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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배워 온 농촌관광, 크게 잘못됐다

천사요정 2017. 12. 31. 04:15
[행복사회 유럽 26회] 오스트리아 티롤의 농촌관광은 협동조합형

오스트리아 티롤(Tirol) 지방은 90%가 산악지형이다. 알프스 동쪽의 '산의 나라'로 불리울 정도다. 무주군민인 내게는 한국의 무주, 또는 무진장(무주-진안-장수) 지역을 연상시킨다. 그래서 그런지 개인적으로 초행길임에도 풍광이 그리 낯설지 않다. 살고 있는 무주의 눈 쌓인 겨울철 지형도 그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덕유산 리조트에 가면 마치 티롤지방같은 풍광을 마주칠 수도 있다. 오스트리아 건축가가 티롤풍으로 설계한 티롤호텔이 그곳에서 영업을 하고 있으니까. '강의 다리'라는 뜻의 티롤주의 주도 인스브루크(Innsbruck)의 경제나 산업도 무주와 크게 다를 바 없다. 규모와 차원이 다를 뿐이다. 

자연이 선물한 천혜의 알프스 풍경을 지역의 자원으로 삼고 있으니 당연히 가장 큰 수입원은 관광산업이다. 연간 숙박관광객만 1백만 명 이상이란다. 유럽인들에게도 인기다. 서유럽 최고의 동계 스포츠 관광지로도 유명하다. 동계올림픽을 두 차례나 열었을 정도다. 인스부르크는 가히 무주의 롤모델이 될 만하다. 그러나 아직 희망사항이다. 단순비교는 무의미하거나 불가능하다. 


인스부르크의 중심 시가지는 여느 유럽의 도심과 다르지 않다. 역시 수백년 묵은 중세의 거리를 타임머신을 타고 걷는 듯하다. 그런데 800년이 넘었다는 고건축물들은 박물관 속 유물처럼 박제화되어 있지 않다. 오늘날 현실의 인스부르크 시민들의 생활 속에서 살아 숨쉰다


기둥, 벽체 등 주골조를 구성하는 고풍스런 빙퇴석(氷堆石, moraine) 기둥과 벽체는 알프스 원산이다. 알프스 자연의 기품과 중세 역사의 무게가 동시에 빛을 발한다. 돌덩이 하나하나가 그대로 역사적인 유물이자 인류 문화유산이다. 빙퇴석의 거칠고 투박한 질감과 색상이 현대의 콘트리트 철구조물과 오묘한 조화를 이루며 쇼핑가와 식당가의 풍광을 지배하고 있다. 그대로 의도된 듯한 포스트모더니즘 예술조형물이다.






단연 인스부르트 최고의 명소, 마리아 테레지아 거리의 황금지붕(Goldenes Dach) 앞에는 관광객들이 몰려있다. 구 시가지 후기 고딕양식 건물의 발코니 지붕을 온통 황금이 뒤덮고 있는 모습이 압도적이다. 모두 2738개의 도금된 동판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건물은 1420년 티롤 군주의 성이었다. 1497년 황제 막시밀리안 1세(Maximilian I)가 광장 행사를 관람하려고 황금지붕을 얹은 발코니를 만들었다.  

황금지붕 만큼 화려한 오스트리아 보석 브랜드 스와로브스키(Swarovski) 매장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건물의 주골조를 이루고 있는 수백 년 된 빙퇴석과 휘황찬란한 빛을 발하는 크리스탈 보석의 조화는 신비롭기까지 하다. 무엇보다 매장 점원들이 거의 중국인으로 구성돼있는 점이 유럽의 한복판인지라 오히려 이색적이다. 주고객인 중국인 단체관광객들이 매장의 매출 실적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거의 보석을 '싹쓸이'해 가는 수준이라고 한다.

농촌관광으로 먹고 사는 티롤의 알프스 주민들

마리아 테레지아 거리의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탈 보석 매장  -
▲ 마리아 테레지아 거리의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탈 보석 매장 -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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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물론 여름에도 티롤에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해발 3000m가 넘는 곳에서는 여름에도 스키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여름이나 겨울이나 휴가를 즐기러오는 알프스를 찾는 관광객들 덕분에 90%가 산지인 티롤 산촌의 농민들도 먹고 살 수 있다. 농사를 지을 땅은 없지만 천혜의 자연환경이 있어 먹고 사는 걱정이 크지 않다. 

티롤의 산촌마을들은 농가를 개량한 농박과 식당에서 주로 스키를 타러오는 관광객들을 맞이 한다. 굳이 농가를 찾아 잠을 자고 밥을 먹는 휴양형 손님들 때문에 농업 소득보다 많은 농외 소득이 창출된다. 농가의 겉모습은 작지만 마치 무주리조트의 티롤호텔처럼 아름답고 정갈하다. 

농박을 운영하는 티롤 지역 주민들은 서로 경쟁하지 않는다. 협동하고 연대한다. 상생한다. 마을 단위로 자발적으로 관광협회를 구성하고 운영한다. 관광객 1인당 0.2~0.5유로의 회비를 내서 협회 사무실의 공동 운영비로 마련한다. 마을 중앙에 자리잡은 협회에서는 그 돈으로 숙박예약 시스템도 개발하고 관광정보도 제공한다. 홍보, 마케팅을 위해 행사, 이벤트도 수시로 연다. 개별 농가들 혼자서는 하기 어려운 일을 모두 힘을 모아 스스로 해낸다.  

농촌관광으로 먹고사는 티롤 산촌 주민들에게는 절대 어기지 않는 철칙이 있다. 스스로 살고 있는 마을의 자연경관은 훼손하거나 파괴하지 않는다. 사유재산이지만 자기가 사는 건축물의 외관, 간판 등도 제 마음대로 함부로 고칠 수 없다. 주위 환경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서로, 그리고 정부와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켜낸 자연환경과 농촌경관은 한마디로 '달력 속의 그림' 같다. 그 생생한 실물은 람자우(Ramsau)에 가면 확인할 수 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의 작사자이자 시인인 요셉 수사가 머물렀다는 산촌마을의 작은 시골 성당, 그리고 성당을 둘러싼 공원 같은 묘지, 알프스 자락의 빙하기 녹아 흐르는 시냇물, 맑은 샘물이 끊임없이 솟아나오는 작은 우물. 우물 곁에는 '목 마른 사슴이 샘물을 갈구하듯 오, 주여 ! 나는 당신을 갈구하나이다'라는 성경구절이 적혀 있다. 이 그림 같은 장면을 그리기 위해 그림을 배우는 유럽의 미술학도들은 필히 거쳐가는 현장 스케치 코스가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티롤의 알프스 산촌 농박에서는 바가지요금 같은 불공정한 상행위는 있을 수 없다. 친절하지 않을 수 없고 청결하지 않을 수 없다. 농촌관광 공동운명체로 묶여진 주민들은 이제 3, 4대를 이어 농촌관광사업을 하면서 사업 노하우도 쌓이고 단골고객도 많아졌다. 단골 가운데 자주 만나다 정이 들어 가족처럼 지내는 경도도 적지 않다. 안정기에 이미 접어들었다. 농촌관광으로 능히 먹고 살 수 있다. 

티롤지방의 그림같은 알프스 산촌풍경의 절정, 람자우(Ramsau) 시골교회 묘지  -
▲ 티롤지방의 그림같은 알프스 산촌풍경의 절정, 람자우(Ramsau) 시골교회 묘지 -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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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농박에서 신선한 로컬푸드 치즈와 빵을 

티롤의 농박 운영은 전형적인 B&B(Bed and Breakfast) 방식이다. '아침 식사가 딸린 숙박'을 의미한다. 아침마다 투숙객들은 농박 안의 식당에 모여들어 갓 구운 빵과 신선한 우유, 그리고 가공한 치즈와 햄을 뷔페식처럼 무한정 즐길 수 있다. 지역에서 생산된 신선한 과일과 채소 등 로컬푸드는 기본이다. 단, 아침 말고는 나가서 사 먹어야 한다. 지역 다른 식당과 공생해야 하기 때문이다. 

치즈는 티롤지역 농민들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치즈공방에서 공급받는다. 빌더케제(Wilder käser) 치즈 공방도 그 중 한 곳이다. EU의 지원을 받아 티롤 지방 전통 가옥을 치즈공방으로 개조해 사용하고 있다. 티롤지방의 30여 지역농가들이 협력해서 공동으로 설립, 운영 하고 있다. 일종의 협동조합 형태의 티롤특산 치즈 테마 복합체험관이라 할 수 있다. 

빌더케제 공방의 원재료는 30,000ha의 광활한 초지에 자연순환 축산농법으로 방목하는 1만3000여 마리의 젖소에서 나온다. 알프스 자락 고산지대에서 120여 일 동안 100% 그 땅에서 자란 목초를 먹고 자란 젖소가 생산한 우유로만 치즈를 생산한다. 대표 상품 '알펜-벨치케제'는 역시 오스트리아 치즈경진대회에서 최고상을 받은 명품치즈다. 치즈마이스터가 직접 가공장을 맡아 매일 생산한다. 생산한 가공품은 직판장에 찾아오는 내방객들에게 직거래로 판매한다.   

이렇게 유럽의 농촌관광은 가족농을 중심으로 지역 순환농업 체계를 바탕으로 전문 장인에 의한 고도의 품질관리시스템이 작동되는 수준이다. 티롤의 산촌마을은 물론 평야지역인 독일 넷셀방(Nesselwanger)의 바벨 농가(Berghof Babel) 농가도 그런 선진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대표적인 농촌관광 성공 사례로 모자람이 없다. 

30여 농가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빌더케제 티롤특산 치츠공방  -
▲ 30여 농가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빌더케제 티롤특산 치츠공방 -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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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관광, 농촌마을 만들기, 티롤에서 다시 배우자 

독일의 바벨농가는 온 가족이 참여해 부모와 3형제가 각각 역할을 적정하게 분담하는 전형적인 가족농이다. 농업마이스터인 장남은 농장, 차남은 농가레스토랑, 3남은 치즈마이스터로 치즈가공을 맡고 있다. 특징적인 건 가족농 치고는 투숙객 70명을 한번에 수용할 정도로 규모화되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침대 8개의 농가 허용 면세범위를 넘어서 일반 농박이 아니라 민박업으로 허가를 받았다. 

실내수영장, 스파 시설, 승마장, 산악자전거코스 까지 갖추고 있어 왠만한 전문 휴양리조트 못지 않다. 우리로 치면 대형 관광농원 정도의 사업 규모와 범위로 보인다. 특히 인상적인 시설은 아이들은 위한 놀이공간이다. 실내 모래놀이터, 토끼장 등 자연친화적인 어린이놀이공간이 완비되어 있어 아이를 동반한 가족단위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유럽에서 이러한 농촌관광의 모델과 시스템을 배운 일본도 농촌관광을 잘 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도 지난 십수년 동안 유럽와 일본의 선진사례를 열심히 배웠다. 심지어 '농촌마을 만들기는 곧 농촌관광지 만들기'라는 구호까지 내걸고 농촌관광에 농정예산 투자를 집중했다. 

그런데 뭔가 크게 잘못됐다. 지금 전국 마을마다 유휴시설로 전락한 을씨년스럽고 공허한 체험장, 가공장, 직판장이 넘쳐난다. 행정, 주민, 전문가 가운데 누구의 책임이 더 큰지 굳이 따지는 건 무의미거나 불필요하다. 그럴 시간이 없다. 

단지 대체 무엇이, 어디에서부터 잘못 되었는지는 철저히 되짚어봐야 한다. 오류와 시행착오는 이미 충분하다. 우리 모두 다시 공부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 티롤의 농산촌마을에서, 그 생생한 현장에서 농촌관광, 농촌마을 만들기, 마을공동체의 기본적인 개념과 목적부터 다시 배울 필요가 있다. 

다행히 자연과 사람이 하나되어, 자연과 사람이, 사람과 사람이 서로 상생하면서 농촌관광으로, 마을공동체사업으로 먹고 살 수 있는 방법은 알프스 산촌마을마다, 골짜기 마다 발견할 수 있다.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우리 무진장 산골마을의 미래는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독일 넷셀방 지방의 '바벨 가족농 휴양 민박 농가'
  독일 넷셀방 지방의 '바벨 가족농 휴양 민박 농가'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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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50627○ 편집ㅣ최은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