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밝혀진다/이명박근혜황교안

현직판사의 못다한 이야기 "사법농단은 위헌... 왜곡,축소 막아야 한다"

천사요정 2018. 9. 28. 06:05

이번 일은 사법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문제에요. 이번 일이 축소·왜곡·은폐되면 국민들은 자기 재판을 하는 법원이 어떤 식으로 운영되고 있었고, 그게 나의 재판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었는가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넘어가게 되거든요. 그런 것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류영재 춘천지방법원 판사


날개 없는 추락이었다. 사상 초유의 사법농단 사태로 사법 신뢰는 회복 불능의 기로에 섰다. 최근 김명수 대법원장이 사법농단 사태의 근원으로 지목된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수평적인 법원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여전히 의구심을 던지는 이들이 적지 않다.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지만 잇따라 영장이 기각되고 있다. 비판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최악의 사법농단에 철저한 진상규명과 함께 책임자 처벌은 가능할까. 나아가 사법 개혁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임용 8년 차, 류영재 춘천지방법원 판사는 “이제는 고난의 행군을 해야 될 시기”라고 말한다.


그는 “이번 사태는 엄청난 거악(세력)이 저지른 게 아니다. 수많은 구조적 문제를 인식하면서도 이를 해결하지 않은 법원 탓”이라며 내부 자정을 촉구했다.

반성 없는 사법부를 향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판사의 고뇌와 격정, 그리고 통렬한 반성. 지난 8월 13일 방송한  [민국100년 특별기획 2부] ‘사법부, 법복 입은 관료가 되다’편에 담지 못한 류영재 판사의 이야기를 정리해 공개한다.





Q. 공개적으로 용기를 낸 이유는


법원에 있었을 때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국정원의 판사 사상 면접 사건이다.

그때 개인적으로 굉장히 심각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이걸 어떻게든 공식적으로, 공개적으로 문제 해결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당시에 사법행정라인의 통제가 강화되고 있을 때였다.

그렇게 상황이 조용히 종결됐다.


국정원이 판사가 되려는 사람의 사상 면접을 본다는 건 삼권분립 차원에서 굉장히 심각한 문제다.

그때 느꼈던 게, ‘역사가 이런 일이 발생했는데 법원이 너무 조용했다’ 그렇게 기록을 하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굉장히 후회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사법부에 심각한 반헌법적인 행위가 일어났을 때 거기에 대해 자정의 의지와 노력을 보여줘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번 일은 사법부, 법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민의 문제다.

이번 일이 축소되거나 은폐되거나 왜곡되면 국민들은 자기 재판을 하는 법원이 어떤 식으로 운영이 되고 있었고, 그게 나의 재판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넘어가게 된다.


그건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특히 일부 언론이 이번 사안을 축소하거나 은폐하지 않도록 직접 국민들한테 이번 사안을 공개하고 알려야 된다고 생각했다.


Q 사법농단 사태, 형사처벌은 가능한가?


판사를 사찰하거나, 재판의 독립을 위한 사법행정구조를 수립하려는 걸 차단하거나, 직간접적으로 재판을 통제하려고 시도하고, 선고 기일을 늦추는 등 재판 절차를 살짝 건드리고. 이 모든 것들이 사법 작용을 방해하고 법관 독립을 침해하는 행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정확하게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은 없다.

입법자들이 상상을 못한 게 아닌가 싶다.

그만큼 이번 일은 상상을 초월하는 거다.

검찰이 모든 걸 밝혔음에도 처벌이 어려울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만약 형사처벌을 못 하게 되면 이것이 정당하냐? 아무 문제 없는 것인가? 아니다.


국회의원들과 접촉한 것, 청와대랑 재판에 대해 상의한 것 이런 모든 것들이 굉장히 위헌적이다.


 삼권분립에 반하고, 재판의 독립에도 반하고, 법관의 독립에도 반한다.


이 사태의 결말이 무죄로 나든 불기소로 나든 유죄로 나든 그거랑 상관이 없이 이 자체가 얼마나 헌법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우리 사회가 그걸 정확히 규정하는 게 더 필요하다고 본다.


Q. 법관들의 관료화를 어떻게 보나?


양승태 대법원장 때 사법관료화가 정말 심해졌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튀는 판결 하지 말라’는 말을 많이 했다.


물론 판사가 법리, 사실관계 무시하거나 절차를 위반하는 건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면 ‘튀는 판결’이란 말은 성립할 수 없다.

누군가한테 튀는 판결이지만 누군가한텐 튀는 판결이 아닐 수 있다.

당대에는 튀는 판결이지만 5년 10년이 지나면 그게 맞았다라고 판례 변경이 일어날 수도 있다.

어떤 판결을 ‘튀는 판결’이다 규정 짓는 것 자체가 재판 독립의 측면에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말을 공공연하게 할 수 있을 정도로 전 대법원장 시절에 통제가 공공연해졌다.


코트넷(법원 전산망)에 글 올리는 것에 대해서 징계를 하는 것도 처음 봤다.


그러면서 판사들이 코트넷에 의견도 올리지도 못 하고. 그런 말도 많이 했다. ‘코트넷에 의견 올리면 언론에 악용된다, 언론에 악용되면 사법 신뢰가 망가진다.’ 이런 식의 논리를 많이 폈다. 그런 식으로 계속 통제가 들어갔다.

이런 식으로 대법원장의 통제가 가능하니까 정권이랑 거래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지는 거다.



Q. 법원 내부 분위기는 어떤가?


최근(2018년 7월) 보도를 보고 실제로 울었다는 판사들이 많았다.

정말 참담하고. 이제는 뭔가 너무 무너질 때까지 무너져서 이걸 어떻게 국민들에게 믿어달라고 해야 될지 방법도 보이지 않고… 사실 사법독립은 87년도에 법관이 쟁취한 게 아니다.


법관은 피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사실은 적극적으로 부역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이 87년도에 독재를 끝내면서 더 이상 부역하지 말라고, 사법부 독립시키자고 하면서 준 거다.


법관들은 하나도 고생하지 않고 받았다.

그런데 이 의미를 깨닫고 ‘사법 독립을 목숨 바쳐 지키자’라고 한 게 아니라, ‘사법부를 조직화 시켜서 이걸 가지고 다른 조직이랑 협상하자’ 이렇게 해버린 거다.


정권이 우리한테 고문하지 않아도, 인사권을 건드리지 않아도 우리 스스로가 사법 독립을 팔아 먹었다.

여기에 관여하지 않은, 전혀 몰랐던 판사들도 이제는 왜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사법부 내부에서 견제역할을 하지 못했는가에 대해 참담함을 느끼고 있다.


Q. 법원행정처는 어떤 곳인가?


2년 차 때 법원행정처를 처음 알았다.

부장판사라는 직급은 15년 이상 근무하면, 연수 채우면 다는 건데 고등 부장은 정말 선발이다. 그런데 동료 판사들이 누가 고등부장이 될지 다 알고 있었다. ‘그걸 어떻게 아냐’ 그랬더니 경력을 보더라. 판사로서 어떤 경력을 거쳤는가.

그 중에 빠지지 않는 게 법원행정처 경력이었다.

적지 않은 판사들이 법원행정처에 가면 다들 축하를 한다.

왜 훌륭한 인재들을 그렇게 쓰는지 잘 모르겠다.


Q. 재판을 하지 않는 판사(법원행정처)가 권력을 쥔 상황, 어떤 문제가 있나?


재량권이 심해졌다. 일단 인사를 쥐고 있으니까. 고등부장 승진한 분들은 다 행정처 라인이거나 친하거나 인연이 있는 분들이 많았다.

특히 법원장이 더 심했다.

법원장은 대부분 고등부장 중에서 연수 채우신 분들이 가니까. 또 지금까지 법원장이 각 법원의 사무분담을 전담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일이 생기느냐. 사회에서 큰 영향을 미치는 재판들이 있다.

예컨대 작년 국정농단사건, 재벌사건 등. 사무분담을 중앙법원장이나 수석부장이 전적으로 정한다. 이번 문건에 드러났듯 이런 부분들이 법원행정처와 협의가 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한마디로 ‘그런 중요한 사건을 어떤 판사에게 맡겨야 된다’라는 알 수 없는 기조가 정해지는 거다.  


판사들 사이에 그런 농담이 있다. ‘야 너 그 재판하면 그 재판 그렇게 하면 앞으로 형사 재판 못 한다.’ 이런 농담이 왜 생기겠느냐. 재판 결과에 따라서 내가 어떤 재판에서 배제될지에 대한 불안감이 작용하는 거다.

이런 식이면 나중에 판사가 독립돼서 재판을 하는 게 아니라 대법원의 태도, 지향점 등을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1

00%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독립된 재판을 할 때 부담감이 훨씬 커지는 거다.


이번 일은 어떤 엄청난 거악이 나타나서 저지른 일이 아니다. 수많은 구조적인 문제점을 우리 법원이 인식하면서도 계속 끌고 온 탓이다.

 개혁을 할 때 거악인 판사들을 내치자라는 건 방법이 될 수 없다.

이번 사태가 왜 일어나게 됐고, 법원의 특징이 어떤지, 이런 것들을 우리 사회가 더 심층적으로 이해해보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


나는 그렇게 정의로운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고 판사로서 소명의식이 투철하거나 엄청 뛰어난 판사도 아니다. 그냥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다. 이번 사태의 경우 다른 측면에서 정말 많은 판사님들이 자기 역할을 하셨고, 그래서 나 또한 그나마 여기까지 온 거다.


더 많은 판사님들이 이 일을 묵과하지 않고 있다. 그분들 또한 답답해 하고 있다.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니까. 그런 측면도 조금 생각해주시면 정말 감사할 것 같다.


Q. 사법부의 존재 이유는 뭔가?


아주 기본적으로는 법치주의의 실현이다. 법치주의를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는 게, 법이 십계명처럼 있고, 그 아래있는 국민들이 그 법을 다 지켜야 된다라고 생각한다. 그런 건 법치주의가 아니다. 법치주의는 인치주의의 반대말이다. 사람으로 인해서 다스려지던 것들을 법에 의해 다스려지게 룰을 정한 것이다. 거기서 법 앞에서의 평등이 나온다. 우리 사회가 법치주의를 포기하지 않는 한 그 역할을 공평 부담하게 해주는 어떤 기관이 필요하다. 그게 법원이다. 그렇기 때문에 법원이 스스로 법 앞에 누군가를 더 높이거나 더 낮추면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법원 자체가 법이 되어서도 안 된다.


거기에 더해서 우리나라 헌법이 왜 법원을 선출하지 않았느냐. ‘법관도 4년마다 한 번씩 선거로 뽑으면 안 되냐’라고 하는데, 사실 우리 헌법이 그렇게 하지 않은 건 이런 거다.

옛날에 나치 정권이 독재를 하기 전에 독일은 다수의 국민이 지지하는, 민주적인 방법으로 성립된 정권이었다.

나치의 유대인 배제 정책도 독일 다수 국민들의 호응을 얻었다.

당시 독일의 유명했던 철학자나 법학자들이 다 거기에 동조를 했다.

그때 만약 법원이 나치의 홀로코스트 정책에 대해 위법하거나 위헌이라고 평가를 내렸으면 그렇게 쉽게 홀로코스트 정책이 실행되지는 못했을 거다.


여기서 얻은 교훈은 ‘법은 다수의 의사에도 독립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수의 의사로만 모든 걸 결정한다면 그때 소외되는 소수가 어떤 탄압을 받더라도 지켜줄 수 있는 기관이 없다.

우리의 헌법은 그런 소수의 기본권을 지켜주고 있다.


다수가 소수의 기본권을 부당하게 탄압하거나 차별할 때 헌법 정신을 구현해서 이 사람들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차별을 시정해 줄 수 있는 걸 누가 하느냐, 그것도 법원이 해야 된다는 거다. 그래서 다수로부터 분리되어야 한다라는 철학이 있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법원이 선출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헌법상 사법권을 받는 게 정당화되는 거다. 그런데


법원 스스로 그 책무를 망각하고 오히려 다수의 권력의 최정점인 정권과 같이 가보려 한 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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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연출 문준영, 박정남
촬영 최형석, 오준식
편집 윤석민
CG  정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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