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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인가 빚인가.. 30兆 영구채 논란

천사요정 2020. 1. 2. 22:33

만기없이 이자만 내는 영구채.. 기업들 자본 늘리는 효과 있어
금감원 "부채" 의견에 업계 술렁.. 금융위 "판단 일러" 불끄기 나서

"영구채(永久債)는 자본인가 부채인가?"

요즘 자본시장에선 30조원가량 발행된 것으로 보이는 영구채(永久債)를 기업 회계장부에 어떻게 기록할지를 두고 논란이 한창이다. 2012년 두산인프라코어가 처음 이 채권을 발행해 자본으로 인정받은 이래, 기업들은 자본을 보강하는 수단으로 영구채를 애용해왔다. 그런데 지난달 하순 금융감독원이 "영구채는 자본이 아닌 부채"라는 의견을 내자 증권가와 기업계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자본으로 인정했던 영구채를 부채로 볼 경우 일부 기업의 부채 비율이 많게는 수백 %나 뛰어 부실 기업으로 판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급기야 금융위원회 고위 관계자가 최근 "영구채의 회계 처리 방향은 최종 결론이 나려면 최소 수 년 이상 남았다. 금감원은 신중하라"고 '입단속'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영구채란 무엇이고, 왜 논란거리가 되고 있는 걸까.

◇자본 보강 수단으로 애용 영구채는 말 그대로 만기를 정해두지 않고 이자만 '영원히' 내는 채권이다. 이론상으로는 기업이 망하지 않는 한 영원히 존재하는 채무다. 그러나 실제로는 기업이 일정 기간(통상 5년)이 지나면 돈을 갚을 수 있는 권리(옵션)를 채권에 걸어두기 때문에, 대부분 중간에 상환이 이뤄진다. 만기가 없다는 자본의 성격과, 이자를 낸다는 채권의 성격을 고루 갖춘 일종의 변종(變種)인 셈이다.

우리나라에선 2012년 10월 두산인프라코어가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해외에서 5억달러 규모 영구채를 발행하면서 회계 처리를 둘러싼 논란이 처음 일었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당시 기업 재무 개선 작업을 맡은 산업은행은 영구채를 자본으로 인정하는 데 적극적이었지만, 금융 당국에서는 신중하자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고 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금융위는 법적 해석 권한이 있는 한국회계기준원에 판단을 넘겼고, 회계기준원은 이를 다시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에 넘겨 2013년 5월에야 '자본'이라는 결론을 받았다.

이후 영구채 발행은 급증했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작년 3분기 말까지 영구채를 발행한 기업은 모두 73곳, 금액으로는 29조5000억원에 달한다. 대우조선해양이 2조3328억원, 한화생명이 1조5579억원의 영구채를 발행한 것을 비롯, 대한항공(8837억원), 현대상선(6199억원), 교보생명(5514억원) 등 자본 보강이 필요한 기업들은 죄다 영구채에 기대어 온 형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영구채가 부채로 분류될 경우 해당 기업들의 부채비율은 평균 51.9%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우조선해양과 대한항공의 부채 비율은 무려 557%포인트, 230%포인트 높아진다. 금융위가 영구채를 부채라고 얘기한 금감원에 경고한 것은 이런 맥락이다.

◇"중장기적으로 문제될 소지 많아, 경각심 가져야" 금융위는 "영구채가 당장 문제 될 사안이 아니다"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소동을 가라앉히는 데 주력하고 있다. 지금은 IASB가 영구채에 대한 각국의 의견을 묻는 단계이며, 초기 논의에만 앞으로 1~2년은 걸린다는 것이다. 금융위 고위 관계자는 "금감원의 입장은 실무 차원의 것이고 국제기구의 최종 판단까지 3년 이상 시간이 있다"며 "영구채는 이미 기업 신용평가사들도 평가 시 위험 요인을 고려하기 때문에 큰 혼란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시간 여유가 있다고 마냥 안심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IASB는 이미 작년에 '기업을 청산할 때 발행자가 갚아야 할 금융 상품은 금융 부채'라는 입장을 밝힌 적이 있다. 향후 논의 과정에서 영구채가 부채로 분류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대형 회계법인 관계자는 "투자자들이 영구채로 기업의 건전성을 오인할 소지도 있기 때문에 재무제표 공시를 강화하는 등 투자자 보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https://news.v.daum.net/v/201904030309371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