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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일자리? 공부 못해 그런 곳 갔다”는 교장선생님

천사요정 2017. 12. 1. 12:51

김영훈기자

김영훈 기자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위험한 일자리요? 공부를 못 해서 그런 데 간 거죠. 우리 학교엔 중학교 때 좋은 성적 받은 학생들이 옵니다. 실력있는 애들이 오니까, 그런 일자리 안 가요. 신입생 모집 기간에 이런 일이 터져서 학생 모집이 안 될까 걱정이네요.”(서울의 한 공업고 교장)


귀를 의심했습니다. 특성화고 학생들이 현장실습을 나가 죽거나 다치는 일이 일어나서 안타깝다는 기자의 말에 서울의 한 공업고 교장은 저런 답변을 했습니다. 아동 노동이 성행했던 19세기 산업혁명 시기 영국도 아닌데, 21세기 한국에서는 10대 청소년이 공장에서 일하다 손가락이 잘리고 발가락이 잘립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이 일을 바라보는 학교의 인식입니다. 어쩌다 사고를 겪은 학생의 불운으로 여기거나, 좋은 일자리 경쟁에서 승리하지 못한 학생의 책임으로 돌립니다. 특성화고의 선호도가 떨어지는 일을 학생들의 안전이나 인권보다 더 걱정했습니다.


저는 교육 현장을 취재하는 김미향입니다. 기자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직업이라고 하던데, 실제로는 별로 그렇지 못 했습니다. 1년8개월 동안 교육 분야를 취재하면서 직업 교육을 선택한 사람들, 쉽게 말해 특성화고를 나오거나 전문 대학을 나온 사람들을 만나볼 기회는 많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100명 중 69명이 대학에 갔다고 하던데, 그럼 대학에 가지 않은 그 많던 31명은 다 어디로 간 걸까요. 대학 대신 일찍 취업을 선택한 이들이 젊은 시절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어려움에 직면하는지 알기가 어려웠습니다.


취업을 택한 특성화고 학생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악한 일자리에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특성화고를 졸업하고 취업 대신 대학 진학을 선택했다는 한 학생은 “고졸에게 제일 좋은 일자리라고 하는 은행에 취직했었어요. 그런데 막상 가보니 대졸은 첫 월급으로 160만원인데, 고졸은 115만원이었습니다.


무기계약직이었는데, 평생 일하며 정규직 시험을 계속 봐야해 그냥 대학에 진학하는 길을 택했어요”라고 했습니다. 공업고를 졸업한 22살 청년은 “특성화고 학생들이 취업하면 솔직히 고졸이라고 무시 당하고, 급여도 짜고, 여러모로 힘들다. 기업에서 취직할 때 ‘대학도 안 나온 너희에게 뭘 보고 일자리를 줘’라는 질문에 할 말이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36년째 특성화고에 근무한다는 서울의 한 특성화고 진로상담부장은 “고3 애들 취업시킬 때 참 마음이 아프다. 우리 나라 기업 여건이 좋지 않다보니, 괜찮은 일자리에 취업하는 애들은 극소수고 대부분 통과의례로 현장실습을 나갔다가 최저임금 겨우 맞춰주는 곳에 취업한다”고 털어놓더군요.


저성장 시대의 고질적 취업난 속에서 10대 현장실습생에게 남겨진 일자리는 저임금의 질 낮은 일자리가 대부분인데도, 사람들은 나쁜 일자리에 내몰린 학생들을 학습 경쟁에서 밀린 낙오자로 낙인 찍습니다.


중2 때 담임 선생님은 사회 교과서에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등장하자 “너희들 공부 안 하면 나중에 이런 곳 간다” 따위의 말을 내뱉곤 했습니다. 아직도 이런 말을 서슴지 않고 자녀들에게 하는 부모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지옥같은 ‘헬조선’에서 열악한 일자리라도 선택할 수밖에 없는 특성화고 10대들은 어떤 이들일까요. 집안 형편이 어려워 빠른 취업을 택해야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교육부의 ‘2016년 교육급여 수급 고교생 현황’을 보면, 부모님의 소득이 중위소득 50% 이하인 학생에게 국가가 수업료 등을 면제해주는 교육급여 수급자는 학교유형별로 갈립니다. 과학고·외고 같은 특수목적고에선 5%, 수업료가 일반고의 세 배가 비싼 자율형사립고에선 5%가 교육급여 수급자인데, 직업교육 중심의 특성화고에선 18%가 교육급여를 받습니다.


10대 현장실습생이 사고를 당한 이유를 ‘공부를 못해서’라고 한 교장선생님의 말은 거짓말입니다. 10대 실습생에게 최소한의 안전도 인권도 보장해주지 못한 우리 사회의 법과 제도 탓이고, 사람 귀한 줄 모르고 질 낮은 일자리가 만연한 기업의 천민 자본주의 탓입니다. 가난한 집에 태어나서, 대학 대신 취업을 선택한 뒤, 질 낮은 일자리로 내몰리는 헬조선의 흙수저들, 이들을 언제까지 개인 탓으로 돌려야 하나요.

1일 김상곤 사회부총리는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 “조기취업 형태의 현장실습을 내년부터 전면 폐지한다”고 밝혔습니다. 학생을 노동력 제공 수단으로 활용하는 조기 취업 형태는 이제 금지되고 학습 중심의 현장실습만 가능합니다. 앞서, 현장실습 기간도 현재 6개월에서 1개월로 줄이기로 8월 발표했습니다.


이 시점에서 문득, 현장실습 기간을 줄이면 특성화고 정체성이 사라지고 존립이 흔들린다며 지난 9월 반대 성명서를 낸 서울특성화고 교장회가 떠오릅니다. 아이들이 죽고 다치는데, 특성화고 교장선생님들은 이번에도 반대하고 나설까요. 위험한 일자리에서 사고를 당한 건 질 낮은 일자리에 간 개인 탓이고, 실습생에게 벌어진 안전사고 보다 학생 모집을 걱정하던 교장선생님이 답할 차례입니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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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821623.html?_fr=st1#csidx010a366c68cae6c86f661f0e09dc6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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