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홍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
[오마이뉴스 글:신나리, 사진:이희훈, 편집:박혜경]
▲ 김홍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 |
ⓒ 이희훈 |
지난 16일부터 3박 4일 동안 방북한 김홍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대표상임의장은 "북한이 남측에 다소 불만이 있었다"라고 전했다. 북한이 말의 성찬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변화를 원했다는 것이다. 남측이 유엔제재나 미국의 눈치를 보느라 더 행동하지 않는 것에 불만을 품은 눈치였다는 것.
방북 기간 그는 "남측의 보수와도 교류하고 싶다"라는 말도 들었다. 남북교류가 이어지려면 진보와 보수 모두를 아우르는 만남이 필요하다는 걸 북한이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 역시 "보수의 반북선전, 안보장사는 점점 사라져갈 것"이라며 남북교류가 다양한 모양새를 띠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미국을 향한 북한의 불만도 들었다. 종전선언이 대표적이었다. 김 대표상임의장은 "북한은 종전선언도 못 하면, 미국이 줄 수 있는 게 뭐냐며 북한이 일방적으로 퍼주기만 해야겠냐고 불만을 드러냈다"라고 말했다.
김 대표상임의장은 북한이 탈북 종업원 송환을 요구한 것을 두고 "확실한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라고 못 박았다. 그는 "탈북 종업원의 송환 여부는 논의가 필요하지만, 국가 정보기관이 저지른 범죄인지 아닌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진실을 피해갈 방법은 없다는 게 그의 철칙이었다.
그의 말은 단정했다. 주어와 술어가 바뀌는 경우도 서둘러 답하는 법도 없었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천천히 말을 눌러 담았다. 30일 서울 마포 민화협 사무실에서 김 대표상임의장과 만났다. 아래는 '북한의 정세 인식' 등을 주제로 그와 나눈 문답 전문이다.
"북, 과감하게 밀고 나가길 바라더라"
- 7년 만의 방북이다. 최근 평양의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고 하더라. 반미구호도 사라지고. 어떻게 달라 보였나.
"예전보다 훨씬 활기가 있었다. 사람들이 통제당한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좋아 보였다. 도시가 활력이 넘치고. 물론 (북한이) 안 좋은 건 보여주지 않겠지. 평양 시내 여기저기를 다녔는데, 7년 전과 비교하면 경제적으로 나아 보였다. 고층 건물 보이고 밤에 야경도 볼 수 있었다. 외부에서 듣기로는 북쪽의 식량, 에너지 사정이 어려운 시절보다 낫다고 하더라. 경제적으로 힘들다는 말이 있는데, 기본적인 조건이 나빠졌다기보다는 외화가 부족해 산업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경제를 발전시키려면 공장 설비, 투자, 원자재 수입, 가공해서 수출해야 하는데, 그런 곳에 쓸 수 있는 외화가 부족해 (경제를) 살리지 못한 것이 힘들다는 거다."
- 차에 타서 함께 이동할 때는 주로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나.
"남북교류 이야기였다. 일부러 북측이 자존심 상할 만한 말을 물을 필요는 없으니까. 내가 말하기보다는 북측이 우리에게 궁금해하는 걸 물어봤다."
- 북한 민화협 관계자가 무엇을 물었나.
"왜 남측이 대북 교류확대에 적극 나서지 않냐는 말이 많았다. 4.27 판문점 선언을 했는데, 왜 그걸 이행하지 않느냐는 거다. 우리 정부가 적극적으로 이행할 의지가 있는지 물어보더라."
- 판문점 선언 이후 고위급회담이나 실무회담도 열리고 진전이 있지 않았나.
"(북측은) 회담만 하면 뭐하냐고 생각했다. 실제로 무언가 이루어져야 하는 기미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느끼지 않았나 보더라. 앉아서 논의만 하는 건 소용없다고 생각하더라. 북한이 원하는 건 눈에 보이는 성과다. 우리는 유엔제재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잖나. 그런데 북한은 유엔제재를 핑계 삼지 말고, 과감하게 밀고 나가길 바랐다.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도 처음에 미국에서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결국 설득해서 동의를 얻어냈고 결과가 좋으니까 나중에는 시비 거는 사람이 없지 않았냐는 말도 했다. 유엔제재에 있어 남측이 과감하게 밀어붙이길 바랐다. 지금은 남측이 미국에서 제재 위반했다는 말이 나오기도 전에 그런 소리가 나올까봐 미리 움츠리고 있다고 여겼다."
- 개인적으로는 어떻게 생각하나.
"일리 있는 말이다. 아무래도 우리 정부가 조심스러워하는 건 사실이니까."
"남측 보수와도 교류하길 원해"
▲ 김홍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대해 "북한에 고립된 채 살며, 외국을 잘 몰랐던 선대 지도자와 달리 외국에 살아봐 그런지 감각이 다른 거 같다. 북한을 정상국가로 만들고 싶은 야심이 있어 보인다. 어떤 심리학자가 덩샤오핑과 김정은을 비교했더라. 둘 다 개혁개방을 추구하지만, 덩샤오핑은 산전수전 다 겪고 나서 지도자 돼서 냉정한 현실주의자라면, 김정은은 젊은 나이에 지도자가 돼서 상당히 이상주의적이라는 거였다."며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
ⓒ 이희훈 |
"종전선언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한 건 아니었다. 우리는 정부 당국자가 아니니까. 다만 종전선언이 안 되는 상황에 약간의 불만을 표시했다. 그 (종전선언) 정도도 못 하냐는 거다. 결국, 종전선언이라는 게 법적인 구속력이 있는 게 아니라 선언적 의미만 있는 거잖나. 사실 북측은 완벽한 안전보장 불가침선언이나 평화협정을 원했는데,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트럼프 대통령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종전선언이라도 하자는 건데. 그것도 못 한다면 미국이 줄 수 있는 게 뭐냐는 거다. 미국이 일방적으로 북한이 다 내놓기만 바라고 자기들은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뜻 아니냐고 의심했다."
- 우리와 미국의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북한을 향한 태도가 달라져 북한의 불만도 있지 않나.
"맞다. 그래서 북은 남측의 중도나 보수세력, 남북교류에 적극적이지 않은 사람들도 끌어들여 남북교류 부분에 참여시켰으면 한다. 지난 4.27 남북정상회담 만찬 때 당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같은 사람이 없었다는 걸 아쉬워했다.
북한은 남남갈등 때문에 남북교류를 방해하거나 남북경협을 퍼주기로 비난하면 자신들에게 좋을 게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보수세력까지도 어느 정도 끌어 들어야 한다는 걸 깨달은 거 같다. 자칭 보수세력은 북한이 남남갈등을 조장한다고 주장해왔는데, 사실 반대였다. 북한은 보수와도 교류해야 남북교류를 활성화하는 데 걸림돌이 없어진다고 보고 있었다."
- 남측의 보수도 그렇게 생각할까.
"미국과 비핵화 협상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는 않겠지만, 분명 진전은 있을 거다. 그렇게 되면, 보수언론의 북한 왜곡 보도도 예전만큼은 하기 어려울 것이다. 반북선전, 안보장사는 점점 사라질 수밖에 없다. 이 부분이 걸림돌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북한 상황을 왜곡하려는 시도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대세를 거스르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 국민의 90% 이상이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바라고 있다. 국민이 바라는 희망에 정면 대응하는 보도나 정치인들이 보이면, 국민에게 외면당할 것이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방해하는 건 한계가 있을 거다."
"탈북 종업원 문제, 진상 밝혀야"
- 북한이 최근 탈북 종업원의 송환을 촉구하고 있다. 어떻게 풀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박근혜가 정치적 목적으로 일으킨 사건인데 시간이 흘러 쉽게 해결하기 어렵게 된 일이다. 꼬여버린 부분이 있긴하다. 하지만 남북관계의 발전에 저해되는 건 제쳐 놓고라도 일단 국가 정보기관이 정치적 목적으로 조작하고 범죄를 저질렀다면, 숨겨서는 안 된다. 물론 지금 정부에 책임을 물을 일은 아니다.
미적지근하게 넘어갈 것이 아니라 진실이 무엇인지 낱낱이 밝히고, 그 사건에 책임이 있는 사람은 처벌해야 한다. 탈북 종업원 송환 문제는 그다음이다. 우리의 정보기관이 그런 일(국정원에 의한 기획 탈북)을 했다면 부끄러운 일이지만, 진실을 먼저 밝히고 다음 단계를 걱정해야 한다. 영원히 숨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구체적으로 송환 이야기가 나오면 해결이 복잡해 손대기 꺼려지는 건 이해한다. 하지만 국가기관이 범죄를 저질렀다면 철저히 밝혀야 한다. 진상을 밝히고 국민에게 공개해야 하지 않겠나. 그 문제가 뜨거운 감자라 누구도 손대지 않는 거 같은데, 일단 손대야 한다. 지금 우리 정부가 과거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진실을 밝힐 수 있는 정부라는 걸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북측이나 다른 나라를 상대할 때도 도덕적으로 우위에 설 수 있다."
- 북한 인권문제는 어떻게 보나.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북미수교가 어려울 거라는 시각도 있다.
"미국이 북한 인권문제 때문에 수교가 어렵다는 건 위선적인 이야기다. 미국은 친미 국가의 인권은 거론하지 않는다. 중동의 친미 국가인 사우디도 인권문제가 상당히 심각하다. 하지만 미국은 이를 문제 삼지 않는다. 비핵화 문제가 잘 해결되면, 미국이 북한 인권문제를 걸고 넘어가 수교하지 않는다는 말은 나오지 않을 거라고 본다."
- 우리는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할까.
"북한의 인권문제가 개선되어야 하는 건 맞다. 하지만 북한은 외부에서 공격하면 오히려 스스로 고립시키면서 체제가 흔들리지 않게 철저히 통제하는 사회다. 우리가 공식적으로 인권문제를 떠드는 것보다는 북한이 개혁개방의 길로 들어설 수 있게 해야 하지 않을까. 북한이 외부세계와 활발하게 교류할 수 있게 하고 경제발전을 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는 게 결과적으로는 인권문제 개선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강요해서 될 일 아니다. 자연스럽게 끌고 가야 한다."
- 개인적으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어떻게 보고 있나.
"김정은을 보좌하는 젊은 엘리트 그룹이 있다고 들었다. 그 사람들이 국제 감각도 있고 상당히 유능한 사람들이라고. 아무래도 북한에 고립된 채 살며, 외국을 잘 몰랐던 선대 지도자와 달리 외국에 살아봐 그런지 감각이 다른 거 같다. 북한을 정상국가로 만들고 싶은 야심이 있어 보인다. 어떤 심리학자가 덩샤오핑과 김정은을 비교했더라. 둘 다 개혁개방을 추구하지만, 덩샤오핑은 산전수전 다 겪고 나서 지도자 돼서 냉정한 현실주의자라면, 김정은은 젊은 나이에 지도자가 돼서 상당히 이상주의적이라는 거였다. 그 말이 기억에 남는다."
"북일수교, 북미수교보다 빠를 것"
▲ 김 의장은 북일 관계에 대해서는 "북미수교보다 북일 수교가 더 빨리 될 거라고 본다. 생각만큼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북한과 일본은 서로가 필요한 상황이다. 한반도 분위기가 나아지고 있는데 아베 총리가 납치자 문제를 오랫동안 이용해왔다. 지금 와서 해결 못 한다고 하기는 어렵지 않겠나. 북측은 북측대로 일본의 협력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 머지않은 시일에 북일 간의 협상이 이뤄지고 수교도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
ⓒ 이희훈 |
"6.15 남북공동선언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다. 민족자주의 원칙을 밝힌 게 6.15였잖나. 북측은 6.15의 의미에 대해 계속 설명했다. 6.15가 있었기에 10.4 남북공동선언과 4.27 판문점 선언도 있을 수 있었던 거니까. 6.15의 정신을 제대로 이행해야 한다며, 우리 민족이 손잡고, 스스로 문제 해결해나가자고 했다."
- 남북 민화협이 일제 강제징용 희생자 유골 송환사업에 합의했는데, 어떤 의미가 있나.
"햇볕 정책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햇볕 정책은 남북관계만 생각한 게 아니라 일본처럼 가까우면서도 사이가 먼 나라까지도 우리가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과거를 극복하고 새로운 시대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동북아 전체의 안정과 평화, 공동번영을 이루자는 철학이다. 결국, 남북이 함께 한다는 데 일차적 의미가 있고, 일본과 싸우거나 갈등을 일으키겠다는 게 아니다.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비극적으로 돌아가신 우리 조상들의 혼을 다시 고국 땅으로 모셔온다는 거다.
이 문제는 일본사람들도 이의 제기할 수 없는 일이다. 일본에서 과거에 관심 있는 시민사회, 종교인뿐만 아니라 일본 주류 사회에 있는 이들까지도 참여시켜 결국 동북아 평화에 이바지할 수 있는 사업으로 만들겠다는 취지다. 그동안 이 문제에 있어 남북이 공동대응을 못 해 명분상으로도 약하고, 힘이 안 실린 부분이 있었다. 이제는 과거와는 다른 형태로 운동을 하게 된 거다."
- 희생자들의 유골이 대부분 종교시설에 안치돼 있다. 현재 북일 수교도 안 되어있는데, 일본과 원만하게 협상할 수 있을까.
"북일 수교는 북미 관계가 조금만 더 나아지면 금방 될 수 있을 거 같다. 북미수교보다 북일 수교가 더 빨리 될 거라고 본다. 생각만큼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북한과 일본은 서로가 필요한 상황이다. 한반도 분위기가 나아지고 있는데 아베 총리가 납치자 문제를 오랫동안 이용해왔다. 지금 와서 해결 못 한다고 하기는 어렵지 않겠나. 북측은 북측대로 일본의 협력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 머지않은 시일에 북일 간의 협상이 이뤄지고 수교도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 올해가 남북 민화협 창립 20주년이다. 이번 만남에서 남북 민화협이 어떻게 창립 20주년을 맞이할지 계획한 게 있나.
"가능하면 9월, 늦어도 11월 추워지기 전에 금강산에서 남북 민화협 관계자, 각계각층의 만남을 주선하는 행사를 하자고 했다. 사실 우리 쪽에서는 유엔제재 때문에 조심스러웠다. 1박을 하기 어렵다면, 당일에 행사를 치르거나 우리가 음식을 싸간다는 생각도 했다. 외려 북측이 적극적이었다. 모든 준비를 다 할 수 있으니까 그런 걱정할 필요 없다는 거였다. 우리에게 통일부 승낙만 얻어오라고 했다. 지금도 북측 민화협과 일주일에 한 번 서신을 통해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북한과 관련해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무엇인가.
"(잠시 생각하다) 단기적으로는 북한의 김일성 대학이나 상징적인 장소에 6.15 정상회담의 정신을 기리는 건물을 만들면 어떨까 싶다. 그곳에서 남북 학자들이 교류하면서 남북교류의 메카로 만드는 것이다. 그런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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