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장품 ODM(제조자 개발 생산) 업체 한국콜마가 지난 7일 월례조회에서 상영한 유튜브 동영상 화면 캡쳐. | |
ⓒ 유튜브 |
"아베가 문재인의 면상을 주먹으로 치지 않은 것만 해도 너무나 대단한 지도자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지금 하고 있는 꼬라지들을 좀 보세요. 지가 직접 동의하고 사인했던 거를 이제는 또 국민들 개개인들이 사과를 받고 보상을 받은 게 아니라고 다시 또 돈을 내놓으라고 하면서 깽판을 치고 있는데..."
화장품 ODM(제조자 개발 생산) 업체로 널리 알려진 한국콜마가 지난 7일 직원 700여명이 모인 월례조회에서 상영한 유튜브 동영상의 원본에서 진행자가 격분하며 말한 내용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한일 갈등의 원인이 전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에 있다는 게 이 영상의 골자다. 이 영상은 "(한일 관계 악화로 인해 앞으로) 한국 여자들 7천원에 몸을 팔게 될지도"라는 큼지막한 자막을 첫 화면으로 사용하는 등 한국 여성을 극단적으로 비하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어 비난을 사고 있다.
한국콜마는 9일 오전 공식 입장문을 내서 사과했다. "위기 대응을 위해 대외적 환경과 현상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최근 인터넷상에 유포되고 있는 특정 유튜브 영상의 일부분을 인용했다"는 것이다.
지난 2일 게시된 이 영상은 9일 오후 현재 조회수 160만을 넘었고, 이 영상을 올린 유튜버의 구독자수는 18만명으로 영향력이 적지 않다. 하지만 해당 영상은 단순히 여성 비하 표현 뿐 아니라 기본적인 사실관계가 맞지 않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여기저기서 현 정부에 반대하고 문재인 대통령을 모욕하는 취지의 허위 내용들을 모아 짜깁기 한 것으로 보이는데, 조금만 검색해보면 사실이 아니란 걸 금방 알 수 있다.
잘못된 내용은 너무 많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일곱가지를 추렸다. 아래에 해당 영상의 주요 내용과 실제 사실관계이다.
1. 일본의 외환보유액 절반을 줬다?
"이미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일본의 당시 외환보유액의 절반 가량인 3억 달러를 배상받고 한국과 일본은 더 이상 이 문제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조약을 맺었다."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제공받은 것은 무상원조 3억 달러, 유상원조 2억 달러, 상업차관 3억 달러다. 유상원조와 상업차관은 갚아야 할 돈이다. 일각에선 이 모든 금액을 합친 8억 달러가 당시의 일본 외화보유고 14억 달러의 절반을 넘는다면서 일본 정부가 큰 성의를 보인 것처럼 얘기한다. 하지만 무상원조와 유상원조 금액은 66년부터 75년까지 10년 동안 나눠받기로 했다. 일본이 외환보유고의 절반을 터는 부담을 지면서까지 한국에 성의를 보인 적은 없었다.
2. 노무현 대통령이 이 논쟁을 끝내자고 했다?
"이 논쟁을 제발 좀 이제는 끝내자고 했던 사람이 바로 여러분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5년도에 '민간공동위원회'라는 걸 열어서 7개월 동안 조사를 했는데요."
취지를 정반대로 왜곡했다. 우선, 위원회 이름부터 틀렸는데, 민간공동위원회가 아니라 민관 공동위원회다. 정식 명칭은 '한일수교 문서공개대책 민관 공동위원회'다.
노무현 대통령은 일제 하 강제동원 배상문제를 끝내자는 취지로 이 위원회를 구성하지 않았다. 일제강점 피해자 유가족들이 제기한 1965년 한일협정 관련 문서공개 청구소송이 진행되는 와중에 정부는 입장을 바꿔 문서를 공개했다. 이를 통해 한일협상 당시 일제의 반인도적 불법적인 행위에 대한 배상 문제가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에 따라 피해자 보상 등 종합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구성된 게 민관 공동위원회다.
노 대통령은 2005년 4월 27일 위원회를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하는 자리에서 "한일회담 문서를 공개하든 안 하든 미결과제들을 정부는 어떤 형태로든 관여하고 감당해야 하는데 그동안 충분하지 못했고, 감당할만한 역사적 사실도 감추곤 했다"며 "사실관계가 파악되어야 일이 쉬운데 사실관계 밝히는 일도 대개 민간인에 미뤄놓고 학계수준에서 도와주는 정도였고 민간에 방치돼 있었다, 정부로서는 국민에게 미안하고 체면도 안 서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제는 제발 끝내자'가 아니라 '피해자들이 제대로 배상받도록 국가가 나서야 한다'는 취지였다.
3. 민관공동위가 돈 받은 걸로 끝났다고 결론 냈다?
"그렇게 노무현이 명령을 하고 조사를 해서 내린 결론이 '일본으로부터 받은 3억 달러에 강제 징용에 대한 보상금이 포함되었다'라는 내용입니다. 이게 지금 2005년 노무현 정부 때 나온 '민간공동위원회'의 결론이라고요. 돈 받은 걸로 끝났다고 결론을 내렸다는 겁니다."
민관공동위 백서가 한일청구권협정 뒤 받은 무상원조의 성격에 대해 "국가로서의 청구권, 개인 재산청구권, 강제동원 피해보상 등이 포괄적으로 감안돼 수령된 자금"이라 규정하기는 했다. 하지만 "한국민(개인)이 식민지 불법성을 근거로 일본 정부에 보상을 제기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개인의 청구권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결론 낸 것도 사실이다. 위원회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이 사망자에 대해서만 이뤄지고 부상 등 다른 피해에 대해선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결코 '돈 받은 걸로 끝났다'고 말할 수 없는 결론이다.
4. 일본이 원래는 개개인 보상을 희망했다?
"참고로 1965년 당시에 일본이 먼저 직접적인 피해를 본 개개인에 대한 보상을 희망했었는데요, 우리나라에서 됐다고 거절한 겁니다. 개개인에 대한 문제는 국가가 알아서 보상하겠다고 주장을 해가지고 국가가 대표로 배상을 받은 거에요."
일본 정부는 한일청구권 자금이 일종의 배상이라고 인정한 적이 없다. 일본은 청구권자금의 성격이 '독립 축하금'이라는 주장을 고수했다.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일본 정부의 기본 입장에 따른 주장이었다.
5. 문재인과 이해찬도 서명했다? 그런데?
"이 위원회의 위원이 문재인 대통령이었고 이 위원회의 위원장은 현재 더불어민주당 대표인 이해찬 당대표입니다. 이 사람들이 다 서명을 했어요. 문재인도 서명을 하고, 이해찬도 서명을 해서 이 얘기는 다 끝난 거라고요. 근데 그거를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고 난 이후에 자기가 분명히 이 문제는 끝났다고 서명을 해놨으면서 안면몰수하고 이 ㅈㄹ들을 하고 있는 거에요."
문재인 대통령과 이해찬 대표가 민관공동위원회에 참여한 것은 맞다. 앞서도 밝혔듯 민관공동위원회의 결론은 '이제는 다 끝났다'가 아니라 '국가가 피해배상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 현재 진행중인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청구권 문제는 2018년 12월 대법원의 판결에 따른 것으로, 민관공동위의 결론도 충분히 감안했다는 점은 판결문에 나와 있다. 이에 대해 대통령이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다. 대통령이 법원 판결에 관여하려 했다면 헌법에 위배되는 것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강제동원 배상소송을 기각·지연시키려고 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6. 일본과의 동맹이 깨진 우리나라?
"문재인은 트럼프와 아베 면전에 대고 '일본은 우리의 동맹이 아니다'라고 발언을 했어요. 한미일 동맹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놓고 동맹국가를 무시하는 발언을 지껄인 겁니다. 그러면 이제 일본과의 동맹이 깨진 우리나라는 어떻게 될까요?"
애초에 한일동맹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의 동맹국은 1953년 상호방위조약을 맺은 미국이 유일하다. 이같은 조약이 존재하지 않는 일본이 '우방국'일순 있어도 동맹국가는 아니다.
2017년 9월 UN총회 계기 한미일 정상회동 때 아베 총리가 한미일 3국 합동군사훈련을 요구했다. 동맹관계도 아닌데 한미동맹, 미일동맹 수준의 합동군사훈련을 요구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과 미국이 군사훈련을 하고 있고, 미국과 일본이 군사 훈련을 하고 있는 만큼 사실상 3국이 합동군사훈련을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일본과 합동 군사훈련을 하는 것은 우리 국민 정서상 받아들일 수 없다'는 취지로 답했다. 미국이 주관해 태평양 연안국가들이 참가하는 림팩(RIMIPAC) 훈련 등에 한국과 일본이 참가하고는 있지만, 한미일 3개국 합동훈련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7. '사람이 먼저다'는 차베스의 구호?
"'La gente es lo primero' 한 때 경제대국이었던 세계석유 매장량 1위, 베네수엘라의 경제를 말아먹은 베네수엘라의 4선 대통령 차베스의 구호입니다...(중략)... 'La gente es lo primero' 가 무슨 뜻일까요? 우리나라 말로 '사람이 먼저다'입니다. 문재인이 아주 입에 달고 사는 말이죠."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이 말을 대선 뿐 아니라 어떤 정치적 구호로 내 건 적이 없다. 이 말과 가장 비슷한 'Primero la Gente'라는 문구가 있는데, 차베스 대통령이 쓴 구호가 아니라 1998년 도미니카공화국 대통령 선거 후보였던 페냐 고메스가 사용했다. 이후 라틴 아메리카 지역에서 선거에 나선 후보들이 이 말을 구호로 내 거는 경우가 있으며, 이 문구를 홍보에 차용하는 기업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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