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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정책의 핵은 안보보다 경제이해관계" - 윤영관 인수위 외교간사 지론, 과연 부시에게 통할까

천사요정 2021. 3. 1. 03:46

 2002.12.30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임명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개혁적 학자들이 대거 영입돼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외교통일안보분과 간사로 임명된 서울대 외교학과 윤영관 교수(51)는 최근 북핵 위기 및 한미관계 설정이 초미의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상황이어서 특히 주목의 대상이 된다.
  
  윤영관 교수는 미국의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국제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캘리포니아대 정치학교수, 세계은행 컨설턴트, 존스홉킨스대 객원교수 등을 역임한 국제정치경제 전문가로, 4명의 인수위 외교통일안보분과 위원 중 유일하게 미국에서 수학한 '미국통'이기도 하다. 윤 교수는 따라서 노무현 새 정부의 대미정책에서 주도적 역할을 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는 물론 국내에서도 윤 교수의 향후 외교노선이 어떤 성격을 띨 것인가에 대해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다. 그만큼 윤 교수가 생소하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윤 교수의 국제정치 인식이 잘 드러난 논문을 한편 소개한다. 이 논문은 지난 10월 4일 한국경제위기 5년을 돌아보는 국제학술대회 '한국경제:위기를 넘어서'에서 발표된 것이다.
  
  윤 교수는 이때 발표한 <1997년 위기에 대한 미국의 정책대응(U.S Policy Reponse toward the Crisis in 1997)>이라는 영문 논문을 통해 "당시 미국의 정책 대응은 안보적 고려보다는 미국의 경제적 이익, 특히 월가의 이익에 대한 고려가 더 중요하게 작용했다"면서 "특히 이 과정에 국제통화기금(IMF)은 미국이 일방적인 압력을 행사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고 주장했다.
  
  윤 교수의 이같은 판단은 근본적으로 "냉전 종식후 국무부가 퇴조하고 재무부의 득세하면서 미국의 정책은 안보의 관점보다는 미국의 경제적, 특히 금융적 이해관계를 내포하고 있다"는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 요컨대 '월스트리트-재무부 복합체'가 미국을 작동시키는 엔진이라는 주장이다.
  
  윤 교수는 IMF위기 당시 미국의 대응을 예로 들어 "한국의 위기에 대응한 미국 정책의 목적은 주로 미국의 경제적 이해관계라는 관점에서 규정됐다"고 단언한다.
  
  윤 교수가 과연 북핵위기라는 새로운 한반도 위기에 대해서도 같은 관점을 고수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북한이 벼랑끝 협상카드로 들고나온 핵무기는 단순한 군사무기가 아닌 '정치무기'로, 현재 미국이 미국경제 이해관계의 토대를 형성하고 있는 '핵의 패권'을 근본적으로 위협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현재의 부시 공화당정부는 97년 당시의 클린턴 민주당정부와는 대조적으로 미국 군수자본의 이해를 철저히 대변하고 있다는 차별성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부시정부의 공격 일변도의 대북정책에 대해 월가 등 미금융자본은 크게 반발하는 분위기다. 미국의 근원인 경제 이해관계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선 말기에 월가의 이해를 반영하는 블룸버그통신 등이 이례적으로 북한과의 대립노선을 천명한 이회창 후보 대신 대화를 통한 해결을 주장한 노무현 후보를 공개지지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과연 윤영관 교수로 대표되는 노무현 외교팀이 새 정부의 최대현안이자 위기인 북핵 문제를 얼마나 냉철하게 풀어나갈 수 있을지, 예의주시할 일이다.
  
  다음은 윤 교수 논문의 주요내용이다.
  
  <1997년 위기에 대한 미국의 정책대응(U.S Policy Reponse toward the Crisis in 1997)>
  
  1.서론
  
  한국의 위기는 대부분의 미국 정책당국자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한국경제는 세계 11위 경제대국이며 미국의 5대 무역국이었다. 통상적인 경제지표상 경고신호는 없었다. 미 정책결정자들은 한국을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하게 보기 때문에 미국의 고위관료들은 한국경제위기가 가져올 파장에 대해 크게 우려했다.
  
  로버트 루빈 당시 미국 재무부 장관은 "...미국은 한국의 안정을 유지하고 한반도에 문제를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할 심대한 국가안보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 논문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국의 위기에 대응한 미국 정부의 주요목적은 무엇인가. 특히 미국의 정책이 루빈 장관이 시사하듯 안보적 이해관계에 주로 기반을 둔 것이었는가, 아니면 실제로는 경제적 고려가 가장 중요한 것이었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통해 미국 정부가 위기관리 과정에서 보여준 행태의 배경, 그리고 목적 달성을 위해 어떻게 행동했는지 밝히려고 한다. 이러한 분석은 이 논문 말미에 제시할 세계금융질서의 미래에 대한 시사점을 제공해 줄 것이다.
  
  2.태국의 위기와 아시아금융기금(AMF) 창설제안에 대한 미국의 대응
  
  1995년초 멕시코 페소화 위기가 터졌을 때 루빈 장관과 참모들은 즉각 멕시코 경제 원조에 나섰다. 그들은 멕시코 정부가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지고 경제위기가 악화되면 미국으로 불법이민자가 밀려들고 이로 인해 보호정책주의자들의 반발을 초래해 다른 남미국가로까지 위기가 번질 것을 우려했다.
  
  미 하원의원이 협조를 꺼리자 루빈은 의회동의가 필요없는 외환안정기금(ESF)를 동원하기로 결정했다. IMF가 제공하는 4백억 달러에 이 기금이 추가됐다. 그러자 멕시코 위기 이후 상원의원 알폰스 다마토(뉴욕)은 세출예산안을 수정해 재무부가 의회 승인 없이 신흥시장에 ESF를 사용할 수 없도록 했다.
  
  태국의 경제위기에 대한 미국의 대응은 이런 제약에 큰 영향을 받았다. 97년 7월 태국의 위기가 발생하자 루빈은 의회와 우선적으로 상의하지 않았다. 그 대신 루빈은 재무부장관 로렌스 서머스와 함께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앨런 그린스펀 의장과 의논한 뒤 태국 경제에 미국의 자금을 투입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미 국무부와 국가안보회의는 이 지역에 대한 리더로서 미국의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해서 적절한 규모의 자금을 지원할 것을 촉구했지만, 루빈은 거부했다. 루빈과 참모들은 태국의 위기를 '지역문제'로 인식했으며, 어떤 경우에도 의회 승인절차를 밟기를 싫어했다.
  
  미국의 지원이 거부되자 일본은 태국에 IMF가 마련한 규모만큼인 40억 달러를 긴급제공했다. 일본 정부는 또한 50억 달러를 인도네시아에 제공했으며 한국에 제공된 IMF자금 5백70억 달러 중 1백억 달러를 보태기도 했다.
  
  일본은 사실상 미국의 지원거부로 발생한 권력공백을 채우려 한 것이다. 97년 9월 홍콩에서 열린 IMF 회의에서 일본 재무성은 1천억 달러의 AMF 창설을 제안했다. 이 제안은 당시 재무성 차관 사카키바라 에이스케에 의해 마련된 것으로, 그는 오랫동안 정부 주도의 일본경제모델을 강력히 지지해온 인물이다.
  
  미국의 관료들은 AMF 창설 제안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루빈은 두 가지 기금이 존재하면 채무국들에게 혹독한 구조개혁을 강요하기 매우 힘들게 된다는 판단을 했다.
  
  3.미국 정부와 위기
  
  1)아시아 위기 대응책의 변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그리고 필리핀 등 아시아 국가들에서 화폐가치 하락, 주식시장 침체가 심각하게 일어나자 루빈은 동남아시아 지역의 사태 악화가 미국의 수출에 타격을 줄 것을 점차 우려하게 되었다. 이 위기를 방치하면 한국, 브라질, 러시아 등 다른 나라들에게도 번져가리라는 우려를 하기에 이르렀다.
  
  미국 관료들은 IMF와 또다른 다국적 기관들이 구제자금을 제공하는 선도 역할을 맡으면 이러한 자금만으로도 위기를 차단하는 데 충분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아시아 정책당국자들은 다국적 기관들의 자금만으로는 충분하다는 주장을 믿지 않았다. 이에 '제2방어선'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97 11월 마닐라에서 열린 미국과 아시아 재무차관 모임에서 '마닐라 구상'으로 불리는 안건이 채택됐다. IMF가 위기관리의 중심기관이 되지만 필요하다면 또다른 다국적 기관들로부터 자금이 보충될 수 있으며, 이러한 1차 방어선으로 충분하지 않을 경우 제2방어선으로서 양국간 협조융자 형태로 자금이 제공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2)한국 1차 구제 결정(97 12월3일)
  
  11월 중순경 미국관료들에게 한국이 심각한 재정위기에 봉착한 것이 분명해졌다. 미국관료들의 대책모임의 분위기는 비관적이었다. 그들은 한국이 디폴트에 근접해 있고, 단기부채가 위험수위이며,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방식으로 기존의 관행을 바꾸는 것을 꺼려한다고 판단했다.
  
  미국 국가안보보좌관 새뮤얼 버거는 한국 경제가 붕괴할 수 있으며, 북한이 한국의 사태를 이용해 위험한 군사도발을 일으킬 수 있다고 믿었다. 국무장관 매들린 울브라이트도 비슷한 이유로 구제금융 지원을 주장했다.
  
  그러나 루빈은 한국에 돈만 투입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경제부처와 안보관련 부처들은 회의 끝에 결론을 내렸다. 구제금융 지원에 반드시 성공가능성이 높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합의하고, 설혹 절반의 확률에 못미치더라고 성공 가능성이 있다면 시도할 만한 정치적 가치는 있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 5백70억 달러의 구제금융안이 도출됐다. 마침 ESF에 대한 제한이 시효만기가 되어 50억 달러의 ESF자금도 포함됐다. 1차로 3백50억 달러(IMF 2백10억 달러, 세계은행 1백억 달러, 아시아개발은행 40억 달러)를 지원하되 부족할 경우 나머지가 제공될 수 있도록 했다. 총 5백70억 달러에 달하는 구제금융안은 태국에 제공된 1백70억 달러, 4백억 달러에 가까운 인도네시아 지원자금, 멕시코에 제공된 4백80억 달러를 능가하는 것이었다.
  
  이제 루빈 등 미 재무부 관료들의 주관심사는 한국의 구조개혁 압박으로 전환됐다. 이 문제에 대해 미 재무부와 IMF 관계자들 사이에 견해 차이가 있었다. IMF 관계자들은 "미국이 추진하는 구조개혁이 사태를 막는 데 반드시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며 한국의 구조적 취약성으로 인해 오히려 투자자 신뢰를 더욱 손상시키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IMF의 한 관계자는 "미국은 많은 나라들에게 했듯이, 한국의 위기상황을 오랫동안 자신들을 성가시게 했던 점들을 일거에 해소할 수 있는 기회로 보았다"고 꼬집었다.
  
  루빈은 특히 한국의 시장개방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12월3일 미셸 캉드쉬 IMF총재는 서울에 도착해 "미국은 미온적 IMF프로그램에는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 하원 공화당 의원들의 압박도 루빈이 시장개방을 요구하는 강력한 프로그램을 추진한 요인이었다.
  
  론 폴 공화당 의원(텍사스)은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구제금융은 미국의 납세자들이 낸 세금을 위험에 빠뜨리고 달러 약세와 인플레이션을 불러일으켜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의 노동자와 납세자들이 은행과 투자자들의 손실을 막기 위해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일부 민주당 의원들도 인권과 노동조건 개선을 국제원조와 연결시키길 원했다.
  
  미 행정부는 "IMF와 미국의 지원은 한국의 경제체제 혁신을 요구할 힘을 주는 것"이라며 의회를 설득했다. 한국 정부가 금융기관들에게 부실기업이나 정치적 연줄을 가진 기업들에게 자금을 제공하라는 압력을 행사하기 힘들게 하고, 시장개방을 확대하고 시중은행을 포함한 한국기업들에 대한 외국투자 여건을 좋게 만들라는 요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한국 정부가 IMF 프로그램의 모든 요구조건을 계속 따르고, 미 재무부가 자금이 회수될 수 있다고 판단할 때만 자금이 제공된다는 점도 덧붙였다. 그러나 이처럼 엄격한 조건은 역설적인 면도 가졌다. 돈이 정말 필요한데, 돈을 받는 데 필요한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딜레마가 숨어 있는 것이다.
  
  3)1224일 2차 한국 지원 결정
  
  한국 정부가 약속한 개혁은 기대한 것처럼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았고 한국의 경제는 국제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하지도 못했다. 하루에 10억 달러씩 한국은행의 외환보유고가 빠져나가면서 거의 고갈돼 연말에 디폴트가 될 것처럼 보였다.
  
  미 재무부는 긴급히 해외 채권은행들에게 협조를 요청해 한국에 대한 채무만기연장을 해주도록 하는 한편, 1219일 데이비드 립튼 차관보를 보내 바로 전날 당선된 김대중 대통령당선자를 만나게 했다.
  
  김 당선자는 립튼에게 "대량해고와 사회불안이 야기되는 한이 있더라도 미국의 원조에 따르는 조건을 이행하고 개혁을 단행하겠다"고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이러한 상황 진전에 따라 한국에 대한 2차 구제금융이 크리스마스 이브에 발표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의문은 왜 위기의 초기단계에서 채무만기연장안이 채택되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12월초 한국에 들어간 모든 구제자금은 채권은행 수중으로 흘러갔다. 이것이 바로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와 IMF 자금의 비효율성에 대해 큰 우려를 불러일으켰던 '구제금융 문제'였다.
  
  브래드포드 드롱과 배리 아이켄그린 교수가 설명에 따르면 만기연장을 위해서는 채권단과 각국 정부들이 집단소송 문제를 극복해야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 정부가 IMF 1차 구제금융 조성에 나설 때 만기연장안을 포함시키는 등 보다 공격적으로 나섰다면 채무자와 채권자 모두 불필요한 대가를 치르지 않을 수 있었고, 2차 구제금융을 받을 위기를 피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4.위기에 대한 미국의 목적과 수단
  
  1)미 재무부의 중립성
  
  냉전 종식으로 미 국무부의 위세가 약화됐다. 국제금융시장이 급속성장하면서 금융현안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미국은 오랜 경제호황을 누렸고 외환시장개입같은 국제 경제이슈들이 훨씬 더 빈번하고 정치적이 되었다.
  
  미 재무부의 영향력이 더 커진 데는 루빈과 그린스펀의 관계도 한 요인이다. 루빈은 재무장관에 취임하자마자 미연준의 통화정책에 대한 일체의 간섭을 배제함으로써 양대 기관 사이에 전통적으로 존재했던 긴장을 해소시켜 버렸다.
  
  루빈은 외교정책에 대한 영향력 행사를 하는 식으로 국무부를 위협하지도 않았다. 이렇게 해서 재무부와 국무부 사이에는 권력경쟁이 거의 없었다. 아시아 위기가 터졌을 때 국무부는 재무부가 미국의 대응을 주도하도록 물러섰다. 의회의 압력이 있었지만 루빈은 대립보다는 타협을 통해 문제를 풀어가려고 했다.
  
  2)미국 정책의 목적과 수단
  
  재무부의 득세를 반영하듯 미국의 정책은 안보의 관점보다는 미국의 경제적, 특히 금융적 이해관계를 내포하고 있었다. 이런 측면은 알려지지 않은 만큼 미국의 독립적인 오피니언 리더들 사이에는 일부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국가안보회의와 국무부는 안보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북한의 열악한 경제사정과 북한이 도발할 경우 미국의 대대적인 보복이 있을 것을 알고 있으리라는 점에서 안보적 고려는 미국의 정책결정에 2차적 요소가 되었다.
  
  경제적 고려가 핵심이었다는 증거는 몇 가지 들 수 있다. 첫째, 클린턴 행정부의 최우선 목표는 항상 미국의 경제번영을 지속시키는 것이었다. 클린턴 행정부는 아시아 위기가 이 번영에 잠재적 위협이 될 수 있으리라고 크게 우려했다. 경제번영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금융시장의 신뢰를 진작시켜야 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러한 이유로 재무부와 월가의 긴밀한 커넥션이 형성되었다.
  
  전 미 노동부 장관 로버트 라이시가 "월가가 경제, 정치 영역 모두에 대해 이처럼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세계를 받아들여할 필요가 있는가"라고 비판했을 정도다.
  
  재무부와 월가의 관계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었다. 블루스타인과 챈들러에 따르면 채권은행이 만기연장에 동의한 뒤에야 루빈은 구제금융 지원에 나섰다. 민간채권자들이 구제정책의 짐을 일부 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미 백악관과 재무부 관료들은 납세자들의 돈이 부유한 은행들의 구제에 쓰이고 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처럼 소위 '월가-재무부 복합체'는 미국 경제번영이라는 목표를 진전시키는 데 중요했다. 미 연준은 재무부와 은행들 사이의 다리 역할을 했다.
  
  이것은 미국의 경제정책에 대한 금융적인 이해관계의 영향력이 일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하나의 예다. 이런 현상은 미국 경제의 '금융화'(financialization)의 결과로 이해될 수 있다.
  경제정책에서 '레이건-대처 혁명'은 금융자유화와 세계화를 추구하는 태도에 급격한 변화를 가져왔다. 이는 미국과 영국 뿐 아니라 전세계에 걸친 것이다.
  
  미국의 정책에서 다른 목적은 한국의 구조개혁과 시장개방을 촉진하는 것이었다. 루빈은 한국의 위기를 일본식 경제모델을 추구한 결과로 간주했다. 미 재무부는 한국정부에게 금융시장을 개방하고 일본식 모델을 포기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이러한 압력의 배경에는 미국 금융기관들의 로비가 있었다. 한국정부가 외국투자자에 대한 규제를 제거하게 되면 한국시장에 진출할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미국은 또한 수출입에 대한 장벽도 제거하려고 했다. 미 재무부는 특히 IMF가 미국의 이익을 위한 전위부대 역할을 하도록 요구했다. IMF 관계자들은 "자동차 시장과 금융부분의 개방을 촉진하라는 요구 같은 조건은 주요주주들(일본, 미국)의 압력을 반영한다"고 인정했다.
  
  IMF는 시장개방 압력에서 주요주주인 미국 정부의 에이전트처럼 행동했다. 미국이 IMF 18%의 지분을 갖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브루스 커밍스에 따르면 앨런 그린스펀은 "아시아 금융위기의 결과는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서구적 양식'을 향한 전세계적인 동향'이었다고 말했다.
  
  미 재무부와 IMF 복합체는 월가-재무부 복합체와는 차이가 있다. 후자는 정책 네트워크로서 구조적인 관계라면 전자는 순전히 월가-재무부 복합체가 설정한 목적의 도구였다.
  
  5. 결론
  
  한국의 위기에 대응한 미국 정책의 목적은 주로 미국의 경제적 이해관계라는 관점에서 규정됐다. 미국의 외교정책적 목표를 규명하는 것과 관련정책의 결과와 의미를 평가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미국의 정책에 대해 옹호하는 신자유주의 우파와, 미국과 IMF에 대해 비판하는 좌파 사이의 지나치게 단순화된 논쟁에 빠져드는 것을 피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조지프 스티글리츠 박사는 IMF의 교조적인 처방들이 채무국의 사회정치적인 상황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인도네시아에 대한 IMF의 처방이 어떤 식으로 정치사회적 분란을 초래했는지 경험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들은 위기에 대한 실행가능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문제가 있다. 미국과 IMF의 신자유주의적 처방에 대한 비판을 하면서 그들은 한국이 국가 주도의 경제개발이라는 전통적인 모델을 고수해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재벌의 연합에 기초한 전통적인 모델은 한국 경제 자체의 상황변화로 인해 더 이상 존속하기 힘들다는 것은 분명해졌다.
  
  미국과 IMF가 내놓은 정책과 처방들이 이러한 딜레마에 충분히 민감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위기에 따른 충격으로 한국이 구조적 왜곡을 제거하는 중요한 기회를 얻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한국이 반드시 앵글로 색슨식 자본주의 모델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보다 합리적이면서도 한국적인 자본주의 경제모델을 발달시킬 기회가 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위기와 대응에서 얻은 확실한 교훈 하나를 든다면 급격한 금융세계화와 더딘 위기관리기법 발달 사이의 갭(간극)이 초래하는 위험이다. 적지 않은 아시아 학자들은 현행 국제금융체제는 비효율적이고 불평등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루빈은 이 문제에 대한 명확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았다. 조지타운대에서 행한 연설에서 "해외투자자들은 엄청난 자본을 위험에 대한 적절한 고려없이 투입했다. 나는 채권자나 투자자들을 돕기 위해 한 푼도 줄 생각이 없다.....불행하게도 몇몇 투자자를 보호하지 않고는 성장과 안정을 회복할 방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최근 몇 년사이 국제금융구도를 보강하기 위해 많은 논의가 이루어졌지만 실망스럽게도 구체적인 성과는 거의 없었다. 서구 선진국들의 정책당국자들은 여전히 이데올로기와 글로벌 자본주의 기관들에 사로잡혀 있다. 궁극적으로 그들은 보다 안정되고 평등한 국제금융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자신들을 해방시켜야만 할 것이다.

이승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