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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교수-Q. 문 대통령 만난다면 해주고 싶은 조언은

천사요정 2019. 1. 14. 10:42

“자린고비 경제 그만…복지재정 확 늘려라”

세계적 경제학자인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경제의 목표는 다 같이 행복하게 잘 살자는 것으로, 이제 한국도 ‘좋은 사회란 무엇인가’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를 모두 모여 고민할 때”라며 “‘자린고비 경제학’을 넘어 복지제도 확대로 사회안전망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채영 사진작가

세계적 경제학자인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경제의 목표는 다 같이 행복하게 잘 살자는 것으로, 이제 한국도 ‘좋은 사회란 무엇인가’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를 모두 모여 고민할 때”라며 “‘자린고비 경제학’을 넘어 복지제도 확대로 사회안전망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채영 사진작가



 

어느 한 나라가 독자적으로 옴짝거리기 힘든 세계화된 경제질서다. 그로 인해 팽배해지는 불안을 다수의 경제학자는 자본주의의 위기라고 진단한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사진)에게 대담을 요청했다. 미처 응답을 받기 전, 장 교수는 한국 언론의 특파원들과 인터뷰를 하게 됐고, 기사화된 그의 ‘국가비상사태’ 발언은 논란을 부르기도 했다.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 속 한국 경제를 진단하려던 애초의 계획을 한국 자본주의의 위기를 파고드는 방향으로 조정했다. 대담은 지난 4일 장 교수의 케임브리지대 연구실에서 진행됐다. 

안희경(이하 안) = 국가비상사태라고 말했는데, 긴급 재난상태인가요.

장하준(이하 장) = 재앙이 닥쳤다는 의미보다 지금 조치를 하지 않으면 큰일이 닥칠 수 있다는 의미의 비상사태죠. 언론은 무엇이든 물을 수 있고, 편집권도 갖고 있다고는 생각해요. 다만 야당이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읽어내고, 여당에서도 자세히 읽어보면 의미를 알 텐데도 곡해하는 점이 좀 서글펐어요. (비상사태 얘기는) 일부에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이상 성장하는데 걱정할 일이냐고 하지만 OECD에서 한국은 중하위권밖에 안되거든요. 36개 국가 중 1인당 소득 기준으로 23등입니다.

안 = 그래도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10위권이잖아요. 

장 = 경제 수준을 이야기하려면 1인당 소득을 봐야죠. 덴마크의 1인당 소득은 우리의 2배지만 인구가 500만명이기에 경제 규모는 5분의 1밖에 안됩니다. 성장률을 언급할 때는 인구증가율을 고려해야죠. 2010년 이후 독일은 총성장률로만 보면 연평균 1.8%, 우리는 3%이니까 우리가 잘하는 것 같지만 1인당 소득성장률로 하면, 우리는 인구증가율 0.5%로 2.5%, 독일은 인구증가율 마이너스 0.2%이기 때문에 2%입니다. 2%와 2.5%는 큰 차이가 아니지만, 성장만이 우리의 목표는 아니잖아요. 더 큰 문제는 지금 우리 상황이 얼마나 안 좋은가를 얘기하는 사회적인 지표입니다. 단적으로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예요. 1995년까지만 해도 자살률이 OECD 평균 이하였는데 지금은 평균의 3배죠. 출산율은 세계 최저이고요. 

안 = 사회적인 지표가 나빠진 이유가 경제 때문인가요. 

장 = 그럼요. 복지가 안돼 있어 그렇습니다. 옛날엔 경제성장 속도가 빨라 일자리도 많이 생기고, 봉제공장이 문 닫으면 전자공장 가서 일하는데 4~5주 재교육받으면 됐어요. 지금은 필요한 기술이 고급화돼 철강·조선업에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이 반도체 같은 곳으로 옮기고 싶어도 금방 갈 수 없습니다. 실업이 점점 더 무서워지고, 제대로 된 직장에서 밀려나면 갈 데가 없기 때문에 치킨집을 하는 거죠. 이 모두를 전체적인 패키지로 봐야 합니다. 

안 = 그래서 국가비상사태라고까지 진단한

건가요. 

장 = 비상사태라는 발언을 하게 된 것은 최근 중국이 무섭게 추격해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도체 빼고는 다 중국이 잠식하잖아요. 반도체도 중국이 국책산업으로 밀고 있어서 시간문제예요. 인공지능, 나노기술에선 우리보다 훨씬 앞서 있고, 전체적인 경제 수준보다 첨단기술이 발달해 있죠. 우리는 답보상태이기에 지금 틀을 완전히 다시 짜지 않으면 5년, 10년 후에는 정말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어느 한 정부가, 한두 가지 잘못해서 이 상황을 맞은 게 아닙니다. 우리 경제가 신자유주의적으로 구조화돼서 그래요. 그 때문에 투자도 떨어지고, 고용도 불안해지고, 국민들에게 앞날이 없는 나라가 된 지 벌써 20년입니다. 이를 보살피지 않고 또 5년이 흐르면 돌아올 수 없는 길에 들어갑니다.

■ 투자·고용·복지 새 틀 짜지 않으면…5년 뒤 한국, 돌이킬 수 없는 길 갈 것

안 = 그 본격적인 시작이 자유무역협정(FTA)인가요, 아니면 그 전인가요.

장 = 1980년대 말부터 한국 엘리트들 가운데 미국 모델을 바라는 사람들이 많이 나왔어요. 기획원 관료들이 ‘경제계획을 없애야 한다’는 얘기를 해요. 자기 부처의 의무가 경제계획인데 경제계획은 나쁘다는 거죠. 거기에 문민정부가 들어서니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신자유주의체제를 추진합니다. OECD도 가입하고, 기획원도 폐기하고, 경제5개년계획도 없애고, 산업정책 거의 폐기하고. 그런데 묘하게도 소위 운동권 출신들이 동조했어요. ‘산업정책은 군부독재가 하던 파쇼정책’이라는 식으로. OECD 가입 조건 중 하나로 자본시장을 상당히 개방하고, 해고를 쉽게 하는 의제도 들여왔어요. 그때 특히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주주자본주의 논리를 들여와 정부가 기업을 간섭하면 안된다는 주장을 했죠. 그 과정에서 외환위기가 터집니다. <국가부도의 날>이라는 영화에서 재경부 차관으로 나오는 사람을 통해 잘 그렸던데, ‘해고도 쉽게 하고, 구조조정도 쉽게 하는 시장주의를 퍼뜨려야 하는데 노동계, 시민단체에서 반대해 못하고 있다. 지금이 기회다’라는 거죠. 뒷얘기지만 국제통화기금(IMF)이 깜짝 놀랐답니다, 저항할 줄 알았는데…. 

안 = 투항을 한 거죠. 

장 = 예. 신자유주의체제가 외환위기 이후 확립되면서 그 이후 정부들이 그 질서로 간 거예요. 물론 차이는 있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완전히 극단적으로 나갔고, 노무현 정부는 FTA 하고 동북아 금융허브를 한다면서 김대중 정부보다 더 우파적으로 나갔습니다. 그래도 이 두 정부는 빌 클린턴이나 영국의 토니 블레어, 나중에 버락 오바마가 말한 제3의 길하고 비슷한 걸 합니다. 즉 경제를 시장에 맡기는 게 좋은데, 그러면 희생자들이 나오니까 그들을 도와줘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골수 신자유주의는 ‘희생자 봐줄 필요 없다, 그들이 못나서 그렇다’ 하는 거고. 규제를 완화하고 경제를 대자본에 맡겨놓는 것은 똑같습니다. 

안 = 그로 인해 지금 미국, 영국, 프랑스 등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정치적 반동이잖아요. 보수든 리버럴이든 똑같은 엘리트들이라고 거부하고, 미국은 극우보수에 표를 주고, 프랑스는 무산자의 저항으로 노란 조끼 입고 나서고요. 

혁신 10개 도전한다면 
한두개만 크게 맞으면 돼
실패할 위험 있는 것 해야 
진정한 혁신 가능해져
 

지금 문재인 정부에서 
확실한 좌파정책 안 하면
‘반엘리트 반동’ 나타날 것
 

장 = 세계적인 추세죠. 한국은 특수성이 있어 아직 그렇게는 안 갔지만 20년 동안 신자유주의가 왔다 갔다 하면서 그쪽으로 밀려가고 있어요. 결국 반엘리트, 반동이 나옵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확실한 좌파정책을 하지 않으면요. 

안 = FTA를 하면 국가는 축소되잖아요. 지금 다시 FTA를 잘하겠다 하고 응원받고, 예전 FTA에 반대하던 사람들도 FTA가 없어지면 어떡하나 걱정합니다. 

장 = 신자유주의는 굉장히 반민주적인 체제예요. FTA나 투자협정을 맺어서 각국 정부가 하는 일을 국제조약으로 제약하고, 중앙은행이 됐건 규제기구가 됐건 많은 기관을 정치적으로 독립시키려고 해요. 우리는 옛날에 독재권력이 너무 개입했으니까 결정기관의 정치적 독립이란 말이 좋게 들리지만, 사실은 민주주의를 무력화시키겠다는 겁니다. 물론 자유무역이 수준이 비슷한 나라 사이에선 서로 좋은 경우가 있지만, 수준이 다른 나라 사이에서는 선진국이 이익이죠. 후진국은 새 산업을 개발할 수가 없어서요. 노무현 정권 때 미국과 FTA 한다고 했을 때, 저는 ‘우리가 지금 미국 수준이 되는 나라냐, 그렇게 생각 안 한다’면서 반대했죠. 

안 = 어떤 정부든지 기업의 이윤 앞에 무력해지네요. 

장 = 호주는 미국하고 FTA 할 때 그 조항을 빼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제도(ISDS)는 고사하고 관세만으로도 불리합니다. 선진국들은 평균 공산물 관세가 3%이고 한국은 7~8%예요. 우리는 많이 내주고 그쪽한테는 조금 받는 거죠. FTA 없을 때도 수출 잘했어요.

안 = 그럼 지금 FTA 폐기 쪽으로 나가야 한다는 건가요. 

장 = 저는 그 방향이 맞다고 생각은 하죠. 하지만 특히 미국하고는 국방이 얽혀있으니 이제 와서 안 하겠다는 건 어렵죠. 그러면 하지 않아야 할 족쇄를 스스로 채워놨으니까 다음 단계에서는 뭘 하면 좀 낫겠냐 그런 생각을 해야 합니다. 

안 = 당장 뭘 해야 되죠. 

장 = 같이 앉아 모색해야죠. 다시 산업정책을 정립하는 게 중요합니다. 미국은 자유방임주의, 개인의 기업가 정신으로 성공했다고 알려졌지만, 현재 미국이 앞선 분야 대부분은 1950년대부터 정부가 국방연구·보건연구 명목으로 돈을 쏟아부은 곳입니다. 컴퓨터, 인터넷, GPS, 터치스크린 다 미 국무부에서 개발했고, 반도체는 미 해군에서 개발했어요. 아이폰 기술의 99%가 국방연구에서 나온 겁니다. 그 기초기술을 기업이 가져다 발전시킨 거죠. 미 정부의 엄청난 개입이 없었으면 실리콘밸리도 생길 수 없었죠. 미국 제약산업도 연구자금의 30%가 정부에서 나옵니다. 

안 = 무슨 명분인 거죠. 

장 = 보건연구죠. 미 전역에 있는 국립보건원에서 세금으로 연구하면 제약회사들이 그냥 가져다 상용화시켜요. 미국 정부처럼 기초연구에 투자하고 마음껏 쓰도록 간접적으로 보조하는 방식이 있고, 독일 같은 경우도 있습니다. 중앙정부의 산업정책은 많지 않지만, 지방정부들이 우리의 산업은행 같은 금융기관을 갖고 있어요. 지방정부하고 지역은행, 지역대학, 그리고 프라운호퍼라고 반관반민 단체인데 연구기관으로 정부에서 기본적 돈은 주고 나머지는 기업 연구용역 해주며 운영하도록 하는 기관들 몇 십개가 있습니다. 

안 = 한국 정부도 R&D(연구·개발) 지원해 주잖아요. 다만 지원대상이 분산돼 있고, 한 해 평가를 해 다음 지원 여부를 결정하니 혁신보다는 안정적인 방향이지만…. 

장 = 혁신과정을 잘못 이해하는 겁니다. 혁신은 사기업이 하든, 과학자나 정부가 하든, 열 개 해서 한두 개 크게 맞으면 돼요. 정말 실패할 위험이 있는 것을 해야 진정한 혁신이 나오지, 안전한 것만 하면 그게 무슨 혁신입니까. 

안 = 그럼 예산을 편파적으로 쓴다는 비판도 나오고, 과용한다는 지적도 있으니 골고루 주는 거죠.

장 = 개념을 바꿔야죠. 컴퓨터도 유명한 얘기가 있잖아요. 1958년인가 토머스 왓슨 주니어 IBM 대표가 국회 청문회에서 앞으로 예상되는 컴퓨터 판매 대수가 5대라고 했어요. 그때는 컴퓨터를 살 수 있는 곳이 미 육군, 해군, 공군, 국무부 이런 데밖에 없기 때문에 그냥 소련과 체제 경쟁에서 군사적 우위를 점유하기 위해서 했던 거죠. 나중에 그 기술이 세상을 바꿨지만, 그때 이윤만 생각했으면 문 닫았어야 할 산업이었죠. 

사회안전망이 있어야 
과감하게 직업도 바꿔보지
그러니 공무원만 되려고 해 
핀란드·스웨덴 같은 곳은
구조조정에도 저항 별로 없어
 

안 = 결국 철학이네요. 가치를 어디다 두느냐. 수익을 높일 산업을 키울 것이냐 아니면 공공성을 불러올 것이냐. 

장 = 경제는 수단이지 목표가 아니라고 생각하니까요. 

안 = 목표는 뭔데요. 

장 = 목표는 다 같이 행복하게 잘사는 거죠. 자살 덜 하고, 서로 반목하지 않고, 직장 안정되고, 복지제도도 잘돼 있어 잘리면 어쩌나 걱정 안 해도 되는…, 그런 의미에서 경제는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그 수단으로 쓰는 경제조차도 여러 목표를 갖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사모펀드 하는 일이 뭡니까? 회사 사서 이윤 확 올린 다음 파는 거죠. (한국의) 제일은행이 좋은 예이죠. 뉴브리지캐피털이 사서 지점들 닫고, 사람들 자르고, 일 많이 시켜 이윤 왕창 올리고. 그 과정에서 직원들은 뼈 빠지게 고생하고. 그렇게 해서 이윤을 많이 냈기에 스탠다드차타드은행한테 되판 겁니다. 그런 식으로 이윤 내는 경제도 있고, 독일같이 10년, 20년을 보고 이윤을 내는 경제도 있죠. 한때 독일에는 기업이 같은 지역에서 7년인가 10년 이상 사업하면서 종업원을 안 자르면 상속세 면제해주는 법도 있었어요. 그렇게 기업이 지역사회에 초석이 되고 그 사회와 얽혀 같이 살게 하는 것을 목표로 삼기도 합니다.

안 = 답은 우리 테두리 안에 있는 사람들의 삶을 봐야 하지 않을까요.

장 = 옛날엔 밥 먹고 사는 게 중요하니까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성장을 더 하자’라고 생각했죠. 정당화할 수는 없지만, 이해할 수는 있죠. 지금은 그런 단계가 아닙니다. 국민소득 3만달러 나라에서 ‘좋은 사회를 만드는 게 뭔가’를 생각해 봐야죠. FTA 많이 했다고 FTA 강국이다, 성장률 조금 높다고 우리나라가 잘한다, 이러면 주객이 전도된 사고입니다. 과연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하느냐’에 대해 제대로 얘기해본 적이 있는지 묻고 싶어요. 

안 = 그 점에서도 논의되는 문제가 불평등인데요. 저는 최저임금제도를 사회안전망으로 봤습니다. 대학교육을 받은 중년들은 사실 주변에 최저임금 받는 사람들이 없어요. 그런데 그들이 발언권을 갖고 최저임금에 왈가왈부했습니다. 정작 노동하는 당사자는 목소리를 갖지 못하고요.

장 = 그렇죠. 저는 최저임금제에 찬성하는데요. 우리나라에서 최저임금제가 문제가 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자영업자 비율이 엄청 높다는 겁니다. 

안 = 그래도 좀 줄어서 25%죠. 

장 = 미국 이런 데는 6%밖에 안됩니다. 자본가가 될 수 없는 사람들이 사회안전망이 없기 때문에 치킨집 사장이 된 거란 말입니다. 자본가가 될 수 없는 사람들을 자본가로 만들어놓고 너희도 자본가와 똑같이 행동하라니까 불만이 나오죠. 또 한 시간에 1000원 2000원 더 받는 게 중요한 사람들은 목소리가 없고요. 위쪽에 있는 사람들은 1000원, 2000원 더 받으려고 뭘 그러냐 그러든지 치킨집 사장이 1000원 더 줘야지 합니다. 그런데 1000원을 더 주면 사업이 위험할 수도 있거든요. 목소리가 있는 사람들이 그 현실과 괴리돼 있기에 잘 보지를 못하는 거죠. 노동권, 최저임금제, 그다음에 복지제도 이런 것들이 사회안전망입니다. 1950~1960년대 스웨덴 사민당 구호 중 하나가 영어로 ‘Secure people dare(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대담할 수 있다)’였어요. 뭔가 안전망이 있어야 과감하게 새로운 선택도 하고, 직업도 바꿔보는데 우리나라엔 지금 그게 없어요. 다들 공무원 되려고 하는 게 뭐예요, 안전 찾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진짜 안전망을 만들어줘야죠. 핀란드, 스웨덴 같은 데는 실업급여가 최종 월급의 60~70%입니다. 2년 동안 받을 수 있고, 재교육해주고 직업 알선하고, 우리나라 입시 코디 붙듯이 해준다고요. 그러니 이들은 구조조정이나 기술혁신에 저항이 별로 없어요. 미국 같은 데는 90%가 노조 가입이 안돼 있으니까. 

안 = 우리도 노조 가입률 10%잖아요. 

장 = 우리랑 미국이랑 OECD에서 최저죠. 그렇지만 두 나라 다 조직된 10%는 직장을 잃으면 세상이 끝나니, 목숨을 걸고 싸우죠. 

삼성 이건희 회장 사망하면 
상속세 내고 지분율 낮아져
만약 투기세력에 넘어가면 
국민들이 10년·20년 고생

안 = 대기업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경제 현실인데요. 이전 인터뷰에서 ‘삼성 이건희 회장이 사망하면 큰일 난다’고 한 말이 강도가 셌어요. 대기업 지배구도가 이끄는 산업 내 불평등 문제가 당장 이변이 일어나면 위기로 갈 수 있다는 뜻으로 저는 이해하긴 했습니다. 그럼에도 해석의 여지가 너무 넓어요.

장 = 이건희 회장이 사망하면 상속세를 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지분율이 떨어지면 그룹구조가 와해될 수 있어요. 그냥 자본시장에 맡겨놓으면 뉴브리지가 제일은행 해먹은 식으로 날아갈 확률이 높다는 거죠. 그렇게 되면 국민 경제에 안 좋겠다는 생각에, 주주자본주의 1주 1표 논리를 따르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자고 차등의결권제를 내놓으며 예를 든 거죠. 너무 답답하니까 차라리 국유화를 해라, 우리 국민들의 피땀을 왜 남 주냐 하는 거죠, ‘외국 투기자본에 넘겨주느니 삼성특별법이라도 만들어 아예 다른 방식으로 관리하자’고 한 거죠. 이씨 집안, 정씨 집안을 봐주자는 얘기가 아닌데 양쪽에서 곡해합니다. 친재벌론자들은 사유재산을 침해하려고 하니 불순분자라 하고, 재벌개혁론자들은 주주자본주의 논리에 어긋나니 친재벌론자라고 하고. 소액주주운동이 미국 같은 데서는 펀드매니저들이 하는 운동인데, 한국에서는 사회운동으로 승화시켜 중요한 일을 했죠. 그런데 이 방식이 성공하다 보니 재벌을 개혁하는 유일한 논리처럼 됐습니다. 저는 그게 아니라는 거죠. 스웨덴 제일의 재벌인 발렌베리 집안이 통제권을 갖는 기업의 시가총액이 스웨덴 전체 상장기업 시가총액의 반입니다. 한 나라 기업의 반을 한 가문이 가진 거예요. 차등의결권 때문에 가능하죠. 미국도 구글, 페이스북 이런 데서 차등의결권을 쓰거든요. 저커버그가 가진 주식은 28%이지만 차등의결권이 있어 의결권을 기준으로 하면 50% 이상을 그가 통제합니다. 많은 나라에서 씁니다. 다시 스웨덴으로 돌아가서, 한 가문이 6대째 주요 기업의 절반을 통제하는데 그 면에서 보면 그렇게 불공평한 사회가 어딨어요. 그러나 스웨덴은 노동권을 강화하고 복지국가를 이뤄 세계에서 제일 평등한 나라 중 하나를 만들었습니다. 삼성, 현대 그 기업들이 투기자본에 넘어가면 국민들이 10년, 20년 고생합니다. 

■ 경제 정책의 목표는 ‘다 같이 행복’…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지 이야기할 때


경제학자 장하준 교수(왼쪽)가 재미 저널리스트 안희경씨와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 교수는 “한국은 다시 산업정책을 정립하고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밝혔다.  황채영 사진작가

경제학자 장하준 교수(왼쪽)가 재미 저널리스트 안희경씨와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 교수는 “한국은 다시 산업정책을 정립하고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밝혔다. 황채영 사진작가


안 =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대기업 중심 경제는 여러 면에서 불평등 문제의 핵심이 되고 있습니다. 어떤 대안을 갖고 있는지요. 

장 = ‘재벌 때문에 불평등이 나온다’, 그건 문제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상위 1%는 상대적으로 다른 나라들보다 잘살지 않는데 상위 10%는 잘사는 편이죠. 문제는 상위 10%지, 상위 1%가 아니거든요. 중소기업이 착취당한다고 하지만 그 중소기업주들은 노동자 착취 안 하나요? 재벌이 권력을 남용하기 때문에 당연히 규제해야 하는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겁니다. 기본적으로 누진세로 많이 걷어 복지제도를 확대해 소득재분배를 확실히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소득재분배를 하기 전 불평등도가 프랑스, 독일, 스웨덴 이런 나라도 미국과 비슷해요. 자기가 번 돈 세금 내고 정부 복지수당 받기 전 소득만 갖고 계산하면요.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세금 내고 복지 지급하기 전, 불평등도로 보면 제일 평등한 나라예요. 그런데 복지는 OECD에서 멕시코 다음으로 꼴찌잖아요. 복지 지출도 재분배 성향이 높지 않아서, 재분배를 하고 나면 평등도가 OECD 평균 이하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규제를 통해 불평등을 낮춘 거예요. 

안 = 어떤 규제를 말하나요. 

장 = 소농보호, 골목상권보호, 중소기업 고유업종, 그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굉장한 영향이 있습니다. 그런 보호가 있어서 시장소득만 보면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평등합니다. 복지는 OECD 평균 지출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21%인데 한국은 10% 좀 넘어요. 하다 못해 신자유주의 모범생이라는 칠레보다도 작습니다. 미국이 복지 안 한다고 하지만 미국의 복지 지출이 GDP 대비 19%, 20% 돼요. 유럽은 대부분 28%, 29%이고. 불평등 문제를 획기적으로 바꾸려면 복지를 확대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FTA 하고, 재벌들이 계속 성장하려면 규제 풀라고 하면서 점점 무너지고 있죠. 골목상권까지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어요. 

복지 없애고 기본소득만 준다? 
나는 100% 반대입니다
복지는 민영화하면 비용 올라가 
대규모 구매 때 값이 싸지는 것
누진세 걷어 ‘소득 재분배’해야
 

안 = 지난 호에서 카를로타 페레스 선생은 기본소득(UBI)을 제안했습니다.

장 = 기본소득은 잘 봐야 하는데, 옛날에 하이에크, 프리드먼 같은 사람들이 다 지지했거든요. 그 사람들의 주장이 뭐냐면, 딱 기본소득만 주고 복지는 다 없앤다는 겁니다. 실리콘밸리에 기본소득 지지하는 기업가들이 있는데 그들 중 많은 수가 그 영향을 받았죠. 복지를 없애는 대신에 기본소득 주자는 안에 저는 100% 반대입니다. 지금 복지가 잘된 선진국들은 사실상 기본소득이 있는 겁니다. 기본적인 생활이 보장되잖아요. 다만 아동수당, 실업수당, 주택 보조 등 다 조건에 묶여 있으니까 일부 좌파에서 ‘그런 거 복잡하고, 경제구조도 바뀌어 파악하기 힘드니 일괄적으로 현금화해서 주자’는 거죠(안희경의 ‘세계 지성과의 대화’ 2-카를로타 페레스 참조). 저는 그건 좀 아닌 것 같아요. 우파식으로 세금은 국가가 강탈해가는 걸로 생각해서는 안되지만, 세금으로 공동 자금을 만들었으면 어떻게 쓰면 좋은지 얘기할 권리는 있다고 봅니다. 특히 교육, 보건 분야는 복지제도를 민영화하면 비용이 올라갑니다. 복지는 공동구매거든요. 국민 의료보험을 하면 의료비가 싸지는 이유가 의료보험을 대규모로 구매해서예요. 저는 기본소득을 줘서 사람들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부분을 늘려주자 정도까진 찬성인데, 그 과정에서 기존의 사회복지를 어떻게 바꿀 거냐 하는 점은 조심해야 한다고 봅니다. ‘아동수당 올려줄 테니 알아서 탁아시설 찾아라’ 이러는데, 탁아시설이 영리단체면 거기다 돈 주는 거죠. 공급은 늘어날지 모르지만 질은 보장이 안되고요. 

안 = 지금 그렇게 돼 있죠. 그렇지만 시장은 활성화돼 경제가 돌아간다는 주장을 합니다.

장 = 그런 거 가지고 경제가 잘 돌아갈 것 같으면 뭐 벌써 잘 돌아갔겠죠.

안 = 만약 이번 일요일에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 뒷산을 오른다, 그러면 어떤 조언을 하고 싶으세요.

장 = 지금 우리나라가 OECD 중에서 재정이 제일 탄탄한 나라 중 하나예요. 매년 재정흑자에다 GDP 대비 국채비율이 낮기로 스위스, 덴마크, 스웨덴 등 5개 선진국 다음이 우리입니다. 오죽하면 OECD, 그 보수적인 데서도 한국한테 재정정책 더 적극적으로 쓰고 적자도 좀 더 내도 된다 권고할까요. 그런데 안 해요! 제가 ‘자린고비 경제학’이라 부릅니다. 무조건 안 쓰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거죠. 특히 교육·연구개발에 공공투자를 하면 나중에 더 큰돈이 돼 돌아와요. 대통령께 부탁드리고 싶은 건 담론 구조 자체를 바꿔주시라는 거예요. ‘우리나라같이 매년 재정흑자만 내는 나라 없다. 지금 복지가 필요하다. 복지 2배로 늘려도 미국 정도다. 유럽 수준 되려면 3배 이상 늘려야 된다.’ 기존 개념을 완전히 바꿔서 새로운 지평을 여셔야죠. 

안 = 페레스 선생과 인터뷰할 때, 한국은 노인 기초연금수당이 얼마냐고 묻기에 30만원이라 답했는데, “그 돈으로 살 수 있느냐”고 되물어 화제를 돌렸습니다. 

OECD 복지 평균지출 21% 
한국은 10% 좀 넘는 수준
노인연금 30만원, 창피한 얘기
 

장 = 창피한 얘기죠. 1970~1980년대 사고에서 못 벗어난 거고. 우파에서는 마치 복지가 없는 돈을 쓰는 것처럼 얘기하는데, 그냥 오른쪽 주머닛돈을 왼쪽으로 옮겨 쓰자는 거예요. 어차피 다들 써야 할 돈, 모아서 체계적으로 쓰자는 겁니다. 좌파도 무상복지라고 하는데 왜 무상입니까? 가난한 사람도 다 세금 냅니다. 부가가치세 내잖아요. 그걸 무상이라고 하니까, 우파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공짜만 바란다’고 비난할 빌미를 주죠. 다 같이 사고를 열어젖혀야 하는데, 한국뿐 아니라 어느 나라나 진영 논리가 강하기 때문에, 그게 참 비극인데…. 그래도 지금 문 대통령 아니면 누가 그걸 바꾸겠어요.

세수 호황이다. 초과세수가 26조원이 될 거라고 전망한다. 그 돈이면 일자리 21만개 더 만들 수 있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긴축을 비판하는 프레임조차 ‘일자리 만들기’라는 것이 안타깝다. ‘허리띠 졸라매기’를 더는 할 수 없는 이들의 고통은 여전히 뒷전이다. ‘자린고비 정책’이라는 장하준 교수의 일침이 귀에 쟁쟁거린다. 

■ 장하준 교수는…경제분야 세계적 명성, 대중에게 쉽게 풀어내
 
장하준(55)은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다. 2003년 뮈르달상, 2005년 경제학의 지평을 넓힌 경제학자에게 주는 레온티예프상을 수상하면서 세계적 경제학자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대한민국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2005년)을 지냈고, 2014년 영국의 정치평론지 프로스펙트(Prospect) 선정 ‘올해의 사상가 50인’에 오르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영국 국립경제사회연구소(NIESR) 이사로 선임돼 5년 임기를 맡았으며, 2019년부터 3년간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개발정책위원으로 임명됐다. 주요 저서로는 <사다리 걷어차기> <개혁의 덫> <쾌도난마 한국 경제>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나쁜 사마리아인들>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국가의 역할> 등이 있다.
 
대중을 위해 경제학을 쉽게 설명하고자 노력해온 장하준은 인터뷰 말미에 모두 함께 경제를 공부하자고 제안했다. 돈으로 가치를 셈하는 사회이기에 사회를 민주적으로 운영하고 개인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경제를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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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1140600035&code=100100#csidxa0af8ba20bfb042bb1538773d5fd4bd