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밝혀진다/삼권언론정치기업

론스타 사건이 궁금하다고요?

천사요정 2022. 10. 29. 03:43

지난 8월 31일, 미국계 사모펀드 운용사 론스타(Lone Star)가 제기한 국제투자분쟁 소송에서 한국 정부가 패소했다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이 소송의 결과로 한국 정부는 론스타에 약 4천억 원의 국민 세금을 물어주게 됐어요.

이 소식이 보도되자 그동안 잊혀져 있던 ‘론스타 사건’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2003년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하면서 시작된 이 사건은 20년간 수많은 의혹과 논란을 일으켜 왔어요. 박영수, 윤석열, 한동훈 등 당시 특수부 검사들이 총출동해 대대적인 수사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이 사건은 아무도 처벌받지 않은 채 흐지부지 마무리됐어요. 

그렇다면 지난 20년간의 모든 의혹과 논란은 4천억 원의 세금과 함께 사라지게 되는걸까요? 이번 주 타파스는 뉴스타파가 처음부터 다시 들여다본 ‘론스타 사건’의 전말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 뉴스타파는 수만 쪽에 달하는 수사와 재판 기록을 통해 ‘론스타 사건’을 다시 분석했습니다.

 

론스타 사건, 이렇게 시작됐다

1997년 외환위기로 수많은 기업과 은행들이 휘청이던 시기, 1금융권 은행 중 하나였던 외환은행도 경영 위기에 빠지게 됩니다. 정부가 나서서 외환은행을 살려 보려고 노력했지만 녹록치 않은 상황. 이런 상황에서 2003년,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하겠다며 등장합니다.

당시 론스타는 부실 기업이나 부동산을 사고 팔아서 막대한 차익을 남기는 투기 자본으로 악명이 높았어요. 당시에도 몇몇 언론은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하는 것에 우려를 표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있었어요. 국내 은행법상 외국계 자본이 은행을 인수하려면 아래 조건들을 만족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① 금융주력자(금융자본)인 경우에만 은행 지분을 10%까지 소유할 수 있다.
② 은행의 자기자본비율(BIS)이 8% 이하인 경우에는 은행 지분을 자유롭게 소유할 수 있다.
여기서 두 번째 조건에 나오는 BIS 비율은 은행의 재정 건전성을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BIS 비율이 낮을수록 부실한 은행으로 볼 수 있는데, 쉽게 말해 은행이 아주 부실한 상태일 때만 외국 자본이 인수할 수 있도록 제한을 둔 것이죠.

금융당국에 따르면 당시 외환은행의 BIS 비율은 6.16% 수준이었습니다. 금융당국은 이 BIS 비율 조건을 들어 인수를 승인했고, 결국 2003년 10월 론스타는 1조 4천억 원에 외환은행을 인수하게 됩니다.

BIS 조작 논란…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후인 2005년, 론스타에 매각될 당시 외환은행이 BIS 비율을 조작했다는 논란이 터집니다. 당시 외환은행의 실제 BIS 비율은 8% 이상이었는데, 실제보다 BIS를 낮아 보이게 만들어서 매각을 추진했다는 것이죠. 

이후 약 100명의 수사 인력을 동원한 검찰 수사가 시작됐습니다. 검찰은 매각 당사자인 외환은행과 매각을 승인한 재정경제부(재경부), 금융감독위원회(금감위) 등 금융당국을 조사했어요. 하지만 기소된 인물은 이강원 전 외환은행장 등 몇 명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대대적으로 수사를 벌인 것 치고는 초라한 결과였어요.

결국 론스타는 2012년 외환은행을 하나은행에 팔아서 약 4조원의 수익을 올렸습니다. 게다가 처음 말씀드린 것처럼, ‘한국 정부가 매각 과정을 방해해서 손해를 입었다’ 라며 국제분쟁 소송까지 걸었어요. 이 소송으로 우리 정부는 4천억 원의 세금을 추가로 지출하게 됐습니다. 

론스타 외환은행 인수, 중요한 것은 ‘금융자본 여부’ 

그런데 2007년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쟁점이 제기됩니다. 위에서 말씀드렸던 첫 번째 조건, 론스타가 금융주력자(금융자본)인지 여부를 다시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은행법상 비금융주력자(산업자본)은 은행 주식을 일정 비율 이상 소유할수 없기 때문에, 만약 론스타가 산업자본으로 것이 판명되면 BIS 비율과 상관없이 인수 자체가 무효인 셈이죠.

시민단체들은 금융당국이 당시 이 문제를 알고 있었음에도 묵인한 채 인수를 승인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다시 말해 당시 금융당국이 외환은행의 불법 매각을 주도했다는 의혹인데요.

지금까지는 이 의혹을 뒷받침할 뚜렷한 증거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뉴스타파는 최근 론스타 사건의 수사와 재판 기록을 들여다보던 중, 당시 금융당국이 론스타의 금융자본 여부 문제를 알고 있었다는 증거를 발견했어요.

외환은행 ‘불법 매각’ 알고도 숨긴 증거 나왔다

수만 장에 달하는 수사와 재판 기록 속에서 뉴스타파는 두 장의 문서를 발견했습니다. 검찰이 재경부를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이 문서는, 2003년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당시 재경부가 작성해 금감위에 넘긴 것이었는데요.

이 문서에서 재경부는 ‘론스타가 산업자본이 아닌 경우에만 은행 지분을 10%까지 소유할 수 있다’ 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었습니다. 즉 당시 금융당국 역시 외환은행 ‘불법 매각’ 가능성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죠.


▲ 2003년 당시 재경부가 작성해 금감위에 넘긴 문건. 산업자본이 아닌 경우에만 은행 지분을 10%까지 소유할 수 있다는 사실이 적혀 있다.


그런데 당시 금감위는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도, 어째서인지 론스타가 금융자본인지 산업자본인지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위에서 말씀드렸던 두 번째 조건, BIS 비율 문제만 검토한 끝에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를 승인하게 되는데요.

즉 금감위가 의도적으로 재경부의 지적을 무시하고 ‘불법 매각’을 추진한 것이 아닌지 의심되는 정황. 만약 그렇다면 이 사태를 주도한 인물은 누구일까요? 당시 금감위 감독정책 1국장으로서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를 승인했던 김석동 씨가 유력한 인물로 보입니다.


외환은행 불법 매각 가능성, 검찰은 정말 몰랐나?

김석동 씨는 2006년 론스타 사건 수사 당시 사건의 주요 관계자로 검찰 조사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당시 검찰 진술 조서를 보면, 어째서인지 검찰은 김석동 씨에게 론스타의 금융자본 여부 문제를 묻지 않고 그냥 넘어갔어요. 결국 김석동 씨는 기소조차 되지 않은 채 론스타 사건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그럼 당시 검찰은 론스타의 금융자본 여부가 은행법상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정말 몰랐을까요? 그럴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뉴스타파는 당시 공판 법정 녹취록을 입수했는데, 이 녹취록에서 검사는 금융위원회 실무자에게 론스타의 금융자본 여부 문제를 질의하고 있어요.

그런데도 검찰은 이 문제를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고 그 누구도 은행법 위반으로 기소하지 않았어요. 불법 매각 가능성을 알고서도 그냥 넘어갔든, 실수로 넘어갔든 간에 부실 수사라는 비판을 피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경제 위기의 시대, 론스타 사건을 살펴봐야 하는 이유

달러화 급등과 인플레이션 등으로 경제 위기가 심각한 상황입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머지 않아 1997년과 같은 경제 위기가 찾아올 수도 있다고 전망하기도 해요.

1997년 외환위기는 우리 나라 경제에 커다란 상처를 남겼습니다. 국가 경제가 취약해진 틈을 타고 해외 투기 자본이 물밀듯이 들어오기도 했죠. 이렇게 들어온 투기 자본들은 국내법을 교묘하게 피해 가며 막대한 국부를 유출해 갔어요. 외환은행 거래를 통해 4조 원의 수익을 올린 론스타가 바로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만약 2003년 당시 론스타가 금융자본이 아닌 산업자본이라고 밝혀냈다면 아예 외환은행 인수 자체를 막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다가오는 경제 위기 상황, 금융·사법당국이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한다면 또 다른 ‘론스타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20년 전 론스타 사건을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https://newstapa.org/projects/lonestar

 

프로젝트 - 론스타 사건, 기록과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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