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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도시구조 변화

천사요정 2018. 1. 21. 21:13
조선왕조 초기에 형성된 서울의 도시구조는 조선 중기까지 큰 변화 없이 유지되었다. 그러나 중기이후 인구가 차츰 늘어나고 상업이 번성해가면서 후기에는 도성 외곽지역에 점적인 형태로 위성도시들이 형성되는 변화가 일어났다. 개항기와 일제강점기 동안에는 서울이 시가지가 남쪽으로 확산되어 조선시대의 동서축의 도시구조가 남북축의 도시구조로 바뀌기 시작했다. 또 4대문안 도성 내에 한정되었던 시가지가 확대되어 용산, 영등포 일대가 개발되기 시작하였다.

광복 이후에는 도시인구의 급격한 증가와 함께 시가지가 한강 이남까지 확산되어 나가고, 기존의 도심 외에도 영등포 · 영동 · 잠실 등의 부도심이 형성되는 동시에 주변에 위성도시들이 형성되는 거대도시 서울로 탈바꿈되었고, 또 수도권이 하나로 묶이는 광역도시화의 길을 열게 되었다.
행정구역의 변화 이미지
도심 간선 가로망의 변천
서울의 도성 내, 즉 4대문안 지역의 가로망은 조선 초기에 그 골격이 형성되었다. 이후 600년 중에서 조선시대 500년 동안은 큰 변화가 없었으나 서울이 현대도시로 탈바꿈하면서 조선시대의 가로망위에 새로운 가로가 건설되었고 기존의 가로폭이 확장되는 등 체계상으로 큰 변화를 겪어왔다.

한성부시대의 가로망 구조는 동대문(흥인문)과 경희궁을 잇는 종로가 중심이 된 동서축 위주의 가로구조를 형성하고 있었다. 경성부 시대 전기에는 용산이 개발되면서 새로운 남북축이 형성되었고, 후기에는 현재의 율곡로, 충무로, 대학로가 조성되어 현대와 유사한 체계가 형성되었다. 서울특별시 시대에는 퇴계로가 건설되었으며, 율곡로가 동대문과 연결되고 사직터널이 건설되어 도성내의 1차 순환가로 구조가 형성되어 현재의 모습이 완성되었다.

이러한 가로망의 형성은 한성부 시대가 순수한 보행중심의 체계로 형성된 것이었으며, 경성부 시대에서는 간선을 전차에 그 이외는 보행에 의존하던 체계였음에 비하여, 서울특별시 시대에서는 가로체계가 자동차 교통위주로 바뀌고 동시에 지하철망이 형성되어 대량·대중교통수단체계로 변화하였다.

도로망의 변화 이미지
시가지 형태의 구성
서울 도시형태의 기본단위는 조선시대의 'ㄱ', 'ㄷ', 'ㅁ'자형의 한옥 도시주택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이러한 형태의 주택이 모여 동네를 이룰 때는 대단히 밀집된 집합형태를 나타냈는데, 몇 집이 모여 이웃을 이루고 이웃들이 모여 보다 큰 이웃을 형성하며 이것이 다시 모여 동네를 구성하는 것과 같이 위계적인 구성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러한 도시조직의 원형은 오랜 시간과 전쟁의 피해 그리고 현대화의 물결에 밀려 거의 다 사라지고 일부지역에서만 크게 변모된 상태로 그 자취만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ㄱ', 'ㄷ', 'ㅁ'자형의 한옥들은 2층 양옥과 아파트, 연립주택으로 바뀌었고, 육조거리인 세종로 양측에 들어서 있던 관아들도 정부종합청사로 바뀌었으며, 종로 양측의 시전행랑도 그 자취만 남긴 채 사라지고 그 자리에 중층, 고층의 빌딩들이 들어섰다. 한편 신시가지인 강남은 구시가지인 강북과 전혀 다른 완전한 새로운 도시조직으로서 나타났다. 서구에서 도입된 근대적인 도시계획의 이념하에 고층의 아파트와 업무빌딩, 대가구, 넓은 도로 등으로 구성된 새로운 도시조직으로 가득차게 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새로운 도시조직이라도 그것이 우리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선택된 이상, 그 속에는 우리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문화적 전통요소가 눈에 보이는 형태로건 보이지 않는 형태로건간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시가지 형태의 변화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