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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 기관들은 어떤 수법으로 정보를 은폐하려 드는가?

천사요정 2018. 9. 7. 23:14
정보공개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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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수준에서나마 정보공개는 저절로 이루어진 건 아니다. 시민운동단체들을 비롯한 시민들의 부단한 노력과 투쟁이 있었다. 2000년대 이후에 벌어진 주요 노력과 투쟁들을 살펴보자. 2000년 9월 1일, 서울고법 특별4부(부장 김목민)는 "판공비 관련 정보를 공개하라"며 '평화와 참여로 가는 인천연대'가 인천 지역 6개 구청장을 상대로 낸 정보공개 거부 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원심대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들이 특수 활동비와 업무 추진비 등 판공비에 대해 사생활 및 영업 비밀 침해 등을 이유로 공개를 거부하는 것은 주민들의 알 권리를 제한하는 행위"라고 밝혔다.각주1)


2000년 10월 30일, 참여연대와 서울대학교 공익법학회는 2000년 7~8월 서울과 과천에 소재한 30개 중앙 행정기관을 상대로 주요 정보공개를 청구하고 현장을 직접 방문해 친절도와 민원실 설치 여부 등을 조사한 결과를 밝혔다.


평가 항목은

△ 민원실 설치 여부, 정보공개 접수창구의 개설 여부(10점),

△ 정보공개 담당 직원(10점),

△ 정보공개 청구서의 유무 및 비치 여부(10점),

△ 정보공개 편람의 비치 여부(10점),

△ 주요 문서 목록 및 보존 문서 기록 대장의 작성 비치 여부,

△ 컴퓨터 단말기의 설치 여부(10점),

△ 정보공개 처리 대장의 작 성 유무(5점),

△ 친절도(5점),

△ 목록의 질(20점)

등 9개 항목이었으며 90점을 100점 만점으로 환산해 점수를 부여했다


조사 결과 1위는 100점 만점에 89점을 기록한 환경부가 차지했고 이어 해양수산부(81점), 문화관광부(73점), 기획 예산처 · 통일부(각 70점) 등의 순이었다.


국세청은 16.7점으로 30개 기관 중 최하위를 기록했고 8개(27퍼센트)기관이 40점 이하의 낙제 점수를 받았으며 절반 이상인 16개 기관이 50점에 미달했다.


참여연대는 "일선 공무원과 공직 사회, 행정조직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행정 편의주의적인 타성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며 "각 기관은 정보공개법상 의무 준수 사항인 각종 제도 운영 사항을 철저히 이행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각주2


2000년 11월 3일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재판장 조병현 부장판사)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회장 송두환)이 '사면권의 정치적 남용을 조사하겠다'며 법무부를 상대로 낸 정보공개 청구 거부 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법무부는 특별사면 관련 정보를 공개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공개 판결이 내려진 정보는 1993년 이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의 뇌물, 알선 수재, 불법체포 · 감금, 조세 포탈죄 등에 대한 특별사면자 명단과 법무장관의 사면 실시 건의서, 국무회의 안건 자료 등이다. 또 한보 사건 등으로 복역했던 김현철, 황병태, 김우석 등에 관한 자세한 사면 정보도 포함되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법무부는 대통령 사면권 행사가 고도의 정치 결단적 국정 행위로서 사법 심사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하나, 이와는 별개로 '사면권이 정치적으로 남용되고 부정부패범 등에 행사되고 있다'는 여론도 있으므로 비판과 자유로운 의사 형성을 위해서는 정보공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특히 "김현철씨 등은 권력형 부정 비리 사건 관련자로서, 범죄의 중대성과 반사회성에 비춰볼 때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이들에 대한 정보도 공개해야 한다"고 밝혔다.각주3)

1998년 당시 서울시장인 고건 전 총리의 판공비(업무 추진비) 사용 내역과 지출 증빙서류에 대해 정보공개 청구를 했다가 거절당한 참여연대가 2002년 서울시를 상대로 낸 행정소송이 대법원 판결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이 났다. 승소한 내용은 4만 6,000여 페이지의 판공비 내역서 사본 제출이었고, 업무 추진비를 사용했던 장소의 상호명과 참석한 사람의 공개는 비공개 판결을 받은 것 등이다. 이 판결은 그동안 시민단체가 판공비 지출 내역 등을 모니터 하려면 해당 기관에 찾아가 수일에 걸쳐 일일이 그 내용을 옮겨 적어야 했던 비합리적인 불편과 부담을 해결한 성공 사례로 평가받았다.각주4)

2005년 참여연대는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감기 환자에게 항생제 처방을 과다하게 한 병의원에 대한 정보공개 청구를 했다가 거부당하자 행정소송을 해 원고 승소 판결을 받았다.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2006년 2월 9일 급성상기도감염(감기) 항생제 처방률이 과다한 병의원을 공개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요양기관 9,086개 소(의원 8,716곳, 병원 167곳, 종합병원 120곳, 종합전문 38곳)를 상대로 처방률 변화 추이를 분석했다. 공개 이후 처방률은 2005년 대비 63.8퍼센트에서 51.4퍼센트로 12.4퍼센트가 감소했고, 항생제 처방률 감소로 보험 재정은 1년 기준 약 220억 원으로 추정된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이 사례를 바탕으로 보건복지부는 주사제 처방률과 제왕절개 분만율 공개 이후의 변화 추이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정보공개 청구가 국가의 재정과 국민의 건강까지 되돌아보게 만든 또 하나의 성공 사례다.각주5)

2007년 1월 30일 광주 수완택지 주민이 한국토지공사를 상대로 낸 '수완지구 조성 원가 공개' 거부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이끌어냈다. 2007년 2월 15일 수원지법 행정2부는 경기 화성시 봉담 택지개발지구 내의 한 아파트 입주자협의회 운영위원이 대한주택공사를 상대로 낸 정보공개 청구 거부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운영위원이 낸 정보공개 청구는 아파트의 토지비, 건축비 등 분양 원가 산출 내역과 택지 보상 내역, 건설 원가 등의 자료다. 이와 같은 판례 때문에 한국토지공사나 대한주택공사는 분양 원가나 조성 원가 공개를 무조건 반대할 수 없게 되었다.각주6)

그러나 공공 기관들은 법정 투쟁을 대법원까지 끌고 가는 등 '끝까지 버티기' 수법으로 주민들을 골탕먹이곤 했다. 2007년 6월 경기 양주시 덕정 주공아파트 주민들은 대한주택공사를 상대로 1년 반에 걸친 법정 싸움을 벌이고서야 어렵게 임대아파트 건설 원가 산출 내역을 열람할 수 있었다. 이에 『한겨레』 사설은 "현행 정보공개제도의 한계를 보여주는 한 사례다. 주공 임대아파트를 분양으로 전환할 때, 건설 원가 산출 내역은 분양 값이 적정한지를 따지는 데 매우 중요한 근거 자료다. 주민들이 정보공개를 요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보공개를 다루는 태도는 다른 공공 기관들도 별로 다르지 않다. 환경부는 춘천의 미군기지 캠프 페이지의 환경오염 조사 결과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라는 춘천 시민 유 아무개 씨의 청구를, 국회의 비준 동의를 받은 적이 없는 한-미 주둔군지위협정 부속서를 내세워 거부하고 있다. 2심 법원도 정보공개를 거부할 이유가 없다고 판결했지만, 아직도 환경부는 요지부동이다. 공공 기관들은 정보공개를 청구하는 이들이 일부러 돈과 시간을 들여 소송을 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악용하곤 한다."
「뭐가 켕겨 그렇게 정보공개 꺼리나(사설)」, 『한겨레』, 2007년 6월 23일.

2008년 12월, 17대 국회의원들이 지난 2004~2006년까지 3년 동안 행한 해외 방문 외교와 관련된 자료들을 분석하기 위해 국회를 상대로 정보공개 청구 소송을 벌이던 성재호 KBS 기자는 "국민의 돈으로 운영되는 국회가 국민이 공개하라는 법을 무시하더니, 국민의 돈으로 변호사까지 사서 정보공개를 2년이 다 되도록 막고 있습니다. 정말 코미디 같은 일입니다"라고 개탄했다. 그는 "외국 언론사의 경우 (정보공개를) 거부당하면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아직까지 한국에선 회사에서 지원해 주는 경우가 드물어 나 같은 경우에도 사적으로 돈을 들여가며 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각주7)

2013년 3월 대법원 3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4대 강 사업의 원가 정보를 공개하라"며 서울지방국토관리청과 수자원공사를 상대로 낸 정보공개 거부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해당 자료가 비공개 정보에 해당하지 않고 국민의 알 권리 충족, 사업 추진의 객관성과 투명성 확보를 위해 공개하는 게 정보공개법의 취지에 부합한다고 본 원심은 정당하다"고 밝혔다.각주8)

2013년 4월 서울행정법원 행정2부(부장판사 윤인성)는 이 모 씨가 국가보훈처장을 상대로 "독립 유공 서훈 심의 위원회의 회의록을 공개해달라"며 낸 행정정보공개 청구 거부 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이 씨는 2011년 12월 자신의 친척 5명이 독립운동자라고 주장하며 이들에 대한 포상 신청을 냈으나 국가보훈처는 "적극적인 독립운동에 참여한 사실이 불분명하다"며 불인정 결정을 내렸다. 이에 이 씨는 2012년 8월 "불인정 결정을 내린 이유를 알고 싶다"며 국가보훈처에 심사 위원회의 회의록 공개를 요구했다. 그러나 정보공개법상의 이유로 공개를 거부당하자 법원에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독립 유공자 관련 신청을 한 당사자에게는 어떠한 독립운동 공적이 인정, 불인정 됐는지 여부가 중대한 관심사"라며 "회의록을 공개함으로써 국민의 알 권리를 실효적으로 보장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심의 · 의결 과정에서 누가 어떤 발언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외부에 공개되지 않도록 보장할 필요성이 있다"며 "회의록 중 발언 내용 외에 참석자 명단, 발언자 이름,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에 대한 사항은 비공개한다"고 덧붙였다.각주9)



강준만 집필자 소개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탁월한 인물 비평과 정교한 한국학 연구로 우리사회에 의미있는 반향을 일으켜온 대한민국 대표 지식인. 대표 저서로는 <강남 좌파>, <한국 현대사 산..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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