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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블랙리스트’ 행정처 PC 조사 시작

천사요정 2017. 11. 30. 23:38

ㆍ대법 추가조사위, 현 기획제1심의관 사용 PC 자료부터 확보

ㆍ“배임 의심 땐 동의 없이 내용 열람해도 정당” 기존 판결 근거

대법원이 판사들의 성향과 동향을 파악했다는 이른바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대법원 추가조사위원회가 블랙리스트 파일이 들어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컴퓨터 내 저장장치를 복사하는 등 추가조사를 위한 첫 단계에 들어갔다

추가조사위는 대법원이 보관 중인 이 복사본을 넘겨받아 분석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대법원은 30일 “추가조사위가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법원행정처 전·현 기획제1심의관이 이용하던 3개 컴퓨터 내 총 6개의 저장장치 중 현 기획제1심의관이 이용하고 있는 컴퓨터 내 2개의 저장장치에 관하여만 이미징 작업을 했다”고 밝혔다. 이미징은 원본 자료의 무결성을 보장하면서 복사하는 것으로 포렌식(정밀분석) 조사의 첫 단계다. 대법원은 이어 “이 전 상임위원과 김모 전 기획제1심의관이 이용한 저장장치, 이미징한 2개의 저장장치는 함께 (대법원에) 보관되고 있다”며 “향후 절차는 추가조사위와 논의를 거쳐 정할 예정”이라고 했다.

지난 4월 대법원 진상조사위원회가 확보한 진술 내용에 따르면 이 전 상임위원은 지난 2월 행정처 심의관에 발령이 난 이모 판사에게 “행정처가 관리하는 판사 동향 리스트를 관리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이 판사가 발령 난 자리의 전임자가 김 전 심의관이었기 때문에 블랙리스트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그의 컴퓨터에 들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추가조사위가 이 전 상임위원과 김 전 심의관의 컴퓨터에 대해서도 이미징 작업을 해야 추가조사가 제대로 진행될 수 있다.

추가조사위는 컴퓨터 조사에 앞서 법적 근거가 있는지 상세히 검토하고 이 전 상임위원·김 전 심의관의 의견을 들은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선 추가조사위가 이 전 상임위원과 김 전 심의관의 동의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컴퓨터를 조사하는 것은 사생활 침해 등 위법 소지가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하지만 법원 안팎에선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의견도 많다.

회사에 손해를 끼칠 수 있는 배임행위가 의심되는 직원의 업무용 컴퓨터에서 비밀장치를 풀고 관련 정보를 검색해 내용을 알아냈다가 형법 제316조 비밀침해죄로 기소된 회사 대표이사에 대해 정당행위라며 무죄를 선고한 판결도 있다. 1심에선 유죄로 보고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지만 항소심 재판부가 무죄로 바꿨고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업무용 컴퓨터라고 하더라도 정확한 사유 없이 무분별하게 열람하는 것은 위법 소지가 있을 수 있지만, 불법행위가 구체적·합리적으로 의심되는 상황에서 컴퓨터 내용을 전부 열람한 것이 아니라 의심이 가는 부분에만 한정해 열람했다면 정당행위이기 때문에 위법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취지다. 특히 추가조사를 요구했던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이 전 상임위원 등이 참관한 상태에서 파일명을 보고 의심되는 파일만 제한적으로 열람하는 방법을 제안하기도 했다.

서울지역 지방법원의 한 판사는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해 국회 국정조사와 검찰 수사 이야기까지 나왔지만 법원 내에서 해결하기로 해 추가조사위가 꾸려진 것 아니냐”며 “사적인 메모가 아니라 공무상 문건을 보려는 취지이기 때문에 해당 판사들의 동의 없이도 의심되는 업무 컴퓨터를 검증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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