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고발자, 수년간 ‘뿌리깊은 유착’ 공개
“발주처 한수원 묵인…수십억 접대 받아”
“발주처 한수원 묵인…수십억 접대 받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효성그룹 본사. <한겨레> 자료 사진
효성이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과 한전 발전자회사가 발주한 발전소용 변압기 입찰에서 담합한 혐의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조사 중인 가운데 입찰담합의 뿌리에 효성과 발주처 간 깊은 유착비리가 숨어 있다는 내부고발이 나왔다. 또 효성이 담합과 발주처 유착으로 고가로 낙찰받아 매년 수백억원이 국민부담으로 전가됐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경찰은 효성과 한수원 등의 유착 혐의를 수사 중이고, 공정위는 효성의 담합 혐의를 확인했다.
입찰 때부터 들러리업체 내세워
효성이 대신 서류작성·입찰참가
발주처 직원들 접대 받으며
효성이 대신 서류작성·입찰참가
발주처 직원들 접대 받으며
“나도 다 안다. 다음 차례 누구냐”
공정위에 담합비리를 신고한 김민규(44) 전 효성 전력영업팀 차장은 지난 19일 <한겨레>에 효성과 한수원·발전자회사 간 유착비리를 공개했다. 김 전 차장은 “변압기 입찰담합은 발주처의 묵인·방조가 없이는 불가능하다”며 “한수원과 한전 발전자회사 입찰담당자들이 담합을 미리 알고 있었고, 효성은 묵인의 대가로 접대와 뇌물을 제공했다”고 말했다. 또 “발주처 직원들이 접대를 받으며 ‘나도 (담합을) 다 안다, 다음번에는 누구 차례냐’고 묻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2013년 3월 고리 2호기 원전 변압기 입찰은 대표적 유착 사례로 꼽힌다. 변압기는 발전소에서 생산한 교류전압을 높이거나 낮추는 장치다. 김 전 차장은 “효성이 낙찰받고 엘에스산전이 들러리 서기로 담합해, 엘에스가 제출할 기술사양서도 효성이 대신 작성했다”며 “한수원의 입찰담당인 최아무개 차장이 이를 알고 효성을 불러 ‘엘에스 서류에 왜 효성 마크가 들어 있느냐, 엘에스에 다시 제출하라고 전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어 “한수원 기술평가위원회에도 효성의 엔지니어가 엘에스 직원으로 위장해 대리참석했다”며 “평가위가 끝난 뒤 한수원이 ‘우리도 대리참석을 안다,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주의를 줬고, 결국 효성이 입찰을 따냈다”고 밝혔다.
접대는 100% 사전·사후 회사승인
개인카드로 쓰고 추후 정산받아
연 3천만대…부서 전체론 수십억
설·추석 등 명절마다 상품권 돌려
개인카드로 쓰고 추후 정산받아
연 3천만대…부서 전체론 수십억
설·추석 등 명절마다 상품권 돌려
김 전 차장은 “2009년 6월부터 2015년 1월까지 한수원과 발전자회사에 변압기를 납품하는 동안 (담합 묵인 대가로) 수시로 접대했다”며 “접대는 회사에 100% 사전승인과 사후보고를 거쳤고, 개인 신용카드로 먼저 결제하면 회사가 정산해줬다”고 밝혔다. 김 전 차장 명의로 된 우리은행 계좌의 입출금 내역을 보면, 2014년 2월 초부터 6월 말까지 효성은 월급 외에 별도로 22차례에 걸쳐 1408만원을 송금했다. 송금액은 4월23일이 468만5700원으로 가장 많고, 5월23일 405만8500원, 3월24일 248만8300원, 2월24일 209만6900원을 보냈다. 김 전 차장은 “월급 이외 회사 송금액은 모두 접대비”라며 “개인 카드로 결제한 접대비만 연간 3천만~4천만원에 이르고, 회사 법인카드로 쓴 접대비는 그 몇배에 달했으며, 부서 전체로는 수십억원 규모”라고 말했다. 경찰은 이미 김 전 차장의 계좌를 조사해 접대용으로 보이는 500여건의 신용카드 결제내역을 증거로 확보했다.
주요 입찰이나 납품계약 전후로는 고액의 룸살롱 접대가 집중됐다. 그는 “2011년 한전이 발주한 신울진 1·2호기 원전용 변압기 입찰에서 효성이 1200억원 규모의 납품계약을 따낸 직후 발주처 직원들에게 저녁 8시부터 다음날 새벽 5시까지 3차에 걸쳐 접대를 했는데 카드 결제액이 2천만원 나왔다”고 말했다. 한수원 고위층도 유착비리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김 전 차장은 “2011년 초 효성 임원이 한수원 경영진과 저녁식사를 하면서 1천만원을 건넸다”며 “이 경영진은 2년 뒤 다른 수뢰사건으로 처벌됐다”고 말했다.
김 전 차장은 “설날·추석 등 명절 때마다 10만원권 상품권 수십장을 봉투에 넣은 뒤 서류에 끼워서 한수원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김 전 차장은 “2014년 10월 한수원 입찰담당인 최 차장에게 효성 입찰비리를 제보했지만 아무 변화가 없었고 오히려 효성에 제보 내용을 전해줬다”고 털어놨다.
또 효성은 담합과 발주처 유착으로 높은 가격에 낙찰을 받아 50~60%에 이르는 고수익을 남긴 정황도 드러났다. 효성의 일반변압기영업팀이 2013년 11월 작성한 ‘직원 포상요청서’를 보면, 한수원이 발주한 고리·울진·월성 등 3개 원전의 변압기 입찰에서 17억6천만원을 수주했는데 고리 이익률 50%를 포함해서 평균 이익률이 30%에 달한다고 적혀 있다. 김 전 차장은 “2013년 6월 한수원에 납품한 한울 1·2호기 변압기의 경우 수주액 8억원에 이익률이 60%였다”며 “발전회사 부담은 전기료를 통해 국민부담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매년 최소 500억원 이상(정상이익률 10% 기준)이 국민부담으로 전가된 셈”이라고 말했다. 이어 “효성은 이익률을 높이기 위해 한수원의 입찰 예산이 높게 책정되도록 로비를 했다”고 폭로했다.
경찰은 지난해 말부터 효성과 한수원 등의 유착 혐의에 대해 수사 중인데 혐의를 뒷받침할 증거를 상당 부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관계자는 “수사 중인 것은 맞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효성의 담합을 확인하고 심사보고서(검찰의 공소장에 해당)를 발송하는 등 제재 절차에 착수했다.
한수원 담당자에 비리 제보했더니
아무 변화없고 제보내용 효성통보
유착 결과는 50~60% 고가 낙찰
매년 최소 500억원이상 국민 부담
아무 변화없고 제보내용 효성통보
유착 결과는 50~60% 고가 낙찰
매년 최소 500억원이상 국민 부담
한수원 “조사의뢰”-효성 “개인비리”
김 전 차장은 “2013년 3월 회사에 불법담합 중단을 요청한 뒤 회사 내부 제보 시스템을 통해 입찰담합·발주처와의 유착비리 등을 신고하고, 한수원에도 비리를 제보했으나 소용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2014년 3개월 정직 징계를 받은 데 이어, 2015년 말 해고됐다. 김 전 차장은 “나도 불법행위에 가담했기 때문에 처벌받을 수 있지만, ‘누군가는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나서게 됐다”며 “조직의 배신자가 아니라 전체 사회를 위한 ‘내부고발자’라는 생각을 갖고 공정위, 산업통상자원부, 국민권익위원회에 알리니까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고 털어놨다.
이에 대해 한수원은 “김 전 차장으로부터 비리 제보를 받은 직후인 지난해 9월초 공정위에 담합 조사를 의뢰했다”며 “입찰 기업과의 유착비리는 경찰 수사 중이어서 입장을 밝히기가 어렵고, 2014년 입찰담당 직원에 비리를 제보한 것은 회사에서는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효성은 “담합 혐의 중 일부가 공정위 조사에서 확인된 것은 맞다”면서도 “담합은 김 전 차장이 개인적으로 저지른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회사의 접대비 송금은 확인에 시간이 걸리는데, 내부 규정상 불가능한 일”이라며 “김 전 차장이 인사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은 데 불만을 품고 공익제보자를 자처하며 비리 폭로 협박, 업무지시 불이행 등 여러 문제를 일으켜 결국 해고한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효성은 조현준 회장이 수백억원대 비자금 조성과 배임 혐의로 지난 17일 검찰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해 조사를 받은 바 있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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