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은 재산 아닌 부채, 일본에선 '부동산(負動産)' 시대
초고령화·인구 감소..한국 부동산도 일본 따라갈 것인가
“빈 집, 10만 엔(약 104만 원)에 사 봤습니다.”
일본 유튜브에는 이런 제목의 영상들이 적잖이 올라온다. 노인들이 살다가 떠났음직한 지방의 수십 년 된 구옥(舊屋)들이 10만 엔, 20만 엔에 거래된다. 가재도구가 그대로 남아있는 집들도 적지 않다. 집을 산 구매자가 유튜브에 맨 먼저 올리는 영상은 ‘보물찾기’다. 빈 집을 탐험하며 상태를 살피고, 혹시라도 남아 있을 골동품이나 귀중품도 찾아본다. 이를 테면 100년 된 집에서 강아지 밥그릇으로 사용하던 그릇이 진귀한 골동품이었다는 식의 ‘대박 스토리’에 기대를 거는 것이다.
‘빈집, 20만엔에 사봤습니다’ 류의 유튜브 영상들. 유튜브 캡처
○고령화 인구 감소로 방치된 빈집들
그도 그럴 것이 일본 노인들은 현금을 선호하고 이를 자신만이 잘 아는 곳에 숨겨두는 일이 적지 않다. 은행에 맡겨도 금리가 0%대인 데다, 노인들의 특성상 자신의 손닿는 곳이 가장 안전하다고 믿는다. 그러다가 치매라도 오면 자산의 존재 자체를 잊고 방치하게 된다. 노인이 살던 안방 바닥을 뜯었더니 현금다발이 나왔다거나 집을 철거하다가 벽에서 금붙이가 나왔다는 뉴스가 소개되곤 했다. 하지만 유튜브에서 보는 현실 세계의 보물찾기는 옛날 지폐 몇 장이나 쓰레기더미 속에 섞인 동전더미를 발견하는 선에서 끝나곤 한다.
일본 총무성 통계국이 발표한 ‘2018년 토지·주택 통계 조사’를 보면 일본 전국의 빈집은 846만 가구로 전체 주택의 13.6%를 차지한다. 직전 조사인 2013년보다 26만 가구 늘었다. 노무라총합연구소는 2033년에는 빈집이 전체의 30%를 넘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빈집이 늘면 집값 등 자산 가치만 떨어지는 게 아니다. 빈집 비율이 30%를 넘게 되면 치안이 악화되고 슬럼화가 진행돼 지역사회 붕괴로 이어진다. ’빈집=지방 폐가(廢家) 또는 별장지‘라는 공식도 깨지고 있다. 위 통계에 따르면 도쿄에만 81만여 채의 빈집이 있고, 그중 70%가 도심 23구내에 있었다고 한다.
일본 도쿄 스기나미구 주택가의 빈집들. 서영아 기자 sya@donga.com
○팔리지도 않고 버릴 수도 없고
그래서 일본에서 부동산은 이제 ‘재산이 아니라 부채’라는 평가를 받는다. 휴양지 맨션이나 별장지 등은 돈을 얹어주며 처분하는 경우가 늘었다. 주택 또는 토지는 “공짜로 준다 해도 싫다”고 손사래 치는 사람들에게 “돈 드릴 테니 가져가주세요”라고 매달리는 시장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이제야 부담에서 벗어났습니다. 저 세상까지 들고 가지 않을 수 있어 다행이예요.”
2017년 8월 아사히신문이 시작한 ’부(負)동산 시대‘ 시리즈에는 도쿄 인근의 토지 100여 평을 10만 엔에 팔아버린 78세 A씨 부부의 얘기가 소개됐다. 부동산 버블 말기인 1991년 초 노후에 별장을 짓겠다며 1300만 엔에 사들인 토지였다. 중개수수료와 세금 등으로 21만 엔이 들어 최종적으로는 11만 엔 적자였지만 부부는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한다. 토지에는 매년 재산세와 관리비가 5만 엔 이상이 들어갔는데, 자녀들은 상속받지 않겠다고 하고 구청에 낸 기부 제안도 거절당한 터였다.
1년 전 사망한 형의 스키장 인근 맨션을 엉겁결에 상속받은 B씨(61)도 115만 엔의 비용을 들여 소유권을 털어냈다. 그 비용을 내면 물건을 사겠다는 부동산업자의 제안이 반가웠다는 그는 “돌아간 형이 남긴 숙제를 이제 다 해결했다”며 “어깨에서 짐을 내린 기분”이라고 했다. 맨션은 빈 채로 뒀지만 관리비와 재산세 등이 연 18만 엔씩 들어갔고, 팔려고 내놔도 문의 전화조차 없었다.
○부동산(不動産)이 ‘부동산(負動産)’으로
시리즈는 “부동산은 이미 마이너스 가격의 ‘부동산(負動産)’이 됐고, 버리고 싶은 쓰레기가 되고 있다. 그러나 토지도 주택도 제도상 버릴 수 없다”며 너무 높은 고정 자산세나 복잡해지는 상속 제도도 부동산에 부담을 준다고 지적했다.
1985년 도쿄 고급 주택가에 5000만 엔짜리 맨션을 구입한 C씨. 2009년 이 집을 팔기 위해 부동산에 견적을 의뢰하자 5000~6000만 엔이라고 통보받았다. 도쿄 부동산이 버블 최고조에 이른 1991년에는 1억5000만 엔까지 올랐던 집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때부터 이 맨션이 팔리기까지는 4년이 걸렸다. 판매 가격은 4000만 엔에 불과했다. 일본에선 집을 내놓은 뒤 일정 기간 지나면 호가를 낮추는 방식을 쓰는데, 4000만 엔대까지 맨션을 원하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이런 현상의 원인 중 하나는 우선은 고령화다. 고도 성장기 건설 붐 속에 지어진 주택들이 50여년이 지난 지금 노후화돼 재건축과 리모델링이 필요한데, 노인이 된 건물주들은 세상을 뜨거나 병원이나 양로원에 들어가면서 빈집이 크게 늘었다. 자녀 세대로서는 상속받은 부모의 집은 팔리지도 않고 세금과 관리비만 늘어나는 애물단지가 됐다. 일본 국토교통성 조사에서는 토지를 소유하는 것에 부담을 느낀다는 국민이 40%가 넘는다.
○버블과 함께 꺼진 부동산 불패 신화
왜 이렇게까지 됐을까. 배경에는 1991년경 시작된 부동산 버블 붕괴가 있다. 이때 토지 불패(不敗) 신화가 무너졌다. 그 전까지 일본에서도 토지는 가지고 있으면 반드시 가격이 오르는 자산이었다. 고도성장과 함께 순조롭게 오르던 땅값은 1985년 플라자합의에 따른 엔고 현상으로 유동성이 폭증하면서 거품이 생겨났다. ’도쿄를 팔면 미국 전체를 살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은행들은 앞 다퉈 부동산 가격의 200%~300%까지 대출을 해줬다.
일본 상업지 지가변동률
은행 빚을 안 쓰면 바보였다. 돈이 돈을 불렀고, 일본인들의 오만함도 자라났다. 서구사회를 배우고 따라가려 애쓰던 일본 사회에서 “이제 더 이상 미국이나 유럽에서 배울 게 없다”는 말이 유행했다. 하버드대 석학 에즈라 보겔의 ’재팬 애즈 넘버원(Japan as Number One : Lessons for America)‘이란 책 제목이 풍미되며 일본인들의 집단 우월감이 한껏 자라나는 시절이었다.
○거품 붕괴의 상처, 부동산에 등 돌린 일본인
금리 인상에 이은 일본 정부의 대출 규제는 흥청망청하던 시장에 찬물을 끼얹었다. 급격한 대출 규제와 회수는 개인과 기업의 연쇄 파산으로 이어졌다. 이후 자산으로서 토지의 가치는 180도 달라졌다. 천정부지로 올라가는 집값에 도심에서 밀려나 은행 대출로 외곽에라도 내 집 마련을 했던 월급쟁이들은 하염없이 떨어지는 집값을 확인하며 그 몇 배 되는 원금을 갚아 나가거나 대출 상환을 못해 집을 빼앗기기도 했다.
요즘 일본인들의 상식은 집이란 사기만 하면 그때부터 가격이 하락하는 자산이라는 것이다. 중고주택 가격은 자동차처럼 연식(年式)에 따라 가격이 다운된다. 물론 올림픽을 앞둔 도쿄 도심 등 특별한 호재가 있다면 땅값이 오르기도 한다. 다만 도쿄조차 공시지가 기준으로 1983년을 100이라 했을 때 버블기에 341.3까지 치솟았다가 2005년에는 71.3(상업지 기준)이 돼 있는 상황이다.
이렇다보니 내 집 마련보다 월세를 선호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35년간 월세를 내든, 같은 기간 대출로 집을 장만해 원리금을 납입하고 세금을 내든, 비용은 비슷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내 집이라면 지진이나 화재 등 재해 부담도 떠맡아야 한다. 중고주택을 선호하지 않는 풍조도 한 몫 하는데 오래된 주택일수록 지진에 대한 대비가 제대로 돼 있지 않다.
○한국 부동산은….일본과 닮은 점, 다른 점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한국 부동산 가격이 결국 일본처럼 폭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져 나온다. 유동성에 의한 가격 급등이 이어지는 점이나 불안에 빠진 사람들이 ‘영끌’해서 내 집 장만을 하고 있는 점, 도쿄에서 인기 지역의 오름세가 더 가팔랐듯 한국에서도 강남 등에 수요가 집중된다는 점, 급속한 고령화와 인구 감소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 부동산이 일본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예측을 하게 만든다.
전남 곡성군 농촌의 빈집을 중장비로 철거하는 모습. 동아일보 DB
다만 크게 다른 점도 있다. 일본의 경우 부채로 만들어진 거대한 거품이 명백하게 존재했다. 이 상태에서 정부가 갑자기 정책을 바꿔 금리를 올리고 은행들에 주택대출 한도를 조이게 하자 연쇄도산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경우는 LTV(담보인정비율) DTI(총부채상환비율) 제한을 통해 이미 대출 비중을 제한하고 있다. 또 다주택자에 대한 각종 규제도 무리한 투자를 제한하는 효과가 있다.
여기에 더해 일본은 공급 과잉이 주택 가격 하락을 부채질했다는 지적이 있다. 버블이 꺼진 이후 주택 과잉 상태에서도 신규 주택이 계속 공급됐다. 아사히신문은 이를 ‘신축(新築)주의’라고 지적했다. 일본인들이 워낙 신축 주택을 선호하니 빈집이 늘어도 신규 주택 공급이 줄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의 주택거래량 중 중고 주택의 비중은 2018년 기준 14.5%에 불과할 정도로 구축은 시장에서 찬밥 신세다.
○한국도 빈 집 늘어
한국의 빈집 추이
한국에서도 일본처럼 빈집이 늘고 있다. 2019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빈집은 151만7000호로 전체 주택의 8.4%를 차지한다. 30년 이상 노후화된 주택의 비중이 30% 이상이다. 새 집, 특히 새 아파트 선호 현상은 우리 부동산 시세에서도 일찌감치 나타났다. 한국에도 노후에 대비해 투자한 부동산이 애물단지로 전락하는 일이 일어날까. 아예 집을 소유하지 않겠다는 젊은이가 늘어나는 시대도 올 수 있을까. 일본 사회를 뒤흔든 부동산 시장 붕괴의 충격과 피해를 참고삼을 필요가 있다. 일본의 사례를 거울삼아 한국 부동산 시장의 연착륙을 모색해야 할 때다.
※인생 후반, 더 중요해지는 ‘돈 건강 행복’ |
풍요로운 100세 인생을 맞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돈과 건강, 그리고 행복입니다. 이 모든 것은 어느 날 갑자기 갖춰지는 게 아니고 30~40대부터 차근차근 조금씩 준비해나가야 합니다. ’100세 카페‘에서는 특히 인생 2막을 잘 맞이하기 위해 미리미리 준비해야 할 돈과 행복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
서영아 기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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