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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유해용 구속영장 기각…‘사법농단 구속 1호’ 결국 불발

천사요정 2018. 9. 21. 08:28

“증거인멸 염려 없고 변호사법 위반 혐의는 다툼 여지”

유해용 변호사. <한겨레> 자료사진

유해용 변호사. <한겨레> 자료사진


법원 퇴직 당시 대법원 재판서류 수만 건을 유출하고, 이후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이를 파기한 유해용 변호사(전 대법원 수석·선임재판연구관)의 구속영장을 법원이 기각했다. 압수수색영장이 거듭 기각된 데 이어 사법농단 수사 석 달 만에 검찰이 처음 청구한 구속영장마저 기각된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허경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0일 유 변호사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 뒤 이날 밤 10시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법원은 그동안 구속영장을 기각하며 짧은 몇 문장을 그 사유로 공개했지만, 이번엔 이례적으로 원고지 18매, 3600여자 분량으로 장문의 사유를 제시했다.


먼저 법원은 유 변호사가 2016년 재판연구관을 시켜 박근혜 전 대통령 측근 박채윤씨 대법원 사건 진행 상황과 향후 심리방향 등을 담은 문건을 작성하게 하고,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통해 청와대에 전달했다는 혐의(공무상 비밀누설)에 대해 해당 문건이 ‘공무상 비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허 판사는 “해당 문건에는 당해 사건과 그 관련 사건의 진행경과나 상고사건의 통상적인 처리절차 등의 일반적 사항 외에 구체적 검토보고 내용과 같이 비밀유지가 필요한 사항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또 “유 변호사가 (해당 사건 당사자가) ‘비선실세’로서 전직 대통령의 미용성형시술을 해주던 사람의 회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볼 자료가 없다”며 재판연구관에게 ‘부당한’ 목적으로 문건 작성을 지시(직권남용)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유 변호사가 2014~16년 재판연구관실 업무를 총괄하는 수석·선임재판연구관으로 있으며 확보한 재판 관련 문건 등 수만 건을 지난 1월 퇴직 시 유출했다는 혐의(공공기록물관리법 위반)도 인정하지 않았다. 허 판사는 해당 문건이 (공공기록물에 해당하는) ‘전자기록물 원본’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또 해당 문건을 확보할 당시 ‘개인적 목적’에 사용할 의도가 없었다고도 덧붙였다. 관련해 재판연구관 보고서 등을 출력물 형태로 반출한 혐의(절도)에 대해서는 “유 변호사에게 절취의 의도가 없었고, 대법원의 ‘추정적 승낙’이 없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연구관 보고서에 포함된 개인정보를 유출했다는 혐의 역시 “문건에는 당사자의 성명 외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아무런 정보가 없다. 범죄의 성립 여부에 의문이 있다”고 봤다.

이어 대법원 근무시 취급한 행정소송을 퇴임 뒤 수임했다는 혐의(변호사법 위반)에 대해서는 “법리상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했다. ‘죄가 안 된다’고 단정한 다른 혐의와 달리 혐의가 일부 소명됐다고 본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미 증거가 수집돼 있다”, “법정형(최대 징역 1년)에 비춰 구속의 사유나 필요성 등이 인정되지 않는다” 등 이유로 ‘구속 사유’로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특히 법원은 유 변호사가 최근 ‘친정’인 법원이 압수수색영장을 기각한 틈을 타 문건을 모두 없애버린 부분에 대해서도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법원 판단에 따라 파기했다”는 유 변호사 진술을 받아들여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볼 수 없다”고 봤다.

검찰은 '기각을 위한 기각사유'라며 반발했다.


검찰은 “그간 영장판사는 재판 관련 자료에 대해 '재판의 본질'이므로 압수수색조차 할 수 없는 기밀 자료라고 하면서 압수수색영장을 기각해 왔는데, 오늘은 똑같은 재판 관련 자료를 두고 비밀이 아니니 빼내도 죄가 안된다고 하면서 구속영장을 기각하는 모순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유 변호사가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대담한 방식으로 공개적으로 증거인멸을 하고, 이에 대해 일말의 반성조차 없었던 그간의 경과를 전국민이 지켜본 바 있다”며 “이런 피의자에 대하여 '증거인멸의 염려가 없다'고 명시하면서 구속영장을 기각한 것은, 사법농단 사건에 있어서는 이런 공개적, 고의적 증거인멸 행위를 해도 구속되지 않을 것이라는 잘못된 메시지를 주는 것으로서 대단히 부당하다”고 했다.


앞서 세 차례에 걸친 유 변호사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대부분 기각한 법원은, 이번에도 ‘구속의 필요성이 없다’고 봤다.


서울중앙지법 영장판사들이 사법농단에 연루된 전·현직 법관들의 압수수색영장을 깐깐하게 심사해온 경향에 비춰볼 때, 법조계 일부에선 유 변호사 구속영장 기각이 ‘예정된 수순’이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앞서 법원은 유 변호사의 압수수색영장을 기각하며 “죄가 되지 않는다”며 ‘무죄’ 예단을 구체적으로 내비쳤다. 법원이 압수수색영장을 기각한 직후 유 변호사는 ‘죄가 안 된다’는 법원의 영장 기각 사유를 빌미로 문건 수만 건을 모조리 파기했다. 이 때문에 법원은 유 변호사에게 증거인멸 명분과 시간을 벌어줬다는 비판을 동시에 받았다.


현소은 기자 soni@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63074.html?_fr=mt2#csidx5e11d6bd0b4bf8f9db704afd75365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