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출신들 반발…"정권 입맛따라 정보 왜곡" "당시 靑은 해경 보고 받았을뿐"
(서울=연합뉴스) 박경준 기자 = 지난 2020년 9월에 있었던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을 두고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 반발이 터져나오며 전·현 정권 간 충돌 양상이 빚어지는 모습이다.
당시 사망한 공무원 A씨가 월북을 시도했다고 발표한 문재인 정부의 판단을 윤석열 정부가 사실상 뒤집는 결정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검찰이 '산업부 블랙리스트' 수사에 속도를 내는 상황과 맞물려 민주당의 반발이 고조되면서 윤석열 정부와 전(前) 정부 사이에 대립각이 가팔라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인천해양경찰서는 16일 "피격 공무원의 월북 등 여러 가능성을 두고 현장조사 등을 진행했으나 월북 의도를 인정할 만한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서해상에서 표류하던 중 북한군의 총격으로 사망한 뒤 시신이 불태워진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 모 씨가 월북하려 했다고 단정한 것은 잘못됐다는 것이다.
사건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은 공식 논평을 내지 않는 등 표면적으로는 조용하게 추이를 지켜보는 모습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민주당 내부, 특히 문재인 정부 청와대 출신 인사들 사이에서는 불편해하는 기색이 감지됐다.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출신인 민주당 윤건영 의원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해경을 포함한 우리 정부는 당시 다각도로 첩보를 분석하고 수사를 벌여 월북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라며 해경의 발표를 반박했다.
그러면서 "보안이 생명인 안보 관련 정보가 정권의 입맛에 따라 왜곡되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되며, 이는 국가적 자해 행위"라고 비판했다.
청와대 참모였던 민주당의 한 의원은 이날 통화에서 "안보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함으로써 냉전을 소환하려 하나"라고 지적했다.
이어 "예전 새누리당의 'NLL(북방한계선) 대화록 유출 사건'이 떠오른다"라며 "남북 대결 국면으로 치닫는 데 소품으로 쓰이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특히 정치권에서는 민주당 의원들의 이같은 반응을 두고 해당 공무원이 월북을 시도했다는 당시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인식이 담겨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사건이 일어났을 때 조류의 흐름 등을 보면 월북이라는 결론을 뒷받침할 만한 정황이 적지 않았다는 얘기도 민주당 측 인사들 사이에서 오가고 있다.
친문(친문재인)계 핵심인 홍영표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북측이 A씨의 인적사항을 소상히 알고 있었던 점, A씨가 북측에 월북 의사를 표명한 정황이 있었던 점 등을 들어 사건 발생 당시 해경이 월북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라고 전했다.
이와 함께 당시 국방부가 국회 국방위원회에 사건 경위를 보고했을 때도 여야 의원 어느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부연했다.
정치권에서는 산업부 블랙리스트 수사에 더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전·현 정권 간 갈등이 더욱 첨예해질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민주당은 산업부 블랙리스트 수사 과정에서 청와대 출신 박상혁 의원이 참고인 조사 대상이 된 상황 등을 두고 '정치보복'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수진 원내대변인은 이날 국회 소통관 브리핑에서 "국민은 왜 검찰의 칼날이 유독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만을 향하는지 묻는다"며 "검찰은 기획 보복 수사를 멈추라"고 촉구했다.
더욱이 법원이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에 대해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민주당의 반격은 더욱 거세질 조짐이다.
이 원내대변인은 "무리한 영장 청구였음이 입증됐다"라며 "국민의 우려대로 검찰은 살아있는 권력의 정치보복을 위한 도구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는 이미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인이던 시절 전·현직 대통령의 회동을 두고 충돌한 바 있다.
감사원 감사위원 등 인사권 행사 문제와 집무실 이전 구상을 둘러싼 이견 탓에 윤 대통령과 문 전 대통령은 대선 19일 만에야 회동할 수 있었다.
다만 일각에선 전·현 정권의 전면적인 충돌은 양측 모두 부담스러울 수 있어 적절한 수준에서 갈등을 관리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로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당시 청와대에서 근무하던 전직 참모는 통화에서 "청와대는 당시 해경의 조사 결과를 보고받았을 뿐 자체적으로 '월북'이라는 결론을 내린 적 없다"며 "판단을 뒤집은 것은 청와대가 아닌 해경"이라고 말했다.
박경준(kjpark@yna.co.kr)
"北피살 공무원, 월북 증거 없어"…말 바꾼 해경·국방부
핵심요약
해경 "피격 공무원 A씨, 자진 월북 단정근거 없다"
2년 전에는 "월북 추정된다"…번복됐지만 "근거는 밝힐 수 없어"
국방부 "국민께 혼선 드린점 유감…보안 관계상 공개 어려워"
박상춘 인천해양경찰서장(왼쪽)과 윤형진 국방부 국방정책실 정책기획과장이 16일 오후 인천시 연수구 인천해양경찰서에서 각각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 최종 수사 결과 브리핑과 추가 설명을 마친 뒤 취재진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2년 전 서해 북단 소연평도 해상에서 실종됐다가 북한군의 총격으로 숨진 해양수산부 공무원 사건에 대해 국방부와 해양경찰이 "자진 월북을 단정지을 만한 근거가 없다"고 16일 발표했다.
국방부와 인천해경은 이날 인천해양경찰서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밝혔다.
지난 2020년 9월 21일 해수부 서해어업지도관리단 소속 어업지도원 A(사망 당시 47세)씨는 해상에서 실종됐다가 북한에서 발견된 뒤 북한군에게 사살됐다.
이날 박상춘 인천해경서장은 "국방부 발표 등에 근거해서 피격 공무원의 월북 등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를 진행했으나, 월북 의도를 인정할 만한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박 서장은 "해경은 외부위원 중심의 수사심의위원회 의견 등을 종합해, 북한 군인의 살인죄에 대해서 수사중지로 결정했다"며 "수사가 종결됨에 따라 유족이 제기한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소송에 대한 항소를 취하한다"고 덧붙였다.
국방부 윤형진 정책기획과장은 "사건 발생 당시 국방부는 '피살된 공무원이 월북을 시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함으로써 국민들께 혼선을 드렸다"며 "보안 관계상 모든 것을 공개하지 못하는 점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족 제공
지난 2020년 9월 A씨 실종 당시, 해경은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A씨가 월북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해경은 군과 정보당국이 북한의 통신 신호를 감청한 첩보와 해상 표류 예측 분석 결과 등을 근거로 들었다. 해경은 A씨의 채무내역 등도 발표하면서 월북에 무게를 뒀다.
그러나 2년만에 당시 발표와는 다른 결과를 내놓은 것이다. 다만 새로운 증거 등 결과가 달라진 이유에 대해선 보안상의 이유로 밝히지 않았다.
이날 기자회견 후 열린 비공개 언론브리핑에서 해경 관계자는 "당시는 수사를 진행하는 단계였고 중간 보도를 한 것"이라며 "이후 A씨의 월북 경위에 대해 다방면으로 수사를 한 결과, 월북 의도를 인정할 만한 증거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실종 당시 월북을 추정했던 이유에 대해 국방부 관계자는 "당시 첩보를 바탕으로 '월북이 추정된다'고 얘기했는데, 그로 인해 국민들에게 혼란을 드린 것 같다"며 "(현재도) 단정적으로는 이야기를 할 수 없으며, 관련 첩보에 대해서도 말씀드릴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란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2년 전과 다른 발표를 한 이유가 현 정권의 대북 강경기조 때문인지를 묻는 질문에는 "그런 건 전혀 상관없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북한군이 우리 국민을 총격으로 살해하고, 불태운 정황이 있다는 건 분명히 한다"고 했다.
해경 측은 미국 구글사에 공조 요청을 했지만 유의미한 내용은 없었다고 밝혔다. 해경 관계자는 "A씨가 평소 접속했던 자료를 보기 위해 2020년 12월쯤 구글사에 형사사법 공조를 했다"며 "그 이후에도 보강자료를 요청하면서 시일이 흘렀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 1월 '캘리포니아 검찰청에서 확인하고 있다'는 회신이 왔고, 지난달에는 '추가 정보가 없으니 대기하고 있다'는 취지의 답이 왔다"며 "다만 추가적으로 필요한 부분은 확인하겠다"고 덧붙였다.
유족 제공
A씨는 2020년 9월 21일 인천시 옹진군 소연평도 남쪽 2.2㎞ 해상에 떠 있던 어업지도선에서 실종됐다가 북한 해역으로 표류했고, 하루 뒤 북한군의 총격을 받아 숨졌다.
해경의 자진 월북 발표에 반발한 유족은 청와대 국가안보실, 해경청, 국방부를 상대로 정보공개 청구 소송을 제기해 1심에서 일부 승소했다.
법원은 북측의 실종자 해상 발견 경위와 군사분계선 인근 해상에서 일어난 실종사건에 관한 정보를 유족이 열람할 수 있도록 판결했다. 해경이 작성한 초동 수사 자료와 고인 동료들의 진술 조서도 공개하도록 했다.
https://www.nocutnews.co.kr/news/5772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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