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랑 면목3구역으로 보는 재건축·재개발 범죄의 ‘일반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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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84132.html#csidxe47c5b84630a9a59ba4c528d4b054f6
‘역대 최대·최다 분양’. 지역을 가리지 않고 ‘최대·최다’ 수식을 단 뉴스들이 뜬다. ‘기록’이 경신을 되풀이할 때마다 아파트 보유자들은 투자 전략을 고민하고 아파트 없는 자들은 상실감을 게워 낸다. 사진 속 철거촌(서울 중랑구 면목3구역)에서도 올해 연말까지 현대산업개발이 1034가구(조합원 분양 제외)를 분양한다는 계획이다. <한겨레>는 이 땅에서 재건축·재개발 메커니즘의 ‘적나라’를 보여주는 자료들을 입수했다. ‘아파트 공화국’은 찬란 위에 세워지지 않는다. 시공사-조합-OS(총회 홍보·득표 요원)-철거업체-부동산업자-정치인이 물고 물리며 서민의 주거를 먹거리 삼아 이득을 취하는 벌거벗은 현장이 그 자료에서 펼쳐진다. 재건축·재개발 범죄는 뉴스가 되지 못할 만큼 흔하지만 ‘범죄의 기술’을 생생하게 드러내는 내부 자료가 뭉텅이로 공개되기는 처음이다. 재건축사업 수주 조직도, 조합원·대의원 성향 분석표, 로비와 비자금을 기록한 수첩, 날짜별 불법 금품·향응 제공 일지 등에서 우리는 한국 사회를 하부에서 떠받치는 토건자본주의의 실체를 본다. 이 기사는 경찰 수사 결과를 뼈대로 세우고 관련자 취재·증언·반박으로 살을 붙였다. 범죄의 책임을 두고 입장과 주장이 대립할 땐 구분해 명시했다. 누구의 책임인지도 중요하나 누구의 책임이어도 바뀌지 않는 결과가 더 중요하다. 개별 사례이지만 개별 사례가 아니다. 국내 ‘거의 모든’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추진되는 ‘일반 원리’다. 조합원이십니까. 집 한 채가 전 재산입니까. 이 원리를 숙지하시기 바랍니다.
A가 수첩에 썼다.
“(서울 중랑구) 묵동 ○○한정식.”
그는 하루 일을 꼼꼼히 기록하는 습관이 있었다. 기록은 ‘기억’이었으나 ‘증거’이기도 했다. 증거는 한정식의 뒤탈을 막을 수도 있었고 뒤탈을 부를 수도 있었다. A가 2009년 12월18일치 메모난에 이름과 숫자를 적었다.
“중랑구청 구의회 의원 I 300 별도 지급. J 시의원 400만.”
300과 400은 봉투에 담겨 I(당시 한나라당)와 J(한나라당)에게 갔다. 돈봉투는 현대산업개발(현산) 부장 C가 만들어 왔다. 건네고 받으며, 대기업과 정치인이 한배를 탔다. 둘을 부동산업자 A가 연결했다. 함께 먹은 밥은 7년 뒤 탈이 났다. 배를 갈아타며 탈난 그들의 ‘동맹’은 기억과 증거의 진위를 두고 대립했다. 자본과 권력과 욕망이 서민의 주거를 먹이로 이합하고 집산하는 땅마다 ‘그것’이 자랐다.
아파트.
“교도소에서 재건축하라”
용마터널은 아차산(경기도 구리시~서울시 광진구)을 동에서 서로 관통했다. 구리시 교문동이 중랑구 면목동과 직통했다. 터널을 나온 뒤 사가정역을 지나 600m쯤 내려가면 도로와 골목에 싸인 네모반듯한 재건축 지구(면목3구역 6만8255㎡)에 닿는다.
지난 7일 버려진 살림살이들이 무너진 집 밖으로 내장처럼 흘러나와 있었다. 길고양이들이 쓰레기 더미를 헤치며 빈집을 드나들었고, 철근들이 살갗 뚫은 핏줄처럼 건물을 찢고 돌출했다. 어린이 없는 ‘구립 또또어린이집’은 전체가 ‘공가’였고, 떠나지 못한 세입자들은 철거투쟁을 하며 대책을 촉구했다. “분담금에 죽는다”는 문장과 “교도소에서 재건축하라”는 구호가 벽을 타고 덩굴장미처럼 붉게 피었다. ‘사가정 아이파크’ 모델하우스가 도로변에서 홀로 매끈했다. 현산의 올해 분양 ‘계획 물량’ 1만9570가구(일반분양 1만5108가구) 중 1034가구(조합원분양 제외)가 이 땅에서 더해졌다.
①사전조 투입 2008년 여름 두 여성이 단독주택 단지인 면목동 164-10 일대에 나타났다.(*이하 A의 주장) 그날 면목3구역 재건축 전쟁은 ‘비공식적으로’(공식 시공사 입찰공고는 2009년 11월11일) 시작됐다. 두 명의 여성은 현산 쪽 OS(아웃소싱·시공권 수주전 득표 요원)였다. 그들은 동네 부동산 사무실을 찾아다니며 얼굴을 텄다. 통반장 및 부녀회장과도 친해졌다. 업계에서 그들은 ‘사전조’로 불렸다. 사전조는 OS의 ‘척후’였다. OS 본진이 투입되기 전 사업구역을 훑으며 길을 닦았다. ‘시장조사’를 하고 사업성을 타진했다. 사업성이 클수록 사전 작업이 길었고 수주전도 치열했다. 사전조의 핵심 과제는 ‘아군’ 확보였다. 말발 세고 정보력 센 사람들을 붙든 시공사가 이겼다. G의 눈에 A가 포착됐다. (*C의 주장 “G 등은 우리가 보낸 사람이 아니다. 면목3구역도 입찰 1년 전부터 관심 가질 만한 지역이 아니었다.”)
②정보통 확보 A는 인근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했다. 그는 면목3구역의 사업성을 간파했다.(*이하 A의 주장) 민자사업으로 용마터널 공사가 추진(2009년 11월 착공~2014년 11월 개통)되고 있었다. 터널이 산을 뚫으면 동부간선도로·강변북로·올림픽대로와 연결됐다. A는 개발 호재를 예견했다. 당대 정권(이명박)도 적극적 인허가로 건설경기를 부양했다. A는 재건축조합 설립(2008년 9월4일 인가) 단계부터 관여하며 수십채를 선매입했다. 그는 수년간 조합원 전수의 정보를 수집해 정리했다. 주소와 연락처, 자택 평수, 이력과 특이사항, 주민간 친소관계, 조합장 지지 여부, 선호 시공사가 그의 정보로 일별됐다. 득표전에 뛰어들 시공사엔 ‘귀한 물건’이었다. G를 통해 C(2009년 6월께)와 B(9~10월께)가 차례로 A를 찾아왔다. A는 상가분양 등 이익 보장을 전제로 현산의 시공사 선정을 돕기로 했다. 수첩에 기록하는 일도 시작했다. (*C의 주장 “A의 요청으로 만났다. 그의 자료는 우리가 필요로 할 만큼 가치 있는 정보도 아니다.”)
③나눠먹거나 혈투하거나 먹이가 부족할 때 포식자는 출혈하며 싸운다. 재건축·재개발은 먹이가 고갈된 정글에서 시공사들이 사활을 거는 시장이었다. 시공사들은 ‘사전 교통정리’를 통해 충돌을 피하기도 했다. “들러리 입찰로 특정사를 몰아주며 구역별 시공권을 나눠먹었다.”(재개발업계 관계자) 전쟁은 사전작업에 돈과 공을 들인 시공사가 복수인 구역에서 벌어졌다. 투입 자원이 많을수록 발을 빼기 어려웠다. 두 회사가 면목3구역 최종 입찰(2009년 12월9일 마감)에 응했다. 현산의 상대는 삼성물산이었다. 두 시공사는 2009년에도 승패를 나눠 가졌다. 삼성은 광진구 구의1구역(6월)에서 현산을 이겼고, 현산은 성북구 장위7구역(8월)에서 삼성을 눌렀다. 면목3구역에서 다시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④수주 조직도 설계 사전조 보고를 바탕으로(*A의 주장) 현산이 수주 조직을 구성했다. 총괄 책임자는 B였다. 그를 정점으로 총 308명의 이름이 박힌 ‘면목3 단독주택재건축 수주활동 조직도’가 그려졌다. 활동의 최종 목표는 ‘시공사 선정 총회 승리’였다. 수주 전략을 짜는 ‘기획’과 돈을 집행하는 ‘예산’ 파트는 본사 직원들이 맡았다. 팀은 득표 작업 대상별로 짜였다. ‘집행부’ 2개 팀(45명)은 조합 이사들과 대의원들을 담당했다. 단지 내 조합원을 맡는 ‘내부’는 5개 팀(123명)으로 꾸려졌다. ‘외부’ 3개 팀(59명)은 조합원 자격을 취득한 투자자들을 책임졌다. 홍보, 전단, 물자, 전산 업무를 하청받은 용역 직원도 더해졌다. 비상을 대비해 지원조(15명)가 대기했다. (*OS업체 대표 D의 주장 “조직도는 현산이 불법 수주전을 직접 기획·지휘했다는 증거다.”)
조직도엔 ‘자생단체’란 이름을 쓰는 팀(15명)이 있었다. 유력 인사·단체 로비를 전담했다. 영향력을 행사해줄 정치인뿐 아니라 정당 조직까지 관리 대상이었다. 당시 한나라당과 민주당 담당자가 명시됐다. “힘과 조직을 동원해 바람이 현산 쪽으로 불게 하는 일”(수주 조직도의 일원)이 팀의 업무였다. “비밀 업무”이므로 현산 부장이 지휘했다. C였다. 그의 이름 아래로 14명이 팀을 이뤘다. (*C의 주장 “나는 모르는 조직도다. 경찰에서 보여줘서 알았다. 조직도의 (현산) 직원들 이름은 맞다. 팀별로 역할 분담을 한 것도 맞다.”)
철거촌 된 중랑구 면목3구역
현산 올해 분양 목표 1034가구
용마터널 추진되며 개발 호재
2009년 시공사들 재건축 접근
부동산업자 A 조합원 정보 축적
그해 승패 나눠 가진 현산·삼성
면목3구역에서 재격돌
현산의 ‘수주활동 조직도’ 작성
총괄책임은 본사 상무
정치인·정당 로비는 부장이 전담
대의원 동향이 사찰 일지처럼
⑤OS 본진 구성 “OS 구함, 면목3구역, 현산.”
2009년 가을 OS업체(현산의 위탁업체) 팀장 ㅇ이 문자를 뿌렸다. OS 명부의 연락처를 타고 문자가 전파됐다. E도 문자를 받고 왔다.
OS는 프리랜서였다. 현장이 있는 곳을 찾아 전국을 다녔다. 이 현장에서 ㄱ사를 위해 일한 OS가 저 현장에선 ㄱ사와 대결한 ㄴ사를 위해 일하기도 했다. OS는 재건축·재개발 총회 진행 등을 대행하고 홍보했다. 실제로는 그들을 고용한 건설사가 시공권을 따도록 ‘득표 작업’을 했다. 시공사가 조합원들에게 제공하는 금품·향응은 대부분 OS의 손을 통했다.
사업 현장이 많아 OS가 귀한 시절이었다. ㅇ은 18년 경력답게 이틀 만에 필요 인원을 채웠다. OS 한 명이 맡아야 할 조합원 수에 따라 팀 규모가 결정됐다. 면목3구역의 재적 조합원은 433명(시공사 선정 총회 때)이었다. 조직도 전체 구성원 308명 중 필드에서 싸우는 OS는 242명이었다. ‘필승’을 산출하기 위한 투입이었다.
전국에서 결합한 OS들이 교육을 받은 뒤 각 팀으로 배치됐다. 이날 첫 출근을 한 E는 ‘집행부 1팀’(조합·대의원 담당)에 속해 대의원들을 ‘커버’했다. 사전조 G는 ‘집행부 2팀’(임원·부동산·상가 담당)으로 뛰었다.
⑥‘대의원 성향 분석표’ 작성 현산은 A의 조합원 정보를 토대로 OS 활동 전략을 짰다.(*A의 주장) OS업체 대표 D가 A의 자료를 참고해 ‘대의원용 버전’을 만들었다.(*A와 D의 주장) D는 현산·삼성 지지 동향, 날짜별 대화, 금품 제공 내역, 담당 OS 등을 추가해 ‘성향 분석표’를 만들었다. (*C의 주장 “A가 조합원 정보를 보여준 적은 있지만 그에게 자료를 받은 적도, D에게 건넨 사실도 없다. 한패인 A와 D가 쓴 소설이다.”)
대의원 F의 인적사항은 E의 보고로 채워졌다. “이력·특징: 55세, ○○○○공사 근무, (주민들 사이에서) 인기 별로 없음. 조합장(과): 친함. 주변인물: 조합장·황○○·이○○·김○○ 부인 김○○.”
대의원들의 시기별 움직임이 2009년 11월9일부터 시공사 선정 총회 전날(12월25일)까지 꼼꼼하게 기록됐다. “11월9일~11월15일: 집행부 견제하느라 좀 나서는 편. ‘난 좋아하는 사람하고만 밥 먹어준다’고.”(F)
민감할 수 있는 사적 정보도 빠뜨리지 않았다. “시아버지 6·25 때 납북.”(분석표 3번 대의원) “무속인. 신 받은 지 16년.”(45번 대의원)
선호 음식과 취미는 향후 선물·향응 제공의 기초자료가 됐다. “아프리카·인도·중국 인형 수집.”(17번 대의원) “맥주·생선회 즐김.”(27번 대의원) “배드민턴·등산 좋아함.”(38번 대의원)
언제 누구에게 무엇을 줬는지도 빠짐없이 기입했다. 경쟁사 쪽으로 기울 것 같으면 돈이 건너갔다. “11월23일~11월29일: 부인이 삼성 홍보해주고 다님. 2차 300, 3차 300, 총 600만원. 냉장고, 김치냉장고.”(F)
시공사 지지 성향은 “강현”(현산 지지 강) “약현”(현산 지지 약) “강물”(삼성 지지 강) “약물”(삼성 지지 약)로 요약했다. 경쟁사 접촉 여부도 OS의 핵심 보고 업무였다. “조합 사무실에 데모하러 12명 동원했다.”(27번 대의원) “삼성이 밀어달라고 해서 혼내서 보냈다.”(37번 대의원) “모시는 신에게 현대 기도한다.”(45번 대의원) ‘약발’은 듣는지, ‘약’을 얼마나 더 쳐야 하는지가 그 정보로 가늠했다.
본인이나 가족·친인척 중 상대 쪽 계열사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는지도 탐문했다. “아들 삼성전자 부장.”(34번 대의원)
OS들이 매일 올린 보고가 차곡차곡 쌓일수록 표심의 흐름이 잡혔다. 특정 대의원이 총회 당일 어느 시공사를 선택할지 간파할 수 있었고, 그의 말이 어느 조합원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됐다. 누구를 통하면 그의 마음을 공략할 수 있는지도 파악됐다. “○○○ 대의원과 앙숙.”(5번 대의원) “○○○ 이사와 전 직장에서 상하관계.”(36번 대의원) “○○○씨와 모든 정보 공유.”(46번 대의원) 총회 직전 ‘머릿수 싸움’이 치열할 때 과감히 베팅할 조합원을 고를 수도 있었다.
대의원과 그 가족의 정보 전반이 사찰 일지처럼 정렬했다. 대의원 47명 전원이 그렇게 현산과 OS의 시선 아래 놓였다. 그 시선이 판을 읽으며 현산의 득표전은 디자인됐다.
“누가 더 많이 지르느냐의 게임”
⑦‘빅마’ 선점 2009년 32번 대의원은 현직 공무원이었다. 분석표엔 “부인이 실권 행사”라고 쓰였다. 대의원의 날짜별 동향엔 그 자신보다 부인의 반응이 주로 기록됐다. 2009년 11월8일 부인은 “(두 시공사를) 계속 지켜보겠다”는 모호한 표현을 남겼다.
그는 면목3구역의 ‘빅마’(빅마우스)였다. 동네에서 입김 세고, 목소리 크고, 발이 넓었다.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통반장과 부녀회장, 단골 많은 미용실장, 성당 구역장, 교회 목사 중에 빅마는 있었다.
빅마 발굴은 사전조의 최우선 임무였다. “재건축·재개발 현장에서 빅마는 승패에 절대적”(재건축업계 관계자)이었다. 일반 조합원들 표의 향방은 빅마의 입에 크게 좌우됐다. “집마다 대소사를 꿰고 밥그릇·숟가락 개수까지 아는 빅마”는 OS들의 나침반이었다. “오늘 저 집에 회갑잔치가 있다고 알려주면 OS들이 달려가서 경비를 계산했고, 내일 저 집이 김장을 한다고 하면 OS들이 몰려가 배추를 절였”다. 초보 OS들은 “빅마를 잡을 수 있다면 내장까지 꺼내주라”(현산 쪽 득표 활동한 OS)고 배웠다.
면목5구역엔 5명의 빅마와 1명의 ‘빅마급’이 있었다. 시공사에 빅마는 ‘돈 먹는 하마’였지만 사업권 획득으로 가는 확실한 카드였다. E는 담당 대의원 F가 친삼성 빅마와 “어울려 다닌다”고 우려 섞어 보고했다. F는 ‘양다리’였다.
⑧조합원 일상 장악 “어디야?”
팀장이 E에게 전화해 물었다. ‘비상시국’엔 조합원 집 밖에서 밤늦도록 대기했다. 불이 꺼져야 일을 마칠 수 있었다.
“집인데요.”
E가 소등 전에 퇴근한 날이 있었다. “팀장에게 엄청 깨져” 펑펑 울었다.
E는 ‘현산 과장’이었다. “싸움조”(OS 본진)는 고용 시공사의 명함을 파서 활동했다. 남성 OS는 ‘부장’ 호칭을 썼고, 여성 OS는 과장으로 소개됐다. OS가 다녀갈 때마다 조합원들 집엔 현산의 과장·부장 명함이 쌓였다.
E는 담당 조합원들을 매일 만났다. 조합원들이 고기를 좋아하면 같이 육식했고 술을 좋아하면 같이 음주했다. 마사지를 좋아하는 조합원과는 마사지숍에 동행했다. E의 일은 “악착같이 조합원들을 만나는 것”이었다. 빨래를 해주거나, 시장을 봐줬다. 독거노인은 밥상도 차려줬다. 신자가 아니어도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조합원 마음을 얻기 위해선 할 것 못할 것 가리지 않고 하는 것”도 E의 업무였다.
시공사 선정 총회가 임박했을 땐 ‘24시간 마크’에 돌입했다. E는 조합원들을 집에서 데리고 나와 삼성과의 만남을 차단했다. 경쟁사 OS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조합원의 시간을 최대한 빼앗았다. 박빙 승부가 점쳐질 땐 ‘별동대’가 투입됐다. 그들은 ‘오락가락하는 조합원들’을 일대일로 전담했다. 현산 쪽은 알바에게 무전기를 들려 골목마다 배치했다. 알바들은 삼성 쪽 OS가 접근할 때마다 무전을 쳤다. 팀장이 OS를 급파해 접촉을 막았다.
양사 OS들은 조합원 집 빈방을 단기 임대해 거주했다. OS들의 숙박과 분임토의 장소로 사용했다. 조합원과 쉽게 만나고 상대 시공사의 접근을 막는 구실도 됐다. 조합원 H의 자택 지하방에선 삼성 쪽 OS들이 생활했다.
OS는 돈으로 표를 사는 데 최적화된 시스템이었다. 2014년 6·4 지방선거 땐 새누리당 강동구청장 경선에 출마한 임동규 전 국회의원 쪽에서 OS를 고용해 득표활동(자격박탈)을 벌였다. 업계에선 “OS를 동원하면 남북통일도 가능하다”(OS업체 대표)는 말이 회자됐다.
⑨현금 지르기 H는 현산 쪽 OS ㅅ의 관리를 받았다. ㅅ은 방문할 때마다 과일과 화장품을 가져왔다. 그는 거의 매끼를 H와 먹었다. 갈빗집에서만 40여회 식사했고, 간장게장, 장어, 제주 갈치를 시켜줬다. 2009년 12월22일 ㅅ이 H의 집을 다녀갔다. 이불 속에 두고 간 봉투에 200만원이 있었다. 이튿날 돌려주겠다고 찾아간 H에게 ㅅ은 300만원을 얹어 줬다.(H의 ‘사실 확인서’)
“어느 시공사가 더 많이 지르느냐의 게임”(E)이었다. “밥을 먹이고, 헬스도 끊어주고, 관광도 보내주다가 ‘총알’이 만들어지면 먹고 튀지 않도록 몇 차례 나눠서” 줬다. 빅마에겐 큰돈이 들어갔다. 빅마 아내를 둔 32번 대의원은 면목3구역 대의원들 중 가장 많은 돈(5차례에 걸쳐 1600만원)을 받았다.
“밥 먹은 사람과 선물 먹은 사람과 돈 먹은 사람 사이엔 차이가 있다. 같은 값이면 선물할 금액만큼 현금으로 주는 게 낫다. 돈 먹은 사람은 확실히 찍는다. 현금 받은 사람은 죄의식이 작동한다. 대가를 돌려주지 않으면 대가를 치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생각을 비집고 순차적으로 돈을 주며 코를 꿴다.”(D)
H도 현산으로 돌아섰다. 대의원들에게 뿌려진 금품만 3억400만원(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발표)이었다. “현장 사무소에서 줄을 서면 현산 직원이 현금을 쌓아두고 있다가 나눠줬다고 OS들은 진술”(경찰 관계자)했다. OS업체는 금품·향응 제공 내역을 날짜별로 정리해 보관했다. 그들로부터 금품을 받은 31명의 조합원이 사실을 인정하며 확인서를 썼다. 현산만 ‘현금 지급은 없었다’고 반박했다. (*C의 주장 “식사나 향응은 인정하지만 돈을 주라고 OS에 지시한 사실은 없다. OS와 조합원 사이에 돈이 오갔다는 이야기 자체에 어떤 의도가 있다고 본다.”)
“우리(OS들)가 현대의 총회 승리를 위해 행한 ‘사실상 모든 활동’이 불법”(D)이었다. “법 위반 말썽이 생길 경우 시공사는 OS에 책임을 떠넘기고” 꼬리를 잘랐다. 피는 OS의 손에 묻었다.
“우리만 돈 안 주면 바보천치”
⑩정치인·정당·유력인사 로비 OS 본진 출근 첫날 C는 E가 배치된 집행부 1팀의 팀장이었다. 당일 C는 자생단체 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므로 C가 직접 맡았다.
사업권 수주는 시공사한테 “선거”(C)였다. 현산은 “외부 여론을 취합·형성하는 일”(C)을 자생단체의 역할로 규정했다. 선거이되 돈 선거였다. 외부 여론은 돈봉투를 줘서라도 유리하게 이끌어야 했다.
뒤탈 난 한정식을 먹은 날은 시공사 선정 총회 8일 전이었다. 중랑구의원 I(경찰 수사에서 인정)와 서울시의원 J(경찰에 “기억나지 않는다”)는 A의 주선으로 C의 돈봉투를 받았다. (*C의 주장 “A에게 갈취당했다. A가 두 사람한테 줘야 한다고 해서 줬다. 돈을 주지 않으면 A가 시공사 선정을 방해하겠다고 협박했다. 내 개인적 이익을 취하려 청탁한 것이 아니다. 시공사가 조합원을 직접 접촉해 금품을 제공하는 것은 금지되지만 그분들은 조합원도 아니다.”) 현산은 여야 정당 조직에도 돈을 건넸다. (*C의 주장 “각 정당의 동책과 통책 등을 만나 떡값 형태로 돈을 줬다. 관례였다. 다른 시공사들도 다 하는데 우리만 안 하면 바보천치 아닌가.”) 중랑구 지역언론과 건설·재개발 전문지 기자들에게도 7천여만원(현금·술값·밥값 등)을 썼다. C는 “매일 돈봉투를 들고 다녔”다. “기자들이 시답지 않은 일로 보도한다고 협박하면 ‘잘 봐달라’며 호주머니에 찔러주곤” 했다.
A는 시공사 선정 뒤에도 I와 J의 이름을 계속 수첩에 남겼다. “2010년 1월25일 I 의원 잔금. 3월5일 I 의원 집 공사 시작 예약. 3월11일 I 의원 융자신청 완료. 3월2일 J 의원님 계약 말씀드림. 3월15일 이○○, I 의원 집에 이사.” 두 의원이 면목3구역 조합원이 돼 시세차익을 얻고 나가는 전 과정을 A가 도왔다. (*A의 주장 “두 사람의 서류 작업부터 세입자 입주까지 내가 처리해줬다. 필요한 인허가를 두 사람으로부터 도움 받기를 기대했다.”) J는 시공사 선정 총회(2009년 12월26일)에 내빈으로 참석해 “심의 때 많은 도움을 드리겠다”(총회 녹취록)고 약속했다. I는 2014년 지방선거 때 책임당원투표를 앞두고 금품을 건네다 적발됐다.
⑪비자금으로 ‘총알’ 마련 “ㅇ토건 K회장 ‘수주 때 조합원에게 줄 돈(OS 비용) 현산 B상무에게 7억 빌려줬다’. 철거 주는 조건으로.”(A의 수첩)
2009년 12월 수주전이 정점으로 치달았다. 현산은 조합원에게 뿌릴 돈이 바닥났다. B가 철거업자 K에게 요구했다.
“이미 60억~70억원을 쓰다 보니까 총알이 떨어졌다. 돈 있는 대로 긁어모아 달라. 우리가 선정되면 철거공사도 주고 공사비도 올려줄 테니 같이 가자.”(경찰 발표)
K(구속)는 현산과의 철거계약을 기대하며 2014년 5월까지 현금 7억3천만원, 골프 접대와 마시지 등 2693만원의 향응을 B에게 제공했다. (*C의 주장 “정치인과 정당 등에 준 돈은 B상무에게 타서 썼다. 그 돈의 출처는 내가 알 수도 없고 알아서도 안 된다고 배웠다.”)
시공사들은 로비자금과 조합원들에게 뿌리는 비자금을 협력업체 등을 통해 조성했다. D는 2009년 11월 OS 활동비 결제서류를 두 개 작성(*이하 D의 주장)했다. 실제보다 OS 활동 인원을 늘려 2억의 차액을 만든 뒤 비자금으로 돌려줬다. 비자금 조성에 협조하지 않으면 시공사들은 용역업무를 맡기지 않았다. (*C의 주장 “비용은 감사팀의 검증을 받는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⑫총회 전날 ‘빼돌리기’ 눈앞에서 좋아하는 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연예인이 사회를 봤다. 즐거운 크리스마스 저녁이었다. 2009년 12월25일 H는 워커힐호텔(광진구 광장동)에 있었다. 남편과 아들, 손자가 같이 공연을 보며 식사를 했다. 쇼가 끝나자 B가 마이크를 잡고 인사했다.
“내일 잘 부탁드립니다.”
현산은 총회를 하루 남겨두고 1박2일짜리 관광코스를 짰다. 기호에 따라 코스를 선택할 수 있게 했다. 조합원들을 면목동 밖으로 빼내기 위한 기획이었다. 목적은 상대사 접촉 차단과 표 이탈 방지였다. H도 현산이 제공한 관광버스를 타고 가, 현산이 제공한 디너쇼를 관람한 뒤, 현산이 잡아준 방에서 잤다.
‘대의원 성향분석표’ 작성해 관리
OS들 통해 조합원 현금·향응 제공
시공사 선호도, 동향 등 전수 파악
“현장에서 빅마는 승패에 절대적”
“OS 동원하면 남북통일도 가능”
정치인·정당·전문지 기자에 현금
시공사 선정 뒤 사업비 급증
조합원 분담금 급상승 피해
현산 상무 구속, 법인은 불기소
모든 사업구역서 반복되는 원리
현산 쪽 OS들은 총회 보름 전부터 ‘약물’을 집중공략했다. ‘양다리’ 변수를 관리하며 ‘흔들면 흔들리는’ 조합원들에게 액수를 올려 ‘질렀다’. 표 계산은 이미 끝나 있었다. 패배를 예상한 삼성은 태릉의 갈빗집에 조합원들을 모아 갈비세트를 쥐여 보냈다. 비싼 호텔밥과 호텔잠을 즐긴 현산 지지 조합원들은 이튿날 현산의 관광버스를 타고 총회 장소(동대문구 답십리동 동대문구체육관)로 직행했다. 투표 결과가 나왔다. 재적 조합원 433명 중 현산 252표, 삼성 172표, 무효·기권 5표.
⑬약속파기·이중발주 시공사 선정 뒤부터 지켜지지 않는 약속들이 생겨났다. 수주전 때 현산은 ‘9대 혜택’ 중 하나로 ‘물가상승 등에 따른 추가부담금 없는 확정공사비’를 제시했다. 사업제안 당시 평당 공사비는 376만원(금융비 포함)이었다. 본계약 땐 421만5천원(금융비 제외)으로 뛰었다. 금융비(31만8천원)를 더하면 평당 공사비가 453만3천원이 됐다. 평당 77만원 인상액을 계획면적(6만8255.80㎡)에 물리면 수주전에 뿌린 돈(경찰 발표 60억~70억원·무상 이사비와 공짜 가전제품 등 제외)의 몇 배가 남았다. (*C의 주장 “공사기한을 넘기면 물가인상과 금융비를 반영한다는 단서조항이 있었다. 시공사가 폭리를 취하기 위해 조합원을 속이진 않는다.”)
현산은 조합원들의 표를 호소하며 ‘무상 이사비 2천만원’을 약속했었다. 2014년 11월 조합 총회에서 조합원들이 무상인 줄 알고 받았던 이사비는 시공사에서 빌린 돈으로 처리됐다. (*C의 주장 “세금문제 때문에 직접 주는 대신 전체 공사비를 그만큼 깎아주는 방식이었다. 결과적으로 무상이 맞다.”) 공사비 원가를 제시하라는 경찰 요구에 현산은 응하지 않았다. 구립 또또어린이집 신축은 시공사와의 부대복리시설 계약(2014년 12월1일)에 이미 포함(일종의 기부채납)돼 있었다. 2015년 10월 조합은 별도의 건설사와 어린이집 공사를 14억5천만원에 이중발주(조합장 기소 의견 송치)했다.
사업이 진행될수록 사업비가 급증했다. 2008년 9월 2087억원(조합설립인가)→ 2013년 6월 3868억원(사업시행인가)→ 2015년 1월 5498억원(관리처분계획인가). 조합원 분담금도 급상승했다.
범죄가 ‘관행’ 되고 ‘원리’ 되고
⑭꼬리 자르기 현산이 A에게 했던 약속(사업 참여를 통한 이익 보장)도 지켜지지 않았다.(*A의 주장) A는 자신이 관여했던 일들을 수사기관에 제보했다. 한배를 탔던 사람들이 2016년 제보자와 수사 대상자로 대질했다. (*A의 주장 “나는 현산이 시공사에 선정되도록 철저히 앞잡이 노릇을 했다. 뇌물·금품 제공의 다리 역할을 하며 잘못한 일들이 있다. 처벌받아야 한다면 나도 처벌받겠다. 나를 통해 돈이 오간 사실을 나는 인정하는데 돈을 준 쪽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한다.”)
수사를 진행한 경찰이 ‘현산 법인 기소’ 의견을 냈다. 수사를 지휘한 검찰은 수용하지 않았다. 수주전을 위해 비자금을 받은 B의 개인비리(배임수재)로 정리됐다. B의 지시를 받은 C와 그들이 시공권을 따준 현산은 불기소됐다. 현산은 B를 해고한 뒤 관계사 대표 자리를 줬다. “꼬리로 잘려도 보상이 뒤따르니까 B도 배신하지 않고 뒤집어썼”다(경찰).
⑮“돈질해서 돈 벌기” H(81)는 소송중이다.
2년 전 ‘현금 청산자’가 됐으나 집 감정가가 저평가됐다며 조합과 다투고 있다. 현재 70여명(소송 5명+세입자 등)이 ‘철거촌 면목3구역’에 남아 있다.
“돈 받고 선물 받을 땐 좋았지. 내 재산 잡아먹히는 과정이란 걸 몰랐으니까. 참말로 이 나라에서 살고 싶지 않아요.”
이주와 철거가 완료되지 않으면 현산의 ‘올해 분양 완료’ 목표는 불가능하다. (*C의 주장 “자기 욕심 채우려는 일부 사람들 때문에 다수 조합원과 시공사가 막대한 피해를 보고 있다.”)
경제지표 반등을 꾀할 때마다 정치는 부동산을 동원해왔다. 박근혜 정부에서 쏟아지고 있는 ‘역대 최다 분양물량’은 ‘역대 최대 가계대출’의 결과다. 돈·접대를 받으며 재개발·재건축의 주인공이라고 착각하는 조합원들은 레드오션을 피로 물들이는 건설사들의 치밀한 관리 안에 있다. 한국에서 재건축·재개발은 “돈질해서 돈 버는 사업”(D)이다. “면목3구역에서 벌어진 일은 ‘전국 모든’ 사업 현장에서 동일하게 반복”(A)되고 있다. 집이 전 재산인 서민들이 집값의 등락에 인생을 베팅하는 사회가 한국 토건자본주의의 ‘리얼 월드’다. 그 세계에서 일반화된 범죄는 ‘관행’이 되고 ‘사업 원리’가 된다.
글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84132.html#csidxea0089abff634d89018bffcd01e51c3
‘아는 사람만 아는 로또’ 재개발·재건축 보류지 입찰
서울 동작구 흑석7구역(아크로리버하임) 재개발 사업지 모습. 11월 입주 예정으로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다. [홍중식 기자]
재개발·재건축 투자는 크게 조합원 입주권 매입과 재건축 일반분양 청약 등 두 가지로 나뉜다. 여기에 일반인이 잘 알지 못하는 ‘보류지 입찰’이라는 선택지가 하나 더 있다. 특히 요즘 같은 부동산시장 혼란기에 ‘아는 사람만 아는 로또’로 관심을 끌고 있다. 시중에 잘 알려져 있지 않고, 입찰 정보도 오프라인으로 공유되는 경우가 많아 접근이 쉽지 않다.
재개발·재건축 투자 제3의 방법
이 밖에 준공 과정에서 관련법이 개정돼 생기는 잔여 물량도 보류지로 나온다. 조합이 재개발·재건축 과정에서 계약을 포기한 조합원의 매물이나 조합원의 개인사정으로 나오는 입주권 경매 매물 등을 거둬들였다 보류지로 내놓기도 한다.
보류지 입찰 공고는 완공을 6개월 앞둔 시점에 조합이 신문 등을 통해 한다. 입찰 시점은 조합이 정하기 나름이라 사업지마다 다르다. 입찰 방법은 부동산 경매 방식과 동일하다. 입찰 당일 참가신청서와 입찰서, 입찰보증금(통상 5000만 원) 입금증빙서류, 입찰도장과 인감증명서, 신분증 등을 지참해 입찰 장소로 가 제출하면 된다. 입찰이 모두 완료되면 조합은 공고한 시간에 공개 개찰해 낙찰자를 발표한다. 낙찰자는 지정된 날짜에 낙찰가의 10%(보증금 제외)를 계약금으로 내고 1개월 뒤 중도금 30%, 나머지는 입주지정 기간 안에 치르면 된다.
보류지가 알짜 투자처로 손꼽히는 가장 큰 이유는 입찰에 제한이 없기 때문이다. 일반분양은 1순위 청약통장이 있어야 청약할 수 있고, 조합원 매물은 조합원 지위 승계가 가능한 매물이어야 향후 입주를 보장받을 수 있다. 그런데 보류지는 청약통장이 없어도, 조합원이 아니어도 입찰할 수 있다.
전매제한에서 자유롭다는 장점도 있다. 일반적으로 서울과 수도권의 분양권은 전매제한에 걸려 등기 전까지 매도할 수 없다는 제약이 있다. 그러나 보류지는 조합에서 내놓는 일종의 조합원권이기 때문에 낙찰받은 직후 시장에 매물로 내놓아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설령 분양권과 마찬가지로 전매제한 적용을 받는 보류지 매물이라 해도 입찰이 입주를 코앞에 두고 진행되기 때문에 최소 6개월 이내 매도가 가능하다.
진입장벽 낮은 일종의 ‘갭투자’
서울 성동구 행당6구역(서울숲리버뷰자이) 전경. [홍중식 기자]
조합원 매물이나 일반분양에 비해 진입장벽이 낮은 것도 매력이다. 최초 계약 시점에 낙찰가의 10%를 현금 일시납하고, 1개월 뒤 20~30% 중도금을 납부한 뒤 입주시점에 잔금을 치르면 된다. 결과적으로 낙찰받은 뒤 40%만 내고 완공시점에 전세 세입자를 구해 잔금을 내면 되기 때문에 일종의 ‘갭투자’라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보류지가 관심을 끄는 것은 조합에서 제시하는 ‘입찰 최저가’가 시세 대비 낮게 책정되기 때문이다. 5월 24일 서울 성동구 행당6구역(서울숲리버뷰자이) 주택재개발조합은 총 3가구를 보류지로 내놨다. 입찰 최저가는 전용 59㎡(8층) 9억 원, 전용 84㎡(18층) 11억 원, 전용 108㎡(20층) 16억 원이었다(표 참조). 이들 보류지의 낙찰가는 각각 9억6260만 원, 12억 원, 16억5490만 원. 현재 해당 아파트의 시세는 전용 59㎡ 10억5000만~11억5000만 원, 전용 84㎡ 12억5000만~14억 원, 전용 108㎡ 16억5000만~18억 원에 형성돼 있어 낙찰자는 1억~2억 원의 시세차익을 얻은 셈이다.
보류지 입찰 현장을 찾은 이들은 얼마나 됐을까. 해당 조합 관계자는 “입찰 당일 현장에 모인 매수 희망자는 30~40명으로 가구당 평균 10 대 1 경쟁률을 기록했다. 현장에서 낙찰가를 두고 눈치작전이 벌어졌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입찰 최저가에 대해서는 “입찰 날짜에 임박해 기관에 감정평가를 의뢰했고, 현재 나와 있는 매물의 시세를 종합해 책정한 것이다. 매수 희망자들이 납득하지 못할 수준은 아니었다. 이에 입찰 전 조합에서 예상한 가격대에 모두 낙찰됐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해 12월 서울 성동구 금호15구역(e편한세상금호) 주택재개발조합도 전용 84㎡ 1가구에 대한 보류지 입찰을 진행했다. 당시 입찰 최저가는 7억500만 원이었으나 9억1200만 원에 낙찰됐다. 입찰 최저가보다 2억 원 이상 높은 가격이었지만 입찰 직전 실제 거래된 분양권이 9억1000만 원인 점이 반영된 것. 해당 아파트는 올해 3월 입주를 시작했는데 현재 시세는 11억8000만~12억8000만 원으로 낙찰가보다 2억~3억 원 높게 형성돼 있다.
이 밖에 서울 시내 알짜 보류지도 상당수다. 5월 31일 진행된 동작구 흑석7구역(아크로리버하임) 보류지 입찰에는 총 10가구가 나왔다. 입찰 최저가는 전용 59㎡(2가구) 11억 원, 전용 72㎡(1가구) 11억5000만 원, 전용 84㎡(6가구) 13억3000만~13억5000만 원, 전용 113㎡(1가구) 18억9000만 원 등이다. 해당 아파트는 11월 입주를 목표로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다.
강남권 보류지 입찰도 대기 중이다. 6~7월쯤 서초구 삼호가든 4차(반포센트럴푸르지오써밋) 보류지 입찰이 진행될 예정이며 총 13가구가 매물로 나온다. 전용 59㎡ 5가구, 전용 84㎡ 2가구, 106㎡ 2가구, 110㎡ 2가구, 133㎡ 2가구 등으로, 입찰 최저가는 조합에서 아직 공고를 내지 않았다. 현재 매물로 나온 해당 아파트 조합원 물량은 전용 59㎡ 15억8000만~16억5000만 원, 전용 84㎡ 18억4000만~21억 원, 전용 133㎡ 25억5000만~26억 원 등에 시세가 형성돼 있다.
현금 조달·시세 분석 등 꼼꼼히 따져야
9월 입주를 앞둔 서울 서초구 삼호가든 4차(반포센트럴푸르지오써밋) 조감도. [사진 제공·대우건설]
따라서 보류지에 관심이 있다면 입찰에 나서기 최소 1주일 전 은행권 대출 여부를 직접 알아보는 것이 좋다. 결과적으로 최초 계약금인 낙찰가의 10%, 중도금인 낙찰가의 30%를 납부할 수 있는 경우에만 입찰에 응해야 한다. 만약 낙찰받았다 자금을 마련할 수 없다는 이유로 뒤늦게 계약을 포기할 경우 5000만 원가량의 입찰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다. 이렇게 낙찰자가 계약을 포기하거나 아무도 입찰하지 않아 주인을 찾지 못한 보류지는 추후 재입찰된다.
주의해야 할 점은 또 있다. 조합에서 책정하는 입찰 최저가가 시세 대비 얼마나 낮은지 따져봐야 한다. 시세와 거의 비슷하다면 굳이 입찰할 필요가 없다. 흑석7구역의 경우 조합에서 고지한 입찰 최저가가 시세와 거의 비슷하게 나와 논란이 되고 있다. 이에 대해 해당 조합 관계자는 “입찰 최저가는 조합에서 인근 부동산공인중개사무소를 탐문한 뒤 최근 한두 달 사이 나온 매물의 호가와 실거래가를 적절히 반영해 책정했다. 특히 1~2월 국토교통부 아파트 분양권 실거래 내용을 보면 전용 84㎡가 13억5000만 원에 거래됐다. 또 실거래가가 등록되지 않았지만 가장 최근 한 부동산공인중개업소에서 14억 원에 거래를 성사했다고 한다. 따라서 13억3000만~13억5000만 원은 합리적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인근 부동산공인중개업소들의 말은 조금 달랐다. 한 부동산공인중개업소 직원은 “4월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개시 이전에 급매물로 나온 것들이 소화된 이후 최근에 나온 매물들은 거래가 되지 않고 있다. 물론 현재 나온 전용 84㎡ 호가는 13억5000만 원보다 높지만 그 가격에 사려는 사람이 없다. 보류지 입찰 최저가는 시세 수준이라 어느 정도에 낙찰될지 지켜봐야 한다”고 조심스레 전망했다.
실거주가 아닌 투자 목적으로 보류지 입찰을 관심 있게 보는 이들도 미리 따져봐야 할 부분이 있다. 통상 갭투자는 전세를 끼고 이뤄지는데, 보류지 역시 입주 시점에 잔금 60%에 해당하는 금액을 전세 임대를 통해 구할 수 있기 때문에 비슷한 성격을 가진다. 그런데 새 아파트의 경우 입주시점에 임대 매물이 쏟아져 전세가가 인근 아파트보다 1억~2억 원 싸게 나오기 마련이다. 특히 재개발·재건축 사업을 통해 완공된 아파트의 경우 원주민이 들어가 살기보다 임대로 내놓는 매물이 많아 향후 받을 수 있는 전세금을 최대한 낮게 설정하고 대출을 받아 계약해야 한다.
흑석7구역 인근 부동산공인중개업소 직원 역시 비슷한 취지의 말을 했다. 그는 “전세 계약은 입주 예정 시기 6개월 전부터 서서히 이뤄진다. 현재 전용 85㎡의 전세가 평균은 8억 원인데 급매물의 경우 7억 원대도 있다. 통상 입주시점에 더 떨어지므로 11월 입주시점에는 좀 더 조정돼 7억 원대 매물이 늘 것으로 보인다. 현재 매매와 전세의 갭이 최소 5억 원인 상태라 갭투자를 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세 하락 시기, 낙찰가보다 떨어질 수도
서울 성동구 행당6구역(서울숲리버뷰자이) 보류지 입찰 당일 현장 모습. [인터넷 부동산 카페]
그러나 4월 이후 두 달 동안 부동산시장의 흐름 변화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 4월 1일부터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가 시작되면서 서울 아파트 거래량이 급격히 줄었다. ‘똘똘한 한 채’ 붐을 일으키며 강세를 보이던 강남4구의 아파트들도 호가가 1억~2억 원씩 떨어지고 있다. 서초구 잠원동 아크로리버뷰(6월), 반포동 신반포래미안아이파크(8월),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12월) 등 강남4구 신규 아파트 공급물량도 줄줄이 대기 중이라 인근 아파트 전세가도 약세를 보이고 있다.
향후 부동산 시세가 완만한 하강 곡선을 그릴 것이란 전문가의 의견도 적잖다. 이러한 시점에 보류지 낙찰 이후 입주시점에 낙찰가보다 낮은 매물이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이럴 때일수록 부동산시장의 대세 흐름을 잘 살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미윤 부동산114 책임연구원은 “일반적으로 보류지는 분양가보다 비싸지만 일반 매물보다 싼값에 매입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 그런데 가격적인 면에서 실거래가와 비슷한 경우에는 특별한 매력이 없다고 판단된다. 일반분양은 건설사가, 보류지는 조합이 내놓는 물건으로 주체의 차이만 있을 뿐 낙찰자에게 인센티브가 돌아가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보류지 투자에 신중히 접근할 것을 조언했다. 이 연구원은 “부동산 가격이 하락 국면에 있다면 굳이 비싸게 보류지를 잡을 필요가 없다. 부동산공인중개업소에 가도 그 가격에 매물이 나와 있기 때문이다. 투자자 처지에서 보류지의 조망권, 일조권, 입지, 개발호재 등을 꼼꼼히 따져보고 실거래가와 분양가, 보류지 입찰 최저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주간동아 2018.06.06 1141호 (p22~25)
http://weekly.donga.com/List/3/all/11/1339313/1
쫄지 마, 재개발 대응 매뉴얼이 있잖아
참사가 나도 바뀌지 않는 세상, 알아야 피해 보지 않는다…
전문가도 “너무 어렵다”는 재개발 제도를 해부한 실전 Q&A
하지만 각종 지표는 재개발이 도대체 누구를 위해 진행되는 사업인지 의심케 한다. 재개발의 일종인 서울시 뉴타운 사업의 경우, 재개발이 끝난 뒤 집주인이 그 지역에 계속 사는 비율은 20%에 불과하고 재정착에 성공한 주거 세입자는 12.3%에 그친다. 공사를 진행하는 대기업 건설사는 어딜 가나 큰돈을 벌고 결국 승자가 된다. 땅주인이나 특히 세입자들은 쫓겨나거나 눈물짓기 십상이다.
상가 세입자도 마찬가지다. ‘용산 참사’ 때 철거민이 망루에 오른 까닭은 임시 상가를 보장하고 현실에 맞는 보상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1월20일 참사 1주년을 맞는 지금, 휴업보상금이 석 달치 영업이익에서 넉 달치로 ‘언 발에 오줌 누듯’ 오른 것 빼고는 그다지 개선되지 않았다. 그래도 재개발은 여기저기서 계속 진행 중이다.
어느 재개발 현장을 가든 조합원이나 세입자가 조합을 상대로 소송을 벌이지 않는 곳은 없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투명하지 못한 조합 행정이다. 낡은 주택에 사는 중·장년층 가옥주들은 조합 쪽 ‘오에스’(OS) 요원들의 사탕발림에 재개발 동의서에 인감도장을 찍었다 결국 추가 분담금을 내지 못해 지역을 떠나는 일이 허다하다. 세입자에게 법에 정해진 권리를 주지 않으려는 조합은 널리고 널렸다.
그래서다. 대도시에 사는 웬만한 시민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재개발, 과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지난해 7월 ‘MB시대 수사받는 법’(769호)에 이어 <한겨레21>이 ‘재개발에 대처하는 법’을 표지이야기로 내보내는 까닭이다. 어떻게 하면 재개발 과정에서 법으로 보장된 자신의 권리를 챙길 수 있는지, 분쟁을 사전에 막으려면 어떤 정책적 대안이 필요한지 등을 한국 사회 최고의 재개발 전문가들에게서 들었다.
재개발 문제를 오래 고민해온 시민단체 ‘나눔과 미래’의 이주원 지역복지사업국장, 정비용역업체를 운영하면서 바람직한 재개발에 대해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내온 백준 J&K도시정비 대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서 민생경제위원회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는 정소홍 변호사, 그리고 서울시 주택국에서 재개발 실무에 가장 밝다는 윤호중 정비계획팀장이 일제히 대답을 내놓았다. 1월19일 토지주택공공성네트워크가 발표하는 ‘용산 참사 1주기 재개발 행정 실태와 개선 촉구’ 자료집의 도움도 받았다.
조합원이나 세입자들의 당연한 권리도 소송을 걸기 전까지는 돌아보지 않는 조합이 허다하다. 잘 알아도 권리를 찾기가 힘들지만, 모르면 그냥 당한다. 재개발 과정에 대한 설명(표)을 참조하면서 아래 문답을 통해 ‘꼭 알아야 할 재개발 상식’을 마스터하자.
A: 오에스 요원들이 싸들고 다니는 비누나 수건세트에 혹하는 연로한 가옥주들, 많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거 전부 공짜 아니다. 결국 건축비에 다 포함되는 돈이다. 그 단계에서는 절대 인감도장을 꺼내면 안 된다. 오에스 요원들의 말, 대부분은 ‘구라’다. 재개발조합 추진위에서 돈 받고 일하는 이 사람들은 추진위에 유리한 정보만 일방적으로 유포한다. 나중에 책임을 지지도 않는다. 심지어 그들은 “지금 집 1평과 나중 아파트 1평을 맞바꿀 수 있다”는 허황된 말도 한다. 절대 귀를 솔깃해서는 안 된다. 수많은 지역의 조합 추진위가 나중에 조합원이 입주 시점에서 내야 할 부담금을 명확히 밝히지 않은 채 도장을 받아갔다가, 애초 제시한 액수보다 70∼80% 오른 부담금 내역에 발끈한 조합원들과 갈등을 겪고 있다. 이런 경우 사업시행인가나 관리처분인가 자체가 무효라는 판결이 내려진 적도 있다. 또 상당수 법원은 “자세한 추가 부담금 제시 없이 설립된 조합 자체가 무효”라는 판결을 내놓았고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오에스 요원들은 대개 “현재 시점에서는 자세한 부담금 내역이 안 나온다”고 말한다. 이는 해당 재개발사업의 사업성이 나쁜 탓에 조합원이 추가 부담해야 할 돈이 크다는 사실을 조합 쪽이 은폐하려는 의도다. 조합 추진위 쪽으로부터 구체적인 사업비용 내역과 이로 인한 부담금이 얼마인지 정확하게 설명을 들은 뒤에 인감도장을 서랍에서 꺼내야 한다.
실전팁: 서울시가 추가 부담금을 산정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오는 2월부터 실제 가동할 계획이다. 현재 조합원의 재산 가치와 함께 설계부터 시공, 조경까지 사업 과정에서 필요한 각종 사업비용을 추산함으로써 조합원이 나중에 추가 부담하게 될 액수를 산정하는 프로그램이다. 조합원 자격을 갖고 있는 이들은 서울시 누리집에 들어가면 정비구역이 지정된 25개 자치구 재개발 지역의 추가 부담금 예상 현황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Q: 마지막까지 재개발 동의서에 도장을 찍지 않았다. 그럼 어떻게 되는 건지 궁금하다. 우리 집만 빼고 재개발하는 것인가?
A: 재개발은 일종의 공익사업으로 분류된다. 단순히 개인의 재산 가치를 늘리기 위해 하는 사업이 아니라 낡은 주거 환경을 개선하면서 뒤떨어진 도시 기반시설을 개선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단 조합이 설립되면 해당 구역의 모든 토지 등 소유자는 모두 조합원이 된다. 이를 ‘강제가입제’라 한다. 구역에서 한두 집만 남겨두고 아파트를 짓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단, 조합이 설립되려면 정비구역의 토지 등을 소유한 사람 75%, 그리고 전체 재개발 대상 면적의 50% 이상의 소유자가 동의해야 한다.)
조합이 설립되면 선택은 셋 중 하나다. 부담금을 안고 아파트를 분양받든, 집이나 땅을 미리 제3자에게 팔아치우든, 나중에 ‘현금 청산 대상자’가 돼 조합에 현금을 받고 집을 팔든 결정해야 한다. 마지막 방법을 선택할 경우, 금액을 놓고 조합과 분쟁이 벌어지면 결국 감정평가를 하기 때문에 대개 시세에 못 미치는 금액을 받는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재개발과 달리 재건축은 공익사업으로 분류되지 않지만, 사정은 비슷하다. 사업 초기에 조합이 재건축 반대 가옥주를 상대로 매도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 조합이 조합 가입을 촉구하는 공문을 보낸 뒤 두 달 안에 응하지 않으면 재판을 통해 해당 가옥을 강제로 사들이는 제도다.
A: 재개발 지역의 감정평가액은 늘 거래 시세보다 낮게 책정된다. 집을 팔고 나가려는 이들과 조합이 분쟁을 벌이는 지점이다. 개념은 이렇다. 조합원은 일반 분양자보다 더 나은 조건으로 분양을 받는데, 이에 따라 조합원 지분에 웃돈이 붙는다. 또 재개발은 공익사업의 일종이기 때문에 감정평가 때 개발이익을 배제하도록 하고 있지만, 정비구역 지정만 돼도 개발이익에 대한 기대로 땅값이 뛴다. 이로써 개발이익은 이미 발생한다. 그래서 감정평가를 하기 직전인 사업시행인가 시점을 기준으로, 해당 지역이 아니라 인근 표준지의 공시지가를 바탕으로 감정평가액을 산정한다. 시세보다 감정평가액이 낮을 수밖에 없다. 감정평가액은 구청장이 선정한 감정평가업자 2명 이상이 평가한 금액의 평균치로 산정한다.
상대성의 원리도 작용한다. “옆집은 평당 1천만원인데 왜 우리 집은 800만원이야”라는 볼멘소리도 여기저기서 들린다. 하지만 감정평가액은 조합원들이 워낙 눈에 불을 켜고 들여다보는 부분이라 실제로 일부에게만 특혜를 주는 일은 거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자산에 대한 감정평가액이 높게 나올 경우 좋은 건 재개발 뒤 입주해 살지 않고 그 전에 현금 청산을 받고 떠나는 이들이다. 백준 J&K도시정비 대표는 아파트 분양을 받을 이에게 감정평가액이 높은 건 오히려 좋지 않다고 얘기한다. “아파트 분양가액은 공사비를 비롯한 각종 사업비에 땅값(전체 조합원의 지분값)을 합쳐서 결정되므로, 지분에 대한 감정평가액이 높아질수록 분양가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Q: 조합이 시공사 선정 단계에서는 건축비가 평당 1300만원이라고 하더니, 관리처분총회 때는 300만원이 오른 평당 1600만원이라면서 그 이유를 제대로 밝히지도 않은 채 관리처분총회를 통과했다.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
A: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가짐이 다르다고 해야 할까. 시공사들은 처음엔 어떻게든 공사를 따내려고 낮은 건축비를 제시한다. 그 뒤 관리처분총회 때 보면 건축비가 늘어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재 재개발사업에서 나타나는 불합리한 관행 가운데 하나다. 조합과 협력사들의 이런 농간에 조합원들은 별다른 대책 없이 당하기 쉽다.
건축비 혹은 전체 사업비가 애초 제시된 수준에서 확연히 늘어날 경우 이를 관리처분총회에서 통과시키려면 재건축조합의 일반총회 때 가결정족수(조합원 과반수의 찬성)보다 많은 ‘조합원 3분의 2 이상의 결의’가 필요하다는 법원의 판례도 있다. 조합의 정관 변경(조합원 3분의 2 이상 찬성)에 준하는 엄격함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지난 2008년, 조합 설립 때 받은 동의서에서는 사업비를 779억원가량으로 해놓고 사업시행계획을 인가받을 때는 무려 500억원이나 늘어난 액수를 사업비로 산정하면서 조합원 과반수의 찬성만을 얻은 데 대해 일부 조합원이 제기한 소송에서 의정부지법은 “적법한 의결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분양 신청을 비롯한 조합 업무를 정지하라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조합설립인가 신청 때 제시한 건축비가 관리처분인가 때 15∼20% 이상 올랐을 때는 구청장이 조합의 관리처분계획을 인가하지 않도록 하는 방향의 제도적 개선책이 필요하다.
실전팁: 관리처분총회 의결 비율이 조합원 3분의 2 이상에 미치지 못한 경우에는 해당 총회의 결의가 무효이니 이를 확인해달라는 소송을 법원에 내는 것도 가능하다. 이를 무기로 조합 쪽에 건축비가 어떤 이유로 올랐는지 해명하라고 요구해보는 것도 좋겠다. 소송, 시간도 오래 걸리고 돈 들고 짜증난다. 그보다는 귀찮더라도 조합원들이 조합 업무를 평상시에 감시하는 게 훨씬 낫다고 전문가들은 충고한다. 총회가 열리면 조합원 발언권을 이용해 따지고 물어야 한다.
A: ‘주객이 전도됐다’는 말은 이럴 때 써먹으라고 있는 것이다. 원래는 조합이 경쟁입찰을 거쳐 가장 유리한 건축 조건을 제시하는 건설사를 시공사로 뽑아야 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 대기업 건설사들은 구미가 당기는 지역을 발견하면, 그 지역에 조합을 설립하는 과정부터 관여한다. 당장 현찰이 없는 조합의 운영비와 재개발 동의서를 받을 때 드는 홍보인력 비용을 금융권 등에서 빌려 쓰는데, 이런 업무는 대개 정비용역 업체가 대신해준다. 이때 자금력이 달리는 조합은 그 지역에 군침을 흘리는 대기업에서 자금을 지원받기도 한다. 대기업 건설사들은 간혹 잿밥에만 눈먼 조합추진위 임원들에게 뒷돈을 대고 나중에 시공사 선정을 약속받는다. 이러다 보면 건설사들이 조합을 사실상 좌지우지하는 일들이 벌어지게 마련이다. 건축비가 갈수록 오르는 까닭이다.
조합 비리를 예방하려면 조합원이 적극적으로 조합 일에 참여하고 밀착 감시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조합 내부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알 수 있고 권한도 많은 감사·이사·대의원 등으로 나서라고 충고한다. 일반 조합원도 임원 선임권을 가지며 총회에 출석해 발언하고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으니 이런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실전팁 : 서울시가 2월 즈음부터 시청 누리집에 웬만한 재개발 조합들의 운영 내용과 과정을 인터넷에 의무적으로 띄워놓게 하는 ‘클린업시스템’을 가동한다. 지금은 정보공개 청구를 해도 잘 내놓지 않는 조합의 각종 계약 체결 내역 등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시스템 개발을 완료한 뒤 보완 중이다. 이미 알려진 대로 구청장이 시공사 선정 등까지 책임지는 ‘공공 관리자 제도’는 서울시가 성수동 재개발 지역에 시험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이를 제도화하기 위해, 각 지자체가 조례로 이 제도를 도입할 수 있도록 하는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이하 도시정비법) 개정안이 국회 국토해양위에 계류 중이다. 법이 통과되면 서울시는 전 지역에서 이 제도 도입을 강제할 계획이다.
Q: 상가 세입자다. 권리금 5천만원에 인테리어 비용 5천만원을 들여 지금의 치킨 가게를 5년째 운영 중인데, 얼마 전 이 지역에 재개발조합 설립 신고가 됐다. 어떤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
A: 재개발 때문에 가게를 옮기는 데 따르는 이전 비용과, 영업을 하지 못해 발생하는 넉 달치 손실 등을 포함한 영업손실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 그러려면 적어도 사업시행 인가일 이전부터는 영업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사업자등록증이나 상가임대차계약서로 증명하면 된다. 사업시행 인가일 뒤에 이사왔더라도 직전에 장사하던 가게의 업종과 사업장 규모 등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영업을 하는 경우에는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영업손실액은 기본적으로 소득증명이 있으면 소득증명서로, 없으면 같은 업종의 평균 2년치 소득 평가로 정한다.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 시행규칙 47조에 보상에 관한 상세 규정이 있지만, 그 규정도 애매해 정확한 보상금액을 산출하기 위해 감정평가를 하는 게 관행이다. 문제는 영업이익 또는 영업손실을 산정할 수 있는 객관적 기준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보통 구청장이 선정한 감정평가사 2명이 매긴 감정평가액의 산술평균을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감정평가사는 영업자가 주장하는 이익과 납세 기준에 의한 영업실적을 모두 신뢰하지 않는다. 결국 현실적인 보상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
권리금의 경우 ‘시설투자비’ 명목으로 보상받을 수 있다는 의견도 있으나, 이를 인정해 보상금이 올라가면 개발이익은 낮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조합은 절대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상가 세입자는 돈 들여 시설을 갖추고 단골도 확보했는데 이를 보상해주지 않으니 억울하다. 재개발 뒤 상가 세입자는 신축 건물에 다시 임대를 얻기 어렵다. 대폭 오른 보증금 등을 감당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용산 참사 때도 이 문제가 쟁점 가운데 하나였다. 제2의 참사를 막으려면 제도 개선이 절실하다.
실전팁: 국토해양부가 이런 현실을 인정해 권리금 보상 방안을 구체화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할 계획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정부가 현실을 반영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지켜볼 필요, 많다.
A: 재개발조합은 무슨 죄가 많은지 보상금 산정 내역조차 보여주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상가 세입자들과 늘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다. 조합은 감정평가사가 어떤 자료를 갖고 어떤 기준으로 감정평가를 하는지 그다지 관심이 없다. 구체 내역서를 갖고 있는 경우도 드물다. 그래서 정보공개 청구를 해도 대부분 거부당한다. 조합이 보상내역을 공개하도록 행정지도해달라고 세입자들이 자치구에 요청해도 자치구는 자신들 소관이 아니라며 거부하기 일쑤다. 따라서 세입자들은 그동안 행정법원에 영업보상금청구소송이나 보상금증감소송을 제기한 뒤에야 보상내역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실전팁: 보상금액에 불만이 있는 경우 광역자치단체와 중앙정부의 토지수용위원회에 재결을 신청할 수 있다. 그뒤 관리처분계획 공람공고 기간 동안 다시 자치구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이마저도 안 받아들여지면 해결 수단은 소송밖에 없다. 이러한 이의 제기 과정도 감정평가사가 재감정을 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그다지 실익은 없는 편이다. 따라서 처음 감정평가가 이뤄질 때 최근 가게에서 생긱 영업이익 등을 최대한 자세히 알릴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좋다. 이주원 국장은 “조합이 세입자에게 자료 공개를 제대로 하도록 관할 행정청의 철저한 감독과 지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정소홍 변호사는 “세입자들도 공부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영업손실 평가 방법을 본인이 알아야 제 목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휴업 기간 중이라도 고정 인력이 필요한 경우 인건비가 그만큼 보상금에 반영된다. 예전엔 알아야 면장을 했다면, 요즘엔 알아야 피해받지 않는 세입자가 된다.
실전팁: 현행 법은 조합이 하고 있는 행정을 자세히 공개하라고 한다. 하지만 정보공개 청구를 해도 조합은 이런저런 이유로 자료를 내놓지 않는다. 이럴 때는 공개를 거부한 조합 임원을 형사고소하거나 고발해야 한다. 조합 임원은 공무원에 준하는 신분을 인정받기 때문에, 벌금 100만원 이상을 선고받으면 임원 자격이 사라진다.
Q: 셋집에서 가내수공업으로 봉지 접는 일을 10년째 해왔다. 유일한 가계 소득이다. 나 같은 무허가 영업자도 영업손실보상금을 받을 수 있을까?
A: 사업자등록증처럼 상가 세입자임을 증명할 수 있는 근거가 없는 경우에도 보상받을 방법은 있다. 1989년 1월25일 이후 지은 건물에서 영업을 하는 무허가 영업자가 재개발사업으로 영업을 더이상 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 영업손실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 매년 통계 작성기관이 조사·발표하는 가계조사통계의 도시 근로자 가구 월평균 가계지출비를 기준으로 산정한 3인 가구 석 달치 가계지출비에 해당하는 금액을 준다. 이와 별도로 영업시설이나 원재료, 제품 등을 옮길 때 발생하는 이전 비용과 이전할 때 생기는 추가 비용을 손실보상금으로 받을 수도 있다. 허가를 받은 영업과 달리 미신고·무허가 영업자는 영업 사실과 소득 등을 확인할 수 있는 관련 자료를 더 꼼꼼히 제시해야 한다. 무허가 영업자 가운데 특히 노점상은 아예 법의 보호 대상에서 빠져 있다. 이주원 국장은 “상가 세입자들이 자체적으로 주민 조직을 결성해 재개발조합에서 정당한 보상을 받아내야 한다”고 주문한다.
A: 아직도 이런 후진 조합, 있다. 임대아파트와 주거이전비는 2007년 4월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 시행규칙이 바뀌면서 ‘or’가 아니라 ‘and’가 됐음에도 여전히 조합이 주거 세입자에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는 경우가 있어 몸살을 앓고 있다. 서울 왕십리 뉴타운 1구역 조합도 처음에는 둘 중 하나만 선택하라고 했다가 세입자들의 거센 항의를 받고 나중에 두 가지 모두 인정해줬다. 자격요건만 되면 누구나 둘 다 신청할 수 있다. 법이 바뀐 뒤 사업시행인가가 승인된 구역의 모든 세입자는 둘 다 신청할 수 있고, 임대아파트 입주 여부와 상관없이 주거이전비를 받을 수 있다.
실전팁: 악질적인 조합이나 집주인들이 세입자에게 주거이전비 포기각서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재계약을 안 해줄까봐 각서를 써줬다는 세입자들 목격담이 들린다. 본인이 쓴 각서, 나중에 되돌리기도 쉽잖다. 소송해야 한다. 조합이나 집주인이 그렇게 나오면 쫄지 말고 일단은 “무슨 법적 근거로 요구하냐”고 따져묻자.
Q: 재개발이 아니라 재건축 구역에 사는 단독주택 세입자다. 임대주택을 받을 수 있나?
A: 쉽지 않다. 지금까지 재건축 구역에 사는 세입자가 임대주택을 받은 사례가 보고된 바 없다. 재개발의 경우는 공익사업의 성격을 인정받기 때문에 주거 세입자에게 주거이전비를 줌과 동시에 임대주택을 받을 기회도 주고 있지만, 재건축의 경우는 공익사업이 아니라 사인의 이익을 위한 사업이라고 보기 때문에 두 권리 모두 주지 않는다.
세입자 처지에서는 재개발이든 재건축이든 살던 집에서 쫓겨나는 건 마찬가지인데, 권리 면에서는 전혀 다른 처우를 당하는 것이다. 재건축 지역의 세입자들이 이런 불합리한 제도를 바꾸기 위해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할 필요가 있다.
Q: 조합이 우리 가족은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지 열흘 뒤 지금의 셋집에 이사왔다며 주거이전비를 안 준다고 한다.
A: 재개발조합들은 예전부터 주거이전비를 조금이라도 덜 주려고 자격조건을 까다롭게 적용했다. 적어도 정비구역 지정을 위한 공람공고일에는 해당 구역에 살고 있어야 주거이전비를 받을 수 있다고 관행적으로 적용해왔다. 법률에 명확한 규정은 없었다. 그러나 공람공고일 이후 이주해온 세입자들이 반발하면서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공람공고일 이후~사업시행인가 이전’에 들어온 세입자라도 주거이전비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판결을 잇따라 내놨다. 그럼에도 지난해 12월 정부·여당은 관련 시행규칙을 개정하면서 정비구역 지정 공람공고일을 주거이전비 지급 기준일로 못박았다.
그러나 2009년 12월1일 이후 사업시행인가를 신청하는 정비구역부터 적용한다는 경과규정을 두었기 때문에 12월1일 이전에 사업시행인가를 신청한 정비구역의 세입자들은 조합을 상대로 적극적으로 소송을 제기해 주거이전비를 받아야 한다.
Q: 내가 살고 있는 지역 조합의 관리처분인가가 열흘 전 끝났다. 그런데 지방에 한동안 내려가 살아야 하는 급한 사정이 생겼다. 지금 이사가면 주거이전비를 안 줄까?
A: 재개발사업 시행 절차를 보면, 임대주택 입주권과 주거이전비를 받는 세입자는 재개발조합이 사업시행인가를 구청에 신청해 인가를 받을 때 확정된다. 조합이 제출하는 사업시행계획서에 세입자의 주거대책과 임대계획이 확정돼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업시행인가 및 고시 이후까지 거주해 자격요건이 되면 이후 계속 거주하지 않아도 주거이전비를 청구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일부 조합은 사업시행인가 뒤 다른 곳으로 거주지를 옮긴 세입자에게 이 권리들을 인정하지 않아서 분쟁이 일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럴 때는 2006년 대법원 판결을 들이밀자. 사업시행인가 뒤에 이사갔다는 이유로 주거이전비를 받지 못한 세입자가 제기한 소송에서 당시 대법원은 “세입자는 이후 사업시행자의 주거이전비 산정 통보일 또는 수용 개시일까지 계속 거주할 필요가 없이 주거이전비와 이사비 청구권을 획득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주거이전비와 이사비의 성격을 두고 “세입자들의 조기 이주를 장려해 사업 추진을 원활하게 하려는 정책적인 목적과 함께 주거 이전으로 인해 특별한 어려움을 겪게 될 세입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보장적인 차원의 돈”이라고 규정했다.
실전팁: 그럼에도 웬만하면 구청이 관리처분계획을 인가하고 이주 명령을 내릴 때까지는 계속 거주하기를 추천한다. 어떻게든 비용을 줄이려는 재개발조합이 이런 대법원 판례를 무시하고 주거이전비 지급을 거부할 게 뻔하고, 그러면 소송을 또 내야 하는 귀찮은 상황이 벌어지기 십상이다. 세입자로 살기 너무나 피곤한 세상이다.
A: 이런 문제제기, 충분히 할 수 있다. 현행법은 소득이나 재산 정도 등을 따지지 않고 자격을 갖춘 모든 세입자를 대상으로 동등한 조건의 추첨을 통해 임대주택을 주도록 하고 있다. 정비구역 지정을 위한 공람공고 석 달 전부터 살기 시작해 관리처분인가로 이주 명령이 내려질 때까지 실제로 거주하는 무주택 세대주는 모두 대상이 된다. 순전히 복지 개념으로 도입된 영구임대주택이나 국민임대주택의 경우, 재산 정도와 소득을 모두 따져 일정 기준에 들어야만 입주 자격을 주는 것과는 다르다. 재개발 임대주택은 살던 곳에서 쫓겨나야 하는 세입자에게 특별히 공급하는 주택이라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재개발 임대주택의 경우도 복지적 개념이 강하기 때문에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주원 국장은 “입주 뒤 4년 정도 기간이 지난 뒤에는 국민임대주택 입주 자격과 같이 소득 상한을 부과하는 등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재개발을 규율하는 도시정비법은 전문가들조차 “너무 어려운 법”이라고 한탄한다. 용어부터 어렵고 재개발 절차 자체가 복잡한 탓이다. 일반인이 관련법을 이해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땅주인들의 승자 독식주의를 핵심 이데올로기로 삼는 법이기도 하다. 조합원이나 세입자가 자신의 권리를 알고 있어도 조합이 배짱 부리면 결국 해결할 수단은 소송뿐이다. 재개발 현장치고 크고 작은 소송이 걸리지 않은 곳이 없다. 1980년대에 오로지 땅주인의 이익만을 위해 태어나 끊임없이 누더기 개정을 해온 도시정비법 등 재개발 관련 법들을 전면 폐기한 뒤, 세입자와 공존하고 개발이익 중심의 사업이 되지 않도록 하는 방향으로 새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불사조가 900년만에 제 몸을 불사른 재 위에서 다시 태어나듯, 도시정비법도 죽어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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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2657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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