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밝혀진다/조중동국한VOA

"VOA는 언론인가, 선전도구인가"

천사요정 2018. 8. 20. 20:28

한국언론재단은 지난 11일부터 25일까지 '인터넷 저널리즘'이라는 주제로 제8차 해외단기연수를 진행하고 있다. 해외연수에는 <인터넷한겨레>,<이데일리>,<머니투데이>,<오마이뉴스>,<프레시안>,<조인스닷컴>,<디지털조선>,<동아닷컴>이 참석하고 있다. 다음은 공동취재단이 보내온 기사다. <편집자 주>

 

민간 상업방송이 공중파의 거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에서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인 '미국의 소리'(Voice Of America. 이하 VOA)는 53개 언어로 전세계에 방송되고 있는, 자신들의 말 그대로 전세계에 전파되는 '미국의 소리'다.

VOA는 미국의 주장대로 사실보도를 주로 하는 공영방송인가, 미국정부의 이익을 대변하고 전세계에 전파하는 말 그대로 '미국의 소리'일까.

워싱턴DC 미 행정부 건물들이 밀집한 국회의사당 근처의 몰 지역에 위치한 VOA를 찾은 첫 느낌은 언론 본연의 역할과 선전도구로서의 언론의 경계에 관한 의문을 떠올리게 했다. VOA는 2차대전이 한창인 1942년 독일국민을 주 청취자로 독일어로 첫 방송되었다.

"우리가 보내는 방송은 좋은 이야기일 수도, 나쁜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오로지 사실만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VOA 방송이 전쟁을 치르고 있는 나치독일에 방송되기 시작할 때의 첫 멘트다. 전쟁의 선전선동 도구로 방송을 개시한 VOA는 그 태생적 한계를 극복했는가? 대답은 NO도 YES도 아니다. 절반쯤은 그러하고 또 절반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VOA 방송은 현장을 찾은 한국언론재단 연수기자단에게 "미국의 소리 방송은 '불편부당하고 객관적인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사실보도는 VOA 헌장에도 명시되어 있으며 기사의 취사선택과정에서도 철저하게 준수되고 있다고 미국의 소리 편집진들은 강조했다.

VOA의 헌장은 "미국과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고(accurate), 균형있게(balanced), 포괄적으로(comprehensive) 전달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더불어 편집권의 독립성도 100% 보장돼 있다고 VOA서 20년간 근무한 한국계 미국인 웹에디터 노시창씨는 말한다.

▲ 한국계 미국인 웹에디터 노시창씨
ⓒ 공동취재단

"미국의 소리 방송이 미국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긴 하지만, 철저하게 사실보도를 한다. 절대로 미국과 행정부에 불리한 사실이라고 해서 보도를 감추지 않는다. 클린턴 대통령 당시의 섹스게이트 또한 생생하게 미국의 소리를 통해서 전달되었다."

VOA 편집진에게 "사실보도만을 한다는 VOA는 그렇다면 논평을 내보내지 않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편집진은 "VOA에서 공식적 논평을 제작하지는 않는다"며 "미국 정부의 입장을 반영한 논평이 날마다 방송되긴 하나, 그것은 편집국 이외의 외부에서 작성되며 그 논평 앞 뒤로 '이 논평은 미국 정부의 견해를 반영한 것'이라는 멘트를 넣는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다음은 미국 정부의 견해를 반영한 논평입니다"라는 소개가 VOA가 그 논평 이외에는 나머지가 사실보도에 충실한 매체라는 충분조건이 되지는 못한다. 청취자들은 주요 사안에 대한 미국 정부의 시각이 담긴 방송을 자국어 전파로 듣게 되며 "미국 정부의 입장을 전파하기 위해서 다른 나라 말로 바꿔서까지 미국의 입장을 전달하는구나"라는 판단을 하게 마련이다.

미국 정부의 이해와 어긋나는 기사도 충실하게 전달한다고 주장하는 VOA이지만, 미국정부의 공식견해를 전세계 53개 국어로 전파하는 현실, 더욱이 100% 미국 정부의 예산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는 실태는 VOA 헌장의 '사실보도' 지침보다 현실적 설득력이 훨씬 크다.

VOA 한국어 방송은 독일, 이탈리아에 이어 세번째로 이뤄졌다. 1942년 2차대전 동맹군에 대한 선전방송으로 시작된 까닭에 그 역사가 깊다. 최근 미국 정부는 VOA에 대한 지원을 늘리면서 한국어방송에 대한 지원을 큰폭으로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부시 대통령이 지난 2월에 북한 핵 문제를 주요하게 다룰 것을 예고한 이후, 이에 대한 후속작업으로 VOA의 한국어 방송에 대한 대대적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그동안 하루 1시간30분씩 방송되던 한국어 방송은 지난 6월 이후 2배로 늘어 하루 3시간씩 방송되고 있다. 예산도 늘어서 VOA 한국어방송을 위한 인터넷 사이트는 최근 한국의 한 인터넷 포털업체에 4만달러를 들여 인터넷광고를 하기로 결정했다.

▲ VOA헌장

ⓒ 공동취재단



전세계 15개국에 기자 100여명

60여년전 라디오 방송국으로 시작한 VOA는 3년전부터 인터넷서비스(www.voanews.com)도 운영하고 있다. 현재 웹사이트 방문자는 주 50만명, 일일 6만~7만명 정도다. VOA는 현재 53개 국어로 방송하고 있으며, 방송된 내용을 인터넷을 통해 텍스트 및 비디오, 오디오 파일 등으로 서비스하고 있다.

VOA는 모스크바와 베이징, 리우데자네이루 등 15개국에 지사가 있으며 프리랜서 기자들을 포함해 약 100명 정도의 기자가 뛰고 있다.

메인 칼럼에는 자체 특파원의 취재기사를 배치하고 오른쪽 칼럼에 각종 통신으로부터 취사선택한 속보들을 올린다. VOA 인터넷은 사회, 정치, 국제뿐만 아니라 문화 예술, 테크놀로지, 건강, 비즈니스, 스포츠 등까지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VOA 인터넷 총책임자인 폴 고블(Paul Gogle)은 전체 예산중 현재 인터넷 사업 비중은 0.5% 수준에 불과하지만 인터넷의 역할이 점점 더 커질 것이기 때문에 그 비중 또한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앞으로는 뉴스를 접하는 방식이 '듣기'(listening)에서 '읽기'(reading)로 전환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래할 유비쿼터스 시대와 함께 라디오의 기능은 쇠퇴하고 인터넷이 그것을 대체할 것이기 때문에 2015년이면 인터넷이 최우선적인 뉴스전달 매체로 부상할 것으로 전망했다.

42년부터 한국어 서비스

한국어 방송은 이탈리아어 등과 함께 설립 첫해에 방송된 5개국어 서비스중 하나이다. 1942년 8월에 첫 전파를 내보냈다. 당시 일본과 전쟁중이었기 때문에 VOA는 한국어팀 내에 일본팀을 따로 두고 한국어와 일본어로 동시에 방송했다.

주로 언론인들이 방송을 들었고, 이들이 독립운동가들에게 정보를 전달하다 발각된 '단파방송 밀청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후 한국 전쟁, 군사혁명 시기에도 사실 전달의 창구역할을 했다.

현재 VOA측의 한국어 방송은 남한과 북한에 대해 서로 다른 전략을 취하고 있다. 북한은 단파라디오를 중심으로, 남한에는 라디오 방송은 중단하고 인터넷으로만 서비스하고 있다. 남한쪽의 청취자수가 미미한 관계로 조만간 한국의 포털 사이트 '다음'(www.daum.net)에 4만달러를 들여 인터넷광고를 게재할 예정이다. 한국어팀에는 현재 18명의 직원이 근무하며 인터넷 전담 인력은 2명이다.

VOA 인터넷 메뉴 가운데 가장 인기있는 코너는 상단의 Special English. 영어를 빨리 익히고자하는 non native speaker들에게 영어학습 1번지이다. 천천히 읽어주는 뉴스기사를 텍스트와 함께 보고 들으면 영어공부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154565

 

 

03.11.18 23:58l최종 업데이트 03.11.19 19:02l

 

 

"VOA" 실체는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73725        

한국민족문화대백화사전

 

미국의소리(voice of america)한국어방송(美國─韓國語放送)

언론·방송단체

1942년 대외 선전활동을 위해 만든 미국의 해외선전방송.

 

분야
언론·방송
유형
단체
성격
한국어방송
설립시기
1942년 6월 13일
설립자
이승만
시대
근대-일제강점기
성격
한국어방송
설립시기
1942년 6월 13일
설립자
이승만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1942년 대외 선전활동을 위해 만든 미국의 해외선전방송.
키워드
영역닫기영역열기설립목적
미일전쟁의 발발을 계기로 일본군의 심리 교란, 한국인의 반일활동 조성, 그리고 미국의 정책과 입장을 선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연원 및 변천
미국의 소리는 제2차 세계대전이 진행 중이던 1942년 2월 BBC 네트워크를 통해 독일어방송을 개시하면서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단파 라디오를 통해 적의 심리를 교란하고 미국의 정책과 입장을 선전하기 위해 만들어진 미국의 소리는 뉴욕, 워싱턴, 샌프란시스코 3곳에 분산 조직되었다.
미국의 소리 한국어방송은 미일전쟁 발발 직후인 1942년 6월 13일 워싱턴DC에서 주미외교위원부 위원장 이승만에 의해 단파라디오로 송출되었다. 미국의 소리 한국어방송이 체계를 갖고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때는 1942년 8월 29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자유의 종은 울린다”라는 한국어방송 프로그램을 방송하면서다. 이는 국치일을 기념하여 재미한족연합위원회가 LA시청 건물에서 개최한 태극기 현기식 행사때 행한 연설을 미국의 소리 샌프란시스코지부가 받아 전 세계로 송출한 것이었다.
미국의 소리 한국어방송에서 활약한 사람은 서울 경신학교 교장 쿤스, 연희전문학교 교수 밀러, 대구계성학교 교장 헨드슨 아담스 등 한국에서 활동했던 미국인들과 이진묵·김하태·민덕순·김지혜·김창수 등 재미한인들이다.
해방 될 때까지 한국어방송은 일본의 후방을 교란하고 독립운동을 전개하도록 한반도를 비롯한 아시아 각지의 한국인들을 고무시켰다. 국내에서는 일제의 감시망을 피해 미국의 소리 한국어방송을 청취하였고 이 일로 경성방송국(JODK)의 한국인 직원들이 일제에 의해 체포되는 ‘단파사건’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한국어방송은 제2차 대전 종결 직후 1945년 12월 전시정보국(OWI)가 폐지되자 존폐의 논란이 일다가 미국 국무부의 국제방송처(IBD)로 이전, 운영되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의의와 평가
일제강점시기 해외 및 국내 한인들에게 일제 패망과 독립의 희망을 불어 일으킨 방송이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참고문헌
  • 『자주독립과 통일정부 수립을 위한 재미한인의 꿈과 도전(홍선표,연세대출판부, 2011)

  • 단파방송 연락운동 (유병은, KBS문화사업단, 1991)

  • 『떠도는 영혼의 노래-민족통일의 꿈을 안고』(최봉윤,동광출판사,1986)

  • 「해방 후 ‘미국의 소리 한국어방송’에 관한 연구(1945-1950)」(장영민, 『한국근현대사연구』50집,2009)

  • 「태평양 전시하의 해외독립운동 방송체제」(박기성,『방송학연구』5,한국방송학회,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