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베네수엘라의 ‘한 나라 두 대통령’ 사태의 주인공은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이다. 그는 야권의 소수파 리더이지만 베네수엘라의 독특한 정치 제도에 따라 국회의장이 됐고, 서방의 지원 아래 마침내 ‘자칭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어떤 인물일까?
미국의 비판적 언론인인 댄 코헨과 맥스 블루멘탈은 후안 과이도가 정권교체를 위한 워싱턴의 정예 조련사들이 주도한 십년간의 프로젝트의 산물이며 그가 수년 간 정국을 흔드는 폭력적인 운동의 최전선에 있었다고 보도했다.
원문은 The Making of Juan Guaidó:How the US Regime Change Laboratory Created Venezuela’s Coup Leader에서 확인할 수 있다.
1월 22일, 운명의 날 이전에는 베네수엘라인의 5분의 1도 후안 과이도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몇 달 전만 해도 그 35세의 젊은이는 정치적 영향력이 별로 없는 극우파에 속한 무명의 인물이었다. 그가 속한 당 내에서 조차 과이도는 중간 정도의 인물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부통령 마이크 펜스로부터 전화 한통을 받은 후, 과이도는 자기 자신이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이라고 선언했다. 왕년의 무명의 3류 정치인이 미국에 의해 간택을 받아 세계 최대의 원유 보유국의 지도자로서 국제무대로 도약했다.
뉴욕타임스는 논설을 통해 과이도를 “그 나라를 발전시킬 신선한 스타일과 비전”을 가진, 마두로의 “믿음직한 경쟁자”라며 환영해 마지않았다. 블룸버그의 논설은 그가 “민주주의의 복원”을 추구하고 있다며 갈채를 보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그를 “새로운 민주주의의 지도자”라고 했다.
그 와중에 캐나다, 수많은 유럽 국가들, 이스라엘, 그리고 리마그룹이라고 알려진 라틴아메리카의 우파블록에 속한 정부들이 과이도를 베네수엘라의 합법적 지도자로 인정했다.
과이도는 미국이 운영하는 ‘정권교체공장’의 산물
과이도가 난데없이 불쑥 나타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는 미국 정부의 정권교체공장들(elite regime change factories)이 십년 이상 열심히 공을 들여 만든 작품이다.
우파 학생활동가들의 간부 역할을 했던 과이도는 베네수엘라의 사회주의 정부에 손상을 가하고, 나라의 안정을 흔들며, 언젠가는 권력을 잡도록 훈련받았다. 비록 그가 베네수엘라의 정치권에서는 변변찮은 인물이었지만, 그는 워싱턴 정가에서 자기의 가치를 조용히 보여주면서 몇 년을 보냈다.
아르헨티나의 사회학자이자 베네수엘라 정치의 가장 꼼꼼한 기록자인 마르코 테루기는, “후안 과이도는 이런 상황을 만들기 위해 창조됐다. 실험실이라는 것이 그렇다. 과이도는 실험실의 몇 가지 요소가 혼합된 인물인데, 그 몇 가지 요소들 때문에 때로는 비웃음거리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근심거리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베네수엘라의 언론인이자 탐사전문매체인 미션 베르다스의 기고자인 디에고 세케라는 위의 말에 동의하며, “과이도는 국내에서보다는 외국에서, 특히 아이비리그와 워싱턴의 엘리트들에게 더 인기 있다. 그는 거기에서는 알려진 인물이고, 우파이며, 그들의 프로그램에 충성스럽다고 여겨진다”고 말했다.
과이도가 지금은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대표자로 알려지고 있으나, 그는 베네수엘라의 가장 과격한 야당의 가장 폭력적인 분파에서 그의 이력을 쌓았고, 언제나 정국을 악화시키는 활동의 최전선에 있었다. 그의 당은 베네수엘라 내부에서는 신뢰를 크게 잃었으며, 몹시 약화된 야권을 분열시키는데도 부분적인 책임이 있다고 여겨지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최고 여론조사기관의 루이 빈센트 레온은, “이 급진적인 지도자들은 여론조사에서 20퍼센트의 지지밖에 받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과이도의 정당은 베네수엘라 사람들 대부분이 “전쟁을 원하지 않고, 그들이 원하는 것은 해결책”이기 때문에 고립돼 있다고 한다.
그러나 바로 이 점이 과이도가 워싱턴에 의해 선택된 이유다.
미국이 그에게 거는 기대는 베네수엘라를 민주주의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지난 20년 간 미국의 헤게모니를 막는 항쟁의 보루 역할을 해왔던 나라를 붕괴시키는 것이다. 그의 기이한 등장은 강력한 사회주의의 실험을 파괴하기 위한 20년간에 걸친 프로젝트의 정점을 보여준다,
“폭정의 삼인방”을 정조준하라
1998년 우고 차베스가 당선된 이후, 미국은 베네수엘라와 베네수엘라의 막대한 원유에 대한 통제권을 회복하려고 분투해왔다. 차베스의 사회주의적 프로그램들은 베네수엘라의 부를 재분배하고 수백만을 가난으로부터 구제했을지 모르나, 그 결과 차베스는 제거돼야 할 표적이 됐다.
2002년, 베네수엘라의 우파 야당은 미국의 지원과 승인을 얻어 차베스를 일시적으로 축출하는데 성공했으나, 대중적 시위에 이은 군의 개입으로 차베스는 다시 통치권을 찾게 됐다. 조지 W. 부시와 버락 오바마 행정부 내내, 차베스는 수많은 암살 기도를 이겨냈으나, 2013년, 암으로 사망했다. 그의 후계자 니콜라스 마두로는 세 번의 살해기도를 이겨냈다.
트럼프 행정부는 즉각 베네수엘라를 워싱턴의 정권교체 대상 목록에 올리고 “폭정 삼인방(troika of tyranny; 쿠바, 니카라과, 베네수엘라)”의 우두머리로 명명했다. 작년, 트럼프 행정부의 국가안보팀은 군사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군 장교들을 끌어 모으려고 시도했으나 실패한 바 있다.
베네수엘라 정부에 따르면, 미국은 미라플로레스 대통령궁에서 마두로를 체포하기 위해 ‘헌법작전’이라는 암호명이 붙은 계획에 관여했다. 또한 미국은 2017년 7월 군 열병식에서 마두로를 암살하기 위한 ‘아마겟돈 작전’이라는 이름의 계획에도 관여했다.
딱 일 년 후, 망명한 야당의 지도자들이 카라카스의 군 열병식에서 드론 폭탄으로 마두로를 살해하려 기도했으나 실패했다.
이러한 음모들이 벌어지기 10년도 더 이전에, 베네수엘라 정부를 전복하고 신자유주의적 질서를 회복할 목적으로, 일단의 우파 학생들이 미국에 의해 자금을 제공받는 최정예 정권교체훈련조직에 의해 선발되어 훈련을 받았다.
수많은 혁명의 씨앗을 뿌린 ‘혁명수출집단’에서의 훈련
2005년 10월, 차베스의 인기가 정점에 이르고, 그의 정부가 광범한 사회주의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던 중에, 다섯 명의 베네수엘라의 “학생 지도자들”이 정부 전복을 위한 훈련을 받기 위해 세르비아의 베오그라드에 도착했다.
그 학생들은 ‘비폭력행동과 전략 응용센터(캔버스, CANVAS)’의 도움으로 베네수엘라로부터 당도했다.
이 센터는 미국 정부의 정권교체 작전에서 수단으로 기능하는 CIA의 외곽조직인 ‘민주주의를 위한 국가기금(NED)’로부터 대부분의 자금지원을 받고 있으며, 또한 CIA의 파생조직이라고 할 ‘국제공화주의협회’와 ‘국제문제를 위한 국가민주주의협회’와 같은 단체의 지원도 받고 있다.
“CIA의 그림자 조직”이라고 알려진 정보회사 스탯포르에서 유출된 내부 이메일에 따르면, 캔버스는 “1999년과 2000년의 반 밀로세비치 투쟁기에 CIA로부터 자금지원과 훈련을 받은 것 같다”고 한다.
캔버스는 1998년 베오그라드 대학에서 결성된 세르비아의 반체제 집단인 오트포르(Otpor)에서 파생된 조직인데, 세르비아어로 “저항”을 의미하는 오트포르는 결국 밀로세비치 정권을 무너뜨린 시위를 조직함으로써, 할리우드 영화의 수준으로 홍보되고 국제적 명성을 얻은 학생조직이었다.
정권교체전문가들의 이 작은 집단은 소위 “비폭력투쟁의 클라우제비츠”라고 불리는 진 샤프의 이론에 의거하여 활동하고 있었다. 샤프는 전직 국방정보국 분석가인 로버트 헬비 대령과 함께 활동하면서 시위를 일종의 변형된 전쟁으로 무기화하는 전략적 계획을 구상하였고, 그 전략을 워싱턴의 단일지배에 저항하는 국가에 적용했다.
오트포르는 ‘민주주의를 위한 국가기금’, 미국의 ‘국제개발처’, 그리고 샤프의 ‘알버트 아인슈타인 연구소’의 지원을 받았다. 오트포르의 훈련관 중 하나인 시니사 시크맨은, 그 그룹은 심지어는 CIA로부터 직접 자금지원을 받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스탯포르의 직원으로부터 유출된 이메일에 따르면, 밀로세비치를 권좌에서 몰아낸 후, “오트포르를 운영하던 어린 학생들은 어른이 되어, 정장을 차려입고, 캔버스를, 혹은 다른 말로 하면 많은 ‘색깔 혁명’의 씨앗을 뿌린 ‘혁명수출’ 집단을 만들어냈다. 그들은 여전히 미국의 자금지원에 얽매여 있으며, 세계를 돌아다니며 독재자와 독재정부(미국이 싫어하는 정부)를 전복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스탯포르에 따르면, 캔버스는 동유럽에서 친 나토적인 정권교체운동들을 지도한 후, 2005년에 “자기의 관심을 베네수엘라로 돌렸다”고 한다.
캔버스의 훈련 프로그램을 분석한 스탯포르는 매우 노골적인 어투로 캔버스의 전복활동 계획을 다음과 같이 개괄했다.
“성공의 보장은 결코 없다. 베네수엘라에서의 혁명을 촉발하기 위해 몇 년 동안 노력한다면 거두게 될 결실에 비교한다면, 현재의 학생운동은 출발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훈련관들은 ‘발칸의 도살자(밀로세비치)’를 이로 물어뜯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미친 듯한 능력을 갖고 있다. 당신이 다섯 개의 베네수엘라 대학에서 동시에 시위가 발생하는 것을 본다면, 당신은 이제 훈련이 끝나고 ‘진정한 작업’이 시작됐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정권교체의 핵심세력, “2007년 세대”의 탄생
“진정한 작업”은 2년 뒤, 2007년에 시작됐다.
그 해에 과이도는 카라카스의 안드레 벨로 가톨릭 대학을 졸업했다. 그는 워싱턴으로 가서 조지 워싱턴 대학의 ‘통치와 정치경영’ 프로그램에 등록했는데, 이는 라틴 아메리카의 최고의 신자유주의 경제학자 중 한 사람인 베네수엘라의 경제학자 루이스 엔리케 베리즈베이셔의 후원 하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베리즈베이셔는 IMF의 전직 사무총장이며, 차베스에 의해 축출된 옛 독재정권의 에너지 부문에서 10년 이상 일한 바 있다.
그 해에 과이도는 베네수엘라 정부가 RCTV의 허가를 갱신하기를 거부한 이후 발생한 반정부시위에 일조했다. 이 민영방송국은 2002년 차베스에 대한 쿠데타 시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RCTV는 반정부 시위대가 집결하는데 도움을 주었고, 반정부 세력이 행한 폭력을 친정부세력에게 뒤집어씌우는 방식으로 정보를 조작했으며, 쿠데타가 벌어지던 와중에는 친정부적인 보도를 금지시켰다.
결국 실패로 돌아간 쿠데타를 추동하는데서 RCTV와 다른 (과거의) 독재자들 소유의 방송국이 한 역할은, 커다란 호평을 받은 다큐멘터리, ‘혁명은 방송을 타지 못할 것이다(The Revolution Will Not Be Televised)’에 잘 정리돼 있다.
같은 해, 그 학생들은 ‘21세기 사회주의’를 위한 차베스의 개헌국민투표를 좌절시킨 것이 자기들의 공적이라고 주장했는데, 그 헌법은 “새로운 경제체제의 발전을 위한 전제로써, 조직된 지역사회들에게 직접적인 권력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나라를 정치적, 사회적으로 재조직화하기 위한 법적인 틀을 세울” 것을 약속하는 것이었다.
RCTV와 국민투표에 대한 시위로부터, 미국의 지원을 받는 정권교체를 위한 전문 활동가들의 핵심이 생겨났는데, 그들은 자신을 ‘2007년 세대’라고 부른다.
스탯포르와 캔버스의 훈련관들은 과이도의 동지인 욘 고이코치아라는 자유주의적인 활동가가 헌법 국민투표를 좌절시키는데서 “핵심역할”을 했다는 점을 확인했다. 그 다음 해, 고이코치아는 자기의 노력에 대해 50만 달러의 상금과 함께 카토연구소의 ‘자유의 신장을 위한 밀턴 프리드만 상’을 받았는데, 그는 그 상금을 즉각 자기의 정치조직에 기부했다.
물론 프리드만은 악명 높은 신자유주의 시카고학파의 대부다. 시카고학파는 군사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에 의해 과격한 “충격요법” 방식의 재정긴축정책을 시행하기 위해 칠레로 수입된 바 있었다. 그리고 카토연구소는 코크형제가 창립한 워싱턴에 있는 자유주의적 싱크탱크인데, 코크형제는 공화당에 대한 최대의 기부자이며, 라틴 아메리카 전역의 우파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위키리크스는 베네수엘라 미국 대사 윌리엄 브라운필드가 국무부, 국가안보위원회, 그리고 국방부 남부사령부로 보낸 2007년 이메일을 폭로했다.
이메일에서 그는 ‘2007년 세대’가 “정치적 의제를 능숙하게 설정하는 베네수엘라 대통령으로 하여금 과잉대응을 하도록 만들었다”고 칭찬했다. 브라운필드가 확인한 “떠오르는 지도자”들 중에는 프레디 게바라와 욘 고이코치아가 있었다. 그는 고이코치아를 “학생들 중 시민적 자유를 가장 분명하게 옹호하는 사람 중 하나”라고 격찬했다.
자유주의자들과 미국 정부와 관련된 조직들로부터 풍부한 자금을 공급받은 과격한 베네수엘라의 핵심세력들은, 거리시위에서 오트포르의 전술을 받아들이고, 로고도 모방했다.
도발적 시위 전술은 오트포르에서부터 나왔다
2009년, ‘2007년 세대’의 젊은 활동가들은 가장 도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그들은 자기들의 바지를 내리고, 진 샤프가 그의 정권교체교본에서 개괄한 바 있는 엉뚱한 퍼포먼스를 벌였다.
시위자들은 JAVU라는 젊은이를 대상으로 하는 신생조직의 동료가 체포된데 항의하기 위해 모였다. “꼬뮨 만들기”의 저자인 조지 치카리엘로-마허 교수에 따르면, 이 극우 조직은 “다양한 미국의 자금원으로부터 자금을 모았고, 바로 이 덕분에 그들은 거리시위의 강경파로서의 명성을 빠르게 얻을 수 있었다.”
그 시위의 영상을 입수할 수는 없으나, 많은 베네수엘라인들은 과이도가 그 시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을 확인해 주었다. 이는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다. 엉덩이를 드러낸 시위자들은 과이도가 속해있던 ‘2007년 세대’ 내부의 핵심이었으며, 그들의 표상인 ‘저항하라 베네수엘라(Resistencia! Venezuela)’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 해에 과이도는 그의 ‘2007년 세대’가 부풀린 반 차베스 열기를 모아 정당을 설립함으로써,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대중에게 자신을 드러냈다.
‘대중의 의지’라는 이름을 가진 그 정당은 ‘민주주의를 위한 국가기금’에 깊숙이 관여해온, 그리고 베네수엘라의 가장 부유한 지역 중 하나인 카라카스의 한 지역에서 시장으로 선출된, 프린스턴대학 출신의 우파 선동가인 레오폴도 로페즈가 이끌었다.
로페즈는 초대 대통령의 직계후손이며, 베네수엘라 귀족계급의 전형이었다. 그는 또한 인권재단의 창립자인 토르 할보르센의 사촌이었는데, 인권재단은 워싱턴에 의해 정권교체의 대상으로 정해진 나라들의 반정부 활동가들을 위한 사실상의 홍보조직의 역할을 하고, 미국의 지원을 받는, 미국에 본부를 둔 조직이었다.
로페즈의 관심사가 워싱턴의 관심사와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었음에도,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미국의 외교전문은 ‘대중의 의지당’을 결국 소수파로 전락시킬지도 모르는 그 당의 광적인 경향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한 전문은 로페즈를 “야권 내의 분열적인 인물...오만하고 집념이 강하고 권력에 굶주렸다고 종종 묘사된다”고 밝히고 있다. 다른 전문들은 그가 거리에서의 충돌에 집착하고, 민주적 제도에 참여하는 것을 선호하는 다른 야권 내의 지도자들과의 갈등을 낳는 “비타협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2010년 경, 대중의 의지당과 그 당의 외국인 지지자들은 수십 년 만에 베네수엘라를 강타한 최악의 가뭄을 활용하기 위해 움직였다. 수력발전소를 가동시킬 물이 없었기 때문에 전기가 크게 부족해졌다. 세계적인 경기불황과 유가 하락이 위기를 심화시키고 대중의 불만이 커져갔다.
과이도와 그의 반정부 핵심세력의 중요 조언자인 스트랫포와 캔버스는 베네수엘라 혁명의 심장에 비수를 꽂을 충격적인 계획을 만들어냈다. 그 계획은 2010년 4월까지 베네수엘라의 전력체계의 70퍼센트가 붕괴한다는 가정에 기초해 세워졌다.
스탯포르의 내부 문서는 “이것은 획기적인 사건이 될 것이다. 전력체계의 붕괴로부터 가난한 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차베스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이 사태는 어떤 차베스의 반대파도 꿈도 꿀 수 없을 방식으로 대중의 동요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 시점이 되면 반정부세력들은 그 상황을 최대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을 반 차베스의 방향으로,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전환시킬 수 있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 시점에 베네수엘라의 반정부세력들은 USAID나 ‘민주주의를 위한 국가기금’과 같은 미국정부의 조직들로부터 일 년에 4천만에서 5천만 달러에 달하는 엄청난 자금지원을 받고 있었다. 그들은 또한 자기의 계좌에 막대한 돈을 쌓아놓고 있었는데, 그것은 대부분 외국에 있었다.
스탯포르가 그리던 그 시나리오가 실행되지는 않았으나, 대중의 의지당의 활동가들과 그들의 동료들은 이제 비폭력의 허울을 벗어던지고 나라를 혼란에 빠뜨리기 위한 과격한 계획에 합류했다.
폭력으로 나라를 흔들다
베네수엘라의 보안당국이 입수한 이메일들에 따르면, 2010년 11월, 과이도, 고이코치아, 그리고 몇몇 다른 학생활동가들은 멕시코의 ‘피에스타 멕시카나’ 호텔에서 5일간의 비밀훈련에 참여했다.
그 훈련은 미국정부의 지원을 받는 베오그라드에 거점을 둔 정권교체의 조련사들인 오트포르에 의해 주관됐다. 그 모임은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국무부에서 일하고 있는 반 카스트로 망명자인 오토 라이히와, 전직 콜롬비아의 우파 대통령인 알바로 우리베의 축하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이메일들에 따르면, 모임에서 과이도와 그의 동료 활동가들은 거리에서의 폭력적인 돌출행동을 지속시킴으로써 차베스 대통령을 축출할 계획을 짰다고 한다.
구스타보 토라르, 엘리지오 세데뇨, 그리고 페드로 부렐리 등 세 명의 석유업계의 우두머리들이 모임에 필요한 5만 2천 달러의 경비를 지불했다는 말도 있다. 토라르는 자칭 인권 활동가이자, 지식인인데, 그의 동생은 베네수엘라와 계약을 맺고 있는 멕시코의 석유와 가스 사기업, 페트로퀴미카 델 골포의 베네수엘라 대표다.
세데뇨로 말하면, 그는 미국에 망명을 요청한 베네수엘라의 기업인이다. 페드로 부렐리는 JP 모건의 전직 이사이자, 베네수엘라의 국영 석유회사인 베네수엘라 페트롤리엄(PDVSA)의 전직 이사다. 그는 1998년에 차베스가 권력을 잡자 PDVSA를 떠났고, 현재는 조지타운 대학의 라틴아메리카 리더십 프로그램의 고문단에 소속돼 있다.
부렐리는 이메일들이 조작됐다며, 그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사설 조사관을 고용하기도 했다. 그 조사관은 구글의 기록에 따르면 부렐리의 것이라고 주장되는 이메일들은 전송된 적도 없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현재 부렐리는 베네수엘라의 현직 대통령 마두로가 쫓겨나는 것을 보고 싶다는, 심지어는 리비아의 가다피가 나토의 지원을 받는 민병대에 의해 그랬던 것처럼, 거리에서 질질 끌려다니고 총검으로 찔리는 것을 보고 싶다는 자기의 소망을 숨기지 않는다.
‘피에스타 멕시카나’ 계획은 베네수엘라 정부가 제작한 일련의 문서들에서 드러난 ‘불안조성계획’으로 발전했다.
2014년 5월, 베네수엘라 정부는 마두로 대통령에 대한 암살계획을 상술하고 있는 문서를 폭로했다. 그 문서는 반 차베스 강경론자인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가 그 계획의 지도자임을 보여줬다. ‘민주주의를 위한 국가기금’의 지원을 받는 조직의 설립자인 마차도는 반정부 세력의 대외관계를 담당해왔으며 2005년 조지 W. 부시를 방문한 바 있다.
마차도는 2014년 베네수엘라의 전직 외교관 디에고 아리아에게 쓴 이메일에서, “지금은 더욱 노력할 때다. 필요하면 연락을 하라. 그리고 마두로를 제거하기 위한 재정지원을 얻어라. 그러면 마두로를 제외한 나머지는 스스로 붕괴할 것이다”라고 썼다.
다른 이메일에서 마차도는 그 폭력투쟁계획은 콜롬비아의 미국대사 케빈 휘테커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나는 이미 결심했으며, 이 싸움은 정권이 무너질 때까지 지속될 것이고, 우리는 세계의 우리 친구들에게 한 약속을 지킬 것이다. 내 앞에 군인들이 나타난다 해도 나는 두렵지 않다. 케빈 휘테거가 이미 우리의 새로운 전술에 대한 지지를 재확인했다. 우리는 마두로에 대한 국제적인 지원을 깨뜨릴 더 강력한 지원자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과이도, 싸움터로 나가다
그 해 2월, 망명한 과거의 독재자들의 돌격대 역할을 하는 학생 시위대들이 나라 전체에 바리케이드를 세우고, 반정부 세력에 의해 통제되는 지역들을 ‘과림바(guarimbas)’라고 알려진 폭력이 횡행하는 요새로 전변시켰다. 세계의 언론들이 그 사태를 마두로의 철권정치에 반대한 자발적인 시위라고 묘사했지만, 대중의 의지당이 그 시위들을 조직하고 있다는 증거는 충분했다.
그 당시 과림바 시위의 참여자는, “대학생 시위자 중 그 누구도 대학교의 티셔츠를 입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대중의 의지’, 혹은 ‘저스티스 퍼스트’ 티셔츠를 입었다. 그들은 학생이었을지 몰라도, 학생회는 야당과 관련돼 있었고, 야당이 그들을 책임졌다”고 말했다.
주동자가 누구냐는 질문에, 그 과림바 참여자는 “아주 정직하게 말하자면, 그들은 현재 국회의원들이다”라고 했다.
2014년 과림바 시위에서는 약 32명이 사망했다. 3년 후 다시 시위가 일어나서 공공시설에 대한 대규모의 파괴가 일어나고,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살해됐으며, 126명이 사망했는데, 그 중 다수가 차베스 지지자들이었다. 몇몇 경우에는 정부의 지지자들이 무장한 무리에 의해 산채로 불타죽는 일도 있었다.
과이도는 2014년의 과림바 시위에 직접 관여했다. 그는 마스크를 쓰고 무장한 상태로 고속도로를 막고 경찰과 격렬하게 대치하고 있는 자들에 둘러싸여 있는 영상을 트위터에 공개했는데, 자기 자신도 헬멧과 방독면을 착용하고 있었다.
‘2007년 세대’에의 참여를 넌지시 시사하면서, 그는 “나는 기억한다. 2007년에 우리는 외쳤다, ‘학생들!’ 이제 우리는 외친다, ‘저항하라! 저항하라!’”고 말했다.
이후에 과이도는 그 트윗을 삭제했는데, 이는 민주주의의 수호자로서의 자기의 이미지에 대한 염려 때문임이 분명하다.
2014년 2월 12일, 그 해의 과림바 시위의 극성기에, 과이도는 대중의 의지당과 ‘저스티스 퍼스트’의 집회에서 로페즈와 함께 무대에 올랐다. 정부에 대한 장황한 비난을 하면서, 로페즈는 군중들에게 법무장관 루이사 오르테가 디아즈의 사무실로 행진하자고 말했다. 얼마 후, 디아즈의 사무실은 무장한 무리들의 공격을 받았고, 그들은 사무실에 불을 지르려고 시도했으며, 로페즈는 “계획적이고 미리 준비된 폭력”을 비난했다.
2016년에 텔레비전에 출연한 과이도는 과야스(운전자들을 다치게 하거나 살해할 목적으로 도로를 가로질러 강철로 만든 철사를 늘어뜨려 놓는 것과 같은 과림바 시위의 전술)로 인한 죽음들은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그의 언급은 무엇보다도 산티아고 페드로자 같은 비무장 민간인을 살해하고, 델비스 듀란 같은 사람을 참수한 죽음의 전술을 은폐했다.
사람의 생명을 이처럼 태연하게 무시하는 태도는, 마두로의 반대자를 포함한 많은 대중에게 그의 대중의 의지당의 본질을 보여주곤 했다.
대중의 의지당에 대한 단속이 개시되다
폭력과 정치적 극단화가 나라 전체에서 고조되자, 정부는 그에 불을 지피고 있는 대중의 의지당의 지도자들에 대한 단속을 시작했다.
국회부의장이자 대중의 의지당의 2인자인 프레디 게바라는 2017년 거리 폭동의 주요 지도자였다. 그 폭력사태에서의 역할에 대한 재판을 앞두고, 게바라는 칠레 대사관으로 도피하였고, 지금도 그 곳에 있다.
줄리아 주 출신의 대중의 의지당 국회의원인 레스터 톨레도는 테러활동에 자금을 지원하고 암살을 계획한 혐의로, 2016년 9월에 베네수엘라 정부에 의해 수배됐다. 그는 콜롬비아의 전직 대통령 알라바로 우리베와 함께 자기의 계획들을 수립했다고 한다. 톨레도는 베네수엘라를 탈출하여 휴먼라이트워치와 함께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프리덤 하우스, 스페인 의회, 유럽의회 등에서 연설했다.
대중의 의지당을 이끌었던 카를로스 그라페와 다른 오트포르에 의해 훈련받은 ‘2007년 세대’의 구성원들은 2017년 7월에 체포됐다. 경찰에 따르면 그는 못, C4 폭약, 기폭장치로 가득 찬 가방을 소지하고 있었다. 그는 2017년 12월 27일에 석방됐다.
대중의 의지당의 오랜 지도자인 레오폴도 로페즈는 현재 가택연금 상태로, 2014년 과림바 시위에서 발생한 13명의 죽음에 대해 중요한 역할을 한 혐의로 고발됐다. 국제사면위원회는 로페즈를 “양심수”로 선정했고, 감옥에서 집으로의 그의 이동을 “충분치 않다”고 비난했다. 반면 과림바 시위의 희생자의 가족들은 로페즈를 더 강하게 처벌하라는 청원을 제출했다.
욘 고이코치아는 자기의 자동차에 1킬로그램의 폭약을 소지한 혐의로 2016년 체포됐다. 뉴욕타임스의 기고글에서, 그는 그 혐의는 날조된 것이며, 자신은 단지 “공산주의가 없는 민주주의에 대한 꿈” 때문에 투옥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2017년 11월 석방됐다.
오트포르에 의해 훈련된 ‘2007년 세대’의 원년 멤버인 데이비드 스몰랜스키는 엘 하틸로라는 부유한 지역에서 2013년 최연소 시장으로 당선됐다. 그러나 그는 폭력적인 과림바 시위를 선동한 책임이 인정되어 대법원에 의해 지위를 박탈당하고 15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체포되기 직전, 스몰랜스키는 수염을 깎고,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손에는 성경을 들고, 목에는 묵주를 두르고, 성직자로 위장한 채 브라질로 도주했다. 그는 현재 워싱턴에 거주하고 있는데, 그는 미주기구의 사무총장 루이스 알마그로에 의해 발탁되어 베네수엘라의 이주민과 난민위기를 다루는 실무그룹을 이끌고 있다.
2018년 7월에 스몰랜스키는 이란-콘트라 스캔들로 유죄를 선고받은 사람이자, 트럼프에 의해 베네수엘라 특별대표로 임명된 엘리엇 에이브람스와 “따뜻한 재회”를 했다.
에이브람스는 1980년대에 니카라과, 엘살바도르, 과테말라에서 우파 살인부대를 무장시키는 미국의 비밀작전을 책임진 것으로 악명이 높다. (이번의) 베네수엘라 쿠데타에서 그가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다는 사실은, 또다시 유혈이 낭자한 대리전쟁이 벌어지려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장기판의 노리개
대중의 의지당이 자신이 수행한 폭력 전술들에 의해 스스로 붕괴되면서, 대중들은 그들에게 등을 돌리고, 당의 지도자들은 결국 망명하거나 구금됐다. 과이도는 계속 상대적으로 변변찮은 존재였다. 그는 자기의 9년의 정치경력 대부분을 보궐선거로 당선된 의원으로 보냈다. 인구가 가장 적은 주에 속하는 지역 출신인 과이도는 2015년 의회선거에서 단지 26퍼센트만을 득표하여 2등으로 의원이 됐다. 사실 그의 엉덩이가 그의 얼굴보다 유명했을 것이다.
과이도는 야당이 지배하는 국회의 의장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는 의장으로 선출된 적이 없으며, 국회의 민주연합을 구성하는 네 개의 야당들이 돌아가며 국회의장을 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대중의 의지당의 순서가 됐으나, 당의 창건자 로페즈가 가택연금 상태였다. 그 와중에 당의 2인자인 게바라는 칠레 대사관에 피신해 있었다. 후안 안드레 메지아라는 인물이 다음 순서였으나, 지금에서야 밝혀진 이유 때문에, 후안 과이도가 선택됐다.
베네수엘라의 분석가 세케라는, “과이도의 등장은 계급에 의해 설명이 가능하다. 메지아는 상류계급으로, 베네수엘라에서 가장 비싼 사립대학에서 공부했고, 과이도와 같은 방식으로 대중에게 선전될 수 없었다. 우선 과이도는 대부분의 베수엘라인들처럼 흔한 메스티조의 용모를 갖고 있고, 그들과 같은 부류의 사람인 것처럼 보인다. 또한 그는 매체에 과도하게 노출된 적이 없다. 그래서 그는 다른 어떤 모습으로도 자신을 포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18년 12월, 과이도는 마두로 대통령이 취임식을 하는 동안 대중 시위를 벌일 계획을 협의하기 위해, 은밀히 국경을 넘어 워싱턴, 콜롬비아, 브라질로 갔다. 마두로의 취임식 전날 밤,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캐나다의 외무장관 크리스티아 프리랜드가 과이도에게 전화하여 그들의 지지를 확인했다.
일주일 후, 우파 쿠바 망명자 압력단체 출신이며, 플로리다를 기반으로 하는 국회의원인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 릭 스콧 상원의원, 그리고 마리오 디아즈-발라트 하원의원이 트럼프와 마이크 펜스를 백악관에서 만났다. 그들의 요구에 따라, 트럼프는 만약 과이도가 자신을 대통령으로 선언하면 그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마이크 폼페오 국무장관은 1월 10일 과이도를 개인적으로 만났다. 그러나 그는 1월 25일에 있었던 언론 브리핑에서 그의 이름을 언급할 때 과이도의 이름을 (제대로) 발음할 수 없었다. 그는 과이도를 “후안 귀도”라고 불렀다.
1월 11일 경, 과이도의 위키피디아 페이지는 37번 편집되었는데, 이는 이제 워싱턴의 정권교체 야망을 실현할 ‘예술작품’이 된, 과거의 무명의 인물의 이미지를 세탁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얼마나 대단했는가를 보여준다.
편집된 그의 페이지는 위키피디아의 핵심 관리자들에게 넘겨져 검토됐고, 결국 그들은 그를 베네수엘라의 “경쟁 중인(contested)” 대통령이라고 불리도록 만들었다.
과이도는 무명의 인물이었을지는 몰라도, 그의 과격성과 기회주의성이 결합되어 워싱턴의 요구를 만족시켰다.
트럼프 행정부의 한 인사는 과이도에 대해서, “내부의 부품 하나가 분실상태였다. 그는 우리의 전략이 일관성과 완벽성을 갖기 위해 필요했던 부품이었다”라고 말했다.
베네수엘라의 전직 미국대사 브라운필드는 “처음으로 당신은 군대와 사법기관들에게 천사와 착한 자의 편에 서라는 신호를 보내는 야권의 지도자를 갖게 됐다”고 침이 마르게 말했다.
그러나 과이도의 대중의 의지당은 경찰관들과 평범한 시민들의 죽음을 초래한 과림바 시위의 돌격대를 만든 당이다. 심지어 그는 거리의 폭동에 자신이 참여했다고 자랑한 바 있다. 그리고 이제 과이도는 군대와 경찰의 마음을 얻기 위해, 이 피에 젖은 역사를 지워야 했다.
1월 21일, 쿠데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하루 전에, 과이도의 아내는 군대에게 마두로를 반대하여 일어서라고 촉구하는 영상연설을 했다. 그녀의 연설은 경직되고 감흥이 없었으며, 오히려 그녀의 남편의 정치적 한계를 보여주었다.
과이도는 (외세의) 직접적인 지원을 기다리면서, 지금까지 그래왔던 바와 같은 한결 같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데, 그것은 냉소하는 외세의 꼭두각시의 모습이다. 세케라는 이번 쿠데타의 우두머리에 대해, “이 모든 사태 뒤에 그가 부서지고 불타버린다 해도 그것은 별 문제가 아니다. 미국인들에게 그는 소모품이다”라고 말했다.
http://www.vop.co.kr/A0000138136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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