동자들이 수습하고 재건했다. 복구에 들어간 비용 72만 환은 노동자들이 받아야 할 퇴직금이었다. 설경동이 적산 불하를 통해 공장을 인수했을 때, 노동자들은 이제야 제대로 공장을 운영할 수 있게 됐다며 기뻐했다. 설경동은 나라 전체에서 손꼽히는 부자였다. 하지만 기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설경동은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을 거침없이 해고했다. 노동조합을 탄압하고 입맛에 맞는 사람들로 직원을 갈았다.
권 씨도 이때 해고됐다. 이후 줄곧 길 위의 투쟁이었다. 복직과 처우개선이라는 성과를 얻은 적도 있었지만 좋은 시절은 짧았다. 군사정부가 들어서며 공장엔 공권력이 밀고 들어왔다. 노조는 파괴됐고 막 꽃을 피우려던 대구의 노동 운동도 삽시간에 사그라들었다. 그렇게 평생 해고자 신분으로 길 위에 살았다. 탄압과 고문으로 몸과 정신이 나날이 망가졌다. 온전치 못한 중에도 권 씨는 대한방직 설경동을 향해 소리를 퍼부었다. 지난날의 고통을 토하고 또 토했다.
△ 1997년 대한방직의 계열사 아세아세라텍에 입사한 강창호 씨.
1997년 대한방직의 계열사 아세아세라텍에 입사한 강창호 씨. 아세아세라텍은 늘 그의 자랑거리였다. 작업복을 입고 가면 술이 외상이었다. 동네의 나이 든 사람들은 공장을 진주에서 제일 가는 직장이라며 추켜세웠다. 아세아세라텍은 주물 틀을 제조할 때 사용하는 샤모트 내화 벽돌을 생산하는 국내 유일 업체였다. 40여 년 동안 적자 한 번이 없었던 회사였다.
2014년 회사는 별안간 직원들의 출근을 막았다. 공장 폐쇄였다. 직원들이 노조를 결성해 처우 개선을 요구했다는 이유였다. 직원들은 아연실색했다. 대화를 하자고 했을 뿐인데 회사가 터무니없는 대응으로 맞대응 한 셈이다.
위장폐업과 부당해고로 노동청에 구제 신청을 했지만 지노위와 중노위의 판단이 엇갈렸다. 중노위는 위장폐업을 인정한 지노위 결정을 뒤집고 회사 손을 들어줬다. 경영 상의 이유로 한 폐업이라는 회사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어차피 사장은 대화가 되지 않았다. 그는 월급쟁이 사장일 뿐이었다. 계열 분리라는 말은 그저 허울에 지나지 않았다. 진짜 주인은 설 씨 일가였기 때문이다. 설범의 집과 여의도 대한방직 본사를 찾았지만 설범의 대답은 없었다. 그렇게 대답 없는 오너와 7년을 싸웠다. 함께 싸우던 동료는 생계를 찾아 흩어졌다. 강 씨도 새 일자리를 찾았다. 손에 익지 않은 일을 하다 손을 크게 다쳤다. 마비된 손을 보면 울분이 터진다. 청춘을 바쳐 일한 직장을 말 한마디로 망가뜨린 설 씨 일가는 지금도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
△ 안형열 씨는 명예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퇴직하게 해달라고 호소했지만 설범 회장은 허락하지 않았다.
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 되었던 설원식의 비서 안형열 씨는 2001년 해고당했다. 설원식 회장의 명령을 받고 하와이로 떠난 것이 무단 결근으로 처리된 것이다. 설원식 회장은 모든 책임을 지겠다며 안 씨를 하와이로 불러냈지만 정작 일이 끝났을 때는 아무 것도 책임져 주지 않았다. 설범이 장악한 대한방직은 안 씨가 전주공장 발령에 응하지 않고 무단결근을 했다며 그를 해고했다. 설범을 찾아가 명예라도 지킬 수 있게 스스로 퇴직하게 해달라 호소했지만 허락되지 않았다. 안씨가 아버지의 사람이라는 이유였다. 일생을 설 씨 일가에 바친 결과였다.
비단 안 씨 만이 아니다. 대한방직 퇴직자 모임에는 흉흉한 소식들이 들린다. 안씨의 상사로 대한방직 그룹 전체 자금을 관리하던 종합조정실 유 모 상무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세아 종금 부도 당시 그는 상임감사직을 맡고 있었다. 설씨 일가가 빠져나간 자리를 대신해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설 씨 일가의 사익추구로 벌어진 모든 불법의 책임은 그에게 돌아왔다. 유 씨는 마지막 결정을 내리기 전 장충동 설원식 자택을 찾아갔다. 도움을 달라 했지만 외면당했다. 하나 가진 반포동 아파트가 날라갈 위기에 놓이자 그는 목을 맸다. 신문에는 한줄짜리 부고가 실렸다.
어느 재벌 재산관리인의 고백, 그후
취재진은 설범 회장과 대한방직에 취재 내용을 전하고 인터뷰를 요청했다. 설범 회장은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대한방직 측은 차명자산 운용 의혹은 거짓 주장이며 설범 대표에 대한 형사 사건은 법적으로 정리가 끝난 사안이라고 답했다. 탈세 관련 의혹은 회사 차원에서 확인할 수 없는 개인 사안이라고 답했다.
지난 3월 26일 대한방직 정기주주총회에 설범 대표 해임안이 다시 상정됐지만 부결됐다. 소액주주들은 차명 주식의 의결권을 인정할 수 없다며 불복하고 있다. 안형열 씨는 소액주주들의 지지를 받아 신규 감사로 선임됐다. 취재진은 주총장에서 설범 회장을 만나기 위해 기다렸지만, 그는 의결권을 위임한 채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제작진
촬영 | 신영철, 김기철 |
편집 | 김은 |
CG | 정동우 |
디자인 | 이도현 |
출판 | 허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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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재벌 재산관리인의 고백 ② 도망친 선장 - 뉴스타파
www.youtube.com/watch?v=lWxhSaCtpXo
1997년 IMF 구제금융 위기 시절, 국민들이 장롱 속 돌반지까지 꺼내까며 금붙이를 모을 때 재벌 일가는 차명주식을 팔아 재산을 지키는데 골몰했습니다. 재벌 일가는 손해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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