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칼럼] ‘사유화’ 멍에 벗고 자주적 민영방송으로 다시 태어나야
최근 공영방송인 KBS와 MBC는 ‘태풍의 눈’이 되어 있다. KBS의 양대 노조인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새노조)가 오는 9월4일, KBS노동조합(구노조)이 사흘 뒤인 7일부터 총파업을 시작하기로 결정했고, 언론노조 MBC본부도 총파업 찬반투표에서 93.2%라는 압도적 지지를 받아 9월 초에 ‘공범자들’을 추방하기 위한 결전에 들어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 말기인 2012년 두 방송사의 언론노동자들이 ‘청와대 낙하산 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최장 170일(MBC) 동안 진행한 파업은 ‘주류’를 자처하는 보수언론의 철저한 외면 속에 ‘패배’로 끝났다. 그러나 촛불혁명의 소산으로 문재인 정부가 탄생한 뒤 한국사회 각 분야에서 적폐청산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반동의 교두보’로 남아 있는 MBC와 KBS의 경영진은 2012년과 달리 여러 매체들이 두 방송사 노조의 치열한 투쟁을 적극적으로 보도하고 있기 때문에 언제 가라앉을지 모르는 배 안에서 사면초가가 되어 있다.
KBS와 MBC가 많은 국민과 언론의 눈길을 끌고 있는 최근 상황에서, 같은 지상파 방송사인 SBS는 사각지대로 남아 있었다. 대중의 관심에서 아예 벗어났거나 ‘SBS는 두 공영방송사보다는 그래도 낫겠지’ 하는 막연한 평가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언론노조 SBS본부가 8월29일자로 펴낸 ‘SBS 노보’ 제251호를 보면 그 방송사는 MBC와 KBS에 못지 않은 적폐를 안고 있음을 여실히 알 수 있다. 노보의 머리기사 제목은 ‘방송사유화진상조시특별위원회 출범! / 방송 사유화 근절! SBS 정상화의 첫 발!’이다. 먼저 기사의 핵심적 내용을 보기로 하자.
▲ SBS 사옥. |
“민생을 파탄내고 국정을 농단했던 도적떼들의 집권 기간 SBS는 전 방송사를 통틀어 가장 많은 6명의 청와대 실장과 수석을 배출하며 ‘청와대 인력 파견업체’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이들이 방송언론을 초토화시켜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린 암흑의 세월 동안 우리는 ‘그나마 SBS’라는 얄궂은 세평을 마치 SBS에 대한 절대적 신뢰인양 자위해 왔다. 겉으로는 중심을 잡는 척 했지만 결정적 순간마다 국정농단 세력을 지원하는 방송과 보도로 권력에 아부하여 왔으며, 대주주는 사적 이익을 위해 방송을 사유재산처럼 농단하며 사회적 신뢰와 방송 공공성을 근본부터 훼손해 왔다.”
사유화가 빚어낸 참담한 결과를 SBS 언론노동자들은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지난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전모가 드러나면서 SBS에 대한 국민적 신뢰는 끝 모르게 추락해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일례로 지난 8월16일 기자협회보가 언론인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영향력에서 JTBC의 10분의 1 정도인 2.7%라는 초라한 수치로 5위를 기록했던 SBS는 신뢰도 조사에서 아예 기타로 분류돼 브랜드마저 도표에서 사라져 버렸다. 무너질 대로 무너진 MBC보다 뒤처진 수치이다.”
‘SBS 노보’에는 사유화의 실상과 적폐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기사가 실려 있다. 박수택 환경전문기자가 SBS 지주회사인 윤세영 회장에게 불려가 이명박 전 대통령의 4대강사업에 대한 ‘보도지침’을 받은 뒤에도 끝내 자유언론의 바른 길을 걷다가 보복인사를 당했다는 내용이다.
▲ 박수택 SBS 환경전문기자. 지난 1월27일 SBS보도화면 갈무리 |
박수택 기자는 2009년 6월 초, 회장 비서실로부터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빨리 회사로 들어오라는 연락을 받고 서울 양천구 목동 사옥 20층의 회장실로 가 윤세영 회장과 마주 앉았다. 윤회장은 4대강 보 건설에 따른 수질 오염과 관련해 “물이 부패할 가능성이 있다고 얘기할 수 있지만, 내가 볼 때는 밑의 모래를 더 준설해서…”라는 이 전 대통령의 ‘지론’을 그대로 주장했다. 대화 말미에 윤 회장은 이렇게 ‘지시’했다. “박 부장에게, ‘믿고’ 내 생각을 이야기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리포트를 봤는데, 보를 쌓으면 수질이 망가진다, 좀 더 따져보고, 나한테 보고해 주고.” SBS의 실질적 총수가 현장 기자에게 직접 ‘보도지침’을 내린 셈이다. 그 뒤 박 기자가 4대강사업에 대해 비판적인 심층보도를 계속하자 SBS는 2009년 12월에 느닷없이 그를 논설위원실로 강제 발령했다. SBS노조는 그 뒤 윤 회장이 지배주주인 태영건설이 어떻게 4대강사업에 참여하게 되었는지를 ‘노보’ 기사(‘방송 사유화… 궁금한 이야기 / WHY’)를 통해 밝혔다.
“노동조합은 최근 국회 최인호 의원실의 협조로 건설업체들의 관급 공사 수주 내역을 확보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윤 회장이 박 기자에게 보도통제 압력을 가한 이후 넉 달 여 만인 2009년 10월 낙동강 22공구 달성-고령 지구를 시작으로 모두 5곳에서 4대강 관련 공사를 수주한다. 공사금액은 1천억 원대를 훌쩍 넘는다. 이뿐 아니라 태영건설은 4대강 연계 공사인 공업용 둑 높이기 공사 수주 과정에서 한화건설과 입찰가격을 475억 원으로 담합한 혐의가 적발돼 지난해 초 담당 임원이 벌금형을 선고받기까지 했다.”
이 사례는 특정 가문이 방송사를 사유하고 권력으로부터 특혜를 받아 치부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경향신문 8월30일자 기사를 보면, 윤 회장 측은 ‘취재수첩’을 근거로 한 박수택의 고발에 대해 “지금 단계에선 특별히 할 이야기가 없다”고 밝혔다고 한다
▲ 2006년 11월1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반도 대운하 국운 융성의 길’ 학술심포지엄에 참석한 이명박 전 대통령이 ‘한반도대운하 국운융성의 길’이라고 적힌 플래카드 옆을 지나고 있다. ⓒ 연합뉴스 |
노태우 정권 시기인 1991년 12월9일 개국한 SBS TV는 설립 이전부터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신문사가 방송을 겸영할 수 없도록 규정한 당시 방송법 때문에 중앙일보나 동아일보처럼 큰 언론사 또는 막강한 재벌이 두 손을 놓고 있는 틈에 태영건설이라는 기업체가 TV와 라디오 방송사 설립권을 어부지리로 따냈다는 것이다. 특히 3당 합당 이후 기세가 등등하던 노태우 정부의 공보처 장관 최 아무개가 윤세영 회장의 같은 대학 한 해 후배이자 ‘절친’으로서 방송 허가 주무부서의 전권을 행사했다는 것이 정설로 되어 있다. SBS는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급속히 팽창한 컬러TV 광고 덕분에 짧은 기간에 ‘돈방석’에 앉아 자산을 기하급수적으로 불려 나갈 수 있었다.
SBS가 모기업인 태영건설의 지배를 받으면서 그 밑에 수직적 구조의 계열사들을 거느리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지자, 노무현 정부 말기인 2007년 2월 방송위원회(방송통신위원회의 전신)는 지주회사인 SBS미디어홀딩스를 설립하도록 승인했다. 지주회사가 SBS와 계열사들의 지분을 수평적으로 소유하는 구조가 된 것이다. 당시 SBS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로 경영 투명성을 확보하고, 방송과 관련 없는 계열사들을 분리해 양질의 콘텐츠 제작에 전념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10년 넘게 지난 현재 SBS가 지주회사 회장인 윤세영 회장과 그의 장남인 윤석민 부회장의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사유화되어 공정방송·자유언론과는 정반대 길로 치닫고 있다는 사실을 그 일가는 어떻게 부정할 수 있겠는가?
SBS가 사유화의 멍에를 벗어나 자주적 민영방송으로 태어나려면 윤세영 일가의 지배체제를 혁파해야 한다. 방통위는 KBS·MBC·SBS 등 147개 방송사업자를 대상으로 지난 6월 30일부터 재허가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오는 11월에는 ‘재허가 의결 및 방송사업자 재허가 심사결과’가 통보된다. 사유화의 적폐가 가장 심각한 SBS는 국민주와 사원주 형식으로 주식을 골고루 분산해 건전한 민영화를 이루겠다는 약속을 공개적으로 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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