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윤리환경/부동산

집값 오를 땐 시장 자유 강조하더니 이젠 정부 개입해라?

천사요정 2019. 5. 9. 15:26

[민언련 신문 모니터]

언론들, 기득권에 불리할 땐 정부 개입 요구하는 모순


9·13 부동산 대책과 수도권 아파트 공급 확대로 부동산 시장이 안정을 되찾으면서 치솟았던 매매·전세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보수·경제지를 중심으로 '역전세난', '깡통전세'를 부각하는 기사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역전세난은 전세 가격 하락으로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돌려주기 어려워지는 상황을 가리키고, 깡통전세는 부동산 매매가가 전셋값보다 낮아져 집을 팔아도 전세금을 상환할 수 없는 현상입니다.

민언련은 1월 1일부터 3월 4일까지 '역전세난' 또는 '깡통전세'를 언급한 기사량을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이 기간 동안 총 68건이 지면에 보도되었습니다. 그중 <한국경제>가 19건으로 가장 많았고 <매일경제>가 17건, <조선일보>가 9건 순이었습니다. <중앙><동아><한겨레>는 각각 6건, <경향>은 5건에 그쳤습니다.
 

 △ 역전세난 또는 깡통전세를 언급한 기사량 비교(1/1~3/4) ⓒ민주언론시민연합
 △ 역전세난 또는 깡통전세를 언급한 기사량 비교(1/1~3/4) ⓒ민주언론시민연합
ⓒ 민주언론시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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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세난' '깡통전세'라는 신조어는 주로 경제지에서 많이 다뤄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한국경제>는 "헬리오발 입주쇼크…성남·하남 전셋값 뚝"에서 "한국감정원 기준 1월 첫째주(7일 기준) 송파구 전셋값이 지난주 대비 0.25% 하락했다. 지난달에도 0.95% 떨어진 바 있다"며 제목에서 전셋값이 '뚝' 떨어졌다고 표현했습니다.



보도량이 적을 뿐이지, 조중동도 표현에서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중앙일보>는 "부동산 한파에 입주 쓰나미…전셋값 뚝뚝"에서 전셋값이 '뚝뚝' 떨어졌다고 표현하며 "전셋값이 하락하면서 역전세가 현실화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 조선일보>는 "강남발 전세하락 12주 연속 떨어졌다"에서 "역전세난 우려가 가장 큰 곳은 강동구다"고 했고, <동아일보>는 "전셋값 내리막…커지는 '깡통 전세' 공포", <매일경제>는 "광역 17개 시도 중 11곳 '역전세 위험지대'"에서 '위험' '공포' '연속' '쇼크'를 강조하며 전방위적인 부동산 하락 공포를 조성했습니다.

최근 부동산 전셋값·매매값이 소폭하락하고 있으나 이는 지난 수년간 미친 듯이 치솟은 부동산 가격에 비하면 매우 미미합니다. <한겨레21> "부동산 아무 뉴스 대잔치"에서 이렇게 전했습니다.

"서울의 아파트 가격이 가장 최근 저점이었던 2005년 초와 비교했을 때 지금 매매 가격은 1.8배 올랐고, 전세는 2.1배가 올랐다. 10여 년 만에 80%, 120%가 상승했는데 최근 1%, 2% 빠졌다고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특히 서민에 큰 부담을 줬던 전셋값이 비로소 조금씩 안정기에 접어들었는데 이런 흐름이 유지되어야 한다. 앞으로 아파트 가격이 더 떨어져도 괜찮다는 의미다. 그동안 충분히 올랐으므로."(이준용 한국감정원 시장분석연구실 부장의 설명)

2005년과 2019년의 전셋값을 비교했을 때 무려 120%나 치솟았는데, 최근 1~2% 하락한 것을 두고 '뚝뚝' 떨어졌다고 표현하는 건 침소봉대에 불과합니다. 집값이 반 토막 났을 때 나올 법한 기사가 1%가 떨어지자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미 수많은 청년들이 천정부지로 오른 집을 사지 못해 출산과 결혼을 포기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집값이 더 떨어져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습니다.

'헬리오시티' 때문에 전세·매매값 폭락 온다?

보수‧경제지는 이 같은 '전셋값 하락' '역전세난' 현상을 공급 확대, 그것도 '헬리오시티'라는 대단지 아파트 탓으로 분석했습니다. 작년 말 서울시 송파구에서 입주를 시작한 '헬리오시티'로 인해 역전세난이 일어날 우려가 있다는 겁니다.

< 조선일보>는 "강남에서도…전세금 돌려주러 빚냈다"에서 "(역전세난의) 가장 큰 원인으로 '헬리오시티 효과'가 꼽힌다"며 "헬리오시티 효과는 구(區) 경계선도 넘어 헬리오시티에서 직선거리로 약 4㎞ 떨어진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도 전세 시세가 2년 전보다 5000만원 내렸다"고 말했습니다.

< 동아일보>는 "사설/역전세난에 서민들 발 동동…분쟁조정제 확대해야"에서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도 송파구 헬리오시티 등 입주 물량이 크게 늘어나면서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 매일경제>도 "헬리오시티발 역전세난 옮겨붙는 강동구"에서 "1만가구` 헬리오시티 입주로 시작된 전세가 하락 파동이 올해 강동구 지역으로 옮겨붙으며 점점 확산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고 전했습니다.

이외에도 <매일경제>는 "전문가들은 서울 전세금 하락이 더욱 심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약 1만가구 규모의 송파 헬리오시티가 지난해 말부터 입주를 시작했기 때문이다"고 말했습니다. 헬리오시티 물량이 쏟아져 나와 금방이라도 서울 전역에 부동산 전세·매매가가 하락에 영향을 크게 줄 것처럼 전망합니다.

그러나 이런 전망은 엇나갔습니다. 헬리오시티 물량이 쏟아져 나왔지만, 큰 파장은 없었던 것입니다. <매일경제>는 "입주 예상외 순항…헬리오시티 발 역전세난 진정되나"(2/26 박인혜․박윤예 기자)에서 "9510가구 규모로 `미니 신도시급` 아파트로 불리던 서울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 전세난이 안정세에 접어드는 분위기다", "우려에 비해 순조롭게 입주가 진행되고 있는 분위기다", "헬리오발 전세대란은 일단 잦아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전했습니다.

실제로 우려한 만큼의 역전세난이 일어나지 않았던 겁니다. <매일경제> 등 보수·경제지가 벌인 '헬리오시티 발 소란'을 돌이켜보면 민망하기 짝이 없습니다.

<한겨레><경향>, '갭투자'들에게 닥친 공포 강조

같은 기간 <한겨레>와 <경향신문>도 '역전세난'에 우려를 표했지만, 보수‧경제지와 결이 조금 달랐습니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이 '역전세난'이 '갭투자'들에게 닥친 위험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 경향신문>은 "서울 전셋값 15주째 하락…빚내 집 산 갭투자자들 '좌불안석'"에서 "전·월세 가격 약세가 계속되면서 집값 상승기 때 세입자의 전세보증금을 과도하게 끌어들여 집을 산 갭투자자의 걱정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또한 "깡통전세 같은 극단적인 상황까지 가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망한 뒤 "문제는 '빚내서 집 사라'는 정책 이후 부동산시장이 불붙으면서 갭투자로 집을 산 사람들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역전세난'은 보증금을 세입자에게 갚아야 하는 소수의 갭투자자에게 닥친 문제라고 지적한 것입니다.

< 한겨레>도 "내 전세금 돌려받을 수 있나, 갭투자 심했던 경기도에 경고등"에서 "다만 '갭투자' 주택의 세입자는 피해를 볼 수 있다", "전세 보증금 사고는 주로 갭투자가 유행했던 지역에서 반발하고 있다"고 전합니다. '갭투자자'의 문제임을 명확히 한 것입니다.

보수‧경제지의 이 난리법석은 '부동산 침체'를 '부동산 투기 규제 해제'로 풀라는 주장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조선일보>는 "사설/집값 전셋값 더 내려야 하지만 거래 숨통은 터줘야"에서 역전세난 우려를 전한 뒤 나름의 '해결책'을 내놓습니다. 그런데 그 해결책은 '양도소득세 부담 완화'입니다. <조선일보>는 이렇게 주장합니다.

"최악의 사태를 막으려면 주택 거래에 숨통을 터줘야 한다. 경제에 백해무익한 부동산 투기는 반드시 막아야 한다. 하지만 집주인들이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기 위한 용도로는 신규 주택대출을 받을 수 있게 해 줄 필요가 있다. 자금 여력이 없는 집주인이 전세보증금 반환 목적으로 집을 팔 경우 양도소득세 부담을 완화해 주는 대책도 검토해볼 만하다. 집값과 전셋값은 더 내려가야 하지만 급격한 경착륙은 막는 것이 바람직하고 그러기 위해선 일반 주택 거래는 이루어질 수 있도록 숨통을 터줘야 한다."

< 한겨레>와 <경향신문>에서 지적했듯 실제 보증금 반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벌려고 했던 갭투자자들입니다. 결국 <조선일보>의 주장대로 보증금 반환 목적에 한해 양도소득세를 완화해주면 그 이익은 주로 갭투자자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양도소득세는 부동산 거래 이익을 국가가 환수하는 대표적인 부동산 투기 규제 정책입니다. '거래에 숨통을 터줘야 한다'며 일부 풀어버리자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집값 오를 때 "시장 자유에 맡겨야" vs. 집값 내릴 때 "정부 개입해라"

< 한국경제>와 <매일경제> 등 경제지는 집값이 치솟을 때마다 '시장자유에 맡겨라'라는 말을 빼먹지 않고 해왔습니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부동산 시장에 개입하려고 하면 오히려 '탈'이 난다는 것입니다.

< 매일경제>는 부동산 가격이 치솟던 지난해 9월 "매경포럼/시장의 보복"에서 부동산 가격이 폭등한 것을 두고 "시장을 무시한 결과다.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된다. 수요 억제정책은 먹히지 않고 오히려 공급도 늘리지 않는다는 신호와 겹치면서 집값은 폭등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합니다. 이후 "정부나 정치권이 시장에 개입하는 순간 시장은 반응한다. 때로는 보복하기도 한다. 시장은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라고 날서게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또 "매경데스크/정부가 시장을 이길 수 없다는 '교훈'"에서 "전방위 걸쳐 (부동산) 규제 내놨지만 시장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규제 만능주의 못 벗어나면 시장을 이길 수 있다는 오기로 비춰지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한국경제>는 "사설/부동산 시장을 '제압 대상'으로 보는 시각에서 탈피해야"에서 "정부는 시장을 왜곡시키는 징벌적 세금 인상을 지양하고 수급 안정에 초점을 맞춘 '시장친화적인' 대책을 내놓기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집값이 하락세로 전환하자 '정부개입'을 거리낌 없이 요구합니다. <매일경제>는 "사설/깡통전세 정교한 대책 마련하라"에서 "경고음이 커지고 있는 만큼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부동산과 금융시장에 미칠 파장을 면밀히 파악하고 정교한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 한국경제>도 "김태철의 논점과 관점/심상찮은 깡통주택 경고음"에서 "정부가 집값잡기에만 집착하지 말고 '깡통주택'에 대한 대응책을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할 때다"라고 말했습니다. 정부에게 시장에 개입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이번 달 18일 전북 군산에서 서민금융 현장 방문 행사 자리에서 기자들에게 "전세자금을 돌려주는 것은 집주인이 할 일"이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시장에 맡길 일이라는 겁니다.

경제지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시장 자유'라는 것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득권에게 유리할 때는 시장의 자유를 내세우다가, 기득권에게 불리할 땐 슬그머니 정부의 개입을 요구하는 건 모순된 행동입니다. 이제 시장자유에 맡기면 모든 것이 잘 해결될 것이라는 '망상'에서 빠져나올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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