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미디어법 날치기 통과를 시도한 직후, 이명박 대통령은 라디오 연설에서 “방송미디어법을 세계는 이미 하고 있는데 새로운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저렇게 하느냐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것을 통해 우리가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말을 제대로 하자면, “세계가 이미 해보고 실패했는데, 새로운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저렇게 하느냐, 그것을 통해 일자리가 얼마나 나오겠느냐고 생각한다”라고 해야 합리적인 말이 된다.
우선, 세계 규모로 보면 매우 협소한 지역 시장(로컬 마켓)에 지나지 않는 한국의 미디어 산업에서 ‘세계적 경쟁력’이 선전 문구 이상의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는 논외로 하자. 세계는 이미 하고 있다거나, 우리가 뒤늦었다거나, 이미 주먹구구로 호된 비판을 받았는데도 여전히 일자리가 뭉텅뭉텅 나온다고 주장한다거나 하는 게 미디어법을 밀어붙이는 근거로 제시되는 양상이므로, 이미 하고 있는 나라 사정은 어떤지 한번 살펴보자.
최근 20여 년 동안 미국의 미디어 정책은 시장 논리에 따른 탈규제 일변도로 달려왔다고 할 수 있다. 1980년대 초부터 시작된 언론, 특히 방송통신 사업에 대한 탈규제 열풍은 1996년의 방송통신법을 거치며 더욱 속도를 냈다. 탈규제 초기에는 미디어 기업의 숫자가 늘어났다. 그러나 규제가 풀리고 돈 놓고 돈 먹기, 혹은 약육강식의 자유경쟁이 적용되면서, 미디어 기업은 그 수가 차차 줄어들고 거대 그룹이 시장을 지배하는 양상이 되어갔다. 1995년에 미국 방송사와 케이블 채널을 소유한 그룹은 210개였으나, 불과 7년 뒤인 2002년에는 3분의 1이 사라지고 142개만 남았다.
미국, 규제 풀리자 거대 그룹이 미디어 독과점
방송을 소유한 그룹 수는 줄었지만, 이들이 가진 방송 수는 898개(전체 방송의 78%)에서 1150개(86%)로 오히려 늘어났다. 소유 집중 현상이 뚜렷이 나타난 것이다. 1997년에 미디어 학자 벤 배그디키언은 미국 사회에서 독점적 권력을 행사하는 미디어 기업이 열 개라고 말했다. 2000년대 초에 이르면, 이 숫자는 유명한 5인방, 즉 컴캐스트·폭스·비아컴·GE·타임워너의 다섯으로 줄어든다. 오늘날 미국의 미디어 상황을 묘사할 때 ‘독과점(oligopoly)’이라는 말이 빠지지 않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미국 의회는 미디어 기업 소유와 관련해 지분 제한을 두지 않았나? 물론 두었다. 연방통신위원회(FCC)는 소유 지분 제한을 완화하려고 끊임없이 시도했으며, 의회는 이를 적정한 수준에서 규제했다. 그런데도 이런 극단적인 독과점 상황이 초래되었다.
남들은 이미 하고 있는데 왜 우리만 난리인가, 더구나 일자리도 생긴다는데. 그 답은, 세계의 경험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상식적 교훈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사IN 신호철 미국은 정부의 억압이 아니라 자본과 경쟁의 덫에 걸려 언론 자유가 변질되었다. 위는 회사 측과 단체협상을 앞두고 시위를 벌이는 월스트리트 저널 기자들. |
이러한 시장 상황이 시사하는 점은 명백하다. 한 사회의 여론과 정보 흐름이 오로지 돈벌이에만 관심이 있는 거대 기업의 통제에 들어간다는 것이며, 사회 다양한 부분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매체는 갈수록 사라진다는 것이며, 다수의 의견보다 기득권층의 의견과 이해관계가 더 중시되는 기형적 여론 형성 구조가 갖추어진다는 것이며, 소외된 계층의 목소리는 갈수록 듣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군사독재 정부가 했던 것처럼 ‘보도지침’이라는 원시적 방법을 동원하지 않아도, 미디어가 알아서 걸러주고 막아주는 상황이 전개된다.
법학자 버트 뉴번은 “대기업이 언론을 소유할 경우, 언론은 대기업이 가진 다수 기업 중 하나가 되어,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수익을 내야 하는 기업으로 전락한다. 언론의 사명에 투철한 언론인은 사라지고, 어떤 연예인이 누구와 잠을 잤는가와 같은 선정적인 소재나 추구하게 된다”라고 경고한다.
또 다른 결과는 상업주의에 ‘초’까지 붙은 초상업주의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거대 미디어 기업에 의한 소유 집중은 극단적 상업주의를 낳는다. 투자로부터 최대한 이윤을 빼내야 한다는 기업 마인드의 당연한 결과다. 예컨대 독점 체제에서 수용자는 대안이 없기 때문에, 광고를 더욱더 깔아넣어도 채널을 돌릴 데가 없다. 어느 정도인가? 1993~2003년 미국 지상파 텔레비전의 저녁 광고 시간은 무려 36%나 늘어났다. 일자리는? 대기업이 방송 등 미디어 산업에 참여하면 고용 증진 효과가 있는가? 기껏해야 희망 사항이다. 기업은 미디어 산업에 이윤이 날 만큼만 투자하고, 꼭 필요하더라도 수익 창출에 걸림돌이 되는 인원은 오히려 축소하기 때문이다.
정평 있는 미디어 조사 프로젝트인 ‘저널리즘 엑설런스 프로젝트(PEJ)’의 연례 조사에 따르면, 2000년대 미국 신문업계의 편집국 직원은 1990년대보다 2200명이나 줄었다. 2000~2005년에는 3000명, 전체 뉴스 인원의 5%가 줄어들었다. 방송도 마찬가지다. 전국 텔레비전 방송사의 경우 1980년대와 비교하면, 특파원은 3분의 1이 줄었으며, 해외 지국은 절반이나 감축되었다. 2002~2006년에도 방송사의 보도 분야 일자리는 10% 줄어들었다. 지역 텔레비전 방송사도 60%가 예산을 깎거나 인원을 단축해왔다.
일자리 증발 현상의 속내는, 지난 6월까지 루퍼트 머독의 거대 미디어 기업 ‘뉴스 코퍼레이션’ 회장을 지낸 피터 처닌의 언급에서 짐작할 수 있다. 그는 “(미디어 산업에서) 중요한 것이 콘텐츠인가 아니면 배급력인가를 놓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규모다. 규모가 커져서 비용을 분산하고 줄일 수 있다면, 콘텐츠 제작과 배포를 비롯한 모든 영역에서 경쟁자를 압도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일자리 늘기는커녕 비정규직만 양산할 수 있어
‘규모의 경제’는 미디어 소유 집중을 합리화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감초다. 규모의 경제를 통해 비용을 줄이고, 그 여력으로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 소비자에게 봉사한다는 것이다. 이런 합리화에 대한 비판은 둘째치고, 처닌의 말을 일자리의 측면에서만 보면, “이것을 통해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에게는 퍽 비관적인 말이 아닐 수 없다. 매수나 합병을 통해 중복된 직급을 계속적으로 정리하고, 고정 인원을 고도로 가동함으로써 생산비를 줄인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그렇게 되어왔다. 미디어의 규제를 허물면 일자리는 늘어나는 게 아니라 줄어든다. 한국처럼 제한된 미디어 시장에서는 더욱 뻔하다. 혹시 허드렛일을 하는 자리, 비정규직 자리 따위는 늘어날지 모른다. 그러나 여론을 다루는 미디어로서 정작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는 자리는 계속 줄어들 수밖에 없다. 공급자를 확대함으로써 빚어진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비용을 줄여야 하고, 그렇게 하더라도 규모에서 밀린 끝에 도태되는 매체들이 나올 수밖에 없는 탓이다.
뉴스 매체의 비용을 줄이고 인원을 감축하는 것은, 곧 정상적 여론 형성 및 정보 전달 기능이 훼손되거나 마비됨을 의미한다. 예컨대 2002년에 미국 지역방송사 보도국 책임자 103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질 높은 뉴스를 생산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를 묻는 질문에 절반 가까운 응답자가 ‘인원 부족’이라고 대답했다.
이런 결과, 미디어 학자 에릭 에프런의 말을 빌리면, “이야기는 말해지지 않고, 질문은 던져지지 않으며, 권력은 견제되지 않는” 상황이 초래되고 있다. 언론 선진국으로서 세계 최고 수준의 자유를 누리던 미국 언론은, 정부의 억압이 아니라 자본과 경쟁의 덫에 걸려 제 밥벌이도 못할 지경에 처했다. 겉으로는 화려한 미국의 언론 자유는, 언론으로 돈벌이를 하는 기업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로 변질되었다.
또 다른 미디어 학자 로버트 맥체스니는,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은 기술의 발달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미디어 산업에 정당하게 적용되어야 하는 일정한 규제를 제거해버린 탓이라고 지적한다. 미디어 산업의 공공성을 망각하고 오로지 기업 이익만을 염두에 둔 신자유주의적 미디어 정책 때문이라는 것이다.
선진 각국이 산업 전 분야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재검토하고 있는 마당에, 뒤늦게 환상을 주입하며 실패한 모델을 뒤따라 가려는 정부의 속을 도무지 알기 어렵다. 아니, 너무나 명백한 것인지도 모른다. 맥체스니에 따르면, 정부 정책을 없애는 것도 분명한 정책 중 하나이며, 결국 중요한 문제는 ‘정부의 미디어 정책이 누구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행해지는가’라는 점이라고 하니까.
http://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5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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