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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한겨레] "2차 세계대전뒤 70년, 지구촌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천사요정 2018. 6. 29. 16:50
요한 갈퉁 전 베를린대 교수
요한 갈퉁 전 베를린대 교수




[특별 대담] 분쟁의 세계, 평화정착 방안을 말하다

요한 갈퉁 전 베를린대 교수
박명림 연세대 교수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70년이 지났지만 세계는 여전히 ‘전쟁과 분쟁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둘러싼 러시아와 서구의 대립, ‘이슬람국가(ISIS) 등 극단주의자들의 준동,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한반도에서도 냉전의 그늘은 가시지 않은 채 불안한 정전체제가 지속되고 있다.

<한겨레>는 세계대전 종전 70년과 한반도 분단 70년을 맞아 세계적인 평화학의 권위자인 요한 갈퉁과 박명림 연세대 교수의 새해 특별 대담을 마련해, 세계와 한반도를 둘러싼 분쟁과 평화의 원인과 평화정착 방안을 들어봤다. 대담은 지난달 중순 이메일을 통해 진행됐다.

폭력은 인간본성으론 설명 못해
협력적 구조·평화의 문화 만들면
북유럽·EU·아세안국가들처럼
전쟁은 거의 안일어나지 않을까

박명림(이하 박) 2015년은 비극적인 2차 세계대전 종전 70돌이 되는 해다. 지난 70년 동안 세계 초강대국 사이에는 전쟁이 없었지만, 여러 작은 나라들에서는 수많은 분쟁이 벌어졌다. 또 유럽과 북미는 평화로웠지만, 세계의 다른 지역들, 즉 동아시아와 중동, 동남아,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는 전쟁이 빈발했다. 그런 점에서 나는 ‘냉전’이라는 개념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평화학의 최고 권위자로서 지난 70년의 세계 질서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 평화로운 시기였나, 충돌의 시대였나, 아니면 평화와 충돌이 병존했던 시기로 보는가?

갈퉁(이하 갈) 지난 70년동안 초강대국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지 않은 건 핵억지력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미국이 소련에 대한 ‘예방 전쟁’을 언급하기도 했지만, 양국에서 수소폭탄이 나온 뒤로는 사라졌다. 세계는 대신에 한국전(1950~53년)이나 베트남전(1961~75년) 같은 치열한 대리전적 열전을 겪었다. 이런 전쟁들은 동시에 냉전 열강들이 분단시킨 나라를 통일하려는 민족주의 전쟁이기도 했다.

이 70년 기간은 1945~75년 사이에 탈식민 전쟁들이 벌어지는 등 ‘평화로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제3세계의 해방’을 위한 전쟁이라는 의미에서 ‘3차세계대전’이 벌어졌고, 이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팔레스타인, 카나키, 타히티 등은 아직 해방되지 않았다.

하지만 서구 식민주의의 종언과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시작된 소비에트 제국의 종식, 1812년 이래 처음으로 미국이 승리하지 못한 전쟁이 된 1953년 한국전 휴전으로 시작된 미 제국의 종언 등은 평화를 향한 세 가지 거대한 움직임이었다고 본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
박명림 연세대 교수
 2차세계대전은 인류 역사상 최대의 전쟁이자, 사상 최악의 비극이었다. 나는 그 전쟁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전율을 느낀다. 이 전쟁을 촉발한 주요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왜 우리는 세계대전을 막는 데 실패한 것일까? 인간 이성의 한계였던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요인 때문인가? .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2차대전은 과연 세계대전이었을까? 유럽 거의 전부에서 벌어졌지만, 아프리카에선 소규모 해안지역에서만, 라틴 아메리카에선 아무 일도 없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물론 전쟁에 휩싸였다. 이런 점에서 2차대전은 두 지역의 병행 전쟁이었던 셈이다. 하나는 대서양 전구에서 1939년부터 1945년 5월 8일까지 벌어진 전쟁이고, 또 하나는 태평양 전구에서 1931년부터 1945년 8월15일까지 일본이 중국 및 서구 식민주의, 미국 등과 맞붙은 전쟁이다. 미국은 두 전쟁에 다 참여했다.

미국은 주변부를 만들고
악마와 싸우려 한다
어제는 공산주의, 오늘은 테러
내일은 또 누구일까?

나치의 러시아인과 유대인 대학살 및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대한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 등을 비롯한 대참사의 원인을 알기 위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인론이 필요할 듯 하다. 전쟁을 일으킨 원인, 즉 ‘작동 원인’은 독일의 폴란드 침략과 일본의 만주·진주만 침략이었다. ‘물질적 원인’은 엄청난 양의 무기와 군대가 있었다는 것이다. ‘형상적 원인’은 동맹-협정-조약-제재 등이다. 그리고 독일과 일본이 추구했던 목표를 의미하는 ‘최종적 원인’이 있다. 독일은 베를린을 중심으로, 러시아를 식민지로 만드는 유럽의 신질서를 욕심냈다. 일본은 대만과 한국, 동남아시아를 식민지로 삼으려는 팽창 야욕을 갖고 있었다. 유럽은 자신들의 식민지를 유지하고 싶어했고, 미국은 세계 패권을 갖고 싶어했다. 그리고 미국은 전쟁을 통해, 또 경쟁자들이 서로 싸우게 함으로써 이를 달성했다. 의도는 인간사에서 전체 이야기의 한 부분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법이다.

2차대전을 피할 수는 없었을까? 전쟁의 목표를 병리나 범죄로 규정함으로써, 또 중립과 비동맹을 통해, 급진적 군축 또는 최소한 수세적 방어로의 전환을 통해, 그리고 침략행위에 대한 병사들의 대규모 거부 등을 통해 가능했을지 모른다. 이러한 오래된 아이디어들은 과거에는 실현되지 않았지만, 갈수록 힘을 얻고 있는 중이다.”

 전쟁은 막대한 비극을 초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왜 그렇게 자주 전쟁을 벌이는가? 지도자의 일방적인 잘못된 욕망 때문일까, 아니면 근대국가와 세계 질서의 본질 때문일까, 아니면 단지 우연이거나 인간 본성의 문제일까? 혹은 이런 여러 요인들이 복합된 것일까? 나 자신이 수많은 전쟁의, 수많은 원인을 탐구해오면서도 아직 해답을 얻고 있지 못한 문제다. 다만 나는 인간본성을 설명해온 성선설과 성악설이 전혀 진실이 아니라는 점은 인류의 여러 고전으로부터 확실하게 배울 수 있었다.

 네 가지를 꼽고 싶다. 아니, 세가지로 축약할 수도 있겠다. 먼저 과거의 ‘직접적 폭력’은 승자의 영광과 패자의 외상-복수로 이뤄지는 전쟁이다. ‘구조적 폭력’, 즉 식민지들과 제국 간에서 벌어지는 것들은 정복과 해방을 동력으로 한다. ‘문화적 폭력’은 나머지 두 가지를 정당화한다. 다른 말로 하면, 군사적, 경제적, 종교-이데올로기적인 폭력이다. 이 세 층위는 정치적 리더십이 중요하지만 폭력의 정도가 더욱 중요한 변수가 된다.

시간과 공간, 역사와 지리에 따라 다양한 차이를 보이지만, 전쟁과 폭력은 먹을 것과 섹스 추구와 같은 인간의 내적 본성이 아니라 구조와 문화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 인간은 잔인하게 행동할 수도 사랑을 나눌 수도 있지만, 둘 중 어느 한쪽으로 운명지워져 있지는 않다. 더 협력적인 구조와 평화의 문화를 만들면 북유럽의 노르딕 국가들이나 유럽연합(EU) 국가들, 아세안 국가들에서 보듯이 좋은 결과가 나온다. 이런 곳에서 전쟁은 거의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국가 시스템 그 자체라는, 구조적이고 주요한 원인을 더 이야기하고 싶다. 국가는 다른 국가를 위협으로 바라보고, 피해망상적이 되곤 한다. 타국의 최악의 측면에 자국 안보의 초점을 맞추고, 상호 동등한 이익을 위한 협력에는 방점을 두지 않는다.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 “과정이 목표”라는 당신의 평화이론은 20세기 평화학의 최대 성과로 불리웠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평화적 수단과 정당한 방식이 아닌 폭력과 살상의 방식으로는 인간은 결코 평화 상태를 달성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방법을 통해 평화적 수단과 평화목적을 결합할 수 있을까?

 평화적 수단과 평화에 관한 나 나름의 공식이 있다. 평화=(공평X조화)/(외상X충돌) 이다. 공식을 보면, 네 가지 기본적인 과제가 있다. 공평은 상호적이고 동등한 이익을 위한 협력을 말한다. 조화는 정서적 공명과 서로의 기쁨과 고통을 나누는 것이다. 많은 공감이 필요한 일이다. 화해할 수 없는 외상과 화해하는 것도 필요하다. 풀리지 않는 충돌이라도 반드시 풀어야만 한다. 이 네 가지 과제에 능한 커플은 능히 훌륭한 결혼생활을 즐길 수 있다. 이웃 국가들 간에도 마찬가지다.

 소련의 붕괴와 얄타 체제의 해체 이후, 유럽에서는 양극대치(냉전체제)가 종식되는 결과가 나타났다. 그러나 양극체제의 잔기는 동아시아에서는 여전히 살아있다. 이런 차이는 두 지역에서의 냉전 구조의 차이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전자는 나토와 바르샤바조약기구 사이의 다자적이고 집단적인 구도였다. 그러나 후자는 미국과 많은 동아시아 국가들 사이의 일방적인 중심축(미국)과 바퀴살(동아시아국가들) 관계 체제였다. 이런 차이는 두 지역의 냉전 구조의 결정적인 차이였고, 이는 소련의 붕괴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 냉전이 지속된 핵심기초가 되었다고 본다.

 평화를 위해 우리는 다자주의와 양자주의가 모두 필요하다. 좋은 직접적 양자적 관계를 맺는 한편으로 그걸 넘어서는 다자기구가 필요하다. 유럽연합(EU)은 오늘날 직접적 양자 협력을 일부 희생함으로써 다자주의와 양자주의 두 가지를 모두 갖추고 있다. 유럽의 냉전은 서기 395년 로마 제국이 서로마의 가톨릭과 동로마의 정교회로 분리된 사태와 더불어 시작됐다. 이 분리는 1054년 역사적 ‘분립’(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분리)으로 이어진다. 동서 블록 사이에 여러 정상회담들도 열렸지만, 1975년 헬싱키에서 유럽안보협력기구(OSCE)가 탄생하기 전까지는 누구도 블록을 넘어서지 못했다. 요즘도 미국과 유럽연합은 우크라이나와 조지아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 유럽연합으로 끌어들이려 노력하고 있다.

당신 말처럼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는 미국주도의 중심축과 바퀴살 체제였다. 그러나 상하이협력기구가 현재 나토-미국-일본 연대에 맞서 균형을 갖추려하고 있다. 1945년 이래 유지돼온 미국의 세계 패권은 오늘날 유럽과 아시아에서 모두 약해지고 있다. 다만 유럽에선 소련의 내부붕괴 뒤 미국과 유럽연합의 동진이 이뤄졌지만, 아시아 태평양에선 중국이 약진하면서 미국이 쇠퇴를 겪고 있다는 점은 차이점이다.”

“남북은 대화로 갈등해법 찾아야…통일은 그 다음 일이다” 

 과거사 극복 역시 지역 평화 구축에는 결정적이다. 유럽에서는 나치 유산 청산이 미래의 평화와 신뢰 구축을 위한 조건을 만드는 길을 열었다. 그러나 동아시아에서는 과거 전쟁범죄의 유산들이 여전히 살아있다. 즉 일본은 침략부인, 역사 왜곡, 위안부 강제동원 인정거부, 야스쿠니 신사 참배, 교과서문제, 영토 분쟁 등으로 논쟁을 일으키고 있다. 독일문제와 일본문제가 초래한 차이가 유럽과 동아시아의 차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왜 일본은 독일과 완전히 다른 걸까? 나는 전범국가 일본을 분단시키지 않고, 천황을 처형하지 않은 미국의 책임이 결정적이었다고 본다.

 중요한 문제다. 과거의 상처는 화해를 통해 치유되어야 한다. 왜 일본은 독일과 완전히 다를까? 독일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 미국과 영국은 해법의 공식을 찾아냈다. 잘못은 나치당의 리더십에 돌리고, ‘탈나치화’를 하라는 것이다. 히틀러는 자살했고, 1차 대전 이후 독일의 재건과 부흥을 이끈 주요한 건설자인 햘마르 샤흐트(Hjalmar Schacht)는 무죄 방면됐는데, 그는 나치 당원이 아니었다. 아울러, 독일인들이 나치의 행위를 열광적으로 용인했다는 사실은 잊자는 것이다.

이런 논리에 따른다면 일본 도쿄전범재판에서도 미국은 일본인들을 수족으로 여기는, 태양 여신의 자손이라고 하는 신성한 천황국가의 신토 체제에 책임을 물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천황 일가는 무죄를 받았고, 731 부대 죽음의 수용소 설립 등에 대해서도 무죄를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평화를 위해
좋은 양자적 관계를 맺어야 하고
그 이상의 다자기구도 필요하다
미국의 세계패권은 약화됐다

일본이 저지른 잔혹행위들이 존재했다. 몇 년 전에 ‘평양 리스트’라는 게 있었는 데, 일본이 한국에 무슨 짓을 했는지, 일본에 조선인들을 끌고가 노예 노동을 시키고, 가축과 자원들을 약탈하고, 문화재를 약탈하고, 점령하고, 위안부를 끌고 가고, 조선인들을 전쟁으로 끌어들였고, 일본 제국의 일부로서 분단되게 만들었다. 독일의 경우에는 이에 더해 제노사이드 학살을 저질렀다.

그러나 조심해서 봐야할 것이 있다. 누군가가 무엇 때문에 비난을 받을 때 일부는 진실이고 일부는 거짓이며, 일부는 신화일 수 있다. 제 3자는 이렇게 물을 것이다. 600만명의 유대인이 학살되었나요? 가스실에서? 난징에서 30만명이 학살 당했습니까? 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많은 위안부 여성들이 끌려갔다면 그들 중 일부는 돈을 받는 일반적 성매매 여성일 수도 있지 않느냐는 질문도 나올 수 있다. 진실만이 모든 이들을 해방시킬 것이고 평화를 만들 것이다. 중립적인 이들을 비롯해 모든 관련자들이 참여하는 국제적인 조사위원회 같은 것을 만들지 못할 이유가 없다.

 오늘날 동아시아는 역내 교역과 경제협력은 거의 유럽연합(EU)과 북미 수준에 근접한다. 반면 역사화해, 영토갈등, 신뢰구축, 지역안정, 평화건설 면에서는 악화되고 있다. 일부 서구의 관찰자들은 이를 ‘아시아 패러독스’라고 조롱하고 있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럽은 더욱 심각했다. 유럽은 기독교, 이성, 산업혁명, 과학혁명, 의회주의, 시장경제, 민주주의를 발전시킨 반면, 두 번에 걸친 세계전쟁을 포함해 제국주의, 나치즘, 파시즘, 인종주의, 홀로코스트 등을 자행했다. 나는 이를 ‘아시아 패러독스’보다 더 심한 ‘유럽 패러독스’, 또는 ‘유럽의 자기분열’ ‘유럽의 자기모순’이라고 불러왔다. 반면 오늘날 유럽은 이런 모순을 잘 극복하고 역내 통합과 평화를 달성하였다. 아시아 패러독스를 극복할 방법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유럽도 다른 인간사와 마찬가지로 모호하고, 중국의 음양이론이나 한반도의 남북한과 마찬가지로 여러 모순으로 가득하다. 유럽은 지금도 그러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모순의 본질은 변화한다. 중국은 침략에 맞서 싸울 준비가 된 인민해방군의 막대한 보병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뒤 진행된 미국의 포위는 북대서양조약기구는 동쪽으로, 미-일 안보동맹은 서쪽으로 확장하면서 더욱 강화됐고, 사실상 한국과 대만을 포괄했다. 이에 따라 중국은 미국의 공격적인 움직임을 방어하기 위해 고기술, 고비용의 현대적인 군대로 전환했다. 하지만 중국은 미국의 태평양 쪽 근해에 해군을 가동하고 있지 않고, 멕시코에 기지를 가진 것도 아니다.

그리고 유럽과 동아시아, 독일과 일본의 또 다른 주요 차이도 있다. 독일은 프랑스에 의해 (유럽) 가족의 일원이 되도록 초대 받았다. 미국도 이를 원했다. 나치 이후 유럽공동체 건설이라는 해법은 독일이 나치범죄에 대한 인정을 하면서 좀더 쉬워졌다.

문제해결 없이 화해를 하는 방법은 ‘평화화’하는 것뿐이다. 일본을 위한 해법은 과거에도 현재도 동아시아(혹은 동북아시아) 공동체다. 이 공동체는 남북한과 두 개의 중국(중국, 대만), 다른 국가들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그러나 미국은 결코 이를 용인하지 않는다. 일본 내의 냉전 강경파들도 이를 용인하지 않는다. 한국이 일본을 동아시아(동북아시아) 공동체에 초대함으로써 일본이 전쟁범죄를 인정하는 게 더 쉬워지도록 만들 수는 없을까?

일본의 과거 잔혹행위 명백하지만
제3자는 물을 수 있다, 진실을
중립적 인사를 포함한
국제적 조사위 못만들 이유 없다
 

 전후 70년 동안 세계 최대 변화 중의 하나는 중국의 급속한 발전이다. 요즈음은 중국과 미국을 두 강대국으로 분류하는 ‘G2(지2)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 개념에 동의하나? 중국의 부상으로 인해 세계화 이후 미국화와 중국화의 새로운 양극 경쟁시대가 도래했다고 보는 견해도 존재한다. 나는 중국은 아직 경제력만 강력한 준 글로벌 제국이며, 여전히 미국이 유일한 글로벌 제국이라고 보는 입장이다.

 유엔에서 ‘비토권’을 가진 5개 나라에 독일을 추가한 G5+1 개념도 있고, 지금은 주요7국(G7)이 된 과거의 주요8국(G8), 그리고 주요20국(G20)과 유럽연합(EU) 28개국 및 유엔의 194개국이 있듯이, 세계질서에 ‘지2’의 면모가 있다는 건 의심할 수 없다. 이토록 많은 그룹이 있지만, 유일하다 할 수 있는 그룹은 없다. 나는 4개의 큰 나라와 4개의 지역, 곧 러시아-인도-중국-이슬람협력기구(OIC)-유럽연합(EU)-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미국의 8각형이 오히려 이해하기에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영국인들은 대륙의 1인자가 적이라고 생각했다. 대륙의 1인자인 적은 한때 프랑스였지만 그들이 독일에 패배하자 독일이 적이 되었고, 러시아가 그들을 패퇴시키자 이번엔 러시아가 적이 되었다. 미국은 이 이론을 세계에 투사시켜, 러시아·중국과 전쟁을 벌여 둘 다 약화시키는 한편, 어느 쪽이 진정한 적인지 알아보려 했다. 그들은 무엇을 얻었을까? 동맹을 얻었다.

미-중의 G2도 있지만, 경제적으로는 서방 대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라는 G2도 있고, 군사적으로는 나토·미-일 동맹 대 상하이협력기구라는 G2도 있다. 미국은 여전히 국내총생산과 군사비 지출에서 중국을 앞서지만, 중국은 인구가 더 많을 뿐 아니라 보다 중요한 문명화 시기 등에서 앞선다. 중국은 최소한 4천년 동안 여러 왕조가 이어져왔지만, 미국은 200여년 동안 원주민을 죽였을 뿐 그들 토착 문명을 연속적으로 발전시킨 게 없다. 중국에는 역사로부터 끌어올 수 있는 자산이 훨씬 많다. 이것은 미국을 절박하게 만들어,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게 만든다.

중국은 동서남북 세계를 ‘야만’으로 간주한 채 오랫동안 고립 속에서 지내왔지만, 1980년부터는 국제질서에 재빨리 참여해왔다. 미국은 과거에도 지금도 역사를 배척한 채 우주 속에서 지내왔으며, 항상 새로운 역사와 새로운 시작을 창조한다고 믿을 뿐, 역사의 어두운 측면을 인식하지 못한다. 중국은 긴 역사에 걸친 왕조이지만, 미국은 우주의 제국으로서 모든 힘을 사용해 주변부를 만들고 악마와 싸우려 한다. 어제는 공산주의자, 오늘은 테러리스트, 내일은 또 누구일까? 중국의 고위층이 나에게 말했다. “우리가 그 정도로 멍청한 건 아니다. 우리는 조화와 상호 평등한 이익을 바란다.” 만약 중국이 경제적 이익과 정치적 복종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처럼 군사력을 사용한다면 나는 매우 놀라게 될 것이다.

물론 한족중국(Han China)은 제국주의의 특성을 갖고 있다. 또 히말라야와 고비사막, 툰드라와 해양에 둘러싸인 중국엔 유교 사상이 있고, 이는 내가 말하는 6개의 중국, 곧 한족중국과 대만, 홍콩·마카오, 티벳, 위구르, 내몽골 뿐 아니라 베트남과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반도, 특히 북한은 중국보다 더욱 유교적인 나라가 됨으로써 살아남았다. 베트남은 2천년을 싸우면서 살아남았다. 중국은 이 모든 것을 현명하지 못하게 다루고 있는데, 러시아가 제국을 어떻게 포기했는지에서 배울 게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은 그들에게 아주 새로운, 하지만 역사의 그림자들을 가진 채 자산과 조화를 나름대로 그릴 수 있는 세계로 접어들고 있다.

 이제 평화의 궁극적 의미를 논의해보자. 평화논의는 그 자체가 이론이자 실천이라는 함의를 담는다. 즉 현실에서 평화실천과 평화건설이 부족하다는 점은, 달리 말하면 평화철학과 평화이론이 부족하다는 점을 뜻한다. 나는 평화의 목표와 방법을 적극적 평화, 생산적 평화, 포괄적 평화, 영구적 평화로 구분해왔다. 동시에 평화의 궁극적 목표는 국가간 평화가 아니라 개인 삶의 평화, 인간의 평안이라고 생각한다. 대체 평화란 무엇인가?

 평화는 마치 건강처럼 모든 좋은 것, 최고선을 의미한다. 우리는 평화에 만족한다. 직접적이고 구조적인 폭력이 없으며 나쁜 것들이 만연하지 않는다는 소극적 평화도 있다. 협력과 공감을 통하여 평등과 조화와 같은 좋은 것을 수반하는 번영과 안전의 결실을 내는 적극적 평화도 있다. 폭력에서 소극적 평화를 거쳐 적극적 평화로 가는 과정엔 조정이 필요한 다양한 조합이 존재한다. 항상 갈등을 해결하고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폭발해서 다른 모든 것들을 파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영구 평화”는 포함시키지 않겠다. 최종적 상태로서, 영구평화라는 서구적 추상을 사용한 칸트는 틀렸다. 건강을 위해 항구적으로 노력하듯이 평화가 항구적인 과정은 맞지만, 항구적인 건강은 있을 수 없다.

 오늘날 동아시아의 두 대국인 미국과 중국은 둘 다 강제력인 아닌 헤게모니에 바탕한 제국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제국은, 강권에 기반했으나 단명했던 과거의 몽골, 독일, 일본, 소련 제국들과는 확실히 다르다. 그렇다면 두 제국 아래에선 동아시아의 장기평화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동아시아에서 미국과 다른 국가의 관계는 군사동맹에 기초해 있지만, 중국은 상호 평등한 이익을 위한 거래에 기초한 것처럼 보여 전혀 다르다. 나는 정복 대 헤게모니의 구분 보다는 군사적 확장의 유무로 구분하고 싶다. 미-중 공동 제국은 부재한 채, 평행관계 속에서 상당한 협력적인 관계가 있을 뿐이다. 미국은 저가 양질의 중국산 물건이 하위 70%의 국민들을 위해 필요하다. 그러나 중국은 전세계에 다른 고객들이 널려있다. 미국이 (중국과 경쟁하기 위해) 쿠바를 통해 오랜 뒷마당인 남미로 돌아가려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평화를 위해 필수적인 요소의 하나는 내부의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동아시아에서는 심각한 퇴영이 발생하고 있다. 그리고 동아시아 민주주의의 후퇴는 동아시아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는 갈등을 내장하고 있다. 중국과 북한은 일당 통치국가다. 중국의 지도부는 많은 경우 2대, 3대 세습자제들이며, 북한은 3대세습 독재국가다. 동아시아의 민주국가 일본과 한국의 후퇴 역시 심각하다. 일본은 1급 전범의 3세가 집권하였으며, 과거 인정과 반성을 강력하게 거부하고 있다. 한국 역시 군사독재자의 2세가 집권하여 민주화 이후 선도하던 남북관계 개선과 동북아평화를 위한 이니셔티브를 상실하였다. 이런 내부 역행 속에 상호갈등 역시 격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주의와 지속 가능한 평화를 결합하는 문제는 결코 용이하지 않다.

요한 갈퉁 전 베를린대 교수
요한 갈퉁 전 베를린대 교수
 내부 문제와 국제관계는 앞서 얘기한 평화 공식의 네 가지 면을 통해 연결되며, 이는 민주정과 독재정에 모두 열려있다. 독재정치체제도 네 가지를 모두 갖출 수 있다. 예컨대 북한도 더 높은 수준의 교역을 추구할 수 있고, 남북한 전체 민족 공동체에 대한 깊은 정서적 유대가 있으며, 1945~1953년 갈등과정을 명확히 하기 위한 국제위원회를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리고 해상 경계에 대한 분란도 노르웨이-러시아처럼 ‘회색지대’ 방식으로 해결할 수도 있다. 민주주의에서 정부는 이를 정책적으로 추진할 수 있지만, 또한 파괴적 정당은 이러한 의제들이 복잡하고 모호할수록 투표지지를 획득할 수 있다. 결국 이는 무엇을 할지 알고 그것을 바라면서 실천하는 문제다. 오늘날 남한과 북한은 모든 문제들을 직접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6자회담만 해도 다른 네 나라는 각자의 의제가 있어 두 한국이 직접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미국 버락 오바마 정부는 최근 쿠바와 관계 정상화에 나섰다. 이로 인해 이제 북한은 예외적으로 미국과 외교관계가 없고 지구상에서 최강대국에 의해 최장기간 봉쇄를 당하고 있는 나라가 됐다. 북-미 관계 정상화는 북핵을 포함한 한반도 문제를 평화롭게 해결하는 가장 중요한 통로가 될 것으로 본다. 미국의 적대국가였던, 소련, 중국, 베트남, 서독, 일본 등과 미국의 관계개선 역사에 비추어 보아도 두 세대를 넘는 북-미 적대는 예외적으로 길다. 나는 북-미 관계도 당연히 정상화되어야 한다고 본다.

 오바마는 행정명령을 통해 쿠바에 대해 50여년 동안 추진된 나쁜 정책으로부터 벗어나려 하였다. 그러나 사실 다른 사례들도 행정명령들을 기다리며 줄을 섰다.

북한의 경우 전적으로 동의한다. 미국은 북한과의 관계를 정상화하여 평화협정과 외교관계를 맺어야 한다.

팔레스타인 문제도 있다. 미국은 팔레스타인을 인정해야 한다. 2002년 아랍연맹의 제안, 그리고 1967년 6월 이스라엘 문제(3차 중동전쟁 뒤 서안지구 점령) 등이 다뤄져야 한다.

 마지막 문제다. 한반도 통일을 위해서는 북한의 민주화와 남한의 내부 통합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로선 비관적이다. 북한의 민주화는 아직 가능성이 높지 않다. 나아가 남한 보수와 진보 사이의 심각한 분열과 갈등은, 이 정도의 차이도 수용하지 못하면서 북한의 적대세력과의 공존과 통합을 의미하는 통일을 과연 추진할 수 있을까 크게 걱정하게 한다. 독일의 통일은 물론 유럽통합과 평화구축도 사실은 전후 민주화와 민주주의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고 믿게 된다.

 공정하고 자유로운 선거에 기초한 다당체제라는 의미에서의 민주주의의 역할을 과장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민주주의는 좋은 것이지만, 여전히 금융통치, 부패통치, 기술통치와 단일정당 독재 등에 대해 취약하다. 민주주의는 체제의 평화적 이행에 좋다. 그러나 북한은 부자세습이라는 오래된 방법을 실천하고 있다. 이는 공산주의가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유교적인 근본주의 나라다. 남한도 일면 그런 점을 갖고 있다. 남북한을 너무 다르게 보지 않는 게 좋다. 투명성과 합의를 향한 끊임없는 대화라는 점에서의 민주주의는 또 다른 문제다. 남과 북은 모두 그 문제에서 부족하고 개선될 필요가 있다.

통일과 북한국경의 개방은 미국과의 관계정상화가 크게 필요한 과정으로서, 이 정상화는 북한을 보다 정상적이고 덜 병적인 나라로 만들 것이다. 구체적 사항들은 남과 북이 도출해내야 한다. 남과 북의 통일은 나중의 일이다. 아마도 처음엔 국가연합, 그리고 코리아 공동체, 다음엔 연방을 거쳐, 마지막엔 남북 국민이 원한다면, 하나의 통일국가가 될 것이다.

정리/손원제 김외현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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