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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는 그 자체로 엄청난 비극이었고, 국가 존재 이유에 대해 많은 국민이 생각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그날 대통령과 청와대 상황에 대해 세월호 7시간이란 이름으로 억측과 음모론이 지금까지 계속됐습니다. 그 이유는 정확한 사실관계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희 검찰은 당일에 청와대 상황을 최대한 객관적 자료와 핵심 관련자 진술로 확인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한동훈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 / 2018년 3월 28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검 13층 소회의실
2018년 3월, 한동훈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가 박근혜 청와대 참모들의 무능과 위법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비서실장 김기춘, 국가안보실장이던 김장수·김관진, 국가안보실 위기관리센터장 신인호 등 청와대 핵심 참모들이 대거 기소됐다. 주요 범죄 혐의는 세월호 사고 보고 시간을 조작하고,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재난 사고의 컨트롤 타워가 아니라는 지침을 불법으로 고친 것이었다.
이로부터 4년 뒤, 한동훈 차장검사는 법무부 장관으로 영전했고, 수사를 지휘했던 서울중앙지검장 윤석열은 대통령이 됐다. 그리고 군검찰에 넘겨져 재판받은 피고인 신인호 전 국가안보실 위기관리센터장도 윤 정부에서 국가안보실 2차장이라는 공직에 올랐다. 단죄받아야 할 피고인이 담당 검사와 나란히 요직에 기용된 것이다.
한동훈 검사의 발표 내용대로라면, 신인호는 법제처 검토 등 적법한 절차를 무시하고, 세월호 사고의 컨트롤 타워라고 명시된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을 불법으로 수정했다.
신인호에겐 공용서류 손상과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등의 범죄 혐의가 적용했다.
4년 전, 기소한 피고인을 국가안보실 요직으로 발탁
신인호 차장을 임명하면서 윤석열 대통령은 "대한민국 안보 환경에 적합한 정책대안 제시와 국가위기관리 역량 발휘에서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만 말했을 뿐, 피고인 신인호의 인선 배경에 별도의 설명은 없다.
신인호 2차장은 육군사관학교 42기 군인이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센터장을 지냈다. 육군교육사령부 전투발전부장을 끝으로 2020년 군에서 예편했다. 전역 후 카이스트(KAIST) 을지국방연구소장으로 있다가 지난해 윤석열 대선 캠프의 외교·안보 자문위원으로 합류하며 윤 대통령과 연을 맺었다.
현재 신인호 2차장은 2심 재판을 받고 있다. 아직은 형사 재판의 피고인 신분이다. 2018년 기소 당시, 신인호는 군인이었기에 보통군사법원에서 재판받았다. 지금까지 신인호 1차장의 형사 재판은 제대로 외부에 알려진 바가 없이, 곧바로 고위공직자로 영전했다. 그것도 국가 위기 상황 시,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중책이다. 그가 또다시 대통령 핵심 참모라는 요직을 맡아도 문제가 없는 것일까.
뉴스타파는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신인호의 범죄 행위는 과연 무엇이었는지 확인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실로부터 받은 신인호 2차장의 1심 보통군사법원 판결문, 같은 혐의로 기소돼 재판받은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의 재판 기록을 확인했다. 재판 기록에는 신인호 차장이 국가 재난의 위급한 상황에서 청와대 참모로서 어떤 업무 자세와 태도를 보여줬는지, 특히 ‘고위공직자로서의 됨됨이’는 어땠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신인호 국가안보실 2차장. 박근혜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장으로서 그는 세월호 사고 당시 청와대가 컨트롤 타워라고 명시된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을 불법 변경한 혐의로 현재 재판받고 있다.
박근혜 청와대, 세월호 책임론 모면하려고 '컨트롤타워 지침' 몰래 변경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고, 국가 재난 사고의 ‘컨트롤 타워’로서 박근혜 청와대의 무능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정부의 무능과 대통령 박근혜의 무책임함에 대한 국민적 비판이 쏟아지자,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은 어처구니없는 일을 꾸미기 시작했다. 실종자 수색 등 세월호 사고 수습에 최선을 다해야 할 바로 그 시간에 재난 사고의 컨트롤 타워가 아니라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모의’를 벌인 것이다.
당시, 여론은 청와대가 세월호와 같은 재난 사고의 컨트롤 타워로서 제 역할을 했느냐는 것이었다. 그런데 청와대는 돌연 자신들은 재난 사고의 컨트롤 타워가 아니라는 주장을 내놨다. 이후 쟁점은 컨트롤 타워가 명시돼 있는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 내용의 ‘진위 공방’으로 번졌다. 당시 청와대는 기밀이라는 이유로 지침의 공개를 거부했다.
▲ 정진후 정의당 의원: 화면 보시겠습니다. 대통령 훈령 제318호 국가위기관리 기본지침, 이것은 아직도 살아 있는 지침입니까, 아닙니까?살아 있지요? △ 김기춘 비서실장: 예.▲ 정진후 정의당 의원:살아 있으면, 첫 번째 보겠습니다. 국가안보실은 재난 분야 위기에 관한 정보, 상황의 종합 및 관리업무를 수행한다. 이 말은 모든 재난에 대해서 모든 상황을 종합하고 관리, 다시 말해서 지휘 통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틀립니까?△ 김기춘 비서실장: 글쎄요, 저는 관리가 지휘 통제라고는 제가…-국회, 세월호 국정조사 특별위원회(2014. 7. 10)
신인호, 부하 직원에게 "정식 절차 무시하고 진행하라"지시
비판이 거세지자. 박근혜 청와대는 청와대가 재난 사고의 컨트롤 타워임을 명시해놓은 위기관리지침을 몰래 바꾸기로 했다. 당시 김기춘 비서실장은 국회에서 청와대로 돌아간 뒤, 담당자를 질책하며 서둘러 지침을 바꿀 것을 지시했다.
▲ 신인호, 김관진, 김기춘 등의 재판 기록을 통해 확인한 당시 김기춘의 발언 내용.
이때, 김기춘의 질책을 받은 이가 바로 신인호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센터장이다. 위기관리센터가 대형 재난 사고의 컨트롤 타워였기 때문이다. 김기춘으로부터 질책받은 신인호는 곧바로 부하 직원 박 모 씨 등을 불러 7월 말까지, 청와대가 컨트롤 타워가 아니라는 내용으로 지침을 바꿀 것을 명령했다.
▲ 신인호, 김관진, 김기춘 등의 재판 기록을 통해 확인한 당시 신인호의 발언 내용.
당시 신인호로부터 지침의 수정 명령받은 부하 직원 박모 씨는 검찰 조사에서 “신인호가 왜 아직까지 지침을 수정하지 않았느냐고 화를 내면서 질책하였는데, 무척 서둔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특히 박 씨는 "2014년 7월 말까지 법제처 검토 등 적법한 절차에 따라 지침을 고치는 건 어렵다고 보고했지만, 그 절차는 무시했다"고 진술했다.
▲ 신인호, 김관진, 김기춘 등의 재판 기록을 통해 확인한 당시 청와대 직원 박 모 씨의 발언 내용.
이렇게 신인호의 지시에 따라, 위기관리지침은 즉석에서 볼펜으로 두 줄로 밑줄이 그어지며 임의로 수정됐다. 그러나 위기관리지침은 대통령 훈령이기에 개정 절차가 매우 까다롭다. 먼저 법제처에 개정 심사를 요청해 심의 필증을 받고, 대통령의 재가를 얻어 일선 부처에 배포해야 개정의 효력이 생긴다. 그런데 청와대와 신인호는 이런 법적 절차를 무시한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 국가안보실 위기관리센터장인 신인호가 비서실장 김기춘의 지시를 받아 필사적으로 수정하려 한 지침의 내용은 뭘까?
신인호 등은 지침 3조와 18조 등 열네 곳을 수정했다. 2018년 검찰이 공개한 변경된 지침 내용을 보면, 먼저 지침 제3조 국가안보실이 ‘위기관리를 위한 전략 커뮤니케이션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한다’를 지우고, ‘대통령의 안정적 국정 수행을 보좌한다’로 수정했다. 박근혜 청와대에 가장 민감했던 단어인 ‘컨트롤 타워’라는 말을 삭제한 것이다.
또 지침 제18조도 바꿨는데, “국가안보실장이 맡고 있던 안보, 재난 분야의 역할을”이라는 문구를 “국가안보실장은 안보 분야, 안전행정부 장관은 재난 분야”로, 각각 역할을 나눈다는 내용으로 바꿔놨다.
그러니까 청와대는 안보 분야만 책임지고, 재난 사고는 안전행정부 장관이 책임지게끔 고친 것이다. 청와대가 더 이상 재난 사고의 컨트롤 타워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억지로 지침을 바꾼 것이다.
▲ 신인호의 지시로 수정된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 두 줄로 그어져 볼펜으로 수정됐다. 가장 민감한 단어 컨트롤타워라는 표현을 지워버렸다.
이렇게 신인호 등 청와대 참모들은 필사적으로 ‘주군’인 대통령 박근혜에게 쏟아지는 비판을 막으려 했지만, 결국 박근혜는 탄핵당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에야 청와대 캐비닛 한쪽에서 신인호 등이 불법으로 변경한 지침이 발견됐다. 청와대는 이 불법 개정된 문서를 찾아 관련자들을 검찰에 고발했다.
그리고 2018년 3월, 윤석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은 김관진 당시 국가안보실장, 위기관리센터장 신인호를 공용서류 손상과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로 기소해 군검찰에 넘기게 된다.
1심 군사법원 "절차 중요성 간과, 경솔한 판단"...그러나 '위법성' 몰라 무죄 선고
1년 6개월 뒤, 2019년 10월. 보통군사법원(2018고20)은 지침의 수정 지시와 관련해 피고인 신인호에게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피고인이 대통령 훈령 개정에 있어 절차의 중요성을 간과하거나 군에서 사용하는 비문 등을 수정하는 방식으로 위기관리지침의 수정이 가능하다는 등의 막연한 생각으로 경솔히 판단하여 부하 박 씨에게 지침 원본에 삭선하고(지우고) 가필하는 방식으로 수정할 것으로 지시하여 지침의 내용과 지침 원본의 기재가 달라져 원본의 효용을 해한 결과를 가지고 온 것은 사실로 보인다.-국방부 보통군사법원(2018고20), 2019. 10. 4
그러나 재판부는 “지침 수정하는 행위가 위법한 것으로 인식했거나 수정된 이후 원본의 기재가 달라져 원본이 손상되거나 문서의 효용을 해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가졌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니까. 재판부는 당시 신인호가 절차를 무시하고 지침을 고친 건 엄연한 사실이지만, 그게 불법이라는 인식이 없었기에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결국 재판부는 공용서류 손상과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라는 형법에 따라 유·무죄를 가렸을 뿐, 왜 그때 신인호 등이 필사적으로 지침을 고치려 했는지, 그들의 ‘범행 동기’와 ‘범행 목적’에 대해서는 별도의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군검찰의 항소로 고등군사법원에서 재판받던 신인호는 재판 도중 예편으로 민간인이 되었고, 현재 수원지방법원에서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신인호가 지침을 불법 개정한 이유는 오직 '박근혜 보호'
법원의 최종 판단이 어떻든, 신인호가 세월호 사고 수습에 최선을 다해야 할 시간에 김기춘의 지시를 받고 대통령 훈령인 위기관리지침을 바꾼 이유는 단 하나다. 세월호 참사의 초기 대응을 제대로 못 했다며 박근혜에게 쏟아지는 국민적 비판에 대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막아내기 위함이었다. 세월호 사고 수습을 잘하기 위함이 결코 아니었다.
결국, 당시 신인호에게는 오직 ‘주군’인 박근혜의 안위만 생각했고, 정작 중요한 국민의 안전과 유가족의 슬픔은 뒷전이었다는 이야기다. 과연 이런 자세가 고위 공직자로서 바람직한 임무 태도인지, 우리 사회는 미처 따져 묻기 전에 신인호는 또다시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라는 중책을 맡았다. 국가 재난이 발생했을 때, 신인호는 과연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가.
뉴스타파는 오직 세월호 사고의 박근혜 책임을 면피하기 위해 대통령 훈령을 불법으로 고친 인사가 국가안보를 책임질 자격을 갖춘 인물인지, 신인호의 발탁이 윤석열 정부가 강조하는 ‘상식’에 맞는 인사인지, 대통령실 대변인에게 거듭 질의했지만, 지금까지(5월 19일) 답변은 오지 않고 있다.
제작진
취재 | 강민수 임선응 |
편집 | 정애주 |
CG | 정동우 |
디자인 | 이도현 |
취재협업 | 기동민 의원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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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국가안보 악영향' 유죄 피고인을 국가안보실 1차장 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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