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밝혀진다/양승태사건기사들

꿈에서도 사법농단 취재, 그들이 말하는 재판보도

천사요정 2019. 12. 19. 22:41

[인터뷰]

'양승태 재판 취재' 법원 출입 기자 5인… "무죄여도 재판 의미 사라지지 않아"

[미디어오늘 김도연 기자]


"쥐고 있는 모래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느낌이에요."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재판을 취재하는 김채린 KBS 기자는 매번 '양승태 재판'이 아쉽다. 늦으면 오후 10시를 훌쩍 넘기는 재판을 끝까지 지켜보는 이들은 소수 기자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판사 증인들의 증언과 주장, 검찰이 내놓는 증거와 이를 반박하는 피고인 변호인들의 다툼을 한 기사에 다 담을 수 없는 노릇이다. '법원 내부자'가 아닌 '외부자'이기에 기자가 놓치는 맥락도 분명 있을 터. "그 내용상 사회를 치유하고 진보시킬 수 있는 단서를 주는 재판"이건만 다소 사그라든 관심이 아쉽다.


전 국민적 관심이 없던 건 아니었다. 올해 1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구속됐다. 이에 앞서 검찰 수사는 전·현직 법관 100여명을 조사하며 7개월 넘게 이어졌고 재판 개입과 판사 블랙리스트 혐의의 사법수장 구속으로 '사법 정의'는 실현된 것으로 간주됐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해 6월 자택 근처 공원에서 입장을 밝힐 때나 올해 1월 검찰 출석을 앞두고 대법원 앞 회견을 열었을 때 터졌던 수많은 카메라 셔터와 플래시는 강한 인상을 남겼다. 올해 첫 재판 때만 해도 20여곳의 언론사 기자들이 취재에 나섰지만 지금은 법원 비출입사 기자들을 포함해도 대략 7~8곳으로 크게 줄었다.


양승태 재판은 매주 수요일, 금요일에 열린다. 판사 30여명이 출석했다. 예정된 증인은 260여명. 10% 정도 진행했다고 가늠해볼 수 있다. 이를 포함한 사법농단 관련 재판은 '월수목금'에 열린다. 양승태 재판의 1심 선고는 내후년일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사법농단 실행자로 꼽히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재판은 재판부 기피 신청으로 멈춘 지 오래다. 증인으로 나온 판사들은 재판에 등장하는 문건이 사실이 맞는지 골무를 끼고 하나하나 세세하게 살피고 있다.


지난 10일 오후 서초동 법원 인근에서 양승태 재판을 장기 취재하는 법원 출입 기자 4명을 만났다. 고한솔 한겨레 기자, 김채린 KBS 기자, 이혜리 경향신문 기자, 허백윤 서울신문 기자가 그들이다. '법정에 선 양승태 사법부'(한겨레),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서울신문), ''존경하는 재판장님' 사법농단, 법정의 기록'(경향신문), '판사와 두 개의 양심'(KBS) 등 연재 기획은 주말도 버린 그들의 기록이다. 이 가운데서도 허백윤 기자의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는 연재 횟수가 50회를 넘겼다. 이날 허 기자가 손에 든 '재판 워딩'은 A4 용지 80장은 거뜬해 보였다. 고한솔 기자는 법원 개혁을 위해 우리사회에 무엇이 필요한지 독일을 찾기도 했다. 이들이 집요하게 기록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일정 때문에 대면 인터뷰에 불참한 공다솜 JTBC 기자에게는 서면을 통해 이야기를 들었다.



▲ 지난 1월 사법농단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출석을 앞두고 대법원 정문 앞에 나타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진=김예리 기자.


- 지금 재판 또는 재판 상황을 한마디로 설명한다면?

이혜리 경향신문 기자(이하 이) : "'이 재판 대체 언제 끝날까'다. 10% 정도 진행됐달까. 내후년까지 계속할 것 같다. 검사가 법정에 제시하는 문건이나 증거 하나하나에 엄청난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A에서 Z까지 다투는 재판이다. 흔히 볼 수 없는 공판인 건 분명하다. 피고인(양승태 전 대법원장, 고영한·박병대 전 대법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의 방어권 행사인데 틀린 주장이 아닌 경우도 있어서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공다솜 JTBC 기자(이하 공) : "'우리들만의 치열한 싸움 중'이라고 하고 싶다. 재판부, 피고인, 검사, 변호인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우리도 각자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검찰은 공소유지에, 변호인은 변론에, 재판부는 판단에, 우리는 기사 작성에 모두 힘쓰고 있는 게 느껴진다. 사법농단과 관련해 양승태, 임종헌 등등 재판만 7개다. 사안도 복잡하다. 그런데 '노잼'이라 대다수가 '노관심'인거 같다.(웃음) 그래서 우리들만의 치열한 싸움 중이다."


김채린 KBS 기자(이하 김) : "판사 증인들 발언을 정리하는 기획을 하고 있다. 이 재판에는 우리사회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이 많다. 판사 증인들은 양승태 대법원 시절의 경험을 기억하고 증언하고 있다. 단순히 공방의 장에 그치지 않는 장소가 사법농단 재판정이다. 유무죄 판단도 중요하지만 판사 증인들이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느낀 경험들이 중요하다. 그걸 바탕으로 무엇이 문제인지 점검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우리 법원이 왜 이런 사태에 빠졌을까. 사회적 가치가 높은 재판인 만큼 법조인들도 직접 참관해볼 필요가 있다. 정말 법원을 바꾸려는 생각이 있다면."



- 공판 보도를 취재하면서 어려운 점이 있다면?

이 : "허백윤 선배는 새벽 4시까지 기사를 쓴다.(웃음)"


허백윤 서울신문 기자(이하 허) : "그래도 지난주 출입처를 법원에서 검찰로 옮겨서…(웃음). 그동안 사법농단 재판을 서울신문에선 혼자 맡아왔다. 출입처 이동으로 더는 취재하기 어려운 상황이긴 하다. 새 출입 기자가 바로 이 사건을 다루긴 어려울 것 같아서 손을 쉽게 못 떼고 있긴 하다. 법원에 사법농단 재판 말고도 중요하고 재밌는 사건들이 많다. 출입 기자가 한 명인데 사법농단 사건만 보겠다고 하는 게 맞는 일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밤을 새우게 되고…."


이 : "언론사들이 어떤 방식으로 법원 기자들을 지원하고 있는지, 아쉬운 부분이 있다. 나는 비교적 오랫동안 법원을 출입하며 사건을 따라갈 여력이 있었다. 대부분 매체에서 출입처는 유동적이다. 사건을 끝까지 지켜볼 여력이 안 된다. 모든 사건은 법원으로 온다. 지금도 사건이 너무 많다. 법원 기자들이 주요 사건조차 제대로 따라가기 벅찬 상황이다. 각 매체 법조팀 구성을 봐도 검찰 출입은 1~2명이라도 더 많을 것이다. 월수목금 사법농단 재판을 다 챙기려면, 인력 부족으로 다른 일은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언론사들이 과거보다 공판 보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보도 연속성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김 : "체력적으로 한계에 부닥치곤 했다. 손목도 아프고, 팔목도 아프다.(웃음) 최근에는 눈이 피로해 영양제를 먹기도 했다. 다들 비슷할 것 같은데 기사 쓰느라 주말을 다 버리고 잠도 잘 못 드는 경우가 잦다. 그렇게까지 하는데 내 기사를 아무도 안 읽는다는 느낌이 들면 아쉬움이 남곤 했다. 그래도 먼 미래까지 읽힐 기록이라 생각한다. 당장 사람들에게 소구하지 못하더라도 나중을 위해 기록으로 남겨놓겠다는 마음이다. 흥행이 어려운 기사를 쓰고 있는 건 맞다.(웃음)"


허 : "재판 한 차례에 A4 용지 80~100쪽 분량의 워딩이 나올 정도로 방대하다. 혹시 빼놓거나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어 다 읽어보는 편이다. 조금이라도 더 쉽게 기사를 쓰기 위해 기사 한 줄을 쓰더라도 공소장, 과거 기사, 대법원 진상조사 과정에서 공개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문건들을 일일이 비교하면서 정리해야 할 때가 많다. 기사를 쓰다가 새벽 3~4시에 수면에 드는 게 몇 달째 이어져서 사실 매우 힘들다. 워낙 중요한 사건이라 허투루 쓸 수 없다."

고한솔 한겨레 기자(이하 고) : "기자 일이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다고 하지만 재판 일정이 있으면 다른 약속 잡기도 어렵다. 수면시간 직전까지 재판을 보다보니 꿈에 나오기도 한다."

이·김·허 : "나도 꿈에 나와요." "무의식이 의식을 침투하고 있다." "수요일만 되면 두렵다."


▲ 지난 10일 오후 서초동 법원 인근 카페에서 양승태 재판을 취재하는 법원 출입 기자 4명을 만났다. 왼쪽부터 김채린 KBS 기자, 고한솔 한겨레 기자, 허백윤 서울신문 기자, 이혜리 경향신문 기자. 사진=김도연 기자.



- 기자들마다 장기 기획을 보도하거나 사법농단 보도를 계속하고 있다.

고 :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때도 공판을 기록하는 기획을 진행했다. 검찰 수사 단계에서 재판 단계로 넘어오면 사건에 관심이 급격히 주는 경향이 있다. 이 재판이 공개된 법정이라지만 일반 시민이 모두 오셔서 볼 수는 없다. 오신다고 해도 방청 몇 번에 사건 맥락을 명쾌하게 이해하긴 어렵다. 장기 기획은 사건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환기시킬 필요가 있어서다. 단순 유무죄로 정리되지 않는 복잡다단한 맥락, 그 맥락을 최대한 펼쳐서 보여주자는 차원이다. 물론 재판에는 공판조서가 남는다. 하지만 일반 사람 접근은 쉽지 않다. 지금도 재판 과정에서 중요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이를 테면 법원의 구조적 문제다. 판사에 대한 대법원 인사 전횡을 가능케 한 법원 구조 문제가 판사 증언을 통해 생생하게 드러난다. 이 과정이 모두 판결문에 담기진 않는다."

김 : "대법원 행정처 판사들이 무슨 일을 하고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이 사건 전에 법원행정처에 인사심의관, 기획심의관, 사법정책심의관 등이 있고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 누가 관심을 가졌겠나. 그들이 생산한 행정처 문건들을 보면 재판을 정말 뭐라고 생각하는지, 또 법원 역시 여타 부처와 마찬가지로 이기적 조직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꽁꽁 숨기고 있었을 뿐이다. 그 문건과 증거를 검찰만 갖고 있다는 게 통탄할 일이다."

고 : "법원 속살이 이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난 적은 없었다. 인사 불이익이 있을까봐 내키지 않는 지시를 이행하고 '법원 이익'에 복무하는 모습이 공개됐다. 사법개혁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재판이다. 재발을 막으려면 무엇을 개선해야 하는지 그 점에 집중하고 있다. 기자 4~5명이 의기투합해 남아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재판 중요성과 반비례하는 서초동 분위기에 괴리감을 느낄 때가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현재 구속 상태인지 서초동 변호사들도 내게 물어본다. 사람들 관심도 언제 선고인지에 꽂혀 있다. 관심이 단편적 사실에 쏠리는 건 아쉽지만 무죄가 난다고 해도 재판 의미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유무죄가 나면 모든 게 끝날 것 같은 분위기 때문에 재판을 더 지켜보게 된다."

공 :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이 될 수 있는 사건이다. 내가 피고인석에 섰을 때 (재판 거래 등 사법농단) 피해를 입을 수 있지 않나. 시민 입장에서 (사법농단 연루 판사에게) 재판을 받는 건 상상할 수 없다. 누군가에게 전부일 수 있는 재판이 거래 대상이 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사명으로 취재하고 있지만 가끔 '난 재판을 지켜보기만 하는 사람인가, 법정 방청객과 무엇이 다른가'하는 '현타'가 찾아올 때도 있었다.(웃음)"

조국 사태에서 시민들은 검찰 발 보도에 분노했다. 검찰 기자들이 모두 받아쓰기만 하는 게 아닌데도 '기레기' '받아쓰기'라는 지탄은 일상이 됐다. 언론계 전문가들은 검찰 수사 보도에서 공판 중심 보도로 무게를 옮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조국 사태 속에서도 꾸준히 보도됐던 양승태 공판 보도는 포털 구석에 박혀 있거나 독자들로부터 외면을 받곤 했다. 기자들 스스로도 "한국사회가 재판을 끝까지 보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고 진단한다. 언론사 내에서도 검찰 발 단독 보도가 공판 보도보다 높은 평가를 받는 분위기가 있다고 한다. 단독을 많이 보도한 검찰 출입 기자들은 상대적으로 "취재 잘하고 능력 있는 기자로 인정받"기 쉽고 데스크 보직을 빨리 달 수 있다는 것.



- 검찰 수사 보도에 비해 공판 취재 보도 주목도는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일각의 검찰 수사 보도에 대한 공분도 커지는 듯하다.

허 : "검찰 발 속보는 그것이 사실이든, 의혹이든 처음 나오는 이야기들이다. 그만큼 자극적일 수 있고 한편으로는 재밌는 내용이기도 하다. 많은 분들이 조국 사태로 '기레기', '검찰 받아쓰기' 비판을 많이 하시지만 기자들이 검찰만 취재해 받아쓰기했던 건 아니었다. 사법농단 수사 때도 검찰 안팎에서 많은 수사 기사가 나왔다. 검찰은 증인으로 출석한 많은 판사들을 포토라인에 세웠다. '양승태는 정말 나쁜 사람, 해서는 안 될 짓을 한 사람'으로 이미 결론이 나버렸다. 공판 보도에선 검찰 주장뿐 아니라 변호인 주장도 다룬다. 재판에서는 피고인의 방어권이 중요하기 때문에 보도 재미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이미 검찰에서 나온 이야기를 반복하게 되는 면도 있다. 공판중심주의가 자리 잡기 전에는 기사에서 재판의 의미가 크지 않았다고 한다. 검찰 수사 내용이 그대로 대법원까지 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이에 비춰보면 공판중심주의 재판을 경험한 법원 기자가 드물 것이다."

이 : "재판을 끝까지 본다는 것에 우리사회가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되더라도 '대법원이 원심을 확정했다'는 식의 스트레이트 기사가 우리에게 더 익숙하다. 재판 과정을 상세히 들여다보는 보도가 적기도 했고. 경향신문도 재판을 이렇게 취재·중계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한 재판에 이렇게 여러 기자들이 달라붙어 보도하는 사례는 전례 없으니까. 검찰 수사 보도를 비판하는 분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고 재판에 집중하자는 논의도 나오는데, 과도기적 상황인 것 같다."

공 : "공판 보도 자체가 부족한 건 사실이다. 사법농단 검찰 수사 당시와 재판이 진행되는 지금 쏟아지는 기사 개수만 봐도 차이가 크다. 물론 검찰 주장, 검찰이 갖는 의혹에 대한 보도도 필요하다. 하지만 의혹이 사실인지, 합리적인지 따지는 곳은 결국 법정이다. 여기까지 이어지기엔 한국 언론의 호흡이 너무 짧은 것 같다. 기사를 쓰려 할 때 '그거 수사 단계에서 다 나왔던 거다'란 이유로 좌절된 적이 몇 번 있다. 검찰에 치중돼 있는 보도 문화 앞에서 무력해질 때가 있다. 검찰 출입처에선 '검찰이 어떤 패를 갖고 있는지'를 취재한다면 법원에서는 '검찰의 패는 어떠하다'를 취재하는 것 같다. 공판 보도에서는 '천천히 꼼꼼하게'가 중요하다."

허 : "그동안 법원이나 재판 기사는 검찰 수사 보도에 비해 저평가돼 왔던 것 같다. 하지만 사법행정권 남용 재판뿐 아니라 다른 재판 중요도나 일반 독자들 관심도가 매우 높아지고 있다. 법원 판결을 정확히 잘 아는 것은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이 : "기사 작성에서 가장 신경 쓰는 건 피고인 입장이다. 무죄추정 원칙이기 때문에 피고인 주장은 반드시 듣고 기사를 쓰려 노력한다. 검찰 공소장을 보면 일목요연하게 범죄 혐의가 정리돼 있다. 이를 두고 여러 공방이 있는데 피고인 말이 모두 잘못됐거나 들어볼 가치가 없는 건 아니다. 검찰 주장에 동의해서 법원이 유죄 판결을 내린대도 그 과정에서 피고인 입장을 듣느냐, 안 듣느냐에 차이가 있다. 이 대목이 검찰 수사 보도와 차이점일 수 있다."



- '단독 경쟁'이 치열한 일반 출입처와는 또 다른 모습이다. 서로의 존재가 동기부여가 될 것 같다.

공 : "매우 많은 영향을 받는다. 선배들은 어쩜 그리 꼼꼼하고 게다가 성실한지…. 여기서 내가 제일 나태한 것 같다.(웃음) 과거 임종헌 재판이 밤 12시까지 진행된 적 있었다. 그때 변호인이 재판 진행에 불만을 표하고 나간 뒤 법정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자다 깨다하며 영혼 없이 재판을 보고 있던 때였다. 그 해프닝으로 정신이 번쩍 들었는데, 그때 법정에 있던 분들이 여기 인터뷰하고 있는 선배들이다. 그렇게 쌓인 정이 있다. 기사 쓰면서도 제가 놓치거나 이해하지 못한 부분, 내 문제의식이 타당한지 등을 많이 묻는다."

김 : "워낙 길고 지치는 재판이다. 기자들이 서로 고생하는 걸 잘 안다. '으�X으�X 끝까지 보자'면서 서로를 다독인다. 여기서는 단독이나 속보가 큰 의미는 없다. 단편적 사실을 보도하는 게 아니라 복잡한 사건을 기사로 풀어내는 능력이 중요하다. 같은 재판을 보고 다양한 관점의 기획이 나오는 것도 신기하다. 기획 형식과 내용이 달라 상호 보완의 느낌이 있다. 분명 우리 사회에도 득이 될 것이다."

고 : "재판하는 사람도 판사고, 재판 받는 사람도 판사다. 보통 재판보다 더 전문적 이야기가 나온다. 더구나 형사소송법은 매우 어렵다. 나 혼자였다면 파악하기 어려울 내용을 다른 기자들과 이야기하면서 깨달을 때가 많다."



▲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사법농단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출석을 앞둔 지난 1월11일 오전 9시께 대법원 정문 앞에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이날 기자들은 '대법원 앞 기자회견이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있는데 왜 굳이 여기서 입장을 발표하느냐' 등 질문을 던졌다. 사진=김예리 기자.




- 기자들 모두 유무죄보다 재판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보도가 향후 사법개혁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는지?

이 : "보도와 사법개혁 관련성은 높다고 생각한다. 판결문은 유무죄만 말한다. 이 사건을 통해 어떻게 법원이 바뀌어야 하고 시민을 위한 법원의 조건은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는다. 그게 기자들의 몫이자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판결문에 나오지 않는 증인 증언, 행정처 증거물들을 통해 사법 개혁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그런 차원에서 접근하려고 노력한다."

고 : "판사들은 항상 자신들이 독립된 법원이라 생각한다. 그런 인식 때문인지 사건과 관련된 발언을 하기 꺼려한다. 반면 사법농단 재판에 출석한 판사들은 행정처 조직 구성원으로 일했던 경험을 이야기한다. 자신이 심의관으로 일했을 때 어떤 지시를 받았고, 그 지시가 어떤 점에서 옳다고 느꼈다는 식이지만 조직 구성원으로서의 판사 생각을 들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허 : "사법개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외부로부터의 독립이다. 현실적으로 법원도 정부로부터 예산을 받는 입장이다. 독립된 사법기관은 맞지만 예산을 위해 국회로도 향해야 한다. 상고법원을 도입하기 위해선 정부와 청와대 도움이 필요한 게 현실이다. 이번 재판을 지켜보면 국회의원들이 참 많이 거론되는데 국회의원들도 자기들이 관심 있는 사건이 있으면 행정처장이나 심의관 판사를 불러 해당 사건을 알아봐달라고 요구한다. 지금까지 완벽한 독립은 없었다. 행정처 판사와 심의관들이 타 부처 공무원처럼 예산 따러 다니고 법안 통과를 위해 입법 작업을 해야 하는 구조적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 마지막으로 기자들의 '재판 기록 보도'의 의미를 다시 짚어본다면?

고 : "재판정 내부에서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려주고 싶다는 마음이 크다. 기자들이 이 재판을 아침부터 밤까지 지켜보고 있다는 걸 재판부도 알아야 하고, 검찰과 피고인도 알아야 한다. 정말 '물리적 감시'에 가깝다. 또 이번 사법농단 재판 초기 신영철 대법관 사태가 언급된 적 있었다. 2008~2009년 때 사건을 돌아보려고 해도 관련 기록을 찾기 어렵더라. 기록의 중요성을 새삼 다시 느꼈다."

허 : "짧게 말씀드리면 사법부 수장이었던 인물이 피고인석에 선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을 기록해야 하는 것은 기자로서 당연한 일이자 감사한 기회다. 많은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

김 : "아쉬운 점 하나만 더 말씀드리고 싶다. 법조인들끼리 모임을 만들어 돌아가며 모니터하고 기자들이 모르는 부분이 있을 때 도움을 준다면 참 좋을 텐데 매번 아쉬웠다. 일부 법조인들이 기자들에게 '대견하다', '응원한다'고 말씀하시지만 사실 법조인들이 스스로 모여서 할 수 있는 것들도 많을 것이다. 텅 빈 좌석에 절망할 때가 있다. 우리 기자들이 놓치고 지나가는 것도 참 많을 텐데 말이다. 가치에 비해 제대로 취급받지 못하는 재판이라는 생각도 든다. 쥐고 있는 모래가 손가락에서 빠져나가는 느낌이 든다. 우리사회가 이 재판을 제대로 기록하고 조명한다면, 사회는 더 나은 방향으로 진보할 수 있을 것이다."


https://news.v.daum.net/v/201912171048217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