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XamcnygtrGc
“6시 34분에 첫 112 신고가 들어올 정도 되면 그게 아마 거의 아비규환의 상황이 아니었겠나 싶은데, 그 상황에서 경찰이 권한이 없다는 말이 나올 수 있습니까?
안전사고를 예방해야 할 책임은 어디에 있습니까? 경찰에 있어요. 우리 경찰이 그런 엉터리 경찰 아닙니다. 정보 역량도 뛰어나고. 왜 4시간 동안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었느냐 이거예요. 현장에 나가 있었잖아!”
지난 11월 7일 열린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위와 같이 경찰을 질타했습니다. 대통령이 목소리를 높여가면서 공개적으로 경찰을 책망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 11월 7일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에서 경찰을 공개 질타하는 윤석열 대통령.
윤 대통령의 말대로 우리나라 경찰은 뛰어난 정보 역량과 군중 통제 경험을 가지고 있는 기관입니다. 미리 계획된 집회나 행사는 물론, 2002년 월드컵 거리 응원처럼 주최측과 참가 인원이 불분명한 상황에서도 훌륭하게 시민 안전을 지켜냈죠.
그런데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당시 경찰의 대응은 이상할 정도로 부실했습니다. 참사 당일 이태원에 13만 명의 인파가 몰렸지만 현장에 배치된 경찰은 137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마저도 인파를 관리하는 ‘혼잡경비’ 업무를 맡은 경찰은 없었습니다. 저녁 6시 34분부터 참사 현장 인근에서 11건의 위험 신고가 접수됐음에도 불구하고, 현장을 통제한 경찰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경찰은 지휘에 따라 움직이는 조직입니다. 아무리 많은 경찰력이 있다고 해도 지휘부가 이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지 않으면 반드시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죠. 그리고 이 공백으로 인해 국민 156명이 목숨을 잃는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이태원 참사’ 당시 경찰 지휘부의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경찰 지휘부는 왜 안전 대책에 소홀했을까요. 뉴스타파는 그 이유를 밝히기 위해 경찰 내부를 가장 잘 아는 사람, 바로 현직 경찰관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참사 이전 계속된 경고… ‘대통령실 집회에 집중’하라며 무시당해
참사 당일 저녁 6시 34분, 경찰에 압사 위험을 알리는 신고가 처음 접수됐습니다. 그 이후로도 4시간여 동안 ‘압사당할 것 같다’, ‘통제가 필요하다’ 라는 신고가 11건이나 이어졌죠. 신고를 접수한 현장 경찰은 용산경찰서에 경찰기동대를 보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경찰 지휘부는 이 요구를 묵살했습니다. 같은 시각 대통령실 인근에서 진행되고 있는 ‘윤석열 정권 퇴진 집회’에 집중해야 한다는 이유였습니다.
참사 당일 대통령실 인근 집회에 참여한 인원은 약 7만여 명으로 집계됩니다. 이 집회를 통제하기 위해 서울 시내 경찰기동대 48개 부대가 배치됐습니다. 그런데 같은 시각 13만 명의 인파가 몰린 이태원에는 단 한 명의 경찰기동대도 사전 배치되지 않았습니다. 참사 당일 이태원의 약 절반 정도 인파가 몰렸던 대구 동성로에 경찰 기동대가 사전 배치되어 있었던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참사 이전에도 현장에서는 여러 차례 경고가 나왔습니다. 참사 나흘 전에는 이태원 파출소장이, 사흘 전에는 용산경찰서 정보과 형사가 이태원에 경찰을 추가 배치해야 한다고 보고했습니다. 하지만 경찰 지휘부는 이 보고를 묵살했습니다. 역시 대통령실 앞 집회에 집중해야 한다는 이유였습니다.
▲ 참사 사흘 전인 10월 26일 용산경찰서 정보과 형사가 작성한 ‘이태원 할로윈 축제 공공안녕 위험 분석’ 보고서.
이처럼 경찰 지휘부는 참사 당일에도, 참사 이전에도 시민 안전보다 대통령실을 보호하는 데 훨씬 큰 힘을 쏟았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뉴스타파가 만난 현직 경찰관들은 경찰 지휘부가 대통령실 경비에 힘을 쏟았던 ‘구조적 원인’이 있다고 말합니다.
대통령실 이전이 불러온 이태원 ‘치안 공백’
지난 5월, 윤석열 정부의 출범과 함께 대통령실이 용산으로 이전됐습니다. 경찰관들은 대통령실 이전 이후 용산경찰서에 큰 변화가 있었다고 말합니다. 단순히 서울 시내 1개 경찰서에서, 대통령실 경비를 책임지고 있는 경찰서로 그 역할과 위상이 달라졌다는 것이죠.
경찰 입장에서 대통령실의 경비를 책임진다는 것은 무거운 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승진이라는 보상이 뒤따르는 일이기도 하죠. 실제로 지난 5년간 다른 경찰서에서 총경급(4급 서기관급) 승진자가 1명 나오는 동안, 광화문 경비를 책임지고 있던 종로경찰서에서는 7명이나 되는 총경이 나오기도 했어요. 즉 용산경찰서가 대통령실 경비에 집중했던 것은 대통령 경비에 대한 부담과 승진에 대한 욕구가 드러난 행동이었던 셈입니다.
용산경찰서의 상급기관인 서울지방경찰청 역시 대통령실 경비에 힘을 쏟고 있었습니다. 지난 5월 10일 서울지방청은 대통령실 이전에 맞춰 서울 시내 경찰서의 인력과 관할을 조정했는데, 이 과정에서 지역 치안 관리보다 대통령 경호에 더 무게가 실렸다고 용산경찰서 일선 경찰관들은 말했습니다.
또 일선 경찰관들은 윤석열 정부 들어 신설된 행정안전부 산하 경찰국 역시 경찰 내부 분위기를 바꾸는 데 일조했다고 지적합니다. 경찰국이 경찰청에 대한 인사권을 관장하게 되면서, 경찰이 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이죠.
일선 경찰관들의 이야기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대통령실 이전과 경찰국 신설 등으로 인해 경찰 내부에는 정부의 눈치를 보는 분위기, 대통령실 경호에 힘을 쏟아서 승진을 노리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는 것이죠. 이런 분위기는 참사 당일, 13만명의 인파가 몰리는 상황에서도 시민 안전보다 대통령실 경비에 집중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반복되는 참사 막기 위해서는 ‘구조적 원인’ 해결해야
물론 참사 당일 사고를 막지 못한 일선 경찰관들에게도 책임은 있습니다. 하지만 그 뒤에는 경찰 인력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지 못했던 ‘구조적 원인’이 있었습니다. 다시는 이런 참사가 벌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 구조적 원인을 해결하는 것 또한 중요하지 않을까요.
참사 이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찰력을 미리 배치해 막을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한다” 라며 정부의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왜 4시간 동안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었냐” 라며 공개적으로 경찰을 질책했습니다.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들 역시 경찰의 책임을 강조하는 모양새입니다. 참사 당일 왜 경찰이 이태원에 소홀했는지, 왜 대통령실 경비에 집중하고 있었는지, 대통령과 정부의 책임이 무엇인지는 이들 중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성수대교 붕괴 사고,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세월호 참사 등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많은 참사를 겪어 왔습니다. 그 때마다 긴 시간동안 수사가 이루어졌고, 몇몇 인물들이 처벌을 받았지만 결국 참사는 반복되고 있습니다. 반복되는 참사를 막기 위해서는, 특정 집단에 책임을 씌우기보다 참사의 근본적인 원인을 살펴보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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