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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ussian who witnessed Empress Myeongseong's

천사요정 2020. 10. 26. 06:49

명성황후의 암살을 목격한 러시아인

이 사진은 1891년 완공된 아파나시 세레딘사바틴(1860-1921)이 설계하고 건설한 서울 주재 러시아 공사관의 정문과 건물들을 보여준다. 문화재청의 예절


권미유씨

1895년 10월 8일 새벽, 지금의 '을미사변'으로 알려진 이 사건으로 조선 고종의 부인인 명성황후가 일본인들에 의해 암살되었다.

일본은 처음에는 이 사건에 대한 개입을 부인했지만, 한 러시아인의 증언이 판을 뒤집었습니다. 당시 왕실의 호위병이자 궁전에서 보초 근무를 하던 아파나시 이바노비치 세레딘사바틴(1860~1921)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목격하고 자신이 본 것을 기록했다.

일제가 훈련시킨 '친일인명' 조선군이 경복궁을 점령했습니다. 일본 암살자들은 황후와 왕후로 추정되는 여성들을 살해했다. 세레딘사바틴은 10월 8일 암살 사건이 일어난 장소와 그가 이 사건을 일으킨 것으로 믿었던 배경 외교 정보와 함께 "승리한 '친일' 일파는 조선의 왕을 사실상 감금했다"고 증언에 적었다.

 

아프나시 세레딘사바틴이 1895년 명성황후 러시아 제국의 대외정책 기록손으로 그린 지도, 일명 을미사변(을미사변)은 대해 시해사건에 보관소에서제공한 것이다. 문화재청의 예절


문화재청이 덕수궁 중명전에서 열린 '러시아 건축가 아파나시 세레딘-사바틴의 생애와 작품' 전시회에서 한국의 격동 현대사에 한몫한 이 잘 알려지지 않은 외국인을 조명하고 있다.

안드레이 쿨릭 주한 러시아대사가 한국과 모스크바 수교 3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회를 축하했다.

쿨릭은 "1884년 조선과 러시아가 상호통상조약을 맺은 19세기 이후 양국은 호의에 바탕을 둔 좋은 이웃이자 친구로 남아 있었다"고 말했다.

 

아파나시 이바노비치 세레딘사바틴(1860~1921)의 초상 / 문화재청 예절


독학한 러시아 건축가

세레딘사바틴은 우크라이나 폴타바에서 태어나 14세에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주한 뒤 미술과 해양학을 공부했다.

1883년 독일의 고문인 파울 게오르크 폰 몰렌도르프와 함께 인천의 해상 세관에서 조수로서 조선에 도착했다. 이후 1904년까지 조선에서 수년을 보내면서 이 나라 역사의 중요한 시기를 목격하고 근대 건축물을 한국에 들여왔다.

세레딘사바틴은 그의 성을 한국어로 번역하여 "살파정" 또는 "살파진"으로 불렸다.

1888년 세레딘사바틴은 지금의 서울로 알려진 한성으로 이주하여 서양식 건물의 설계와 건설에 참여하였다. 인천부두, 경복궁 관문각 건물, 러시아 공사관 건물 건설에 관여했다.

세레딘-사바틴은 왕족, 특히 고종과 친교를 쌓았고, 그로 인해 다른 나라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궁내부대신이 되어 비극적인 날 경복궁에 있었던 것이다.

고종이 이듬해 러시아 공사관에 피신할 때 러시아 건물도 세레딘사바틴이 설계했다.

건축가는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목격한 뒤 1895년부터 1899년까지 일시 한국을 떠나 중국에 머물다가 귀국해 더 많은 공사를 추진했다. 이후 1904년 러일 전쟁이 발발하자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주하였다.

 

조선 왕궁 최초의 서양식 건축인 경복궁의 관문각 건물은 아파나시 세레딘-사바틴이 지은 것이다. 문화재청의 예절


서양건축의 소개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인 세레딘사바틴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한국의 건축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

전시회가 열리는 중명전은 19세기 후반 근대 건축양식의 예를 보여주며 한국에 남겨진 세레딘-사바틴 건축유산의 일부로 추정된다. 유럽풍의 2층 건물로 붉은 벽돌 외관이 있으며 과거 외국인들의 클럽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세레딘사바틴이 국내 서양식 건축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추측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건축가가 설계하거나 건축한 건물은 단 2개뿐이다.

전시회에서 보이는 것은 상트페테르부르크 주재 러시아 장교와 일본 하청업체가 예산 문제로 백지화한 러시아 공사관의 첫 번째 설계안과 실제 시공된 세레딘사바틴의 변형 설계안이다.

칼 이바노비치 베버 러시아 영사는 "이 청년이 궁궐 안에 조선왕실을 위해 아름다운 2층 건물을 지었다"며 그를 서울의 공사관 건물 건립에 추천했다. 건축가는 아니지만 자습을 통해 건축에 필요한 지식을 배운 근면하고 점잖은 분입니다."

공사관 건물은 1950-53년 한국전쟁 때 파괴되었고 오늘날에는 3층짜리 하얀 탑만 남아 있다.

세레딘사바틴의 창작물은 근대화의 길에 서양의 문화를 들여오려는 고종의 시도와 조선이 세계 열강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 노력했는지를 반영한다. 세레딘사바틴이 공식적으로 건립에 참여한 또 다른 건물은 조선 경복궁 최초의 서양식 건축물인 관문각이다.

덕수궁 중면전과 정관헌도 세레딘사바틴이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가 설계한 러시아 공사관의 정문과 유사점을 공유하는 동림문의 건축가라는 추측도 하고 있다.

항구도시 인천에서는 세레딘사바틴의 영향을 케물포 클럽, 러시아 영사관, 서창무역회사 거주지에서 볼 수 있다.

이 전시회는 11월 11일까지 진행되며 CHA의 유튜브 채널에서도 온라인 시청이 가능하다.

 

안드레이 쿨릭 주한 러시아대사가 10월 19일 덕수궁 중명전에서 열린 '러시아 건축가 아파나시 세레딘-사바틴' 전시회의 언론시사회에서 말하고 있다. 문화재청의 예절

https://www.koreatimes.co.kr/www/culture/2020/10/145_29817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