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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인들이 외면하고 싶어 하는 한반도에 대한 불편한 진실들

천사요정 2019. 4. 13. 10:00

편집자주/이 글은 미국의 독립언론 카운터펀치에 실린 조셉 에설티에(Joseph Essertier)의 칼럼이다. Essertier는 일본의 나고야 공업대학에서 조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미국인 연구자다. 한국인이라면 이 글에 대한 동의 여부는 뒤로 하더라도 유사한 주장을 들어본 적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서구인들이라면 다를 가능성이 높다. 이 글에서 나오는 ‘우리 나라’는 모두 미국을 의미한다.  

원문은 Irritating Facts About Korea that Many in the West Would Rather Not Know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글은 4.3항쟁 기념일에 맞추어 발표됐다. 

2월 말 베트남 하노이 정상회담의 성공의 토대를 쌓기 위해 미국과 남북한의 막대한 노력이 투입됐다. 그러나 트럼프는 무모하게도 그 기회를 날려버렸는데, 이 사태는 명백히 선출되지 않는 권력자이자 평화의 파괴자인 존 볼턴의 조언을 따른 것이다.

정상회담의 실패의 원인으로는 트럼프가 게을러서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거나, 북한과 미국의 관리들이 준비할 시간이 충분치 않았다거나, 민주당 인사들이 성공을 방해했다거나, 혹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어구의 의미가 불분명했다거나 하는 등이 거론되고 있다.

우리는 이코노미스트에서, “트럼프와 그의 수행원들은 많은 댓가를 얻지 못하고 북한에게 대폭 양보를 하느니, 회담을 파기하는 것이 미국의 안보에 대한 피해를 줄일 것이라고 결론 내린 것 같다,”라는 기사를 읽었다. 그들이 말하는 소위 “북한에 대한 대폭의 양보”란, 평화를 바라는 미국인들이 “전쟁상태를 끝내고 화해의 토대를 쌓는 것”이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정상회담의 실패를 가져온 여러가지 요인이 있었지만, 주목할 만한 한 가지 중요한 요인이 있다.

그것은 우리 나라(미국)가 한반도에서의 미국이 한 일에 대한 진실을 외면하는 일종의 ‘현실부정’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학교에 다니는 학생으로서, 혹은 심지어 성인으로서 우리는 우리 나라의 역사에 대한 “허무맹랑한 해석”을 끊임없이 주입받는다. (폴 애트우드는 역사에 대한 이런 해석에 대해,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현실과 충돌하는지 ‘전쟁과 제국:미국식 삶의 방식’에서 설명한다.) 이 해석에 의해 “미국이 인류 진보의 최고의 원천이라는 집단환상이 존재하게 된다.”

우리는 민주주의와 자기 결정의 이상에 대해 배웠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백인들과 미국 정부가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삶을 파괴했는지에 대해서는 배우지 못했다. 미국인들은 자유를 소중히 여긴다는 사실이 강조되지만, 노예제도를 통해 백인이 흑인의 자유를 강탈하는 것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다. 우리는 사람들이 자기 노동의 결실을 향유할 권리가 있다고 듣는다. 그러나 수백 만의 부를 생산하는 미국의 노동자들은 계속 참혹한 가난 속에서 살고 있다.

이와 같은 중대한 불의를 숨김으로써만 미국사에 대한 이러한 허무맹랑한 해석은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과거에 행사한 폭력에 대한 완전한 설명 없이는, 그리고 우리 나라가 전쟁에 중독됐다는 현실을 인식하지 않고서는, 강력한 민중의 정치적 의지를 결집하여 우리 정부로 하여금 한국전쟁을 종료하도록 압박을 가하는 일도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변화를 받아들이기 고통스러워 하는 사회의 전 부문이 편안한 거짓말을 받아들이고 진실을 외면하는 것,” 그것이 “현실부정”이다. (나는 이 정의를 마이클 스펙터로부터 빌어왔는데, 그 말은 2009년 뉴욕타임즈 11월 4일자에 실린 자넷 매슬린의 “안락한 반 과학에게 데이터의 총알 날리기”에서 언급됐다,) 한반도의 경우, 미국인들과 다른 사람들이 마주치고 있는 변화의 고통이란 바로 동북아시아에서의 오래된 냉전의 종식이고, 미국이 종국에는 그 지역을 지배하지 못할 지도 모를 가능성이다.  

숨을 턱턱 막는 답답한 현실 부정이 한반도의 거주민들을 향한 미국의 범죄행위에 눈을 감게 하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국 정부는 소이탄의 발사, 고문, 댐과 다른 민간시설에 대한 파괴를 명령함으로써 비례성의 원칙을 위반했다.  

전쟁 이후 몇 십년 동안, 미국인들은 한국에서 성폭력을 저질렀다, 오키나와와 필리핀 출신의 페미니스트들이 포함된 “여성 운동의 핵심 지도자들은 오키나와, 남한, 그리고 필리핀의 미군의 성매매가 얼마나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복잡한 정책체계, 정치적 억압, 경제적 불평등과 하층민에 대한 억압, 경찰의 부패, 포주에 의한 여성들의 채무억압, 미군과 각각의 아시아 국가들 속에 만연한 성차별적 관행과 태도와 연관돼” 있는지 문서를 작성했다 (캐더린 H.S. 문의 “군대의 성매매와 아시아의 미군”을 참조하라).  

그리고 미국과 다른 정부들이 가한 (경제) 제재는 북한 정부가 한 행동에 대해 북한의 민간인들을 처벌하는 것으로, 이는 국제법 위반이다.  

(일본을 포함한) 부유한 서구의 나라들에 사는 사람들이 남북한 사람들에게 자행된 이러한 악행을 인식하고 수긍한다면, 아마도 언젠가 우리 정부와 우리 시민들은 하노이에서의 평화회담의 좌절에 대해, 한국 전쟁에 대해, 천만의 사람들이 가족과 헤어진데 대해, 그리고 한국에서의 성적 착취에 대해 어떤 책임감을 느끼는 순간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사무라이”라는 영화에서, 미군 대위 나탄 알그렌은 아메리카 원주민을 학살하는데 참여한 것을 아프게 회상하고 이 학살을 자신이 일본인에게 자행한 폭력에 비유한다. 그 영화는 역사적인 면에서는 매우 부정확하다. 하지만 그러한 비유를 이끌어 내는 것은 분명히 의미가 있고 우리에게 생각할 여지를 준다.  

미국인들은 지난 세기에 일본인, 오키나와인, 그리고 한국인들을 학살했다. 그리고 그 잔혹함의 정도가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학살한 정도에 이르지는 않지만, 그들의 자기 결정권에 대한 폭력적인 침해가 똑같이 존재했다. 범죄를 저지른 자들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정직한 인식은 화해와 평화로 나가는 첫 발걸음이다.  

북한의 최고지도자에게 총구를 들이대다 

북한의 국가 수장이 하노이에서 “북한의 핵시설과 생화학무기 프로그램, 그리고 이와 관련된 군수용으로 전용될 수 있는 능력, 탄도미사일, 발사대, 그리고 관련 시설들의 완전한 폐기”(재팬 타임즈 2019년 3월 31일자 4쪽) 를 요구하는 문서를 건네 받았다는 말을 그 나라(북한) 사람들이 듣는다면, 그것은 그들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었을까!  

지금 우리는 결국 트럼프가 볼턴의 “리비아 모델”을 받아들여 북한의 완전한 항복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생각해보라.  

협상 테이블의 건너편에 당신보다 인구가 13배 많고, 국방예산은 150배 많으며, 당신의 영내에 당신의 나라를 타격할 수 있는 수백 개의 군사기지와 “항공모함”이라고 불리는 움직이는 군사기지를 가진, 그리고 백배는 더 많은(그리고 물론 훨씬 더 강력한) 핵미사일과 당신의 남쪽 경계선에서 하루 거리도 떨어져 있지 않은 수만 명의 군대를 가진, 또한 당신의 긴 해안선을 따라 아무도 눈치챌 수 없게 언제나 숨어 있는 열핵탄두로 무장한 잠수함을 가진 한 나라의 국가 수장이 앉아 있다.

이 남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당신에게 자기의 최후통첩안을 담은 문서를 건네준다. 당신의 핵 억지력과 당신의 모든 생화학무기 프로그램을 포기하라. (미국에게 “비핵화”라는 용어는 이제 이처럼 다른 대량살상무기를 포함하는 개념이 됐다). 반면 그 남자의 나라는 핵무기와 화학무기, 생물학무기를 모두 가질 수 있을 뿐 아니라, 오직 그의 나라만이 그러한 무기를 계속 확장해 나갈 권리를 갖게 될 것이다.  

당신은 핵물질과 핵무기를 넘겨줘야 하고, 당신의 핵무기가 어디 있는지 모두 말해야 한다. 그리고 당신은 그들이 당신의 시설들을 사찰하고 당신의 과거와 현재의 핵시설들을 모두 해체하기 위해 사찰관을 보내는 것을 허락해야 하며, 지금은 핵무기를 연구하고 있는 당신의 과학자와 기술자 모두에게 새 일자리를 찾아줘야 한다.  

워싱턴의 우리의 지도자들이 6,800개의 핵무기를 관리하고 있는 현실에서, 또한, 핵무기와 전략을 담당하는 미국전략사령부의 전직 사령관이었던 리 버틀러의 말에 따르면, 그들이 “지구상에 생명이 지속될 수 있는 가능성을 규정하는 권력”을 독차지한 현실에서, 북한이 먼저 완전히 무장해제를 해야 한다는 그런 전제가 존재한다.  

버틀러는 그들은 “자기의 어리석음에 전율해야” 한다고 말한다.

북한은 아주 작은 제재의 완화만 있어도 뒤로 물러서겠다는 의지를 표명해 왔다.

그러나 이 “완화”에 의한 북한의 번영은 아마도 단기간에 그칠 것이며, 북한 노동자들의 고통은 계속될 것이다. 평화는 미국이 제시하는 조건에 따라 이루어질 것이다. 미국이 자기가 원하는 평화를 얻은 뒤 취할 다음 조치가 무엇인지 알기란 어렵지 않다.  

서구(그리고 일본)의 기업들이 들어가 공장들을 헐값에 사들일 것이고, (IMF가 들어와 탐욕스런 다국적 기업에게 혜택을 주는 정책을 실시하여 한국인들을 “도왔던”) 1997년부터 1998년까지의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그들이 남한의 노동자에게 했던 바와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북한의 노동자들을 착취하기 시작할 것이다.  

우리가 지금 북한사람들에게 가하고 있는 폭력 

미국 정부는 이 순간에도 북한인들을 죽이기 위해 우리의 세금을 쓰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국을 북한이 협상에 복귀하기를 기다리며 테이블에 그저 앉아 있는 말이 없고 얌전한 고양이인 것처럼 묘사하고, 반면 러시아, 중국, 북한을 으르렁대는 늑대들인 것처럼 묘사한다.

이것은 전혀 진실이 아니다. 미국은 한반도 전체를 집어삼킬 기대를 갖고 자기의 날카로운 송곳니에서 북한 사람들의 피를 뚝뚝 떨어뜨리고 있는, 시끄럽게 으르렁대는 늑대무리와 같은 존재다.

2017년 9월 4일 월 스트리트 저널 편집국은 “김정은을 제거하기 위한 옵션들”이라는 기사에서 정권교체를 달성하기 위해 북한 사람들을 굶겨죽이라고 공개적으로 권유했다.

아마 우리는 바로 지금도 우리의 제재를 통해 그들을 굶주리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제재때문에 그 나라에 인도주의적인 원조를 제공하기가 매우 어려워졌다. 원조기관들은 국무부로부터 특별 여행허가를 받아야 하고 다른 미국정부의 세 개의 부서로부터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은행들은 자금을 전달해주기를 꺼린다. 출국허가는 지체된다.  

방콕의 유엔인도지원조정국의 대변인 피에르 페론에 따르면, “천 백만명으로 추정되는 남녀와 아이들이 영양이 충분한 음식과 깨끗한 물, 혹은 기초적인 건강과 위생 서비스를 받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북한은 “국제 인도주의 기관들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1억 천 백만 달러의 절반”도 받지 못하고 있다. 그 사람들 중 19만명은 “지난 해에 기금의 부족으로 식량원조를 받지 못한” 유치원생들이다.  

미국의 끝없는 위협 

우리가 북한에게 가하는 위협의 목록을 빠르게 작성해 본다면 다음과 같다.

그들의 나라를 “완전히 파괴”하겠다는 유엔에서의 트럼프의 위협; 우리의 핵, 화학, 생물학 무기의 계속적인 개발; 나노기술을 이용하여 개개인을 정탐하고 암살할 수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로봇과 같은 위험한 재래식 무기의 대량 생산.  

우리 나라가 핵무기를 더 많이 생산하고, 캘리포니아의 반덴버그 공군기지와 같은 장소들에서 연이어 핵실험을 할 때, 그것은 북한과 러시아와 같은 그들의 이웃에 대한 위협이다.

미국과 북한 사이에 화해분위기가 무르익던 작년만 해도 반덴버그에서 적어도 다섯 차례의 ICBM 시험발사가 이루어졌다. 그들은 이것이 통상적인 일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이 통상적이며, 우리 정부가 언론인들로부터 단 한마디의 비판도 받지 않고 이런 일을 해낼 수 있다는 바로 그 사실이야 말로 적게 잡아 우려스러운 일이고, 정확히 말해서 부끄러운 일이다.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정립됐거나 정립되고 있는 합의가 존재한다.

그것은 예를 들어 미국과 러시아 같은 두개의 주요 핵강국 간의 전면 핵대결은 엄청난 양의 재를 대기로 날아오르게 하여 “핵겨울”이 초래될 것이고, 결국 우리 종이 멸종되게 될 것이라는 합의다. 그런 의미에서, 추가적인 핵개발은 북한인들을 포함하여 당신과 나 모두를 위협한다. 미국은 군축의 대열에 동참해야 하며, 핵무기금지조약에 서명해야 한다.  

미국의 정치인들은 미국민의 동의도 없이 미국민의 이름으로 이번에는 중국과 새로운 냉전을 개시했다. (마이클 T. 클레어, “중국과의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클레어는 워싱턴과 베이징은 이미 무역 전쟁, 기술 전쟁, 사이버 전쟁, 그리고 (중국군을 본토에 가까이 묶어두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해군의 정찰, 혹은 지역 국가들과의 군기지 협상들과 같은)외교적, 군사적 압박 등을 포함하는 일종의 전쟁을 개시했다고 주장한다.  

중국은 북한의 전통적인 동맹이기 때문에, 북한의 안보도 또한 위협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우리 정부는 국제적으로 존중받는 사법조직인 ‘국제형사재판소(ICC)’를 위협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우리가 벌인 전쟁에 대해 미국의 관리에 대해 책임을 묻는 어떤 판사도 비자제한을 받게 됐다. 국제형사재판소는 “기댈 수 있는 최후의 법정”인데, 미국은 정의를 추구할 최후의 수단을 없애고 싶어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다시 한번 미국이 불량국가임을 보여준다.

남한의 문재인 대통령은 “남과 북은 오늘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모든 위협요소들을 한반도 전역에서 제거하는데 동의했다,”고 말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사실을 말하자면, 문재인은 한반도에 사는 남과 북의 모든 사람들을 위협하는 우리의 군사기지들을 제거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남한에 대한 “핵우산”과 같은, 위에서 언급한 다른 위협들은 말할 것도 없다. 문 대통령의 북한과 관련된 당면한 외교 정책이 결실을 거둔다 해도, 남한 사람들은 여전히 불량국가(미국)가 자기 목의 “정맥을 지긋이 누르고” 있는 것을 느낄 것이며, 또한 여전히 그의 악취나는 숨결을 느낄 것이다.  

(“목의 정맥을 지긋이 누르고”라는 구절은 미국의 역사학자 브루스 커밍스로부터 인용한 것이다. 그의 추정에 따르면 이것이 남한에 있는 미군기지의 역할이다. 미군기지는 북쪽의 나라들을 위협할 뿐 아니라, 남한의 정부와 사람들도 위협하고 있다.) 

미국은 4.3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이번 주 미국에서는 그에 대해 언급하는 언론인도 거의 없이, 4월 3일이 그냥 왔다 가버릴 것이다.

1948년의 그 날은 미국의 오명으로 길이 남을 날이다. 한국의 미군정청이라고 불렸던 점령군의 사령관이었던 존 R. 하지는 1947년 10월, 제주섬은 “국제공산당의 별 영향없이 인민위원회에 의해 평화롭게 통제되고 있는 진정한 자치지역”이라고 했다. 그들이 그처럼 민주주의를 잘 실천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혹은 바로 그 때문에, 4월 3일, 그들의 봉기가 시작된 후, 그 섬의 수만 명의 사람들이 살해됐다.  

그 나라의 북쪽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참여할 수 없는 유엔 “감시하”의 선거에서는 그들이 그들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했다. 미군정청은 한반도에 (그 중 하나는 외국의 지원을 받는) 두 개의 정부를 갖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각계각층으로 이루어진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하기 시작했다. 미국이 고용한 군인들과 경찰들은 많은 한국인들에게 그들을 반세기 동안 난폭하게 지배한 일본제국주의를 떠올리게 했다. 사실 미국은 이전의 일제가 고용했던, 다시 말해 한국민들의 저항을 막는 활동을 했던 많은 반역자들을 다시 경찰로 고용했다.

우리 정부의 책임은 분명하다.  

“미군의 지도자들은 초기의 제주도 4.3 사태를 촉발한 명령을 내린 직접 당사자다(즉, “4.3 봉기의 주동자들에 대한 학살). 이후 미군은 해안선의 5킬로미터 이내의 모든 사람을 죽이라는 명령을 포함한 남한의 군대와 경찰의 진압작전을 면밀히 감독했다. 1948년 8월부터 미군은 남한 경찰의 작전을 계속 자기의 통제하에 두었다.” 그리고 “미군은 무기와 비행기, 그리고 다른 자원들을 공급했다.”(고창훈, “4.3의 화해를 위한 다음 단계”) 

동북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을 제국주의의 손아귀에서 해방시킨 태평양 전쟁의 승리자로 등장한 직후, 그리고 일본의 정부와 법률이 맥아더에 의해 자유주의화 된 이후의 그 시절에는, 미국은 약간의 정당성을 갖고 있었다.  

그때와는 달리 현재의 미국은 첫째가는 불량국가로서, 세계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는 존재다. 그리고 우리가 믿도록 세뇌당한 바와는 달리, 평양의 정권은 적지 않은 정당성을 갖추고 있다. 현재의 평양정권은 70년간 살아남은 왕조다. 그정권은 (일제가 비폭력적인 저항조차 거의 불가능하게 했던 시기에) 특히 만주에서 일제에 반대해 저항했던 게릴라들에 의해 설립됐다.

그 다음에 있은 미제국주의의 침략기에는 수십 만의 중국인들이 북한을 지켜주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어떤 면으로 보아도 사회주의의 이상향은 아니다. 그러나 끊임없는 괴롭힘, 봉쇄, 그리고 제 2의 홀로코스트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어떤 면에서는, 특히 여성, 아이, 고아, 그리고 노동자를 보호하는 사회복지 프로그램의 관점에서는, 성공을 거두었다.

남한 사람들로 말하자면, 그들은 미국과 한국의 정권으로부터, 아마도 우리가 ‘자유의 나라’에서 향유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민주주의를 쟁취해냈다.  

이 성과는 그들이 포섭되도록 강요받은 미국의 굴레 속에서 이룬 것이어서 더 값진 것이다. 미국은 남한의 군대를 지배하고 다국적 기업의 이익을 위해 남한의 경제를 조종한다. 그리고 그 다국적 기업의 주식은 미국과 다른 나라들의 기생충 같은, 말도 안되는 부자들이 소유하고 있다.

미국인들은 동북아시아의 평화의 가능성이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이루기 위한 그 힘든 노력들은, 한국인과 다른 동북아시아의 사람들이 우리 미국인을 위해서 해온 일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워싱턴이 평양에 작은 양보를 하는 것, 그것이 지금 필요한 것의 전부다. 우리 나라에 만연한 “현실부정”을 극복하고 미국정부가 올바른 일을 하게 압력을 가할 방법이 있을까?

비용이 많이 들고, 무의미하며, 무용한 폭력에 우리 자신이 휘말리기 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은, 우리 정부를 제지하는 일이다. 우리에게는 먼 나라에 사는 소수의 악한들과 무고한 많은 사람들을 숨지게 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있다.  

지구 온난화의 속도를 늦추어 우리의 후손들이 보다 살만한 지구에서 살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어떨까?  
군사활동이 지구온난화의 가장 커다란 원인의 하나라는 사실은, 우리가 스스로의 눈을 멀게 했다는 사실, 다시 말해 우리의 역사적 “현실부정”을 직시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우리가 억압받는 “타자”, 특히 남북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면, 우리는 우리의 눈을 뜰 수 있을 것이고, 우리가 평화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http://www.vop.co.kr/A0000139790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