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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 “그냥 내게 ‘헤어질 때’가 온 것이었다”

천사요정 2021. 11. 24. 06:41

단독 저서에서 “삼성과의 고리 끊지 않으면 JTBC뉴스는 생존할 수 없다고 봤다”
“보도 전권 맡긴 최고 경영진의 약속은 지켜졌다” 하차 과정도 구체적으로 밝혀 

 

언론인 손석희가 최근 출간한 단독 저서 ‘장면들’에서 “사주 간의 인척 관계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언론매체로서의 JTBC는 삼성 관련 이슈가 나올 때마다 끊임없이 오해받고 공격당할 것이었다”면서 “일반의 인식 속에서 삼성과의 고리를 끊지 않으면 JTBC라는 매체의 뉴스는 생존할 수 없다고 봤다”고 술회했다. 이는 손석희가 JTBC 보도를 이끌며 삼성이라는 ‘어젠다’에 집요하게 주목했던 이유였다. 

손석희는 2013년 10월14일 ‘2012년 S그룹 노사전략’이란 이름의 삼성그룹 노조 무력화 문건 JTBC 단독보도와 관련해 “당일 뉴스 런다운에는 톱뉴스가 공란으로 돼 있었다. 최고 경영진에게도 당일 오전에야 알렸다. 돌이킬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고 밝힌 뒤 “분명한 것은 처음에 부임할 때 내게 보도에 관한 한 전권을 맡긴 최고 경영진의 약속은 그때 첫 시험대에 올랐다는 것이고, 그 약속은 지켜졌다는 것”이라 적었다. 

▲JTBC '뉴스9' 10월14일자 보도 화면 갈무리.

손석희는 “JTBC는 삼성에 대한 문제 제기를 끊임없이 이어갔다. 나로서는 어젠다 키핑이었다. 황유미씨 백혈병 사망과 삼성, ‘반올림’과 삼성, 최순실과 삼성, 삼성바이오로직스 사건 등등 삼성이 뉴스룸 키워드로 등장한 이슈들은 셀 수 없었다”고 적었다. 이어 “(2020년) 5월 이재용 부회장이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무노조 경영을 포기한다는 선언까지 나왔다. 그러나 ‘뉴스룸’은 바로 한 달 뒤, 노조탄압과 관련해 유죄나 실형을 선고받은 임직원들이 되레 영전한 사실 등 삼성의 이중성을 파고들었다”며 자사 보도를 평가했다. 

이 책에는 2012년 1월14일 홍석현 중앙그룹 회장과의 첫 만남도 담겨있다. 손석희는 “이명박 보수 정권의 종편 만들기는 그 목적이 뚜렷해 보였다. 이미 진행돼왔던 지상파 길들이기와 함께 방송 전체가 보수 정권에 우호적으로 간다는 우려들이 팽배했다. 내가 움직인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그리고 2013년 1월, 다시 홍 회장을 만났다. 홍 회장은 손석희에게 “이제 대선도 끝났는데 와서 일하는 게 어때요?”라고 물었다. 

당시는 MBC경영진이 더 이상 ‘손석희의 시선집중’ 진행자 자리를 버틸 수 없게끔 극심한 모멸감을 주던 시절이었다. 홍 회장은 “보도에서의 모든 사항은 손 교수가 전권을 갖고 해나가면 된다”고 제안했고, 손석희는 “삼성 문제가 있다. 저는 ‘시선집중’ 등에서 제가 여태껏 지켜왔던 스탠스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한다”면서 사실상 ‘선전포고’했다. 이에 홍 회장은 “그건 정도를 지켜나가면 되는 일 아닐까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책 '장면들'. 창비. 1만8500원.

손석희는 2013년 JTBC 이적 당시를 떠올리며 “평자들은 내가 기득권 언론에 복무하게 될 것이라는 논지로 나를 공격했지만, 나는 앞서 말한 대로 ‘내가 실천할 저널리즘’을 방패로 그 공격을 견뎌냈다”고 술회했다. 그러면서 “내가 JTBC로 와서 뉴스를 맡은 후 곧바로 터진 삼성 무노조 전략 문건 보도와 훗날 국정농단 정국에서의 보도로 JTBC는 삼성에게 불편한 존재가 됐다. 나는 그것이 ‘정도’였다고 지금도 믿는다. 그 과정에서 홍 회장은 그 짧았던 답변 외에 내게 더 이상의 첨언을 한 적이 없다”고 적었다. 

“다만 ‘좋은 도구’였길…” ‘뉴스 터미네이터’ 퇴장하다 

손석희는 “홍 회장은 (박근혜 정부 청와대로부터) 노골적 위협을 받고 불쾌했다고 내게 털어놓은 적도 있고, 내가 알기로는 그런 경우가 꽤 여러 차례 여러 경로를 통해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보도의 기조를 바꾸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전했다. 다만 “나로서는 풀기 어려운 문제가 있었으니 외부의 압력보다 오히려 내부의 이데올로기 문제였다. 즉, 같은 그룹 내 중앙일보와의 논조 차이였다”고 밝혔다. 

손석희는 2015년 당시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에 대한 국무총리 후보 지명을 놓고 JTBC와 중앙일보가 정반대 논조를 보였던 사건을 일례로 전한 뒤 “이런 ‘다름’이 사주의 전략이라는 의구심과, 결국 중앙그룹은 양손에 진보와 보수라는 떡을 들고 ‘장사’를 한다는 비판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전략’의 ‘도구’일 뿐이라는 식자들의 비아냥 섞인 분석이 꽤나 있어왔다는 것도 잘 안다. 그러나 ‘장사’라는 것도 솔직히 말하면 어느 언론사든 자유로울 수 없는 고려사항”이라고 꼬집었다. 

▲2017년 대선후보 토론회 사회를 맡았던 손석희. ⓒ사진공동취재단

그러면서 “나는 공영방송 MBC에서 잔뼈가 굵었지만, MBC 역시 시청료가 아닌 광고로 먹고사는 회사였기 때문에 ‘장사’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그 ‘장사’의 ‘도구’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좋은 도구’였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이어 “JTBC의 정체성은 합리적 진보다. 중앙일보의 그것은 열린 보수다. 그 두 가지의 정체성이 공유하는 것은 ‘이성과 합리’일 것이다. 그러면 양쪽의 교집합이 없을 리 없다”고 적었다. 

 

책에는 ‘뉴스룸’ 앵커 하차 과정도 꽤 구체적으로 담겼다.

“2018년 12월의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 회사는 내게 완곡한 표현으로 앵커 하차를 얘기했다. 2020년 총선 후가 거론됐다. 나는 그때 회사의 대표이사로 선임된 직후였다. 이제쯤엔 앵커석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생각을 내가 아니라도 누구든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상법상 등기이사인 대표이사가 뉴스 편집권을 가지고 진행까지 하는 것은 내가 봐도 적절하지 않았다.”(‘장면들’, 382페이지) 

 

손석희는 “꽤 오랫동안 ‘나는 몸과 마음이 가볍다’란 말을 달고 살았다. 그것이 홀로 새로운 조직으로 와서 온갖 상황에 맞닥뜨리고 있던 내가 내 신조대로 일하기 위한 시위였다는 것을 알아챈 후배들도 있었을 것”이라고 적었다. “그런데 이미 헤어지기로 날짜를 정해놓고 연애를 하는 남녀를 봤는가. 그건 너무나 힘든 일이 아니겠는가. 나는 집중력을 잃지 않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그러나 점점 지쳐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결국 손석희는 홍정도 JTBC 사장에게 2020년 1월2일 물러나겠다고 먼저 밝혔다. 후배들이 이름 지어줬던, ‘뉴스 터미네이터’의 퇴장이었다. 

 

손석희는 “기자들이 모여 성명서를 냈다. 요지는 나의 퇴진에 반대한다는 것이었다. 창사 이래 처음 나온 기자들의 성명서라 하니 개인적으로는 그래도 고마웠다”고 적었다. 자신의 하차를 둘러싼 여러 ‘음모론’과 관련해선 “그냥 내게는 ‘헤어질 때’가 온 것이었다”고 적었다. 마지막 방송일이었던 2020년 1월2일은 “앵커가 뉴스의 편집권과 인사권, 예산권까지 갖고 최종 책임을 지던, JTBC만의 유례없는 실험이 끝나는 날이었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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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 “그냥 내게 ‘헤어질 때’가 온 것이었다” - 미디어오늘

언론인 손석희가 최근 출간한 단독 저서 ‘장면들’에서 “사주 간의 인척 관계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언론매체로서의 JTBC는 삼성 관련 이슈가 나올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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