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일과 4일, 일본 벼농사 유적지로 알려져 있는 도로(登呂)유적과 야마키(山木)유적을 다녀왔습니다. 일본에 언제부터 벼농사가 시작되었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여러 곳에서 출토되는 벼농사 유적지를 통해서 벼농사가 일찍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두 유적지는 모두 야요이(弥生)시대 후기 벼농사를 지었던 논이나 그 때 사람들이 농사를 지으면서 사용했을 것으로 보이는 농기구, 사는 곳, 생활 도구들이 나왔습니다. 일본 야요이 시대는 BC.4, 5세기에서 AD 3세기 무렵으로 보고 있습니다.
벼농사 유적지에서는 논이나 밭의 형태 여러 가지 농기구와 생활용구, 장신구, 주거지, 제사용품들이 발굴되었습니다. 요즘 벼농사는 기계를 많이 사용하지만 옛날 전통사회에서 벼농사는 많은 일손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가족 단위, 마을 단위로 집단 거주하면서 서로 일손을 도와가면서 살았을 것입니다.
일본에 언제 어떻게 벼농사가 전해졌는지 확실히 밝혀진 것은 없습니다. 다만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하여 중국 장강 유역이나 남아시아에서 시작된 벼농사가 한반도를 경유하여 일본에 전해졌거나 뒤에 중국에서 직접 일본에 전해지기도 했다고 봅니다. 벼농사는 많은 일손이 필요하고, 여러 가지 농기구가 사용된다는 점에서 벼농사가 전해질 때 단순히 벼농사만 들어온 것이 아니고 가족이나 마을 단위의 집단이 이주해 왔을 것으로 봅니다.
시즈오카에는 벼농사 유적지로 도로 유적과 야마키 유적이 있습니다. 모두 벼농사와 관련된 논두렁이나 여러 가지 농기구 등이 같이 발견되었습니다. 도로 유적지는 1943년 시즈오카시 츠르가에서 군수공장 터를 닦다가 우연히 발견되었습니다. 이곳 유적지에서는 논이나 주거지, 농기구, 장신구, 제사 용품 등이 대량으로 나왔습니다.
도로 유적은 아베가와(安倍川)강 동편 바닷가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도로 유적은 오랫동안 아베가와 강의 범람으로 물과 흙 속에 잠겨 있다가 1943년 논 터와 농기구가 처음으로 발견된 것입니다. 이 유적으로 일본 야요이 시대의 농촌 모습을 처음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도로 유적에서 발굴된 농기구는 돌칼 등 돌을 이용한 것과 나무를 이용해 만든 농기구가 있습니다. 나무를 자르거나, 끊거나, 파거나 깎아서 만들었습니다. 주로 삼나무가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이 때 이미 쇠붙이로 만든 농기구도 사용되었습니다.
야마키 유적 역시 도로 유적과 비슷한 시기의 벼농사 유적입니다. 야마키 유적은 도로 유적에서 동쪽으로 60여 킬로미터 떨어진 이즈(伊豆) 반도 입구 평지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야마키 유적은 1950년 농수로 공사를 하다가 우연히 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야마키 유적에서는 야요이 시대 후기부터 고훈(古墳) 시대 초기까지의 유물이 많이 나왔습니다.
야마키 유적에서는 나무 농기구, 건축재, 토기 등 풍부한 농경문화를 전해주는 출토품이 발굴되었습니다. 유물 가운데 중요한 것은 중요민속 문화재로 지정되어 발굴지 부근 향토전시관에 보관 전시되고 있습니다. 특히 이곳에서 출토된 토기는 현재의 시마네켄, 나고야, 긴키 지방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아 당시 사람들이 널리 교류를 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시즈오카 시립 도로 박물관에서는 유물의 전시와 야요이 시대 농기구 사용 체험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박물관 주위에는 야요이 시대 주거지, 논 등을 복원해 두었습니다. 특히 시즈오카시가 유적지 부근은 도로 공원으로 만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게 했습니다.
인류가 벼를 재배하기 시작한 것은 약 2, 3백만 년 전 아시아 재배종(sativa)인 사티바종과 아프리카 재배종인 글라베리마(glaberrima) 종에서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한반도에서 출토된 볍씨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청원 옥산 소로리 유적에서 약 1만4000년 전 토탄층에서 아주 오래된 옛날 벼 껍질이 여러 개 발굴된 것입니다.
이 벼 껍질은 야생 벼와 재배 벼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그 밖에 가장 오래된 벼는 일산 가와지 토탄층에서 많은 벼 껍질은 약 4500년 전, 김포 가현리 유적에 발굴된 약 4200년 전, 여주 흔암리 유적의 약 3000년 전의 탄화미, 평양 동경유적지에서는 약 3000년 전, 부여 송국리 유적지에서는 약 2600년 전의 탄화미나 토기에 볍씨 자국이 발견되었습니다.
한반도에 전해진 벼는 남부 평야에서 널리 재배되다가 약 3000년 전 무렵 처음으로 일본 규슈 북서부 지역으로 전해졌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시즈오카의 두 벼농사 유적지를 야요이 후기, 1700년 전후로 보는 것은 어느 정도 타당해 보입니다. 규슈 북부 후쿠오카에서 시즈오카켄 시즈오카시까지는 철도로 995킬로미터 떨어져 있습니다.
가는 법
1. 시즈오카 시립 도로박물관(静岡市立登呂博物館) - JR시즈오카역 남쪽 입구에서 도로(登呂) 유적행 버스 종점
2. 니라야마향토사료관(韮山鄕土史料館) - 이즈이하코네(伊豆箱根)철도 니라야마역에서 걸어서 20 분
참고문헌
농업진흥청, http://www.rda.go.kr/children/index.html
韮山町史 제 1 권 고고편, 韮山町史간행위원회, 1979
韮山町의 民具-韮山町史別篇자료집, 韮山町史간행위원회, 1992.
登呂遺跡出土資料目錄, 寫眞編,静岡市立登呂博物館,198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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