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 이해상충 비판 피할 수 없어…안일한 민주당 대처 문제
‘투기 의혹’이 삼켜버린 쟁점들…SBS 보도 관련 아쉬움도 지적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목포 근대역사문화거리 일대에 사들인 건물을 둘러싼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언론이 지목한 손 의원 관련 건물은 지난 15일 SBS 최초 보도 당시 9채에서 나흘 만에 최소 20채로 늘어났다. 사안을 바라보는 관점은 다양하다. 손 의원이 매입한 건물은 몇 채인가, 투기인가, 투기가 맞다면 혹은 아니라면 무슨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부동산 매입 의도에 대한 판단을 지우고 보면 문제는 오히려 단순하다. 손 의원은 2017년부터 2018년 사이 낙후된 목포 구도심 건물 중 보존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건물을 가족이나 지인을 통해 매입했다. 손 의원의 배우자 재단 명의, 친척, 보좌관 및 그 가족 명의로 거래된 건물들이 밀집된 지역은 2018년 1월 문화재청의 근대역사문화공간 재생활성화 사업 구역으로 선정됐다.
손 의원은 지난 2016년부터 지금까지 문화재청을 피감하는 국회 상임위원회 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해당 지역이 역사문화공간으로 지정될 가능성을 인지한 시점이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문화재청 사업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신분이란 점은 변하지 않는다. 2017년 11월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교문위) 예결소위에서 목포근대문화재를 언급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교문위 위원으로서의 직무인 동시에, 본인 이익과 떼어놓을 수 없는 행위인 것이다.
▲ 1월15일 SBS '8뉴스' 갈무리. |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18일 페이스북에 “(이익 충돌이 우려되는 문제는) 취지의 선함이나 결과적 해악과 무관하게 그냥 안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대부분 이익 충돌 문제에서 의도가 어땠는지 실제 영향을 준 건지 등을 가려내긴 매우 어렵다”며 “하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면 공직 수행에 대한 투명성·공정성이 크게 훼손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런 일을 애초에 하면 안 된다는 것이 이익 충돌 금지의 취지”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비판 받는 것도 바로 이 대목이다. 손 의원 논란 등과 진상조사에 나섰던 민주당은 18일 긴급최고위원회 결과 “지금까지 정황을 종합해 투기 목적은 없었다는 손 의원 입장을 수용했다”고 결론 지었다. 공직자윤리법 위반 여지 등에 대해서는 추후 상황에 따라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국민 권익을 대변해야 할 국회의원이 이해 상충을 막기 위한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논란을 뒤로 한 채, 당장 증명하기 어려운 투기 여부로 사안을 축소했다.
▲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본인 유튜브 계정을 통해 본인 의혹과 관련한 언론 보도에 해명하고 있다. 사진='손혜ON' 갈무리 |
음성원 도시건축전문작가는 “처음부터 (지역에) 들어가 활성화하는 것은 한 방식이다. 이 동네가 살지 못하면 내가 살지 못한다는 점에서 ‘인센티브 동력’으로 활성화하는 게 한 측면”이라며 “재활성화 단계에서 건물주가 쫓아내거나 임대료를 높일 우려를 피하기 위한 ‘자산화 전략’이라는 방식이 있다”고 말했다. 도시재생사업 종사자 일각에서는 이 사업 자체가 투기로 몰릴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다시 이해상충이다. 문화재 등 구역설정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 지속적으로 건물 매입에 나섰다는 점이다. 음 작가는 “아파트를 개발하면 돈을 훨씬 많이 벌 수 있다. 하지만 분담금도 들고 저성장 시대라는 걸 고려하면 개발 안 되는 게 수익성이 높다고 판단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며 “민간인이 지역 활성화를 추진해 먹고 살겠다는 생각으로 건물을 매입했다면 바람직한데, 국회의원이 직접 하다 보니 문제가 된 걸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임동근 지리학 박사는 “좋은 의도에 따라 정석대로 하려 했다면 개인 돈을 출자해 재단을 만든 상태에서 투명하게 건물을 매입하고 사업 계획을 세웠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알음알음 지인을 통해 부동산을 매입했다는 건 문제가 될 수 있다. 지인 등을 통해 추진할 게 아니라 지역 주민 등이 참여하는 거버넌스를 구축했다면 모양새가 좋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형식적인 조사결과 발표로써 사실상 입을 닫았다. 이 같은 문제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 손 의원을 비롯한 다른 지역구 의원들은 어떤 의향을 갖고 있는지, 논란을 해소할 방안은 무엇이며 이를 제도화시킬 의지는 있는지 등은 지워지고 ‘의도가 선하면 문제가 아니다’는 합리화 논리만 남았다.
사안이 투기 여부와 선악 다툼으로 이어진 데에는 SBS 보도의 아쉬움도 지적된다. 홍성수 교수는 “보도 가치는 당연히 있는 사안이고 어떤 소송이 걸려도 아무 문제없을 것”이라면서도 “최초 보도에서 투기 의혹인 듯 보도한 것은 유감이다. 사익을 노골적으로 노리는 통상 투기와 다르다는 점도 충분히 보도됐다고 볼 수 없다. 다행히 셋째날 보도에서는 이익충돌과 공직자 윤리에 초점이 맞춰졌으나 이미 사태는 일파만파 퍼진 상태였다”고 했다.
▲ 지난 17일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 출연한 SBS '끝까지 판다'팀 이한석 기자. 사진=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 갈무리 |
물론 SBS가 최초 보도에서 ‘손혜원은 투기를 했다’고 단정하진 않았다. 보도 셋째날인 17일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서 이한석 기자는 “보도에서 직접 이것이 ‘투기다’라고 발언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김현우 SBS ‘8뉴스’ 앵커도 이날 “사안의 본질을 좀 더 명확하게 하기 위해 이익충돌금지라는 우리 사회의 중요한 원칙부터 먼저 말씀드리겠다. 이 원칙은 공직자가 공익과 부딪히는 사적 이익을 결코 추구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라는 말로 뉴스를 열었다.
그러나 첫날 보도 가운데 가장 쟁점이 선명한 리포트는 “매입 후 ‘4배 뛴 건물값’…리모델링은 나랏돈으로”라는 제목의 리포트로 “투기 바람”이 우려된다는 취지의 목포 시민단체 인터뷰가 담겼다. 손 의원 반론 보도는 ‘투기 의혹’을 부인하는 입장을 담았다. 15일 리포트 제목은 “손혜원 ‘투기 목적 절대 아니다’…석연치 않은 해명”이었고, 다음날인 16일에도 “거리 통째로 문화재 지정됐는데…손혜원 ‘투기 아니다’”라는 제목의 리포트가 보도됐다.
KBS ‘저널리즘토크쇼J’ 제작진인 최경영 KBS 기자는 19일 본인 페이스북에 “첫날 꼭지 모두에서 사실상 ‘차명’ 아닌가, ‘부동산 투기’가 아닌가 하는 ‘이미지’를 끊임없이 던져주면서 그 말을 직접 쓰지 않았다고 해서 시청자들에게 그렇게 전달되지는 않는다”며 “SBS가 둘째날까지 담아낸 이미지는 본인들 말과 달리 투기였으며 셋째날에 이르러서야 이해상충이라고 명확히 말한 점이 아쉽다”고 짚었다.
SBS가 애초 이해상충이 본질이라 생각했다면 지금의 보도 양은 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SBS는 15일 4개 리포트를 시작으로, 16일과 17일엔 톱 아이템부터 시작해 내리 6개를, 18일엔 총 7개 리포트를 손 의원 의혹에 할애했다. 최 기자는 “이해상충 사건에 이 정도 양을 쏟아부은 선례가 있었나. 지상파 방송사 통틀어서도 매우 희귀한 사례”라며 “SBS 선의마저도 오해받기 쉽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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