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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균 대책에 경기 일으키는 조선일보, 공공의 뜻이 뭔지는 알고?

천사요정 2019. 2. 8. 21:46

질문을 던진다. 우리 앞에 두 가지 세상이 놓여 있다. 첫 번째 세상은 안전이 상품처럼 돈으로 거래되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서 부자들은 더 안전하고, 빈자들은 절대 안전하지 않다.

다른 하나는 안전이 온 국민이 당연히 누리는 공공재로 거래되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서 온 국민은 국가가 제공하는 안전이라는 우산 아래 살아갈 수 있다.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어느 세상에서 살아갈 것인가?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김용균 노동자가 숨진 이후 정부와 여당이 5일 관련 대책을 발표했다. 화력발전소의 연료 및 환경설비 운전 분야에서 일하는 민간업체 노동자 2300여 명을 공기업 정규직으로 채용키로 한 것이다. 이 정책에 조선일보가 단단히 뿔이 났다.


조선일보는 6일자 기사와 사설로 이 방안을 극렬히 비난했다.  


조선일보의 허접한 논리는 차차 살펴보기로 하자. 하지만 그 전에 확인해야 할 일이 하나 있다. 조선일보는 안전이 상품처럼 돈으로 거래되는 세상을 원한다. 조선일보는 이 사실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마치 자기들도 안전을 꽤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양 위선을 떨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온 국민이 안전하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돈 많은 사람만 안전했으면 좋겠어요”라고 실토부터 하라. 그러면 우리도 귀한 지면 낭비해서 조선일보의 허접한 논리를 반박할 필요가 없어진다. 너희는 그따위 세상을 꿈꾸며 살면 되고, 우리는 우리의 세상을 만들어 가면 된다.


허접한 논리들, 공기업이 채용하면 다 안전하냐고? 


조선일보가 내세우는 논리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민간기업 노동자들이 공기업 소속이 되면 저절로 안전해지는 게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공기업에서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고 주렁주렁 예를 달아 놓는다. 둘째, 노동자들을 공기업 정규직으로 채용하면 발전 5사 등 공기업의 경영이 악화된다는 걱정이다.  


우선 “민간기업 노동자들이 공기업 소속이 되면 저절로 안전해지냐?”는 대목. 누가 그렇다고 했냐? 당연히 그렇지 않다. 안전사고가 민간기업 노동자, 공기업 노동자를 가려서 덮칠 리가 없다.

하지만 공기업 소속이 되면 훨~씬 더 안전해 진다.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지만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 조선일보 논설위원들은 고등학교 수학시간 때 명제와 집합도 공부하지 않은 모양이다.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은 다른 이야기다.  


광화문광장에서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철폐와 위험의 외주화 금지 등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광화문광장에서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철폐와 위험의 외주화 금지 등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김슬찬 기자


‘Q ⇒ P’일 때 P는 Q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P여야 Q가 될 수 있다. 조선일보 논설위원님, 뭔 소린지 당최 이해가 안 돼요? 밴다이어그램으로 친절히 그려줄까요?


공기업 소속이라는 것이 안전의 충분조건일 수는 당연히 없다. 하지만 분명한 필요조건이다. 왜냐하면 민간기업은 이윤을 최우선의 가치로 생각하는 반면, 공기업은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전을 민간기업에 맡겨두면 전혀 안전하지 않다. 돈이 안전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민간기업이 입사 3개월도 안 된 김용균 노동자를 혼자서 야밤에 현장에 투입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공기업은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 이윤을 줄일 수 있다. 그게 공기업의 가치다. 지금 공기업이 그렇지 않다는 점을 인정한다. 이명박 집권 이후 공기업의 가치가 박살이 났고, 그 박살난 가치가 아직 채 회복되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은 바로 잡으면 될 문제다. 적어도 공기업이 민간기업에 비해 안전이라는 공공의 가치를 더 잘 실현할 곳이라는 전제에는 변함이 없다. 충분조건은 되지 못해도 필요조건임은 분명하다.

노동자들을 공기업 정규직으로 채용하면 공기업의 경영이 악화된다는 두 번째 주장은 조선일보의 철학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하지만 공기업은 그것을 감수해야 한다. 노동자의 안전도 보장하지 않는 기업을 어떻게 공기업이라고 할 것인가? 


이건 철학의 차이이기 때문에 논쟁을 할 필요도 없다. 그냥 조선일보는 솔직하게 자백하기 바란다. 우리는 안전보다 돈이 더 좋다고, 그래서 세월호 사건 같은 것은 얼마든지 일어나도 괜찮고, 1년에 2000명에 가까운 노동자들이 산재사고로 숨지는 현실도 매우 즐거운 일이라고 말이다.


안전은 공공재여야 한다 


경제학에서는 공공재의 두 가지 특징을 ①비경합성과 ②배제불가능성이라는 다소 어려운 용어로 설명을 한다. 비경합성은 어떤 재화를 소비할 때에 소비자들이 경쟁을 할 필요가 없는 재화를 뜻한다.  

편의점에서 마지막 남은 컵라면을 누군가가 사버리면, 다른 사람은 컵라면을 살 수가 없다. 이런 재화를 얻기 위해서는 소비자가 경쟁을 해야 한다. 경합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반면 국방 서비스는 경합성이 없다. 내가 국방의 보호를 받는다고 내 옆 사람이 받을 국방 서비스의 총량이 줄어들지 않는다. 이게 바로 공공재의 대표적 특징인 비경합성이다.  


배제불가능성이란 돈을 내지 않아도 그 재화를 자유롭게 소비할 수 있는 경우를 뜻한다. 국방이나 치안서비스가 그렇다. 세금을 내지 않았다고 국방 서비스에서 배제되지 않는다. 군인들이 탈세범들만 골라서 안 지켜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 역시 공공재의 대표적 특징이다.

그렇다면 안전은 어떤가? 조선일보가 꿈꾸는 세상은 안전이 절대 공공재가 될 수 없는 세상이다.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서 국민들이 경쟁해야 하고, 돈을 낸 자만이 안전의 우산 아래 보호를 받는 세상을 그들은 꿈꾼다. 

 

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우리는 안전이 명백한 공공재로 대접받는 세상을 원한다. 개정 헌법에 국민 안전권이 반드시 명시되기를 바란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꿈꾸는 세상에서는 그 누구도 안전을 얻기 위해 돈을 내며 경쟁하지 않아도 되고, 그 누구도 돈을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안전에서 배제되지 않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안전은 공공(公共)의 영역이어야 한다. 더 많은 노동자들이 민간과 시장이 아니라 공공의 우산 아래 들어와야 한다. 민간기업이 노동자들의 안전을 소홀히 여기는 것은 법률이라는 공공의 영역을 동원해 제어해야 한다.  

지난해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공공부문 일자리는 전체 취업자 중 고작 8.9%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꼴찌 수준이었고 OECD 평균(21.28%)에도 한참 못 미쳤다.

“돈 없으면 죽어도 된다”는 철학을 가진 조선일보는 한국의 이런 현실이 매우 자랑스러울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아니다. 우리는 모든 국민들이 안전하게 노동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안전이 명백한 공공재로 대접받는 세상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이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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